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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基昌 作品解說
절제와 스밈의 시학
조 재 훈
<시인. 공주대학 국어과 교수>
시인의 연장선상에 작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T.S.엘리어트는 그의 여러 논문 가운데에서 힘주어 말했고, 그 영향으로 이른바 영 ․ 미의 이십세기 초반 분석 비평가들은 무슨 의도의 오류라든가 영향(정서)의 오류 등을 내세우면서 작품으로부터 작자와 독자를 단절시킴으로써 작품의 유기체적 자율성을 강조한 바 있다. 윤리 ․ 도덕 또는 역사적 비평이 지배하던 당대 문학연구 풍조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비판이라고 이해된다. 가령 소쉬르의 언어이론도 십구 세기 유럽의 언어학을 지배하던 독일 라이프니츠대학 중심의 낭만주의적 역사비교언어학의 거부에서 태어난 것이며 그것은 둘 모두 자본주의 발흥과 기계문명의 첨단화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쉬르의 언어이론에 기초하여 생겨난 파리의 구조주의나 기호학은 가장 적정한 최신의 그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문화를 지탱하는 역사, 경제 등을 살펴,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따라서 작품 안에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필요 ․ 충분조건이 다 들어 있다는 견해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는 있어도, 역사의 왜곡이 심한 제삼세계 등의 겨레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할 것이다.
앞에서 장황하게 이러한 말을 늘어놓는 까닭은 엄기창의 사람됨과 나와의 인연을 조금이나마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서다.
공주교육대학에서 일년 쯤 근무하다가 내가 공주사범대학으로 옮긴 것은 천구백칠십 년 오월이었다. 그 이전에도 사 ․ 오년간 시간강사로 나왔던 터라 그리 낯선 느낌은 주진 않았다.
전임이 되어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수요문학』동인들과의 자리였다. 최병두, 노동섭, 심규식, 조동길, 구중회 등 쟁쟁한 젊음들이 동나도록 공주의 막걸리를 퍼마시며 공주 좁은 골목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해박(?)한 이론의 싸움이 그칠 줄 몰랐고, 그 싸움의 불꽃으로 조금씩은 저린 가슴들을 태우곤 하였다. 후끈 달아오른 이런 열기 속에 그들의 후배로서 뛰어든 사람 가운데에 유병환, 엄기창 등이 있었다. 그들의 객기는 동인지, 시화전, 문학의 밤 등 쉬임없이 나타났으며 무슨 『허당집』인가 하는 이름의 괴짜 문집을 간행하기도 했다. 발바닥이 땅 위에서 몇 뼘은 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속에서 엄기창은 유난스럽게도 촌색시처럼 조용했고 수줍어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편이었으며 그리고 늘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 방(연구실)을 찾아와 마곡사 근처에 있는 가교리 고향마을의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 바람에 나도 촌 태생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의 이야기를 여러 시간 맞장구를 치면서 그야말로 열심히 들은 적이 있었다. 수태극으로 휘돌아 흐르는 냇물과 그 물 속에서 노는 가지가지 물고기 이야기, 무성산의 허물어진 성곽과 그 곁에 있는 샘물 그리고 거기에 얽힌 홍길동 전설, 화전신 이야기 등이었는데, 이번 시집의 원고를 통독하다 보니 그는 아직도 유년의 고향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변하지 않는 그의 느긋한 말씨와 부처님의 미소인 듯 따사로운 그의 소리 없는 웃음이 그의 사람됨과 문학의 성향을 모두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겸허한 순결성이라고나 할까? 노자가 일찍이 갈파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그 물처럼 낮은 데서 표없이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엄기창이란 선생님이자 시인이다. 73년이던가 74년이던가, 엄기창은 『시문학』에서 주최한 전국대학생문예작품 공모에서 당당히 당선되었으나 그런 것에 자만하지 않고 묵묵히 시작에 전념함으로써 일년 후(75년)문단 데뷔의 관문을 거쳤다. 요즈음 너도 나도 무슨 자격증을 얻듯이 추천입네 뭐네 하여 ‘문단’이라는 흙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나는 우리 문학의 건강을 위하여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이다. 이 말은 엄기창이 이른바 소정의 절차를 밟아 문단이라는 데에 나갔으나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더욱 더 진지하고 겸허해진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의 문학』동인에서 핵심적인 위치로 활약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엄기창을 ‘조용하고 맑은 香’의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펴내는 이 시집에는 그런 향내가 은은히 스며 있다.
시는 아무래도 응축이 그 바탕이다. 산문이 진술을 통하여 확산을 하는 장거리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시는 압축을 통하여 사물의 핵심을 전광석화로 드러내려는 최단거리의 장르라 이를 만하다. 산문에서는 할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비교적 마음 턱 놓고 차근차근 이야기할 수 있으나 시는 그럴 수가 없다. 직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는 상황에의 설명이 아니라 존재에의 부가이다. 모울튼이 시를 일러 산문의 토의문학과 대비하여 창조문학이라고 한 것은 소박한 대로 정곡을 찌른 견해이다. 지금은 덜 하지만 오래 전에 나는 시를 무슨 보석처럼 생각하였고 또 무슨 향수의 가장 진한 원료라고 여겼다. 흙의 정(精)으로서의 보석은 견고하고 빛나며 아름답다. 물의 정으로서의 향료는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온 방안이 향내로 가득해진다. 둘 다 최대의 밀도로 농축되어 있다. 역시 시도 그래야 한다고 믿어 왔으며 그것은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언어의 경제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다시 말하여 최소한의 언어를 선택하여 최대한의 감동과 충격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접은 시각이 정해져 있으면 그것에 따라 어휘 하나, 토씨나 어미 하나, 쉼표 ․ 마침표 하나에 숨을 불어 넣으며 그것들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허가 그의 널리 알려진 『문장강화』의 앞머리에서 글을 잘 쓰는 것은 쓸데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능력에 있다고 설파한 적이 있는데 존재의 환기 또는 그 번역으로서 ‘시’에 있어서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여러 날, 여러 달 또는 여러 해 고심 끝에 문자화 한 시를 거개의 독자는 신문기사를 읽듯이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고 나서 무슨 수작을 하는지 모른다고 투덜댄다. 물론 작품에도 그 근본 원인이 있겠으나, 어느 면에서는 속도와 피부적 향락을 요구하는 이 시대의 독자에게 책임이 더 크다.
엄기창의 시는 언어의 경제 원리를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 어느 시, 어느 구절 하나 그냥 허술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길고 긴 이야기와 감추어진 여백의 의미를 가득 넘치게 거느리고 있다. 빠르게 스쳐 읽는 사람에게 그의 시는 문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작자가 힘쓴 몇 십 분의 일 만큼이라도 차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음미하듯 읽는다면 그의 시가 가진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그의 어느 작품의 경우나 마찬가지다.
서울의 하늘 위엔
늘 천둥이 운다.
내려올 곳이 너무 많아서
내리지 않고
北岳에서 南山으로 흐르며
울기만 한다.
대밭에 참새처럼 숨어
지저귀는
사람들은 알리라
천둥이
누구의 머리 위에서
우르룽 우르룽 울고 있는지....
번갯불보다 고운 어둠 밑에서
사람들은 번갯불에 타면 재가 될
靑紅의 꿈들을 만들고 있다.
그의 「서울의 천둥」의 전문이다. 그의 시 가운데에는 특이할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조금도 격하지 않다. 차분한 가락과 상징을 통하여 할 말을 시로 드러내고 있다.
서울 하늘에 ‘천둥’이 ‘늘’ 울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 하늘에만 어떻게 일년내내 비가 오고 천둥이 치겠는가. 그렇다고 과장도 허구도 아니다. 다른 의미를 뒤에 거느린 암시와 상징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온갖 악의 온상일 수 있다. ‘항구’라는 언어의 의미군에 ‘숨어 있다’는 다른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고향의 시골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울’은 반 자연이며 반 고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천리(天理)에 따른 한울님의 응징인 ‘천둥’이 항상 울기 마련이다. 내려와 인간들에게 응징할 곳이 ‘너무 많’으나 그냥 스스로 울 뿐, 가시적인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으로서의 ‘참새 떼’같은 인간들은 조금도 뉘우침이 없다. 하늘의 말 ―― 번갯불에 타면 그냥 없어지게 될 갖가지 욕망의 꿈을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다. 어둠이 번갯불보다 곱다는 시적 진술은 역설이다.
시인 스스로의 내면을 향할 때에는 더욱더 응축의 정도가 심해진다. 그의 연작시「短歌」는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눈 위에 떨어진
피 한 방울처럼
너와 나는 남남이다.
새벽부터 木鐸 소리가
귓가에 요란하다.
宇宙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고
後光에 싸여 온 너의
하얀 손
그 하얀 손의 고갯짓
四十九日 밤낮을 눈 안 붙이고
나를 위해 木鐸만 두드리더니
너는 하얗게 昇天하고
아직 붉은
나와, 너는 남남이다.
―― 「短歌 ․ 3」
나와 너 또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형이상적 시상의 작품이다. 삶은 사실상 ‘너와 나’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너의 존재와 나의 욕망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고독의 숙명, 그것이 삶의 거짓 없는 모습일지 모른다. 이 시는 그러한 절망과 벽의 문제를 담담히 그러나 깊이 있게 드러내 주고 있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곧 하얀 눈과 붉은 핏방울의 선명한 대비는 백설공주의 그것처럼 찬연히 아름답다. 그러나 하는 거부(흰색은 배제이니까)요, 차가움이며 다른 하나는 타오름(붉은 색은 불의 이미지를 지니므로)과 뜨거움으로서, 서로 단절되어 있는 상태다. 이것이 이 시인이 본 존재의 진면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독해(讀解)의 결론은 하나 새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새벽 목탁 소리’를 배음(背音)으로 하되 그것은 ‘우주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른’ 하얀 손, 너의 나를 향(向)한 간절한 염원이다. 그러나 지상에 내린 눈이 곧 소멸하듯이 하얀 눈의 그 하얀 손은 사라지게 된다. 나는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리하여 ‘너’와 ‘나’는 영원히 ‘남’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러한 시적 요소들에 의하여 이 시는 진부함을 벗어나 그 나름의 빛을 얻는다.
엄기창의 시를 눈여겨보면, 잠언풍이다. 짧은 서정시 같아도 그 속에서 그 나름으로 삶의 의미가 종교적으로 천착되고 있음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엄기창이 주목을 받아야 할 이유의 하나이다.
견고한 시 쳐놓고 건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미지스트의 시들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명석하고 선명하지만 그런 만큼 깊이가 빤히 드러나 ‘울림’이 적다.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시 읽는 시법독해의 재미는 줄지언정 감동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랜슴 같은 이가 그런 유의 시를, 뿌리 없이 모래 위에 꽂아 놓은 시라고 빗대면서 ‘물질시’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럴듯하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 있어서 상징주의적인 시보다는 투명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울림’은 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지 위주의 시는 울림을 통하여 스민다기 보다는 금속성으로 빛난다 할 것이다.
엄기창의 시는 단단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결코 드라이하지 않다. 봄비처럼 촉촉이 스미는 그 무엇이 있다. 그 자력(磁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바탕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시적 형상화의 성공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문학은 말하기(telling)보다 보여주기(showing)를 통해 구체성으로 나타내야 하며 그것은 시에서 극치를 이룬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형상화 또는 육화(incarnation)라 부른다. 관념의 노출이 시가 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관념이 용해된 시적 ‘육체’를 얻을 때 공감대가 넓고도 깊어진다. 육화와 더불어 또 하나 지적할 일은 시의 서정성이다. 우무래도 시는 감성의 문학이며 직과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부분이다. 엄기창의 시는 잔잔한 서정을 예외 없이 배음처럼 깔도 있다. 거기에다가 시의 호흡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하나는 위와 같은 기본적인 바탕위에 그가 가진 시정신의 취향이 보여주는 친화력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자연 친화의 경향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애정을 보내는 태도는 고금 시인의 일반적인 경향이며, 특히 동양시의 전통이서 엄기창의 자연 친화는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예찬이 아니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계문명의 세계에 대한 거부와 농촌(고향) 붕괴에 대한 연민의 정을 포괄한다. 둘째로는, 미세한 것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벌레 한 마리, 새 한 마리, 들꽃 한 송이에 대해서도 그는 애정을 보낸다. 주로 그의 애정은 자연에 향해 있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거대하고 웅장한 것이라 대체로 작고 힘없는 것들이다. 셋째로는, 삶의 현상을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쪽의 보이지 않는 데를 투시하여 의미를 드러내려는 예지가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시냐 아니냐의 갈림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때, 엄기창의 시는 시로서의 품격을 지닌다.
이러한 여로 통로를 통하여 오는 엄기창의 시가 지닌 ‘스밈’의 친화력은 소중하다.
[가] 溪谷으로 돌 돌
연두빛 生命 굴리는 십자매 울음
그 울음소리로도
일어서지 않는
산……
――「K화백 화실 풍경」
[나] 굳게 입다문 산그늘 허물어진
반달만한 양지에
初産으로 낯 붉힌 진홍빛
저 간절한
말 한 마디
――「三月」의 한 연
[다] 한 여자가 끊고 지나간
길,
눈발이 날린다.
滿月처럼 둥근 배가 쫓아와서
앞길을 막아서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단절의
끈 한 편에
풀꽈리처럼 조그맣게 매달린
내 금간 하루
――「끈」의 앞부분
[라] 막차는 차갑게 식어
어둠에 풀린다.
――「막차 안에서」첫 부분
[마] 하나의 離別은
별처럼 반짝이지만
두 개의 離別, 세 개의 離別,
수많은 이별들은 반짝이지 못한다.
――「短歌 ․ 5」첫 부분
그의 시에는 신선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시 구절은 꽤 많다. 그 이미지들이 단순히 장식적인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가 의도하는 시상과 튼튼히 그러면서 기발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적 효과를 배가하고 있다.
위의 인용은 극히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윗 시 중 [가]~[다]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자연은 섬세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으며 그것은 단아한 호흡에 얹혀 독특한 시적 이미지로 전이된다. 특히 [가]와 [나]가 그러하다. 귀엽고 앙징스러운 십자매의 울음소리와, 봄이 되어 얼음 풀린 계곡의 물이 연두빛으로 오버랩 되면서 그것을 아직은 철이 이른지 그냥 묵중한 채 웅크리고 있는 산에 연결시키고 있다. 제명에 의거하건대 아마 어느 화가의 화실에 걸린 그림의 인상이 아닌가 싶다. [나]도 진달래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굳게 입 다문 산’ 그 그늘 ‘허물어진’ ‘반달’ 크기의 작은 양달에 피어 있되, 겨울 지나 피어 있는 그 어려움과 경이스러움이 여인의 초산과 같다고 말한다. 초산의 비유는 신선하면서도 적절하다. 어려움, 경탄, 생명에의 외경, 피, 핏덩이 탄생 등의 연상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간절한/말 한마디>는 초산의 긴장과 염원으로 충전된다.
[다] ․ [라]는 퍼스나의 고독이 자연 속에 용해되어 있는 예이다. ‘한 여자’가 단절시키고 떠나가 버린 길은 적막과 좌절의 그것이다. 그리하여 차가운 ‘눈발’이 사정없이 볼을 때린다. 하얗게 눈 덮인 벌판처럼 세상은 없음으로 꽉 차 공허할 따름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배는 아직 보름달처럼 둥글지만 그래도 역시 앞을 가로막는다. <은빛 반짝이는 단절>일 밖에 없다. 퍼스나의 고독은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조그맣게 풀 꽈리로 매달린 그 이미지가 단절의 처절성을 상당부분 완화시킴으로써 <금간 하루>정도로 머물게 해주고 있다.
‘무던하다’는 말이 있다 엄기창에게 꼭 들어맞는 말로 여겨진다. 고등학교 시절의 『팔각정』동인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거의 24~26년간 시에 열정을 쏟은 셈이며, 많은 재능들을 물리치고 문단이라는 데에 첫 선을 보인 지도 거의 20년에 가깝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안달복달하면서 시집 간행과 발표에 눈독을 드릴 테인데, 그냥 묵묵히 누구를 부러워 할 것도 없이,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이 시만 다듬다가 이제 멱이 찼다고 느꼈는지 그동안 발표한 것들을 정리하여 한 권으로 묶게 되었다. 오늘날 문학 공해의 시대에 나는 그런 엄기창의 겸허와 진지성에 대하여 신뢰감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고전적인 시작 태도에 관해서도 긍정적이다. 모던이니, 포스트모던이니 해도 역시 시의 올바른 길은 엄격한 언어의 절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어의 적절한 절제에서 압축성을 갖게 되며 그 압축에서 리듬이 태어나고 그 리듬은 힘이 되어 우리를 울린다. 어떤 평자가 정지용의 시를 언급하면서 정곡을 찌른 말처럼, 언어의 절제는 욕구의 억제에 맞물려 있는 것이다. 턱없는 미지에의 동경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또 절제 잃은 언어의 분류로 나타난다면, 고전적인 엄격한 자아의 통제는 자연히 언어의 절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엄기창이 보여 주는 언어의 절제도 실은 그가 가진 세계관의 자연스러운 드러남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여기에 엄기창 문학의 한계가 있으며 극복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엄기창의 시는 예외 없이 짧다. 서정적이며 아름답고 또 거부감 없이 잘 스며들지만 작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서정의 소품이 그의 시가 지닌 대체적인 인상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작다>는 사실은 다양성의 결여와도 연루되어 있다. 소재의 선택이나 표현 방법에 있어서 두루 마찬가지다.
시인은 늘 틀을 깨부수는 자이며, 새것을 찾아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혁명적 열정이 늘 따라야 된다. 삶의 문제에 관하여 세계에 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진이 무엇인가, 선이 무엇인가, 미가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추구해야 한다. 시인이 불안해 보이고, 불온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동안 써온 시편들을 일단 정리하면서 이 시인에게 나는 답답할 정도로 꼼꼼한 ‘시학’으로서의 모범적인 시 쓰기의 구속에서 좀 벗어나는 그런 용기를 갖도록 주문한다. 튼튼한 엄기창의 시학을 토양으로 하여 변모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제1시집 『서울의 천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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