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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nger of Partial Understanding
(불완전한 깨달음의 위험성)
Partial understanding is dangerous. During the time of the Buddha, there were ascetics who could attain the super-natural power of divine eye.
불완전한 깨달음은 위험합니다. 부처님 재세 시에 천안통을 가진 사문들이 있었습니다.
With divine eye, some ascetics saw a person who had done evil in life being reborn in hell after dying, so they theorized that evildoers go to hell. Yet, some other ascetics saw someone who had done evil taking rebirth in a celestial realm after dying, so they concluded that evildoers go to heaven.
어떤 사문들은 천안통으로, 살아서 나쁜 짓을 한 자가 죽은 뒤에 지옥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악인은 지옥에 간다는 이론을 세웠지요. 그런데 다른 어떤 사문들은, 악행을 저지른 누군가가 죽은 뒤에 천상에 다시 태어나는 걸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천국에 간다고 결론지었지요.
Other ascetics happened to see with their divine eye someone who had done good being reborn in a celestial realm after dying, and they concluded by theorizing that good persons go to heaven. Then some other ascetics saw someone who had done good taking rebirth in hell after dying, so they theorized and taught others that good persons go to hell.
다른 사문들은 천안통으로, 착한 일을 한 누군가가 죽은 뒤에 천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착한 사람은 천국에 간다고 이론을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몇몇 사문들은, 착하게 산 사람이 죽은 뒤에 지옥에 다시 태어나는 걸 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착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이론을 세우고는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Since these theories were formed according to what they had seen with their divine eye, each teacher held strongly that his own view was true, an that the view of others was untrue.
이러한 이론들은 그들이 천안통으로 본 것에 따라 형성된 것이어서, 각각의 스승들은 자신의 견해는 옳고, 다른 이들의 견해는 그르다는 생각을 강하게 고수했지요.
These ascetics were not disciples of the Buddha; they practised outside the Buddha’s teachings. They did not practise under the guidance of the Buddha.
이 사문들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아니었고,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벗어난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Each held firmly to his own point of view, which was derived from partial understanding; this is very dangerous for oneself and for others. This is especially so for those who hold the views that those who do evil go to heaven and those who do good go to hell.
그 사람들 각자는 자신의 관점을 굳건히 유지했는데, 이는 불완전한 깨달음에 기인한 것이었지요. 이것은 자신과 남을 위해서도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악을 행한 자가 천국에 간다거나 착한 일을 한 자가 지옥에 간다는 견해를 가진 자들에겐 매우 위험한 일이 됩니다,
People who hold such views will not see the danger of doing evil deeds and the benefits of performing good deeds. Thus, they may live with confusion and so may tend to engage in doing evil deeds which will bring suffering to themselves and to others, both in the present and in the future.
그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의 위험성과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의 유익함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고로, 그들은 혼란 속에 살게 되고,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자신과 남에게 고통을 가져올 악한 행위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게 됩니다.
The Buddha expounded on this point because He wanted to make it clear why some who seem to be evildoers go to heaven, while those who seem to be doers of good go to hell.
부처님께서는 왜 악한 짓을 한 것처럼 보이는 자는 천국에 가고, 반면에 선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이는 자가 지옥으로 가게 된 건지 그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자 하셨고, 그래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소상히 설해주셨습니다.
It is possible that good men go to hell, but not because of the good actions they have done. Similarly, evildoers may go to heaven, but not because of their bad actions.
착한 사람이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한 착한 행동 때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악한 행위를 한 자가 천국에 갈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나쁜 행동 때문이 아닙니다.
The reasons are not understood by those who have merely attained supernatural powers. They lack full knowledge of kamma and its results, which is the domain only of a Buddha, Who possesses the ten powers of a Tathāgata as well as Omniscient Knowledge.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단순히 신통력을 얻은 자들에겐 이해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업과 그 과보에 대한 완전한 지혜가 부족했던 것인데, 그것은 일체지뿐만 아니라 여래(따타가따)의 10가지 권능(여래십호)을 가지고 계신 부처님만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Those who lack such knowledge and discernment also lack Insight Knowledge, which can be taught only by a Buddha. Therefore, they are not able to discern the causes for rebirth into good realms and the causes for rebirth into bad realms.
그러한 지혜와 식별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또한 통찰지가 부족한데, 그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가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로, 그들은 선처에 재생하는 원인과 악처에 재생하는 원인을 식별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They just happen to see someone who has done good take rebirth in hell after dying, and they conclude with the theory that good people go to hell. Then they see someone who has done evil take rebirth in a celestial realm after dying, so they conclude that evildoers go to heaven. They do not know the real reason, but the Buddha explains it.
그들은 선한 일을 한 누군가가 죽은 후에 지옥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그냥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착한 이는 지옥에 간다는 이론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악한 짓을 한 누군가가 죽은 후에 쳔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고는, 악행을 한 자는 천국에 간다고 결론지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잘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다.
Now, except for one who has completely eradicated all defilements, no one is always wise, and no one is always foolish. Sometimes we do what is foolish and ignorant, and sometimes we do what is wise.
자, 봅시다. 모든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항상 지혜로운 것이 아니며, 어느 누구도 항상 어리석은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리석고 무지한 짓을 하며, 때로는 지혜롭게 행동합니다.
It is not because we are born as humans that we become wise or foolish; it is because we can bring our defilements under control that we become wise. Conversely, it is because we cannot bring our defilements under control that we become foolish.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지혜롭거나 어리석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번뇌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번뇌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리석게 되는 것이지요.
This is entirely our own responsibility, so there is no reason to blame anyone else; instead, we should admonish ourselves. We should bring our defilements under control instead of blaming or admonishing others.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자신을 훈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난하거나 훈계하는 대신에 자신의 번뇌를 제어해야 합니다.
We can give others suggestions, but there is no need to give anyone any orders. Finding fault with either oneself or others is not the way to make progress.
우리는 타인들에게 제안을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명령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자책을 한다거나 남의 흠을 잡는 것은 우리 자신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아닙니다.
Correcting oneself is the way to self-improvement, and giving others suggestions on how to be wise and do good is the way to help others improve. So we should be good friends to each other. There is no reason to complain about anyone.
자기 자신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것이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방법이고, 지혜롭고 선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남들에게 제안을 하는 것은 타인들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As for those who have attained supernatural powers, and who see someone who spent time making offerings and practising morality and meditating take rebirth in hell, they theorize that good persons go to hell.
신통력을 얻은 사람들에 있어서는, 그들이 누군가가 보시와 지계와 명상 수행을 하며 살다가 나중에 지옥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고는, 착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이론을 세웠다고 했지요.
Without true knowledge, they cannot explain this. However, the Buddha explained that there are times when we bring our defilements under control and do many good things. At other times, we cannot bring our defilements under control and do many bad things.
이에 대한 진정한 지혜가 없는 그들로서는 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겠죠.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번뇌를 제어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때도 있지만, 그러나 또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번뇌를 제어하지 못하고 나쁜 짓들도 많이 한다고 설하십니다.
If the ensuing bad kamma is strong enough to give its results at our near-death moment, we will be reborn into hell or into one of the four woeful realms. Even though we have done good actions, it is the bad actions we have done which mature and appear at our near-death moment.
만약 우리가 지은 악업이 죽음 직전의 순간에 그 과보로서 나타나기에 충분히 강하다면, 우리는 지옥이나 4악처 중의 한 곳에 재생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선한 행위를 지었다 할지라도, 죽음 직전의 순간에 무르익어서 나타나는 건 우리가 지은 나쁜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Likewise, we may take rebirth in a higher realm if our good kamma gives its results at our near-death moment, in spite of the wrong we have done.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은 잘못된 행위에도 불구하고, 죽음 직전의 순간에 우리가 지은 선업이 그 과보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더 높은 영역에 재생할 수도 있게 됩니다.
Nevertheless, according to the Buddha’s teaching, although the other good and bad actions done in life may not come to maturity at the near-death moment, they may give their results at some other time when the right conditions are present.
그렇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가 살면서 지은 예전의 선하거나 악한 행위가 비록 죽음 직전의 순간에는 무르익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행위들은 합당한 조건이 주어질 때면 그 어느 때든 다른 시기에 그 과보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Those who have merely attained supernatural powers have no such understanding. They do not have the ability to discern ultimate materiality and mentality and are consequently unable to discern the kamma that appears at the near-death moment of a dying person which determines the realm of rebirth.
단순히 신통력만을 얻은 사람들은 그러한 깨달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궁극적 물질과 궁극적 정신을 식별할 능력도 없고, 결과적으로는 임종을 앞둔 사람이 죽음 직전의 순간에 나타나는 업을 식별할 수도 없습니다. 어디에서 다시 환생하게 될지를 결정하는 그 업 말이지요.
They are able to see only the outward display of actions performed by a certain person and not that person’s mind in the form of ultimate mentality. The Law of Kamma is thus fully known only to a Buddha and not merely to one with supernatural powers.
그들은 단지 어떤 사람이 지은 행위의 겉으로 노출된 부분만을 볼 수 있을 뿐이지, 궁극적 정신의 형태로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을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고로 업의 법칙은 오직 부처님만이 완전히 아실뿐, 단지 신통력만을 가진 자는 알 수가 없습니다.
Even though someone has attained supernatural power, the teachings of such a person would be very dangerous if he possesses only partial understanding and if he does not know how to wield that power in the right way. So we cannot rely on those who have attained supernatural power if they do not have true knowledge.
비록 누군가가 신통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사람의 가르침은 만약 그가 불완전한 깨달음만을 지니고서 그 힘을 올바른 방법으로 행사하는 법을 모른다면 매우 위험한 것이 됩니다. 그러니 신통력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한 지혜가 없다면 그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겠지요.
A specific example of an evidently good person taking an unfortunate rebirth is that of Queen Mallikā, the queen of King Pasenadi of Kosala. Queen Mallikā had accumulated much wholesome kamma.
명백하게 선한 사람이 불행한 환생을 한 특별한 예가 있다면 바로 꼬살라 왕국의 빠세나디 왕의 부인인 말리까 왕비와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리까 왕비는 유익한 업을 많이 쌓았던 사람이었지요.
She went to see the Buddha, she listened to the Dhamma, she made offerings, and she practised morality. On a certain day, however, she deceived the king. She then felt guilty about her deception, and that kamma appeared at her near-death moment.
왕비는 부처님을 뵈러도 갔었고, 법문도 들었으며, 보시도 하였고, 지계 수행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엔가 그녀는 왕을 속이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고, 그때 지은 업이 그녀의 죽음 직전의 순간에 나타났습니다.
King Pasenadi, after his queen had passed away, visited the Buddha to ask Him where Mallikā had been reborn. The Buddha knew well that Queen Mallikā fell into hell after she died, so the Buddha used His psychic powers to prevent King Pasenadi from asking his question.
빠세나디 왕은 왕비가 세상을 뜬 후, 그의 아내가 어디에서 환생을 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리까 왕비가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진 것을 잘 알고 계셨기에,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하여 빠세나디 왕이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For seven days he could not put his question to the Buddha; whenever he met with the Buddha, King Pasenadi would forget to ask. Only after seven days had passed would the Buddha allow King Pasenadi to ask the question.
칠일 동안 그는 부처님에게 그 질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부처님을 뵐 때마다 그 질문을 잊어버리곤 했으니까요. 칠일이 지난 후에야 부처님은 빠세나디 왕이 그 질문을 하도록 해주셨습니다.
The Buddha knew that after seven days, Queen Mallikā would finish her time in hell and would be reborn in heaven because she had done much wholesome kamma, whereas the bad kamma she had done was very little.
부처님께서는 말리까 왕비가 칠일 후에 지옥에서의 시간을 끝내고 천상에 다시 태어날 것을 알고 계셨는데, 이는 그녀가 지은 악업은 매우 적은데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유익한 업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Even though Queen Mallikā was generally a good person, she fell into hell because the bad kamma she had accumulated through her wrong actions gave its results at her near-death moment; she was not born in hell due to her good actions.
말리까 왕비는 대체적으로 선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이전에 잘못된 행위로 하여 쌓았던 악업이 그녀의 죽음 직전의 순간에 그 과보로 나타남으로 하여 지옥에 떨어졌던 것이지요. 사실 자신이 지은 선한 행위들로 하여 지옥에 태어날 일은 없었는데 말이죠.
However, her good kamma caused her to take rebirth in heaven soon after; hence, you do not need to worry that the good kamma you have done will go to waste, since it will give its fruit in due time.
그러나 그녀가 지은 선업이 곧바로 천상에 그녀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신이 닦아 놓은 선업이 버려지게 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니까요.
The Buddha did not emphasize the person; instead, the Buddha emphasized the Law of Kamma. In expounding this law, the Buddha taught that ‘good begets good, and bad begets bad.’ Good kamma gives good results, and bad kamma gives bad results.
부처님은 인간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 대신에 업의 법칙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법칙을 소상히 밝히시면서, ‘선은 선을 낳고 악은 악을 낳는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선업은 좋은 과보를 가져오고, 악업은 나쁜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This is true without exception. The example of Queen Mallikā shows that we need to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causes and results, both good and bad.
이것은 예외 없이 진리입니다. 말리까 왕비의 경우는, 우리가 선이든 악이든 그 모든 것의 인과 관계를 이해해야 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출처: 우 레와따 사야도 'The Truth Taught by All the Buddhas'
퍼옴: 부산 세나니 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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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
거사님께서 가시는 깨달음으로의 여정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