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소 / 이근일
곰소엔 곰이 살지 않고, 소금을 이르는 은어(隱語)만 반짝인다 소금밭에 11월 대신, 6월의 빛살이 말갛게 일렁이고 네가 내 심장에 심어 놓은 글라디올러스가 더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제 창공을 찢으며 날아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으므로, 이 없으므로를 적시며 바닷물이 고요히 흘러들고 있다 너는 없고, 차오르고 또 차오르는 너의 음성만 있으므로, 나는 저 있으므로에 앉아 꿀차를 마신다 내 심장 속 달콤한 피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동안 너의 음성은 음성에서 멀어지고 바닷물은 바닷물에서 멀어져 짜디짠 시간이 된다 망중한 그 시간 위로 떠오른 한 척의 폐선이 다시금 밀회 속으로 가라앉는다 잠시 뒤 교향곡이 끊어지면 사방에 흩어진 내 핏방울이 곰소의 하늘가 천만 송이 글라디올러스를 활짝 피우고 글라디올러스가 글라디올러스에서 멀어지는 사이,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곰소는 그 반짝임에서 멀어져 오직 캄캄한 어둠만을 흡수하고
(문장 웹진) 200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