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3월 16일
▶폐가가 되어버린 이승만 별장 ‘귀빈사’
비자림로의 아름다운 길을 따라 송당 마을로 가는 중간쯤에 송당목장이 있다. 목장 입구를 따라 비포장도로를 약 1km 들어가면 민오름 기슭에 이승만 대통령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귀빈사’가 자리잡고 있다. 철문으로 자동차의 출입을 막고 있으나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스럽게 출입할 수 있다.
지금부터 약 50년 전 중학교 수학여행 때, 이 곳을 들른 기억이 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축산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이 곳 400여 만 평의 벌판에 목장을 건설하고 58년 288마리의 소를 수입해다가 국영목장을 운영했다한다. 미8군 사령관이 었던 밴프리트 장군의 조언에 따라 목장을 건설했으며 설계는 미군팀이, 시공은 국군공병대가 맡아 2,3년 걸려 완공했다고 전한다. 그 당시 수학여행 온 우리들은 이 건물 앞에 모여서 설명을 듣고 건물 속은 볼 수 없었고 건물을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집이었다고 기억된다.
50년이 지나 다시 귀빈사를 본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실제로 귀빈사에 들러 보니 너무나 실망했다. 마치 괴기영화 속에 나옴직한 유령의 집을 연상케 한다. 돌로 정교하게 지어진 외벽과 그 당시로서는 최고급 재료를 사용한 동판 지붕은 아직도 멀쩡해 보이는데, 목재로 되어있는 부분은 그 동안 보수를 하지 않아 썩고 부서지고 볼품이 없다. 문이나 유리창도 깨진 곳이 많고 마루는 금방 주저앉을 듯 삐걱거린다. 건평 43평에 방 4개, 응접실, 주방, 거실 등을 고루 갖추고, 방마다 당시로서는 고급인 수세식 변기를 갖춘 화장실이 딸린 제주도에서는 최초의 근대적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훌륭한 건물이건만 관리 부실로 이렇게 폐가가 되다니 정말 한심하다. 이 목장은 5,6년 동안 국영을 운영되다가 이승만의 실각 후 63년 군사정부에 의해서 민간에 매각되어 현재까지 제주축산개발(주)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딱 두 번 머물었다는 침실에는 철제 용수철만 남은 더블 침대가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정원에 심여져 있는 아름들이 팽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역사적 기념물을 아쉬워했다. 사진 속의 김립이 목에 힘을 주며 밴프리트를 빼 닮은 모습으로 서 있다.
▲굼부리가 아늑한 송당 민오름
귀빈사 바로 뒤에 누가 나뭇가지에 비닐끈을 매놓아 등반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친절이 뒤에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니 너무 고맙고 우리도 그런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해야겠다. 얼마동안 키가 큰 삼나무 숲은 지나서 경사가 급해지는 부근에 오니 소나무 숲이 우리를 맞는다. 밤에 내린 비로 바닥이 질퍽해서 미끄럽다. 조심해서 오르는데 길섶에는 불가사리처럼 생긴 요상한 버섯이 많이 보인다. 생김새로 보아 먹을 수 없는 독버섯이 분명한데 문어대가리처럼 생긴 가운데 볼록한 부분에서는 포자가루가 가득하다.
날씨도 이제는 완전히 개어 바람이 상쾌하게 분다. 올라갈수록 소나무의 키가 작아지더니 정상부근에는 아예 바닥에 바짝 붙어 바람을 피하고 있다. 그 중에는 잎이 금빛이 도는 아름다운 소나무도 가끔 보인다. 줄기도 매끄러워서 보통 소나무와는 다른 종이다.
정상에는 북동쪽이 약간 낮은 야트막한 굼부리를 이루고 있다. 돗오름에서 본 굼부리와 유사하지만 규모가 조금 작다. 처음에는 원형 굼부리였다가 한 쪽이 트여 물길을 형성한 모양이다. 양쪽으로 잔디가 곱게 깔린 민틋한 등성이가 굼부리를 에워싸고 있다. 등성이와 굼부리가 낮은 경사를 이루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바람을 피해 굼부리와 연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옆에는 굼부리의 두던에 해당되는 곳에 제법 큰 묘가 자리잡고 있다. 동자석과 문인석까지 갖춘 묘인데 신기하게도 양쪽에 남근석까지 세워놓고 있다. 새별오름에서 본 것 보다는 조잡하게 만들어졌으나 연륜은 더 오래된 것 같다.
잔디밭에 편안하게 앉아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침과는 판이하게 좋은 날씨다. 적은 인원이어서 그런지 새록새록 정이 더 울어난다. 서쪽 등성이부터 오름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거슨새미의 짙은 녹색부터 높은 오름의 웅장한 모습이 다가온다. 동쪽 등성이에는 커다란 바위와 그 틈에서 자라는 자연림이 조화를 이룬다. 큰 돌리미에서 보았던 바위와 규모는 작지만 비슷하다. 그렇고 보니 밑으로 큰돌리미와 비치미의 아름다운 모습이 커다란 야구장처럼 발밑에 보인다. 우리는 착한 학생들이 되어 올라온 길을 되짚어 곱게 내려왔다.
▲여름 산행에 알맞은 성불오름의 녹음
성불오름은 대천동에서 성읍리 가는 길 중간 쯤 오른쪽에 단정히 앉아 있다. 모양이 특이하여 일찍부터 오르고 싶었던 오름이다.(특히 운공이 성불오름은 언제 가느냐고 일찍부터 졸랐음) 길가에 오름표지석이 있어서 등반로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승마장 마당을 지나 초지조성이 잘 되어있는 목장지대를 한없이 걸어 올라간다. 바람이 불긴하나 그렇게 차지는 않다. 이런 초원을 말을 타고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300m 정도 가서 오름 기슭에 닿았다. 오름 가운데로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고 길은 양쪽으로 나있다. 어느 쪽 길을 택하더라도 오름을 한바퀴 돌아 이 곳에서 만나게 되어있다. 앞장의 선택에 따라 우리는 동쪽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삼나무과 측백, 소나무 등이 울창해서 하늘을 가린다. 정상부근 일부를 제외하고는 녹음이 우거져 여름철 산림욕으로는 그만인 오름이다. 여름에 한 번 더 오고 싶은 오름이다. 더구나 정상부근에는 진달랜지 참꽃인지가 지천으로 깔려 진달래 피는 늦은 봄 산행으로도 제격이다.
동쪽 정상에는 성불암이라는 신비한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내려가는 길이 위험하여 앞장 혼자 바위를 내려가 본 결과 그 영험함이 대단하다 한다. 성불목장 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수도승이 염불하는 모습이라 한다. 정상을 한 바퀴 돌았다. 모지오름, 따라비오름, 대록산 등이 가까이 보인다. 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며 샘이 솟는 성불천을 찾아보기로 했다. 골짜기를 따라 프라스틱 파이프가 개설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샘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찾기는 쉽지 않다. 파이프를 따라 계속 위로 오르다 도원이 파이프에 귀를 대어 보니 물소리가 전연 없단다. 옛날에는 이 샘물로 정의현성내의 성읍 주민들의 급수원이 되었다는데 정말 물이 흐르지 않는지 찾아 보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포기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이미 시간이 두 시를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오늘 다시 오고 싶은 오름 하나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산나물과 사슴 불고기로 맛있는 점심을
오늘은 작년 8월 이후 참석인원이 한 자리 수로 떨어진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환절기에 건강에 이상이 생긴 친구, 여행에서 미처 돌아오지 못한 친구, 봄이 되어 농사일에 바쁜 친구, 일자리를 찾아 신명이 난 친구 등 많은 친구가 빠져 10명을 채우지 못했다. 처음에는 다소 사기가 떨어져서 의기소침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오붓한 가족적인 정이 오가며 분위기가 좋아져 급기야는 점심을 대흘초소 부근에 있는 들꽃가든에 사슴고기 먹으러 가기로 결정했다. 들꽃가든은 운공이 새미오름 기슭에 땅을 구입하면서 알게 된 곳이란다.
대흘초소 남조로 분기점 바로 못 미쳐 새미오름 기슭에 자리한 들꽃가든에는 정말 들꽃을 소담스럽게 가꾸고 있는 아름다운 식당이었다. 민박도 겸하고 있는 이 집에는 손수 가꾼 산채와 사슴고기로 손님을 맞고 있었는데 그 정갈함이 돋보였다. 마침 일본과의 야구 경기가 승리로 끝나는 막바지에 도착하여 우리는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검은콩 막걸리와 사슴 불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특히 말려 나온 대여섯 종류의 산채가 맛이 있었다. 경북 의성이 고향이라는 늙수그레한 주인은 우리를 반겨 다음 주에는 특별히 사슴을 잡아 간과 내장을 대접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은 한 사람당 만원꼴이다.
비가 오던 날씨가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면서 개였고 우리가 오른 오름 둘 다 일품이고 점심 또한 일미이니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첫댓글 송당목장 개척사를 다시 새롭게 공부했네, 당시 400만평의 목장을 지금은 개인이 나눠 관리 하고 있나 우짜노?
개인이 아니라 제주축산개발주식회사 소유로 되어 있지. 지금은 경주마 육성목장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알아낸 거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