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자(가명·65)씨는 8년 동안 심장병과 신우신염을 앓는 96살 어머니 간병에 갇히게 되면서 생활비와 어머니 약값은 오롯이 빚이 되었다. 그 빚이 5천여만원으로 불어나면서 그는 2년 전부터 개인회생에 기대고 있다. 소득이 없는 이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개인파산이 아니라 원금 일부를 갚게 하는 개인회생을 선택한 건 돈을 빌려준 친구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개인회생을 통해 금융기관 대출 500만원을 5년에 걸쳐 갚고 있다.
가족 파산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제적 붕괴의 원인은 간병 부담이다. 가족에게 당연한 듯 간병과 돌봄을 맡기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서 간병과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점점 늘어나지만 정작 일을 할 수 없어서 이 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소득은 점점 줄어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간병 살인이나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최근 2년 동안 간병비는 전년 대비 9% 이상 오르고 있다. 2019년 3.1%, 2020년 2.7%였던 간병비 상승률이 2021년 6.8%로 급격히 뛰더니 2022년 9.2%, 2023년은 9.3%나 올랐다. 하루 12만~13만원씩 한달이면 400만원가량의 간병비가 든다는 호소가 나오는 까닭이다. 파산 관재인인 김창수 변호사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누군가는 간병을 해야 하는데, 꼭 간병이 아니더라도 돌봄을 하다 보면 소득이 떨어지게 되고 이 때문에 카드로 버티다가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으로 가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에서 농사를 짓는 황순희(80)씨는 둘째 딸 정소망(47)이 종교사기 피해를 당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딸은 2003년부터 종교 공동체에 발을 들였고, 2022년 거기서 벗어날 때까지 19년 동안 착취를 당했다. 황순희씨는 여러 차례 종교 공동체를 찾아갔으나 딸을 만나지 못했고, 되레 딸이 아프다는 말에 치료비 격으로 2천만~3천만원 정도를 종교 공동체에 사실상 강탈당했다. 황순희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낸 돈이었다. 딸이 가져간 카드의큰아들(54)이 결제 대금이 다달이 날아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정소망의 남매 4명도 수천만원의 돈을 빼앗겼다.
그러다 10년 전 부인 정청일(84)씨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혈액암과 위암, 퇴행성 관절염까지 겹치면서 매달 100만원 정도의 병원비를 쓰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년 전에는 누전으로 집에서 불이 나 새로 집을 짓는 데 또다시 1억원 정도 대출을 받았다. 그나마 가족은 딸 정소망이 파산 신청으로 빚을 탕감 받고,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큰아들(54)이 1년에 700만원씩 빚을 갚아나가면서 서로 의지해 살고 있다.
최근에는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가 가족을 파산으로 내모는 경우도 많다. 서울회생법원의 ‘2022년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에서도 ‘투자(주식 등) 실패 또는 사기 피해’에 따른 파산 신청자 비율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2%대를 유지했으나 2022년에는 11.3%로 급증했다. 윤진아(가명·67)씨는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본인도 모르는 주식 종목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급락하면서 4천만원이나 되는 빚을 지게 됐다. 생활이 막막해지고 자녀에게 빚을 대물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면서 지난해 파산 신청을 했다. 그는 “자꾸 안 좋은 생각까지 하다가 파산 신청을 하면서 살길이 트이게 됐다”고 했다.
간병이나 사기 피해,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 등으로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곳에서만 구멍이 나도 채무의 부정적 효과는 순식간에 번진다.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보통 가족 중 한명의 신용이 한계에 다다르면 가족들의 신용을 끌어들여서 빚을 갚게 된다. 한 사람만 빚을 진 뒤 채무 조정을 해서 (굴레를) 끊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온 가족이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결국 모두가 돈을 구할 데가 없어져야 끝나게 되는 것”이라며 “개인이 제때 채무 상담을 해서 빚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