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테스팅을 위해 새벽 2시에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어요. 달밤의 체조가 겨울 복장을 해서 그런지 춥진 않았고 택시 부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만 졸고 있는 10월 끝자락 풍경입니다. 오전보다 훨씬 가벼워지긴 했지만 강 건너 장현으로의 트래킹은 역시 무리입니다. 갈비탕 한 그릇 하고 '헤겔 vs 무의식'을 리라이팅 했어요. 이번에 필자가 건진 것은 '문화 속의 불쾌감(문명 속 불만)'입니다. 문화가 발전해 오면서 초자아(국가, 종교)는 개인의 공격 본능을 내면화 시키기 위해 '양심과 죄책감'을 이용한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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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나 국가가 존속하기 이전에 인간은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고 해요 (십계명은 족장 시대 이전에 주어짐). 다만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였다고 합디다. '내게 떼가 묻었으니 떼를 씻자' 정도의 양심의 인식이 죄의 고백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도덕과 양심에 의무 개념이 없었고 채권 채무자 정도의 유물론적 인식이었는데 종교, 정치를 통해 관념화 되면서 이데올로기가 된 것으로 봐요. 결국 종교란 문화가 발전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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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것은 개인의 '양심'이나 '죄책감'을 '국가와 종교'가 결탁해 이용한다는 지점입니다. 국가와 종교의 또 다른 이름은 문명/문화로 볼 수 있는데 문명이 발전해 오면서 자아(개인)의 공격 본능을 내면화(통제) 하기 위해 양심과 죄책감을 이용한다 그 말입니다. 개개인이 결핍을 타자에 쏟게 되면 무질서(통제 불능 사회)가 되기 때문에 본능(르상티망)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와 종교가 결탁해 상징계 질서를 지배해 온 것이 인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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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채무는 빚을 갚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 반해 종교적으로는 죽음을 담보한 빚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라는 대안이 나온 것 이고요. 에예공! 경쟁력이 생기려면 '국가와 종교의 억압'으로 부터 속히 벗어나야 할 것이야. 죄책감이나 양심 따위 휴머니즘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아비가 '촌년' 말고 '쌍년'을 주문하는 이유란 다. 지양(아우프헤벤)은 영어의 Raise(끌어올리다/일으키다)라는 단어로 1. 부정 2. 보호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전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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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부끄러운 욕망이 두려워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무의식으로 쫓아 내버리게 되는데 현실을 직면하면서 자아가 표출 되고 흔적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요. 결국 역사란 꼬불쳐놓은 무의식이고 르상티망입니다. 무의식은 지양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지만 부정성을 갖고 진행 되기에 역사를 읽는다는 건 아픔에 직면 한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양'은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의미 하지만 그렇다고 일반적 '지향의 반대개념'이 아니란 것을 주의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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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지양은 고정되고 편협한 지식의 부정을 요구하며, 동시에 상식의 테두리에 갇힌 우리를 끊임 없이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러한 과정을 연속적으로 거치면 초보적인 지식을 넘어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 헤겔의 이상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듯이 지식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착각에서 시작하여 다양하게 문답을 나누고 음미해 나가는 중에 차츰 수정되는 것입니다(디스커션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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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사건이고 만물은 움직인데, 빅뱅으로 탄생한 지구를 인간이 언어를 통해 '정지'를 만들어 세계를 망쳐 놓은 것이 됩니다. '진리'라는 것도 인간이 확률(은유) 중 하나를 개념화 시킨 것 일 뿐입니다. 해서, 진리를 절대화 시키면 화석화 된다는 것 아닙니까? 에예공! Hurry Up!
2024.10.29.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