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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한 명 뿐이어야 한다. 그는 반드시 팀의 보스여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미국의 저명한 야구기자 레너드 코페트의 지적이다. 그의 말처럼 대부분의 팀에서 ‘보스’는 감독 한 사람뿐이다. 매년 상위권에 드는 강팀들을 보면, 감독이 선수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SK 김성근 감독이나 두산 김경문 감독, 삼성 선동열 감독이 대표적인 예다. KIA 조범현 감독 역시 지난해 우승을 계기로 클럽하우스 ‘접수’에 성공했다.
이런 팀들은 선수단 전체가 감독을 정점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에 잡음이 나올 일이 별로 없다. 야구 외적인 문제가 선수단 분위기를 해치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감독에게 ‘너 드립’이나 ‘XX 드립’으로 감자탕을 먹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또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책임 소재를 가리기도 쉽다. 고로 잘 나가는 게 당연하다.
반대로 어떤 팀들 -주로 하위권을 맴도는- 은 보스가 한 명이 아닌 여러 사람이다. 감독은 바지사장이고 실제 보스는 따로 있거나, 동료를 가장한 적들이 감독의 눈과 귀를 가리기도 한다. 감독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음모와 협잡의 막장드라마가 펼쳐지는 예도 흔하다.
김성근 감독 사퇴 후의 LG가 그랬다. 이광환 감독은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려는 구단에 맞서다 옷을 벗었다. 이순철 감독 때는 프런트가 곧 보스였다. 김재박 감독은 애초부터 보스 기질과는 거리가 먼 인사였다. 무엇보다 감독 목숨이 ‘추노’의 노비 목숨보다 헐값인 팀에서, 감독을 보스로 모실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니 배가 산으로, 들로, 우주로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팀에서 신임 박종훈 감독이 5년 계약기간을 무사히 채우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보스가 되어야만 했다. 프런트에 휘둘리는 일 없이, 클럽하우스 전권을 장악해서 팀 내 유일의 보스로 자리매김을 해야 했다. 몇 년 새 크게 추락한 감독의 권위를 되찾아 와야만 했다. 초반부터 누가 보스인지를 모든 선수들에게 똑똑히 확인시켜 둬야 했다.
문제는 방법이다. 여기서 박 감독은 선배이자 전 보스인 김경문 두산 감독을 벤치마킹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사실 두산 2군 감독 시절부터 박종훈의 용인술은 김경문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전설로 남은 김명제의 ‘18실점 완투 뒤 구리-잠실 도보횡단’ 사건이 대표적이다. LG에 와서도 한 베테랑 투수가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자 두말없이 전훈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는 김경문 감독이 과거 안경현, 홍성흔, 고영민 등을 다룬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다. 김경문 감독이 부임 초기부터 선수단을 장악하고 뛰어난 성적을 거둔 반면, 박종훈 감독은 선수들과의 마찰과 성적 부진으로 초반부터 고전하고 있다. 특히 최근 며칠 사이에는 싸이를 거점으로 선수들의 ‘3연속 드립’이 작렬하며(여기에 단장의 ‘무관중 드립’과 이상훈의 폭로까지) 감독의 지도력에 심각한 도전이 제기된 상황이다. 두 감독 간에 이처럼 극과 극의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경문과 박종훈의 결정적 차이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김경문 감독의 ‘권력’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년 OB 베어스 멤버에 1998년부터 6년 이상 배터리 코치로 활동한 김 감독은 그야말로 ‘쓸개 대신 웅담을 달고 산다는’ 순혈 베어스맨.
그는 감독 취임 당시부터 구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물론, 주변 코치진도 마음이 잘 맞는 인사들을 대거 기용해 ‘김경문 사단’을 구축했다. 내부 승진 감독인 만큼 두산 선수단의 생리나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김경문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클럽하우스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이 종종 스타 플레이어들을 벤치에 앉히거나 2군으로 내려보내는 등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홍성흔처럼 반발하는 선수도 이따금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언제나 싸움의 승자는 김경문이었다. 감독이 결코 이유 없이 선수를 홀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선수에게는 항상 공평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선수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찰이 생길 때 구단이 항상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박종훈 감독의 처지는 정반대다. OB에서 주로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했다는 점은 김경문과 공통적이지만, 박종훈의 감독 데뷔 무대는 친정 OB가 아닌 LG다. 당연히 클럽하우스에 박종훈 감독의 제자는 없다. 프런트에도 없다. 박 감독도 LG를 잘 모르고, LG도 박 감독을 잘 모른다.
그렇다고 코치진을 자기 사람으로 꾸렸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 해설위원에 따르면 “감독을 한다기에 자기 사람을 한두 명쯤은 데리고 갈 줄 알았는데, 아무도 함께 LG로 옮긴 이가 없었다. 생각보다 험난한 감독 생활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라고. 게다가 구단 요직의 인사가 1군 코치로 오는가 하면 2군 감독이 1군 감독보다 ‘거물급’으로 영입되는 등, 보스 노릇을 하는데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두산에서는 통하는 방식이 LG에서는 마찰을 빚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박종훈 감독과 LG 선수들이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같은 2군행에도 두산 선수들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하고 받아들이지만 LG에선 오해를 부른다. 두산에선 감독이 공평한 잣대를 적용할 거란 신뢰가 있지만, 박 감독은 아직 그런 신뢰를 얻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또 있다. 두산 선수들은 김동주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2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1군에 올라온 케이스다. 날 때부터 스타였던 선수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자연히 자신을 발굴하고 키워준 감독에게 순응하게 되어 있다. 반면 LG는 2군에도 스타가 넘친다. 주말이면 구리 2군 구장에도 팬들이 삼삼오오 몰려든다. 그러니 외부인사 출신의 ‘힘없는’ 감독 말이 처음부터 먹혀들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비슷한 사례를 2003년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메츠는 강력한 리더십을 자랑하던 바비 발렌타인 대신 오클랜드 감독을 지낸 아트 하우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메츠에는 이미 단장 스티브 필립스를 필두로 존 프랑코, 알 라이터 등 프랜차이즈 출신 ‘베테랑’들이 팀 내 권력을 장악한 상황. 감독의 말은 선수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클랜드 시절에도 빌리 빈 단장의 지시를 수행하는 역할만 하던 하우 감독이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마피아’로까지 불리던 메츠 노장 선수들과의 권력 다툼이 불가피했다. 불행히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메츠는 팀내 불화와 주전 부상이 겹치며 2년 연속 하위권을 맴돌았고, 결국 하우 감독은 경질됐다.
박종훈 감독이 다소 무리수를 둔 것은 사실이다.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점진적으로 주도권 장악을 시도했다면 지금과 같은 파장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령 먼저 좋은 성적을 내서 이를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거나, 아니면 시간을 들여 선수들의 이해와 신뢰를 충분히 얻은 뒤에 ‘카리스마’를 드러냈다면 평지풍파 없이도 얼마든지 ‘보스’가 될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문제는 박 감독이 그렇게 한가한 처지가 못 된다는 점이다. 지난 겨울 선수 영입에 거액을 투자한 구단에서는 ‘성적과 리빌딩을 동시에’ 해내라는 초현실적 요구를 하는 상황. 하지만 초반부터 시합이 꼬이면서 성적이 마음같이 안 나오는 상황. ‘불통의 리더십’에 다년간 익숙해진 선수들에게 대화와 소통의 리더십이 빠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결국 고독한 박종훈 감독은 ‘에이스’를 굴복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단숨에 클럽하우스 주도권을 장악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다. 계산과는 달리 ‘싸이’라는 웜홀을 거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전개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선수단이나 팬들의 공적이 될 위험을 걸고 도박을 하지 않고서는, 감독이 감독다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게 지금 LG의 현주소인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일단 구단이 박 감독의 손을 들어줬고 봉중근도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태가 감독의 ‘판정승’으로 끝났다는 점. 만일 여기서 패했다면, 박 감독의 리더십이 치명상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남은 5년 동안 식물 감독이 될 위험도 있었다. 덕분에 적어도 한동안은 감독의 의중대로 선수단을 움직이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언젠가 비슷한 문제가 다시 생겼을 때, 그때도 구단이 감독의 손을 들어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종훈 감독은 그전까지 어떻게든 주도권을 건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그게 좋은 성적을 통해서든, 아니면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으로든. 선배인 김경문 감독은 그 둘을 모두 달성했고, 막강한 권력을 얻었다. 혈혈단신인 박종훈 감독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여기에 그의 운명이, 그리고 LG의 남은 5년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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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건 뭔 완존 .....에혀..언제쯤 자릴 잡을려나...
박종훈 감독의 지도력이나 용병술 처세 등이 올한해 드리워질수 있고 그게 후반기나 1년 후부터 효과를 볼수있다고 생각 합니다.
정답
요새 기사 이렇게 쓰나;; 내용은 그렇다치고.. 디씨안하는사람들은 머 기사 내용도 이해못하겟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