사람들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남만(南蠻)도 좋은 시절 다 갔지.“
”그러게 말이야. 제갈 승상이 이쪽으로 쳐들어온다고 하니 끝장이지 뭐야.“
‘골’이라고 하는 천연자원이 그 어느 곳보다도 많은 지역. 백성들이 골잡이로 생계를 해결하는 나라. 후주(선주 유비의 아들) 앞에 제갈공명이 나선다.
”신은 이번 기회에 만방(蠻方, 남쪽 오랑캐)을 토벌하여, 지난날 선제께서 초려에 있는 신을 세 번씩이나 찾아주신 은혜와 폐하를 신에게 부탁하신 중임에 보답코자 합니다.“ 그러자 장수들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모두 남벌 계획에 반대 의견을 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남방은 무시무시한 풍토병이 들끓는 곳입니다.“
”그곳은 너무 외진 곳,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남만족은 길들일 수 없는 야생동물하고 한 가지입니다.“
특히 남양 사람 왕련(王連)이 가장 드세게 반발했다. 골잡이들을 토벌하러 승상이 직접 현지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후주를 보필해야 하는 승상이 굳이 험지에 출마할 이유가 뭐냐며 언성을 높혔다. 산세가 험하기로 이름난 곳에서 자칫 낙마하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며 만족의 흉포함을 거듭 강조했다. 맨손으로 골(䮩)을 잡는 남만족이다. 밤중에 백 리 길을 맨발로 뛰어다니는 자들도 있다고 하질 않는가.
그러나 공명의 고집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먼 미래의 세상을 내다보았던 것이다. 만방은 골뿐만 아니라 푸(䬌)가 무진장 서식하는 천혜의 자원지역이었다. 제갈공명은 지역 골을 광역화하면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먼 훗날의 세상은 골푸가 크게 유행하게 될 거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미래 세계의 실상이었다.
***
“내비를 다시 펴보지 그래.”
답답해 죽겠다는 듯 한숨을 쉬던 사람이 내비를 들여다보자고 한다. 밤새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아 헤맸건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조랑말이란 놈은 행방불명이 된 지 오래됐다. 초저녁부터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둘이서 열심히 산길을 헤쳐나갔지만 대체 여기가 어디쯤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보다도 지금 몇 시나 된 것일까. 내비는 종종 말썽을 일으키더니 아예 먹통이 돼버렸다. 오지에서는 애라(碍懶)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산속을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두 사람이 진작에 성능이 좋은 내비개이선을 장만해놓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문득 말발굽 소리 같은 게 들려온다. 저 아래쪽이다.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가까운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덜커덩 덩커덩.
희미하게 반복되는 소리. 자세히 들어보니 자갈길을 가는 마차 소리다. 야밤 산중에서는 십 리 밖의 돌 구르는 소리도 들린다. 그만큼 적막한 산길을 헤매는 골잡이 두 사람.
“여보슈~~~!”
“야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소리치는 두 사람. 그 소리들은 메아리가 되어 온 산골짜기를 뒤흔들었다.
“초롱을 높이 쳐들고 흔들어보라구!”
한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은 골푸채 끝에 초롱을 매달고는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밤하늘에 불덩이가 너울너울 춘을 춘다.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만큼 불빛이 환했다.
드디어 서투을 마차의 불빛이 점점 커진다.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리는 걸 보니 저쪽에서도 두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챈 모양이다. 오 리쯤 되는 거리에 멈춰선 서투을(西透鳦).
이때를 놓칠 순 없다. 산기슭을 쏜살같이 달려 내려가는 두 사람. 숨이 턱에 닿을 듯이 달려간다. 금세 2리 앞 큰길에 정차한 마차의 윤곽이 보인다. 사람 소리도 뚜렷하게 들려온다.
“두 사람인 것 같은데.”
“아냐, 세 사람인가봐.“
서투을 앞 1리까지 튀다시피 달려오느라 골 잡이 두 사람은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났다. 이제 살았다!
”기다려주어 고맙소이다!“
”고맙기는, 삯을 받고 하는 일인데 뭘 그러슈.“
서투을 주인은 두 사람에게 뒤편을 가리켜 좌석을 보여주고는 행선지를 묻는다.
”어디까지 가려는 게요?“
”우린 명학(鳴鶴) 사람이오.“
”경기 지방은 어디가 됐든 두 당 삼천 마나요.“
”이 서투울은 어디서 오는 길이오?“
”천리에서 타오(駝梧)로 돌아가는 길이외다.“
”음, 천리라면 서천리 근방인가...“
”마, 대충 그렇소.“
두 사람은 뒷자석에 털썩 몸을 던지고는 이제야 살았다는 안도감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대여 섯 명이나 있다. 밤새 산길과 강변을 헤매느라 다들 지친 모습이다. 십 인승 서투을이라고 하지만 마구 때려 실으면 20명까지도 승차할 수 있다.
”이랴! 출발이다.“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서투을이 밤 공기를 가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2인1조 하면서 조랑말도 없이 어찌 피겁(被抾)을 하려했수?“
뒤쪽 구석에 박혀있던 사람이 두 사람의 행색을 살피며 묻는다. 조랑말을 부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태워주는 것을 피겁이라고 한다.
”초지녁에 잃어버렸지라.“
또 한 사람이 끼어든다.
”둘이서 하면 거 돈이 되겠수?“
반타작을 하게 되니 혼자할 때보다 수익이 반으로 줄어든다. 대신 발바닥이 덜 아픈 이점이 있다. 말을 타고 산길을 다니는 게 혼자 걷고 뛰는 것보다 훨씬 편한 건 당연한 일. 또, 날이 새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2인1조 방식의 큰 장점이다. 이번에는 반쯤 졸고 있던 자가 한마디를 툭 던진다.
”하긴 호환이다 시환(豕患)이다 해서 많이들 죽는 판이니 안전한 게 장땡이지.“
시환은 멧돼지의 습격을 받는 경우다. 호랑이의 공격은 호환이다. 나무 둥치 근방에 숨기를 잘하는 도병꾼들이 자주 호랑이에게 화를 당한다. 죄값을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남이 다 잡아놓은 골을 슬쩍하는 짓이 도병(道餠)이니 말이다. 골잡이들은 그런 몹쓸 짓을 길빵이라고 했다.
앞쪽에서 승객들의 대화를 엿듣던 마부가 밤하늘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린다.
”원, 참. 내비는 얻다 쓰려고 꼬불쳐놓은 게요?“
”아, 내비요? 이게 자꾸 애라가 떨어지더니 끝내는 작동이 안 돼 애를 먹었다오.“
내비개이선(內祕開異扇).
그건 평범한 쥘부채가 아니다. 부채살 사이사이에 길찾기 비결이 내장된 물건이다. 그걸 펼치는 방법도 보통 부채하고 다르다 하여 개이선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골잡이 산업이 크게 일어난 남만에선 일찍부터 내비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뭔 소리요. 애라가 떨어지다니. 거 고물 아니오? 아, 요즘은 물속에서도 그걸 써먹는 시대라 하지 않소?“
거의 면박을 주는 듯한 말을 내뱉고는 껄껄 웃는 골잡이. 산적처럼 턱수염이 무성하고 덩치가 제일 우람한 사내였다. 골잡이 경력을 말해주듯 손가락 마디가 독수리 발처럼 울퉁불퉁한 게 범상치 않다. 하긴 요즘 남만의 일급 공방에서는 상세 지도를 보여주는 5기가(機價)짜리 신형 내비를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나저나 요즘 골이 너무 없어. 촉나라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린 이후론 골 수가 부쩍 줄었다닝깨.“
누군가 슬그머니 골이 줄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발끈하는 사람이 있다.
”고것이 다 조정이 시끄러워져 재수가 없으니 그러는 거라니께.“
사실 지난 여름 물난리 때 터진 대형사고 때문에 조용한 날이 없었다. 상병에게 골을 잡는 뜰채 하나만 달랑 들고 그 험한 노수(瀘水)에 뛰어들게 한 자가 누구인가. 뜰채 상병(廂兵) 사망 사건의 책임자를 규명하여 극형에 처하라는 투서가 빗발치고 있어 세상이 뒤숭숭한 때였다.
첫댓글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예전 닉을 바꾸신 거죠?
@♣ 라크 그렇습니다 새벽도깨비 밤길파수꾼 이찍일베놈들 때문에
조운자룡님?
반갑습니다.
촌철살인의 멋진 소설 기대합니다.
아~자룡님 글체랑 비슷한데 자룡님이 아니시군요ㅎㅎ
암튼 멋진 소설 기대합니다.
예. 안녕하세요? 저도 조운자룡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제가 바통을 이어받기로 했습니다.
@♣ 라크 부드럽게 이어 가시는 걸 보니 기대가 큼니다.
밤이슬 애도자 님들을 위해서 수고 좀 해주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