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이념적대립의 과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내의 반미의식이 상식의 선을 넘어 국민의식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전쟁이나 이념적 대립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미의식이 하나의 의식흐름 처럼 형성된 프랑스의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자국과 유럽의 반미주의에 대한 반론을 모아 출간하였다.
이책은 미국의 후세인 정권을 공격하기 한달전에 출간되었다.
저자의 주장과 견해가 한달 후 발발한 이라크 전쟁속에서 발생된 화두와 논쟁에 대한 논리적인 해명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의 두드러진 변화에 따라 반미주의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미국과 세계정세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고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아집에 의해 반미주의가 형성되어왔음을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프랑스(혹은 서유럽) 상당히 다른 사회발전과 국민의식발전의 과정을 거쳐왔지만 반미의식의 내용과 강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프랑스의 지식인이 프랑스사회의 반미주의에 대한 해부와 비판의 내용을 참고삼아 한국사회의 반미의식의 본질과 문제점을 대비해보는 것은 단순한 "타산지석"을 뛰어넘어 한국사회의 성숙과 발전을 위한 가치있는 연구가 될것이라 생각한다.
1. 반미주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오늘날 세계여러국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반미의식의 시원은 여러 가지에 있다고 볼수 있지만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소련식 사회주의가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 오류가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 실천과정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또한 이과정에서 미국의 자본과 패권주의가 사회주의의 몰락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좌파들로서 소련식 사회주의를 신봉했으나 애초부터 미국과 미국사회가 갖는 가치에 대해 비우호적이었으며, 공격적이었다.
둘째, 대부분 이슬람 세력을 비롯하여 미국을 서구 국가의 수장으로 바라보며 종교적, 문화적 이질감과 적대감을 표출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이들의 반미의식의 출발은 타종교, 타문화와 공존을 부정하는 종교원리에서 매우 충실하며, 이러한 공격적인 시각으로 미국의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
셋째, 민족주의나 전체주의를 강력하게 표방하는 과정에서 절대강자인 미국을 자국의 경쟁의 상대로 간주하여 자민족, 자국의 이익추구를 지상과제로 삼는 경향성에서 출발하였다고 보여진다.
결론적으로 반미주의의 내용에는 미국사회에 대한 공정한 평가나 20세 세계사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편견과 무지속에 추종과 분노만이 표출될뿐 정확한 사회적 통계와 역사적 사실들의 객관적 근거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점이 반미주의의 특징이다.
2. 반미주의의 모순점들
(1) 미국 사회 내부에 대한 무지와 편견
"미국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이며, 돈을 지니고 있는 계층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돈을 보유하게되며, 그 수는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피라미드의 밑바닥 계층은 그 수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오직 부자들만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만성적인 사회폭력은 인종차별의 근본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학교에서 총기가 난사될 정도록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이 반미주의자들의 일관된 미국사회에 대한 스케치이다.
- 본문 中에서-
미국사회를 섹스와 마약, 총기범죄의 천국이 최악의 사회로 보는 것은 옳지않다.
미국인의 대부분에게 할당된 보험료가 프랑스의 의무공제액에 비교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사회보험 체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보건 관련 공공지출의 비율은 프랑스와 별 차이가 없다. 미국의 극빈자들은 국민의료보장제도를, 노년층은 노년의료보장제도라는 혜택을 받고 있다. 이 모두 공적자금을 통해 충당된다. 80년대 까지 프랑스인구의 1/10이상(600만명)이 어떠한 의료보장도 못받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미국의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불리는 연금제도를 1930년 루즈벨트 정부때 확립되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15년동안 유럽에서는 위법행위와 범죄행위가 꾸준히 증가한 반면 미국에서는 오히려 그 수가 감소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놀라운 발전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 '뉴욕의 기적'인데, 뉴욕은 루돌프 줄리아니가 시장이 된 이래 5년동안 범죄율이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전체 범죄발생이 1990년 2.245건에서 1998년 633건으로 크게 줄었다.(뉴욕은 800만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낮시간에는 1.200만까지 증가한다)
미국에서 살인사건과 경범죄가 줄고 있던 그대 프랑스는 1985년에서 1998년까지 그 범죄수가 두배로 증가하였고, 그 증가량이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의 공교육제도는 "좋은 점수를 위해 열심 공부하자"와 "전공교육"을 폐지함으로써 교육에 대한 국가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다. 이민자들에 대한 모국어 교육조차 "다양성과 인권"이라는 좌파적인 구호에 파묻혀 프랑스어를 못하는 프랑스인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고 이민자들의 하층민화는 계속되고 있다. 사회통합기능이 형편없이 저하되어, 치안과 교육과 구성원간의 공동체적 통합력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은 1840년대부터 90년동안 무려 3500만명의 이민자들이 들어왔으며 1945년에서 1960년사이 남부 흑인의 절반이 미국의 동부와 북부로 이주하였고, 현재도 아탈리아, 라틴아메리카에 이러서 아시아의 이민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1년과 2001년 사이에도 3천만명가량의 이민인구가 증가하였다. 미국의 "인종용광로"가 일정하게 작동하며 사회통합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중의 하나이다.
미국문화는 단지 마돈나의 음악과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1700개가 넘는 심포니오케스트라, 7천5백여개의 오페라단과 5억개 가량의 박물관(박물관은 모두 무상으로 운영)을 보유한 국가의 문화라는 사실은 감출수가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미국의 모든 박물관들은 사립재단을 통해 존립하고 예산을 충당받는다.
미국은 1820년 남성을 대상으로 최초로 보통선거를 시행하였고 여권신장에 있어서도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을 앞서 나갔다. 1869년 여성이 와이오밍에서 투표를 할 수 있었고 1869년에서 1914년사이에 11개 주가 여성 투표권을 인정하였으며, 1920년부터 전국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였다. 프랑스는 1944년에서야 여성의 투표권을 주었다. 남성들의 방종과 가부장적 전통에 대해여 성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여성들의 투쟁이나, 굴욕적인 은폐에서 벗어나 당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시위한 남녀 동성애자들의 노력과 같은 혁명적인 움직임들은 항상 미국에서부터 출발하였다.
1986년 레이건은 수입에 대한 연방세금의 한계 비율을 50%에서 39.6%로 내렸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수많은 세금 면제 조항을 폐지하고, 수입이 열악한 가계들에 대하여 세금을 할부로 내는 방식을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은 감소되었고, 고임금에 대한 세금은 증대되었다. 고소득층의 20%가 1979년에 그들 소득의 평균 28,5%를 세금으로 내었다. 20년후 이들은 30%를 내도록 세금 증대 조치를 받았다. 그런데 최저빈민층 20%는 1979년 그들 소득의 8.4%를 내다가 오늘날 4.6%의 세금을 내게 되었으니 이것은 매우 현저한 감면이다. 중간계층의 세금은 1966년 수준으로 감소되었다.
미국의 정당들은 당적에 관한 집착을 더나 쉽게 서로 상호 협력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법안을 만들어 제출하고, 대로는 반대당 정부가 만들었던 법안을 경쟁 상대의 후임정부가 받아들여 통과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의 자유무역협정안은 공화당 정부가 제안하고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에서 마무리하였다. 레이건의 발상이었던 사회복지 개혁안이 클린턴에 의해 수용되고 타결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반미주의와 미국에 대한 비판은 구분되어져야 한다. 미국에 대한 연구와 비판 자체는 정당하고 필요하지만, 항상 정확한 정보와 사회수준의 비교가 바탕이 되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반미주의는 대중들의 감성이 아니라 정치, 문화, 종교 엘리트들의 주장과 호소에 의해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최고의 총기범죄와 세계최고의 국민자원봉사참여", "세계최고의 인종차별과 세계최고의 이민자입국", "세계최고의 향락산업과 세계최고의 대중문화 인프라", "세계최고의 빈민가와 세계최고의 경제수준", "세계최고의 군사력과 세계최고의 해외원조금부담"등등의 상반된 이미지에 대해 늘 혼동하는 이유는 반미주의의 편견과 억지때문이다.
(2) 20세기 세계사에서 미국에 대한 편견
반미주의자들은 미국이 자국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공격하면서도, 1.2차대전과 냉전의 종식이후 까지 20세기 세계사를 미국의 패권주의 역사로 간주하는 "미국중심의 세계관"을 주장하는 논리적 모순을 보이고 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영토확장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유럽인이며 인류역사상 가장 범죄적인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생각해내고 실현한 것도 유럽인이다. 다른 대륙의 민족들을 정복하거나 식민지화하려고 한것도 유럽인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미국이 엄청난 인명피해과 물질적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유럽의 전쟁광풍을 잠재웠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지식인들조차도 미국에 의해 일제로부터 한반도가 해방을 맞이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냉전시대의 성립과 냉전과정속에서 약소국들의 시련에 대한 주요한 책임은 소련에 있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의 자립을 가로막고 자국중심의 경제체제에 편입하였으며 "세계공산주의 운동"이라는 미명하에 동유럽국가들에 내정에 꾸준히 간섭하였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공산주의 세불리기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많은 독재자들을 잉태하고 묵인하여 왔다.
동유럽, 중앙아시아들이 유럽과 동아시아에 비해 상대적 낙후성을 갖게된 출발점은 소련의 위성국가 정책때문이었다. 아울러 아프리카의 기아와 빈곤은 모두 사회주의라는 면죄부를 악용했던 독재자들때문이었다.
냉전이후 미국의 독주는 미국의 패권주의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유럽과 일본, 남미의 정체와 불안 및 국제테러리즘에 대한 무능함이 가져온 상대적 결과였다. 유럽과 일본의 과거역사의 전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남미는 냉전시기 까지의 발전 성과를 모두 엉뚱한 곳에 소모하고 말았다. 아프리카와 후진국의 빈곤의 문제, 전지구차원의 해결문제에 대해 유럽, 일본, 남미는 해결과정에 참여할 능력과 비젼을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 미국이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쳐왔으나 냉전이후 미국 만큼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국가와 지역은 없다.
유럽이 전지구차원의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철저히 정파적이고, 당리당략적이고, 자국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유럽 반미주의자들의 단골 메뉴인 "교토 기후협약"을 예로들어보자.
1997년 국제연합의 보호아래, 교토에 모인 168개국 사절단이 가스배출 제한 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2001년 1월 부시는 탈퇴를 선언했다. 클린턴 재임시절인 1997년부터 미국 상원은 95대 0으로 교토협약을 거부했다. 미국이 탈퇴하기전까지 그 조약에 조인한 167개국중 교토협약을 준수하고 있었던 나라는 단 한나라도 없었으며 유럽국가들도 전멸이었다. 미국은 총오염도가 세계오염의 5%이지만 산업오염은 지구의 25%나 된다고 유럽의 좌파드은 공격했다. 그러나 미국이 같은 지구안에서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전세계 생산량의 25%나된다는 점을 그들은 모른체 했다. 미국이 탈퇴하기전까지 전세계 167개국은 각자 오염 수치를 75% 줄이겠다는 협약 내용을 단 한나라도 전혀 준수하지 않았다.
유럽의 15개 국가들은 2002년 5월 31일, 5년만에 교토협약을 비준했다. 하지만 이 비준안이 예정된 기안에 제대로 실행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서유럽 생태학자는 제대로 된 생태학자가 아니라 극좌파주의자들일 뿐이다. 사실 환경운동도 미국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넘어왔다. 7-80년대 그들은 서구사회의 천배나 심각한 공산주의 국가의 오염은 한번도 고발한 적이 없었다. 자본주의의 오염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체르노빌 사태에서도 침묵을 지켰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죠스팽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녹색당에서 여러장관을 배출한 프랑스는 그 긴시간 동안 환경보호조치를 제대로 채택한 일이 없었다. 농부들의 항의를 유발할 질산염 금지도, 납세자들의 표를 떨어져 나가게 할 환경세금 정책도 없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미국이 아프리카의 빈곤퇴치를 위해 더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운동에서조차 미국에게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때 유럽의 반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교묘하게 미국에게 떠넘긴다. 하지만 독립이후 아프리카가 받은 국제적 원조액은 마셜플랜의 네다섯개와 맞먹는 비용이었다. 아프리카는 1960년부터 2000년까지 아시아나 남미가 받은 원종액보다 4배가 넘는 돈(물론 환불이 다 되지도 않은....)을 원조 받았다.
항상 모든 책임을 미국의 잘못으로 돌리는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경제적 지원, 군사적 개입이 요구되는 문제(심지어 에이즈 문제와 지구 온난화문제등.....)에 대해서는 미국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반미주의자들의 교묘한 책임회피성 주장이다.
(3)이슬람 반미주의의 모순
첫 번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가장 지독한 거짓말은 서구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미국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테러리즘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영제국, 프랑스, 러시아에 비해 미국이 이슬람 국가들에게 해를 입힌 일은 비교도 안되게 적다. 유럽 열강들은 수십년간 심지어 1세기 이상 이슬람국가들을 정복하고 점령하고, 억압하였다. 9.11이전까지 미국은 이슬람국가를 침략한적이 없었다. 미국이 마케도니아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 일과 소말리아, 보스니아, 코소보에 군사개입을 한 목적중에 분명히 이슬람 소수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섞여있었다.
이렇게 미국을 병적으로 혐오하는 이슬람국가의 독재자들이나 추종자들이나 테러조직들은 1981년 이라크가 이란을 공격하고,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가장 원초적인 제국주의적 전쟁으로 같은 이슬람교도들을 공격한 사실에는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1956년 이집트를 공격하려는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일명 수에즈 원정)을 저지한 나라가 미국이었다는 것을 이슬람교들이 알고나 있는지 모른다.
두 번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거짓말은 이슬람 교리가 "관대"하며 테러리즘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이 관용을 가르치며 비이슬람 교도들이나 배교자에게 폭력 행사를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슬람 경전 코란에는 신자들에게 불신자들은 몰살시켜야 한다고 명령하는 구절들로 가득하다.
2001년 10월 28일 일요일, 이슬람교도들이 파키스탄 바하왈퍼의 프랑스 신교 교당에 경기관총을 난사하여 어린이 4명, 여자 7명 남자 5명과 목사가 사망하고 수십명이 중상을 입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범죄자로 지목되어 암살 대상자에 올라 있다고 한다.
2001년 10월 서구 이슬람 교도들은 11월 중순에 시작하는 9월 단식절기 동안 미국이 아프가니탄 군사작전을 연기하도록 끊이없이 시위하였다. 하지만 1973년 이집트의 이슬람 정권은 유대인의 가장 중요한 종교 축제인 키푸르날 주저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키푸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1989년 살만 루디시를 "신성모독"으로 살인지령을 내린 파트와 후에나 같은 이슬람 영적지도자가 온건하다는 말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온건한 이슬람교도"들이 테러와 살인지령에 반대하는 항의시위를 진행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슬람 교리는 "세계에 대한 지배"에 대한 의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어찌 보면 반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미국의 패권주의"보다 "이슬람의 패권주의"가 더욱더 강력한 패권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반세계화주의와 반미주의
유럽의 반미주의자(한국도 대부분 비슷하지만)들의 대부분은 반세계화주의자들이며 이들은 극좌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시장경제를 통한 세계화"를 극단적으로 반대하며 이러한 시장경제의 세계화를 미국이 강력히 추구하고 있다는 논리로 무장되어 반미주의의 경향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최근 유럽의 반세계화주의자들은 "자본주의=미국=절대악"이라는 68년 유럽학생운동의 버전을 기계적으로 공유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민중봉기"가 "형식적인 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주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거리의 시위자들이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정부들 보다 더욱 더 정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경제발전과 자본주의를 구별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발전 자체를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간주하며 시장경제와 경제발전을 공격하고 있다. 세계화를 자본주의 시장의 확대와 동일시하며 시장의 확대를 미국의 패권주의 확대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1) 시장경제에 의한 세계화를 어떻게 볼것인가?
첫째, 좌파들의 배척대상은 유독 시장경제에 의한 세계화이다.
사실 유럽의 좌파들이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은 "자유시장과 사기업에 기초한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이며 "계획경제와 국영화"로 통제되는 세계화는 지지하고 있다.
"세계화"의 보다 원론적인 표현은 "사회화"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국가와 지역를 뛰어넘어 전지구 차원에서 "사회화"이루어지는 것을 보통 "세계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는 "시장을 통한 사회화"의 과정이었다.
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시장"을 통하지 않은 사회화는 실제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시장은 단순히 "재화와 화폐의 교환을 통한 매매"의 작동원리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시장에서 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당사자들간에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동일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대적 평등의 상태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원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억압과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동기부여와 사회적 협조를 창출하였다.
또한 시장에서는 교환의 과정을 통해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준이 형성되어 사회의 범위와 참여기준을 확대해 왔다.
결론적으로 시장의 확대와 발전은 개별 사람간의 사회화를 총진시키며 사회의 구조와 형태를 확립시키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단결하고 협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과거 냉전시대 소련식의 "계획경제와 국영화"식의 사회화는 오히려 사람들이 사회화 되는 것을 더욱 가로막고 사람들의 단결과 협조관계를 후퇴시키고 말았다. 과거 소련식 사회주의 시절 초반기에 생산력의 확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계획경제와 국영화"의 작동원리가 만든 성과가 아니라 "생산 방식의 근대화"라는 작동원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산방식의 근대화는 필연적으로 시장의 발전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러한 요구를 무시한 결과 소련식 사회주의는 예고된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인류의 경험상 "시장을 통한 사회화-세계화"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사회화-세계화"를 창출하고 있지 못하다. "계획경제와 국영화를 통한 사회화-세계화"는 작동원리의 이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을뿐만 아니라 수십개국의 경험에서 실패로 판명되었다.
둘째, 좌파들은 시장경제에 의한 세계화가 자본주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좌파들은 지금까지 시장경제에 기초를 둔 세계화를 실행한 결과 경제후퇴, 대중의 빈곤증가, 기술의 독점에 다른 정체, 빈번한 정치적 압제만 초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역사적 사실을 종합해보면 부채가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흑자수익을 올린 세계화는 시장경제에 의한 세계화뿐이며, 시장경제에 의한 세계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948년부터 50년간 세계 생산량은 6배 증가하였고 상품의 수출 규모는 17배 증가하였다. 후진국들이 고통받는 원인은 오히려 세계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십여년간 아프리카 대륙을 어중간한 빈민국에서 완전한 빈민국으로 몰락시킨 주범은 사회주의와 독재자들 때문이다.
최근 50년간 제3세계라고 불렸던 국가의 평균소득, 인구, 평균수명은 3배나 성장하였고, 20세기 중반부터 후진국 전체 평균 수명은 두배이상 증가했다. 인도는 같은 기간 동안 식량생산량이 10배 증가했고 집단기아가 사라졌다.
1960~85년까지 남미의 이인당 실제소득은 1000달러에서 1950년대 서유럽의 소득수준이었던 2000달러 이상으로 두배증했다.(75년가치 기준)1985년 멕시코의 일인당 소득은 1960년 이탈리아의 일인당 소득보다 훨씬 높았다. 50년동안 남미 전체는 매년 약 5%씩 성장하였다. 연재 남미국가들의 경제적 후퇴는 시장경제와 세계화에서 후퇴하는 사회주의적인 정책과 대중영합적인 정치인들의 무능 때문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통제력이 높았던 유럽의 어느나라에서도 이같은 성장률을 보여주지 못했다.
셋째, 좌파들은 시장경제에 의한 세계화가 국가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간의 빈익민 부익부 현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많은 원조와 도움을 받고자하는 아프리카등의 무능한 정치지도자들이거나 모든 반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좌파세력들이다. 이들은 국제원조금을 착복하고 방만한 국영기업을 유지하여 국민들을 가난으로 내몰았던 제3세계국가들에 대한 "빛탕감"을 주장한다. 심지어 테러리즘의 발생원인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부국과 빈국이 같은 성장률을 보일 때 전체 성장량은 점점차이 나기마련이다. 하지만, 부국의 성장이 빈민국의 성장률을 떨어뜨린다는 증거와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이나 스웨덴의 '빈민'은 네팔에서는 부호이다. 현재 가난한 미국인 (대략 연봉 8000달러)은 포푸투갈이나 그리스에서는 매우 적당한 평균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다.
20세기의 마지막 5년동안, 세계전체의 일반적인 경제성장이 최저빈민국들에 미친 유익한 영향은 약화되지 않았으며 무역의 자유와 시장은 빈민국들의 소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세계 일인당 평균 소득이 1%상승할 때, 최저빈민국들의 평균소득도 동일한 비율로 올라왔다.
(2) 현재의 세계화 경향이 미국식으로 규격화되는 세계화인가?
문화적 '고유성'이 오늘날 미국조도의 규격화된 세계화속에 침몰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증명된 역사적 경험이나, 현재 세계에 대한 올바른 관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고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 까지 문화는 단일화의 과정이 아니라 다양화의 과정으로 발전해왔다.
대부분의 정부와 지식인들은 문화의 세계화를 자국의 문화가 중심이 되고 모델이 됐을 경우에만 지지한다. 오늘날 세계문화가 미국식으로 단일화되고 있다는 인식은 잘못되었다. 사실 미국문화는 단지 일부분에 불과할 뿐만아니라, 영구적이지도 않다. 세계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문화를 번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반미주의의 모순은 미국이 유럽이나 아시아 다른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는 경우까지 문화의 세계화를 미국 탓으로 지적하고 기분나빠 하는데 있다. 월트디지니의 장편만화들은 모두 유럽의 동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중국의 고전소설도 있다. <백성공주와 일곱난장이><피노키오><뮬란>등은 유럽과 중국에서 구전되어온 동화이다.
미국문화의 이기심 때문에 다문화주의가 사라지고 있다고 여기는 강박관념은 영어보급화를 그 논리의 근거로 삼는다. 영어는 수십억의 인구가 모국어로 사용하며 많은 인구가 제2외국어로 상용하고 있으며 현재 가장 국제화된 언어이다. 학문, 무역, 경제협상, 정치등의 목적으로 공부한다는 것과 자기문화의 가치를 버리고 미국문화의 사상에 피상적인 지식을 갖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러시아어를 모르더라도 번역된 글을 읽으면서 러시아특유의 감성을 지는 고전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어떤 영역이라도 단일화가 아닌 다양화의 근원이된다. 문화의 세계화는 곧 단일화가 아니라 다양화로 표현되며 그속에서 더욱더 문화의 '고유성'이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3. 반미의식의 현실
오늘날 반미의식은 미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 대한 반감과 거부의 차원을 벗어나 한사회와 국가의 건강한 발전과 전세계의 지속적인 발전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첫째, 오늘날 반미주의는 대다수 대중들의 감성적인 흐름이 아니라 정파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좌파인텔리, 종교인텔리, 정치인텔리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선동되어지고 있다.
둘째, 오늘날 반미주의는 한국가나 사회의 발전계획 수립에 있어서 건강하고 실증적인 연구에 장애를 초래함으로써 각 사회발전전략에 치명적인 오류와 혼란을 유발시키고 있다.
셋째, 오늘날 반미주의는 사회역사 발전에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며 자유와 평등, 인류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대중들의 의지와 염원을 훼손시키고 있다.
반미주의자들은 철저히 부정하겠지만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미국과 세계화로 인해 발전해왔던 인류의 실증주의적인 학문과 연구 기풍은 결국 인류로 하여금 반미주의의 허상을 깨닫고 더 높은 진보의 역사로 발전하도록 촉진시켜줄것이다.
첫댓글 너무 길어서 죄송함다......^^
정말 좋은글입니다.
아.. 정말 잘 읽었습니다. 바보같은 한총련 놈들도 좀 더 공부해서 진실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르벨은 다양한 시각으로 미국을 비판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자 입니다. 어째뜬 광신적인 구라파식 반미를 비판해 놓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