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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웰빙시대*해몽〕 스크랩 아는게 힘 한국 주먹의 역사
파랑새 추천 0 조회 3,333 07.06.21 13: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위 건달 이라든가 깡패라고 해서 일 안하고 폭력으로 불법적인 일을 해서

놀고먹고 사는 사람들은 역사는 인류와 문명사회의 시작때부터 쭈욱 있어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주 옛날에는 도적, 산적, 해적, 건달 등으로 불릴 수도 있었겠네요.

19세기에도 미국의 서부지역에서는 총잡이들과 깡패들의 싸우던 일화가 넘쳐나고..

그러나 질문자님께서 질문하시는 조폭이라고 하는 현대적인 개념의 갱스터들은

20세기에 들어와서 그 모습이 갖춰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깡패... 건달은 전세계적으로, 어딜가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각 국가마다 다양하게 갱스터의 형태가 형성되고 발전되서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죠.

따라서 미국 깡패 모습 다르고 한국 깡패 모습 다르다 이말입니다.. 그 생리는 비슷할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윗분들 답변처럼 일제시대의 김두한이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죠.

그 때는 사업이라는 개념보다는 주먹자랑하는 주먹신사적인 개념이 더 강했기 때문에,

더 쎈놈이 윗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구조 였습니다. 허나 교육의 의무화와 사회가 발전해감에따라

그것도 변하게되고 지금은 완전히 하나의 사업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싸움실력 뽐내는 게 아니라 정신차리고 생활하지 않으면 퇴물이 되는 그런 시대죠.

마지막으로.. 언제부터 조폭이란 말이 생겨났는지 여쭤보셨는데,

조폭이전에는 깡패라고 지칭했고요, 그 이전에는 어깨, 건달이라고 했으며 김두한 시절에는

협객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김두한에 따르면 깡패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3대 국회시절 자유당의 비호아래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등의 정치조폭들이 판을 칠 때,

야당의 선거유세때 이 정치건달들이 자유당의 지시를 받고 고의적으로 선거유세를 방해하기 위해

선거유세장 옆에서 쇠붙이를 깡통에다 두들기며 큰 소리를 내면서 일부러 방해하거나,

좀 더 물리적으로 행동할 땐 깡통에 휘발유를 집어넣고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면서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신문기자들이 그들을 깡패라고 지칭하여 기사에 써냈습니다.

즉, 언론에서 이름을 붙여준거죠.

조폭 또한 80년대 후반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모든 종류의 범죄 그중에

특히 폭력사범을 단속하는 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검찰에서 깡패 전담반까지 만들고 활동하면서

tv와 신문, 잡지등 각종 언론에서는 폭력사범... 즉 깡패들을 조직폭력배.. 줄여서 조폭이라고

처음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이것 역시 언론에서 이름을 붙인거죠..

언론이 가진 정보 전달의 속도를 생각해볼 때 깡패나 조폭같은 단어들은 사회적으로 폭력배들을

지칭할 때 쓰이는 단어로 불리기 시작한겁니다.

추가로..

3대 국회시절 자유당의 비호아래 판을 치던 정치깡패들은 5 16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깡패 소탕령을 내려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등은 혁명재판에서 재판받은 끝에 이정재와 임화수는

사형당하고 유지광은 풀려납니다.

또 노태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는... 그 이전에 판 치던 유명한 깡패 조양은, 김태촌등이

전국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정치계와 결탁할 낌새를 보이자 조양은은 80년 신군부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변호사의 갖은 노력 끝에 자신의 부하인 박모씨 살해 미수사건의 결백이

밝혀지고 조양은이 판사에게 자신의 형량을 줄여주면 자신의 조직을 해산하겠다라는 각서편지를

쓰자 15년형으로 줄어 지난 95년 만기 출소했었죠. 그러나 또 살인교사 및 해외원정도박,

국내 모 콘도 건설업체의 이권강탈등의 혐의로 다시 잡혀들어가 지난 2000년에 출소했습니다.

김태촌은 신민당 각목사건을 비롯해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아시아 태평로에서 벌인 사시미 잔혹극(?)

(이 때 사시미들고 조폭들끼리 전쟁하는 바람에 인명피해가 많이 났었죠.) 에 의해 90년 체포되어

2002년 출소예정이었지만 교도소장에게 뇌물을 주고 감옥에서 호화생활을 한 혐의가 드러나

결국 3년 연장됐습니다.


일제시대 때여.. 일본놈이 건너와서 나쁜짓하고 그럴때 생격다고 들었어여..

그리고 나서 부터... 김두한 시대 있자나여.. 그때 시대가

아주 절정 아니였을까여..?

어디까지나.. 제가 듣고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0-

허접한 답변 이옵니당 ~_~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중국과 달라서 광대한 조직이 없었습니다..
산적 초적의 무리도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던게 아니라서요.. 무엇보다 체계적인 밀수조직이
클수 있는 환경이 적절하지가 못해서
조선은 상대적으로 치안 안전국이었죠..
버뜨.. 일제시대 도래합니다.. 야쿠자들건너옵니다..
일본식 웃기는 주먹의 법을 인반인에게 가르칩니다..
여기서 등장한 인물이 김두한이었죠..
주먹 패거리를 정비하고는 그때까지 일회성으로 끝났던 삥뜯기를
한달에 몇번 얼마 이런식으로 체계화시키고 조직내 서열을 확실히 합니다..
이게 한국 조직폭력의 시작이었습니다.. 검찰 기록에서는 김두한이 그 시조라고 되어있습니다..
뒤이어 조직의 후계자가 계속 등장하죠 김두한이 후계자로 지목한 조일환이
이화룡밑에서 주먹으로 날렸던 신상사 신상사를 회칼로 쓰러뜨린
보스영화찍은 조씨 등등
조직폭력배라는 명칭은 아마 박정희때부터 검찰쪽에서 쓰기 시작했을겁니다..
그... 요새 무슨 역사왜곡드라마 하던데 믿지 마십셔.. 안쪽으로 들어가면 좀 냄새나는일이 많았죠
그시대에 협객이라 할수 있는사람은 이성순씨 외에 없었습니다..


협객에서 양아치까지... '조폭'의 세계
한국 현대사에서 세상이 어지러울 때 어김없이 기승을 부리는 집단이 있다. 조직폭력배(일명 조폭)가 그들이다.
4·13총선, 유흥가의 호황 등과 맞물리면서 그들의 활동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10대 폭력배들이 활개를 치며 조폭세계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다. 주먹의 세계를 보통 3기로 나누는데 제1기는 일제시대의 주먹으로 이들은 명분과 대의를 중요시 여겼다.2기는 6·25이후의 시기로 이 때 주먹은 정치적 사건과 연계되면서 이들은 정치깡패의 성향을 나타낸다.
조양은, 김태촌 등으로 대변되는 3기를 지나 요즘은 10대 조직폭력배들이 신흥조직을 만들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권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며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는데 한 축을 담당했고, 사회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그들의 변천사를 통해 사회의 흐름을 알아본다.

▲제1기 ‘협객’을 자처한 그들.

이성순(시라소니), 김두한(잇뽕), 고희경(구마적), 엄동욱(신마적)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은 협객을 자처했다.
일제시대의 주먹들은 핍박받는 민중의 삶과 같았다. 식민시대의 설움과 울분을 가슴에 품었던 그들은 의리와 명분을 중요시 여겼다.
지금처럼 칼, 쇠파이프 등 각종 무기가 난무하거나 뒤에서 공격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기는 크게 조선주먹과 일본주먹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조선주먹들은 이제 갓 걸음마를 걷기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은 미미했으며, 조선주먹이 가진 이권도 신통치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일본 야쿠자들은 일본도로 중무장한데다 고급술집 등 자금줄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일본 주먹의 보스는 ‘장군의 아들’로 알려진 하야시. 하야시는 평안도 출신으로 본명은 선우 영빈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월등한 일본패에 항상 밀리던 조선패가 거대조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종로 우미관극장을 주 활동무대로 활약한 김두한패의 등장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우미관패는 수표교(명동과 종로의 정계) 전투에서 일본패에 무참히 패하고 조직원들이 징병으로 끌려가면서 조직은 와해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조선주먹패가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2기 정치깡패의 출현

해방공간에서의 깡패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했다. 항상 혼란의 시기에는 그들의 힘이 막강해진다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 것.
이 시기 깡패들은 좌우익 대립 속에 정치와 밀착하기 시작했다.
장충동 정치테러 사건을 비롯 4·19를 촉발시켰던 고대생습격사건 등 이 시기의 주먹들은 정치인들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
김두한이 대한민청 감찰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일선에 뛰어들자 주먹세계의 판도는 급격히 변했다.
명동과 동대문이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며 주먹계의 두 축을 형성했다.
명동은 만주와 이북에서 활동했던 주먹들, 이성순(시라소니), 이화룡 등이 포함돼 있었고 동대문에는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이 있었다.
그러나 충정로 도끼사건으로 이승만은 깡패들을 잡아넣게 되고 이 와중에 명동은 완전히 무너졌고 동대문만 살아남게 됐다.
동대문사단이 ‘권력의 우산’ 속에서 비를 피한 것이다.

동대문의 보스 이정재는 야망이 대단했다. 대권까지 노렸던 이정재는 전국대회에서 세 번 우승한 탁월한 씨름꾼. 그의 손에 잡히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힘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는 자유당정권의 2인자 이기붕과 손을 잡으며 정치 판에 뛰어든다.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 난입,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개헌 통과에 한 몫을 했던 이정재는 장충동 테러 사건(야당 발기인대회 방해 사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권력의 맛을 본 이정재는 경기도 이천을 기반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기붕이 이 곳에 출마를 선언하자 그와 결별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몰락을 가져 왔다.
이정재의 뒤를 이은 것이 임화수.
임화수는 이승만을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그의 총애를 받았다.
그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의 황제로 군림하게 됐으며 동대문사단을 움직이는 일인자로 자리매김한다.
힘으로 얻은 권력은 힘에 의해 무너지는 법.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정부는 이정재, 임화수 등 정치깡패들을 줄줄이 재판에 회부했고 단죄를 내렸다.
이정재, 임화수는 형장의 이슬로, 유지광은 사형 판결을 받은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아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렇듯 격동의 시대에 등장했던 주먹들은 비록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이 시기는 분명 주먹의 황금시대였다.

▲제3기 ‘회칼’의 등장

군사정권는 초기 부정부패와 해소, 구악일소를 내세워 주먹을 탄압했다.
그러나 잡초는 밟아도 끈임없이 자라는 법.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지방의 깡패들이 상경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1975년 명동의 사보이 호텔에서 주먹계의 판도를 바꾸는 사건이 벌어진다.
서울 중심가를 장악하던 신상사파와 주먹계의 원로들이 모여 신년모임을 가지던 중 조양은이 이끄는 전라도파(후 양은이파)가 습격한 뒤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한다.
또 광주에서 올라온 김태촌의 서방파도 상경, 주먹의 한 축을 담당한다.
양은이파와 서방파, 이동재의 OB파 등 호남 3대파가 서울의 주먹세계를 분할 점령하게 됐다.
이 시기는 정치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이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세대교체를 부르짖던 때.
주먹세계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새로운 세력이 급부상하게 된 것.
80년대 부산쪽에서는 일본 야쿠자 조직과 최초로 손을 잡은 국제적인 폭력조직인 칠성파가 장악하게 된다.
이 시기는 회칼, 일본도, 쇠파이프 등 갖가지 무기들이 등장하게 되고 기습적인 공격이 유행하게 된다. 비겁해지고 흉포화하기 시작했다.
정치와 연계는 이 시기에도 계속됐다.
87년 호헌철폐, 직선개헌을 내세운 김대중, 김영삼씨가 통일민주당 창당을 시작하는데 지구당 창당때 주먹패들이 방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명‘용팔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후에 5공 핵심인사 장세동(당시 안기부장)씨가 계획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 94년 슬롯머신사건, 98년 한나라당 서울역집회 방해사건도 조직폭력배가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시각.

▲제4기 몇 명만 보이면 ‘조폭’

이번 총선에서 386세대 등 젊은 피들이 대거 출마, 정치권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주먹세계도 마찬가지.
이제 새로운 시기에 맞춰 젊은 세대들이 조직폭력배로 탄생하고 있다.
소규모로 구성된 군소 조폭들이 대도시 유흥가를 중심으로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전국적으로 조직폭력배가 400여개파에 1만2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 중순까지 전국에서 검거한 신흥조직 57개파 788명을 검거했다.
그중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이 전체 77.3%(609명)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조폭등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거대 ‘패밀리’ 형태로 운영되던 폭력조직이 10代의 소규모 조직으로 분화되고 있는 것.
이는 계보를 거느린 대조직의 경우 수사기간에 노출되기 쉽고 조직을 이끌 자금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범죄단체를 구성한 두목급에 대해서는 최고 사형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형이 선고되기 때문에 이 같은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10대들의 조폭 가담은 일선 학교의 불량서클을 모태로 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 동료학생을 상대로 금품갈취와 폭력을 행사하던 이들이 퇴학이나 정학 등을 통해 사회의 폭력조직에 진출하게 된다.
이들은 각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활약, 학교후배를 조직에 끌어들인다.
이후 일정한 노하우가 쌓이면 이들은 조직에서 뛰쳐나가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몇 명만 모이면 조직을 만든다”며 “10대들이 활개를 치면서 점차 흉폭해지고 있다. 폭력조직에 몸담기 전인 학교나 가정에서 문제학생을 잘 선도한다면 이 같은 현상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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