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문기현 그린비젼코리아 인천협의회 상임고문님 낭독문(인천광역시 서구의회 초대 의장님)
살아생전 육영수 여사님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또 우리들에겐 어떤 교훈을 남겼을까요. 그리고
한 여인으로서는 어떤 분이셨을까요.이 모든 궁금증은 남지심 저서 자비의향기 육영수라는 제목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이 책속에 모두 담겨 있는 듯 합니다.우선, 이 책은 인천불교총연합회장이신 선일
큰 스님께서 인천에서는 유일한 박근혜 모임으로 인정하시고 그린비젼코리아 회원들과 공유하시라며 250여
권을 전달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비록 참석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감사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 책머리?이야기를 시작하며?에서는 지난 2006년 8월 15일 오전 10에 개최된 육영수 여사
32주기 추모 의식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놨습니다.유족 대표로 추모사에 나선 지만씨는 추모사에서
어머니는 가난한 사람 힘든 사람을 찾아다니시다 저녁 늦게 청와대로 돌아오실 때가 많았는데
그 때 신고 계신 물론 옷도 흙먼지가 누렇게 묻어 있곤 했습니다?라는 말이 끝나자 그 옆에 앉아 있던
노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분이셨지, 희망이 없는 사람들한테 희망을 갖게 하시는.?
그러자 그 옆 부인도 고개를 돌리며 화답에 나섰는데, ?그러셨지요. 육 여사님과 함께 살았던
그 시절이 참 그 립네요. 그때는 우리 모두 가슴에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는데..?
이에 작가는 육영수 여사님을 지금까지 우리들이 잊지 못하는 이유를 모두의 가슴에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불을 지펴주었던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분. 그런 육 여사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도 사람들 가슴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고. 그 그리움이 지금 이렇게 여기까지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실제로 육 여사의 장례를 치른 685일째인 1976년 7월 3일.
국립묘지 내 육영사의 묘소를 찾은 참배객수는 1천만 명을 넘어서게 됩니다. 물론 참배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수은주가 영하 8도까지 내려간 차가운 겨울 어느 날. 박목월 시인은
고 육영수 묘소를 찾아 참배를 한 뒤 뒤이어 참배를 마치고 돌아서는 노인에게 할머니, ?날씨가
쌀쌀한데 어떻게 나오셨습니까라고 물으니 할머니가 육 여사의 묘소를 돌아보며
하시는 말씀 ?여기 오면 여사님이 살아계신 것 같아서요?라고 했답니다.여기에 오면
육 여사가 살아계실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안에 육 여사는 살아있는 것 이였습니다.
그 마음이 천만 명의 발길을 이리로 돌리게 한 것 이였습니다.?육 여사는 수천, 수만의
백성들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살아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는 글로 작가는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민심이 곧 천심이라 했고, 수천, 수만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육 여사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부추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막을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도 달았습니다.어느 날 교실 청소를 끝내고 복도로
나오자 세찬 빗줄기가 물 방울을 만들며이네 운동장에 꽂힙니다. 등교할 때만 해도
하늘이 그냥 컴컴하게 흐렸든 탓에 육영수 여사님 외 다른 아이들은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육영수 여사님은 자신이 들고 있는 지우산 안으로 아이들을 불러 모았는데 6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가리기엔 역부족이였고, 이에 아이들은 우신 쓰는 일을 포기하고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산을 든 키가 큰 아이와 육영수님만이 남자 육영수여사님은 키 큰 아이에게 우산을 접게 했습니다.
청소를 끝낸 6명의 아이들은 하늘에서 공평하게 내리는 비를 공평하게 맞으며 빗속을 걸어갔습니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외가 쪽으로 친척되는 송재천 소위로부터 34세 박정희 소령을 소개받으면서
1950년 12월 박정희 중령과 육영수 여사님은 대구 계산동에 있는 천주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영부인이 되시고서도 언제나 빈민촌을 방문하며 어려운 국민들을 보살펴 주시는가 하면, 젊은
사람들에게는 일거리를 제공하는 등 지원보다는 자활에 적극적으로 나서셨던 분이셨습니다.38살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청와대 안주인으로서의 소임을 시작해 12년간 대부분의 국민들 가슴 속에?
자애로운 어머니?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간 육영수, 가난하고 힘들었던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고 간 육영수. 3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으면서도
애틋한 그리움으로 국민들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영부인 육영수의 생애는 과연 어떤 것 이였을까요?
이에 박근혜를 돕는 사람들의 모임인 그린비켠 코리아 모든 회원을 대표해 지고지순의 삶을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펼치고 간 육영수 여사의 49년간의 생을 다시 한번 조명해 보는 자리를 가져봅니다.한편,
박근혜 전 대표님은 어렸을 때 노래를 잘 불렀답니다. 가끔 어머니이신 육 여사님과 아버님이셨던
박정희 준장님(당시)에게 행복감을 안겨줬다고 합니다.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삼천리강산에 가을이 왔구나. 농부는 뿌린 씨를 거둬 드린다.?이모가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이렇게 정정해서 부르자
근혜님은 눈을 말똥거리며 이모를 돌아봤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히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