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大漢) 건흥(建興) 3년 6월 20일.
남만에서 새월호(塞越號)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되는 해. 백성들은 형편이 좀 나아지자 그해 봄날의 참사를 생각하기 시작하는데. 골잡이 노릇으로 수입을 늘려 형편이 좀 나아지자 옛일을 떠올리게 된 건 인지상정이 아닌가.
하지만.
지난 여름 물난리 때 터진 사고 때문에 새월호 떼죽음 사건은 다시 쑥 들어가게 된다. 일단 상병 사망이 세상을 달구는 형편. 조용한 날이 없게 됐다.
상병에게 골을 잡는 뜰채 하나만 달랑 들고 그 험한 노수(瀘水)에 뛰어들게 한 자가 누구인가. 상병(廂兵) 집단 사망 사건의 책임자를 규명하여 극형에 처하라는 투서와 상소가 빗발치고 있어 세상이 뒤숭숭한 때였다.
뜰채 상병(廂兵) 사고는 왜 다시 튀어나왔나.
해가 바뀌었으니 잊을 만도 했지만 사건의 여파가 자꾸 수면 위에 치솟는 것이었다. 잠잠해지기는커녕 갈수록 시끄러워졌다. 알고 보면 황당한 사건이었기 때문인데...
뜰채에 관하여.
골(䮩) 잡는 뜰채는 물고기를 건져올리는 것과 조금 다르다. 골잡이 전용 뜰채는 아가리가 원형이고, 망이 좀 특이한 모양이고 깊은 편이다.
”사건의 진상은 이랬쏘. 모두 내 잘못이오.“ 누구 하나 이렇게 나서서 화끈하게 책임지려 하지 않고 다들 눈치를 보며 어서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린다. 추장(酋長)은 그래도 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동장(洞長)이 문제다. 노수(瀘水)에 뛰어들게 한 자가 바로 동장이 아닌가.
”병졸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기만 하면 돼.“
백성을 개돼지로 알고 있는 동장이 한 말이다. 병졸들이 떼죽음을 당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는 것이다.
만왕(蠻王)은 병졸들이 죽어나가는 날에도 술판을 벌였다. 술이야 뭐, 사실 매일 마시는 것이니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남만 사람들은 술 먹는 날이 따로 없다. 눈만 뜨면 마신다. 최고의 술안주라고 하는 골이 있기 때문에 마구 마셔도 탈이 없다. 잘 취하지도 않는다. 상황버섯보다 뛰어난 효능이 있는 것, 바로 골 덕분이다.)
술 얘기가 나오면 제갈공명이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제갈 승상은 골이 세상 모든 밤하늘 아래서 발생하게 될 거라고 예언했다. 사람들이 술 없이는 살 수 없고, 최고의 술안주는 사람들의 관심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또, 뜰채의 시대에 이어 골푸채가 대유행하는 날이 온다고 했던 이가 또 누구였던가.
칠종칠금이라는 희한한 기록을 남기며 남만 지역을 평정한 제갈 승상.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군사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었다. 승상은 이에 앞서 전사한 남만 병사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한때는 적이었고 야만인이었지만 목숨이 귀하기는 누구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성을 우습게 알고 무시했던 남만 땅 왕과 동주(洞主)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태도가 아닌가. 남만에도 아파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골잡이들의 생활 형편이 좋아진 것이다. 사람들은 움집을 박차고 나와 지상에서 번듯한 덮개(套,투)를 두른 집단 거주지를 만들었다.
서민층은 휴만시아(休饅豕牙) 아파투라는 지역에 살게 됐다. 편히 쉬면서 만두를 즐길 수 있는 생활 여건이었다. 반면 관아에 나가는 관리들은 이미 좀 더 번듯한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편한(利便漢) 아파투라고 하는 곳이다.
※골푸(䮩䬌).
다 자란 골은 토끼보다는 작고 청설모보다는 큰 편이다. 평균 수명은 120년. 수생동물이면서 밤에는 숲으로 기어들기를 좋아한다. 예로부터 신선의 주식으로 알려진 천상의 영물. 육질이 아주 부드럽고 맛이 뛰어나 술안주로 그만이다. 영양분이 풍부한 건 말 할 것도 없다. 상황버섯과 함께 남만의 2대 특산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상황버섯을 채취하는 여인을 상황녀라 한다. 시냇가에서 어린 골을 잡는 여인은 시내 발희(潑姬)라고 불렀다.
푸는 골과 달리 산과 들에 서식하는 포유동물이다. 날아다니는 고양이라고 할 만큼 순간 이동 능력이 엄청나다. 이것도 역시 태곳적부터 신선과 인연을 맺은 짐승이다. 짐승이라기 보다는 영물이라고 해야 하겠다. 도무지 뭘 먹고 사는지, 또 평균 수명이 얼마나 되는 지는 끝내 알려지지 않았다. 남만의 깊은 숲에 무진장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밤이면 박쥐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이 쉽게 목격되지만 좀 기이한 현상이 있다. 그걸 생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것. 살아 있는 푸를 산 채로 잡은 사람은 전혀 없다. 신선을 제외하고는 그렇다는 얘기. 무기를 이용하면 쉽게 죽어버린다. 푸를 죽인 사람은 불치병에 걸린다는 속설이 민간에 퍼져있다. 까다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놈이다.
푸는 마술을 부리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걸 잡으면 왠지 소원성취할 것 같은 예감을 뿌리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골푸채를 휘두르는 사람의 모습이 그 지역 동굴벽화에 흔하게 등장한다. 푸는 그렇게 신기한 생물이었다. 공명은 먼 미래의 사람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숲속에서 이상하게 생긴 채를 휘두르게 될 거라고 내다봤다.
또 한 가지. 푸는 생김새로 보아 퓨마의 조상격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어필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사실 무근의 얘기. 푸마(䬌馬)를 만병(남만의 병졸)들이 전투 현장에 끌고 나오기도
하는데, ‘푸마’도 푸하고 직접 관련은 없다. 하여튼 푸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제갈공명마저도 그것을 본 적이 있으면서도 푸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요렇게 말 한 적은 있다.
”내가 초려(草廬)에서 나오기 전부터 이미 남만 땅에 호랑이와 표범을 싸움에 부리는 진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 조자룡과 위연이 대(對) 남만 전투의 패잔병을 인솔하고 돌아온 현장의 훈시 중에서.
제갈공명과 내비개이선(內祕開異扇).
깃털부채를 다 펼치면 상반신을 가릴 수 있다. 조촐한 모양이 아니다. 내비개이선을 작은 크기로 그려 넣은 그림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 제갈공명의 부채는 그저 내비 기능 한나만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부채 안쪽 깃털 사이사이에 최첨단 정보의 단서가 내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