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일 통도사에서의 품수식을 앞두고 5개월간의 연수교육을 마무리하는 동화사 철야 수련대법회에 참석하신 제 11기 예비포교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허운 주지스님. 선용 포교국장 스님을 모시고 양성홍 포교사단 중앙 단장님. 대구경북 포교사단 탄중단장님을 비롯한 부단장, 팀장 그리고 모든 임원들님께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무쪼록 동화사 철야수련 대법회가 무사히 회향하기를 발원하며 영원히 잊혀지지않는 포교사로서 초발심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원산 박동훈입니다. 인생나이로는 5학년 6반이고 직장 직능팀에 소속되어있으며 대구불교약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저의고향은 청도이며 들은얘기로 원찰인 불령사에서 지극정성 기도로 2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만 청도에서 졸업하고 대구가 제2의 고향이지요. 지금까지 봉덕동에서 28년째 명보약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성공사례가 아니고 솔직히 저의 포교활동보고서이며 어쩌면 실패담 일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기 2543년 제 4기 포교사고시에 합격하여 7년만에 작년 7월14일 대구불교약사회 창립 법회를 열었으니깐요. 저의 발표를 계기로 직장이나 직능단체에서 불자모임을 꿈꾸고 계신다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불기 2542년 영남불교대학 선배인 저의집사람의 포교로 저도 31기로 졸업을 하였답니다. 지금생각해도 그수많은 보살님들속에서 어떻게 그런용기가 났는지 참 대견스러웠답니다. 한가지 원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할려면 열심히 하리라 다짐도 하였습니다. 약사회내에 기독교나 천주교모임은 있는데 불교모임이 없어서 불교약사회를 한번 만들어보리라 하나의 원을 세웠던것이었지요. 불교집안에서자라 종교가 불교라고 감히 말을 하면서도 부모님따라 부처님오신날 절에가거나 가끔씩 여행이나 산행중에 들러보는게 전부였지요. 부모님께서 이세상을 떠나시면서 슬프고 외롭고.. 인생의허무..죽음의 공포를 해결하라고 부처님께 저를 맡기고가셨나 봅니다. 그 즈음에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체계적인 공부를 하였으며 부처님과의 첫인연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불교에 입문을 하였으니 포교사가 되어야만 불교약사회를 창립할수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결과로 다음해에 합격하였습니다. 저의 약사로서의 생활은 이랬습니다. 1978년에 약국을 개업한후로 약사회 회무를 보면서 양약과 한약의 전문지식, 한단계씩 올라가는 직책과 직위에 솔직히 욕심도 많았습니다. 남자로서 명예를 위하여 도전도 해보고 싶었지요. 동네에서는 소위 유지라면서 감투가 많았고 사람사귀기를 좋아하다보니 여기저기 모임도 많아 그중 하나가 봉덕신협이 있었는데 2002년 IMF시절에 파산이 되면서 무보수명예직 임원을 몇년 맡은관계로 전재산이 압류당하는 평생에 처음겪는 엄청난 고통의 세월이 찾아왔지요. 3년간의 정신적 고통을 참아내는데는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기도와 참선이 없었다면 가히 이겨낼수 있었겠는가 반문도 하여봅니다. 올봄에 완전히 해결을 하였지만 그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으며 또다른계기 가되는 시점이었습니다. 돈도 명예도 이제는 버려라! 참 나를 찾도록 하여라! 그리고 원을 세웠던 불교약사회를 위해 모든것을 바쳐라! ....그러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무튼 참고견뎌준 가족에게 고마웠고, 더욱 열심히 살리라 다짐에 다짐을 하였지요. 불기 2549년 작년봄이었습니다. 포교사로서 한해두해 노력하며 쌓아둔 모든결실을 총동원하고, 오로지 부처님을 믿고 불교약사회 창립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직능단체 특정상 부부 모임이 되어야하고, 수년간 같이 활동할 법우들을 미리 친분을 쌓고 교감을 해둔상태라 9명의 발기인을 구성하는데는 큰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선후배로 뭉쳐진 9명의 약사가 발기인 모임을 4-5차례 하면서 정말로 하나같이 도와주어서 눈물이 날정도였습니다. 약국근무 시간상 창립법회를 밤10시에 하여야하고, 그러면 몇명이 오겠으며 정상궤도에 진입할때 까지 어떻게 운영하며 경비는 어떻게 하느냐등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쉽게 쉽게 풀려나갔습니다. 운영위원 9명이 각자 일정액을 선뜻 보시해 주셨고 그돈으로 일년간은 정기회비도 받지않고 만족시킴을 넘어 감동시키기로 의기투합을 했지요. 창립법회 날짜를 2005년 7월14일 밤10시로 결정을하고 서너달전부터 점검을 하면서 진행시켰지요. 대한불교조계종 제 9교구본사 동화사 주지 지성 큰스님께서 혼쾌히 수락해주시었고, 저희 운영위원들은 각자 분담을하여 대구시 전체약국에 알리고, 불교관련단체및 약사회 관련단체도 물론 소식을 전하고...포교사단도 방문하여 인사도 드리면서 자문을 구하고, 법회시 진행요청까지 부탁했지요. 뒤에서 든든히 바쳐주는 포교사단이 없었다면 어찌 엄두를 내었겠습니까? 드디어 7월14일 밤 10시 대구불교약사회 창립법회가 열렸습니다. 저서 "구도자" 冊 200권을 희사하신 지성 큰스님과 국장스님까지 6분이 참석하셨고 신행단체에서도 다수 참석하시고 포교사단 이한우 단장님을 비롯하여 20여분이 참석하였지요. 정작 우리회원들은 기대이하로 적게왔습니다. 신행단체로 [대구불교약사회]가 탄생되었음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날이었습니다. 가히 보기드물게 밤 10시에 창립법회를 하였음에도 축하를 위해 왕림하여주신 모든 법우님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불교약사회 김태일 회장님 및 운영위원님들께도 머리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세월이 흘러 벌써 1주년행사를 치루었습니다. 매달 정기법회를 열었고 3번에 걸친 적멸보궁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법회는 고정된 장소가 없는 관계로 동화사 포교당 보현사와 약사회관을 번갈아 사용하였으며 늦은 밤인데도 법문을위해 기꺼이 왕림해주시는 스님들께도 존경과 감사함을 어찌 다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작년9월 야간법회때 사건이 터졌습니다. 솔직히 불교공부도 부족하지만 목탁도 칠줄모르는 껍데기 포교사였지요. 불교약사회에 포교사가 있으니 법회식순에따라 청법가가 울리면 스님께서 법문하러 오신다는 일갈이 저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당장 포교사단 염불포교팀을 찾았고 전혀 초보자이고 초면인데도 같은 포교사로서 잘 가르켜주시고 격려를 해주시어오늘날 이렇게 발전하였습니다. 초창기에는 감동 프로그램으로 회원들을 모이도록하는게 일년간의 목표였기에 작년 11월 [법흥사]성지순례때는 영월단종유적지를 나들이겸해 다녀왔으며, 올2월 [통도사] 성지순례때는 전통 천연염색및 전통혼례, 다도체험등을 하였고,지난달 [상원사] 성지순례는 원래 두번째일요일인데 장마때문에 네번째일요일로 미뤘지요. 장마와 폭우가 쏟아져 강원도 일대가 침수되어 도저히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저희들이 무사히 적멸보궁을 참배를할수있게 도와 주셨지요. 비록 수해현장을 통과하면서 몸소 도와주지는 못하고 즉석 수재의연금을 내어 부처님의 사랑에 보답도 하였답니다. 그외 정기 법회때는 그때 그때마다 다양한 프로그햄으로 호기심과 감동으로 연결하였지요. 이제는 정례화 되었습니다만 108배 정진을 한다던지, 부처님 오신날 그 달에는 연등축제로 직접 연꽃과 연등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월드컵 경기때는 꼭지점 댄스를 같이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또 6月 야간법회는 해인사 비로자나부처님 철야 광명기도 법회를 통해서 신심을 일구며 단합의 장으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년을 되돌아보니 정말 감개무량하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또, 감동의 방법으로 길흉사는 꼭 챙기고 상가에서는 회장단이 전원 참석하여 간단한 예불을 드리고, 생일날에는 꽃바구니를 들고 직접 회원들을 찾아갑니다. 불교약사회 카페를 운영하면서 불교 공부 및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제는 전국의 약사들이 가끔 들러주시니 상당히 고무되어 있습니다. 대외적인 홍보로는 대구시 약사회 게시판과 관련 신문에 빠짐없이 홍보를 하고 아직도 동참을 하지 않고 관망하는 많은 회원들께 자극을 주고 있지요. 더욱 다행인것은 불교 약사회 회장단 전부가 약사회 내에서도 직.간접으로 영향력있는 간부들이라 모범적이며 지명도가 있고 추진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예를 들면, 대구.대전.광주 광역시 약사회 친교행사가 연례적으로 있는데 저도 참석하여 인연을 만들다 보니 대전불교약사회, 광주불교약사회를 창립하는데 주춧돌을 놓고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포교사들은 뒤에 든든한 부처님께서 돌봐주시니 마음만 먹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존경하는 제 11기 포교사님들! 저보다 연배되시는 분도 계시고 동료, 후배같은 포교사님들도 계십니다. 포교사를 먼저 인연지었을 뿐이지 실력은 솔직히 하나도 나은게 없습니다. 저의 살아온 과거, 포교사의 길, 창립법회 및 일년간의 불교약사회 소식을 자랑하면서도 부끄럽기 짝이없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만큼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포교사 법우님들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제 11기 예비 포교사님들도 품수를 받으시면 각자의 초발심을 다지고 다지셔서 각자의 팀 활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고 세운 원을 꼭 이루도록 하십시요. 우리 포교사는 포교사로서 책임과 의무도 다해야하고 반드시 포교사단을 주축으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불국토 건설을 위해서도 포교사단의 역할이 막중하다고 봅니다. 저는 현재 감히 불교의 위기라고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더 좋고 나은 종교가 아님에도 유혹에 빠져 종교를 바꾸는 현실을 자주 봅니다. 어린이 법회, 청소년 법회, 군 포교 법회등이 활성화 되어야 하고, 직장에서나 직능단체에서도 불교의 붐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몫이 우리 포교사가 감당해야할 부분이 아닐까요? 수행 목적이라면 포교사가 아니라도 가능하잖아요. 포교사 품수를 받으시면 세운 원력대로 정진하시면서 진정한 포교의 길로 나아가십시요. 저도 그러겠습니다. 현재 소임을 맡으신 탄중 단장님께서는 과거와 달리 공과 사를 분명히 하시면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이제는 양보다도 질적으로 한단계 올라선 통솔력으로 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더욱 분발해 주시고, 우리 포교사들은 더 낮은 자세로 늘 하심하면서 맡은바 소임을 다할때 포교사단의 위상이 한층더 달라질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거룩한 제 11기 포교사의 원력을 성취하게끔 크나큰 가피를 내리실 겁니다. 이 자리에 서게해주신 탄중 단장님 이하 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 바라 밀. 불기 2550년 8월 5일
첫댓글 안녕하세요 8월 해인사에서...... 약사회카페 주소를 잊어 버렸습니다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