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맹덕
패국 초군 출신으로 환관 가문 출신이다 . 허자장으로부터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에는 간옹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천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풍운아. 합리적이며 냉철한
사고방식의 소유자.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맹덕신서'라는
병법서를 남기기도 했다. 세상을 읽는 뛰어난 안목으로 중원을 제패한 후 위공의
자리에 올랐으며 결국 그의 아들 조비시대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초석을 만들었다.
유비 현덕
관우, 장비의 의형. 전한의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으로 황제와 알현 후 유황숙이라고 불리었다. 황건적을 토벌해서 벼슬길에
올랐으며 그 후 각지에서 싸웠고 마지막에는 촉한의 초대황제가
되었다. 태어난 날은
달라도 같은 날에 죽기로 약속했던 관우와 장비가 먼저 세상을 뜨자
원수를 갚기위해 오나라를 치지만 강남 서생 육손의 계략에
말려들어 대패하고 한실 재건의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백제성에서 세상을 뜨고 만다.
손견
문대
강동의 호랑이 .
병법가 손자의 후예이자 손책, 손권의
아버지. 17세 때
해적을 혼자 퇴치한 이후 젊어서 각지의 반란을 평정한다. 동탁 토벌군에 장사 태수로서
참가, 선봉에 섰다. 그의 용맹함은 동탁도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낙양의 건장전에서 옥새를 발견한 후 옥새의 소유를 놓고 각
군웅들과의 다툼이 일어나자 '만약 내가 옥새를 감추고 있다면 제명에 죽지 못하고 칼과
화살 아래 목숨을 잃을 것이요'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말대로 유표와 싸우다 양양에서
전사하고 만다.
손책
백부
손견의
장남으로 손견이 목숨을 잃은 후 원술의 막하에 있다가 옥새를
담보로 원술에게서 군사 3천과 말 5백필을
빌려 독립한 후 눈 깜짝할 사이에 강동,
강남으로 일대에 세력을 구축하고 소패왕이라
불렸다. 그의
부하들은 전부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고 한다. 그러나 허공을 처형한 일로
허공의 식객에게 습격을 당하여 26세의 아까운 나이에 죽게 된다.
손권
중모
수성의 일인자 .
손견의 차남, 형 소패왕 손책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자 강동의 땅을 이어받았다. 푸른 눈과 자줏빛 수염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특이한 외모만이
아니라 협기있는 무인을 좋아하고 지혜있는 선비를 대접할 줄 알아
일찍부터 선망을 모았으며 지모와 식견 역시 동오의 어떤 모사에
뒤지지 않았다.
허저
중강
조조가 황건의 본건지 여남과 영주땅을 공략할 때 전위의 공격에도
뒤짐이 없는 모습에 반한 조조의 계략에 사로잡힌 후 조조의 막하
장수로 활약했다.
동탁 중영
서량 자사 . 하진. 십상시의
혼란 때 환관의 주살을 요청받고 2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에 입성해
전권을 장악한다. 소제를
패하고 진유왕을 제위에 세우고 자신은 상국이 되어 폭정을
저질렀다. 적토마를
이용해 여포를 수양아들로 들였으나 초선의 미모를 이용한 왕윤의
계략에 의해 여포의 손에 죽는다.
여포
봉선
'장군이라면 여포 말이라면 적토'라고 불려졌던 천하제일의
맹장, 그러나 정원, 동탁 2명의 의부를 살해한
패륜아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무술은 출중하여 호로관 전투에서 관우, 장비, 유비 3명과 대결에서도 뒤지지 않는 놀라운 솜씨를 선보였다. 방천화극이라는 무가를
애용했으며 동탁에게서 받은 적토마를 타고 다녔다.
원소
본초
명문 원가의 장.
동탁을 타도하는 토벌군의 맹주를 맡았다. 성격은 그의 명문가의 품위를
지키는데 급급하였고 소심하였다. 화북에서 거대 세력을 구축, 동탁의 사후에 화북 지방의 패권을 놓고 조조와 결전을
벌이지만 관도 전투에서 대패한다. 그 후 병을 얻어 죽게 되지만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첫째
원담과 셋째 원상 사이의 다툼이 일어 원소가 그동안 구축해 놓은
화북 지방의 기업을 조조에게 넘겨주고 만다.
하후돈
원양
위나라의 맹장,
여포와 싸웠을 때 여포의 부하 조성의 화살을
맞아서 왼쪽 눈을 잃었을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버릴 수 없다면 눈을 먹었다고
한다. 조조에게서
두터운 신뢰를 받았으며 관우와 대적하여 호각세를 이룰 정도로
무예도 출중한 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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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 문약
조조의 참모. 조카인
순유와 같이 조조 막하에 들어간 후 조조의 패권 확립을 지원한
대공신으로 조조가 '나의
장량이다'하고 평했던
모사. 하지만 조조가
위공에다 구석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반대할 정도로 한 부흥의
원칙을 철저히 견지했지만 조조에게 미움을 받은 후 빈 음식 뚜껑을
받고 조조의 뜻을 알고 자살한다.
곽가
봉효
조조 휘하의 막료로서 항상 주군의 입장에서 서 있지만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조조가 만든 군율을 조조가 어기게
되자 '법은 귀인을
보호하기 위하는 것'이라는
변호를 통해 조조의 위엄을 살려주었으며 조조가 패권을 잡을 때나
화북을 평정할 때 조조에게 가장 중요한 간언을 올린다. 그러나 화북 평정 때에 병세가
악화되어 38세 때
죽지만 죽기 전에 화북의 평정에 대한 계책을 올리고 죽을 정도였다. 조조가 적벽대전의 대패 등
여러 번의 전투에서 대패했을 때마다 항상 입에 올리던 조조의 최고
모사라 할 수 있다.
사마의
중달
삼국시대를 제압한 늙은 너구리. 제갈량의 영원한 라이벌, 얼굴에 반골의 상이 있다 하여 조조는 그를 중용하지
않았으나 조조 사후 조진과 함께 군사를 책임진다. 제갈량의 북벌을 지구전으로
저지시켰다. 결국
조상의 황제에 있을 때 구테타를 일으켜 실권을 쥐고 진왕조의
기초를 만들었다.
장비
익덕
유비 ,관우와 '도원 결의 '를 맺어 의형제가 된다. 촉나라의 오호 대장. 장판교 싸움에서는 백만의
위군을 홀로 상대했을 정도로 배포와 무예가 뛰어났다. 장팔사모를 애용했으며
마초와 여러 날을 겨루어 서로 물러섬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술을 너무 좋아해 많은
실수를 자초하였고 형 관우가 죽은 후 이 원수를 갚기 위해
분투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술에 취해 구타당한 부하
장수에게 살해당함으로써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전위
조조를 목숨걸고 지켜 냈던 맹장 . 진류 땅 사람으로 하후돈의
천거로 조조의 수하에 들어왔는데 80근이나 되는 쇠창인 썽철극을 들고 싸울 정도로 힘이
장사여서 조조가 그를 악래에 비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수의 계략으로
조조가 위험에 빠지자 무기조차 없는 상태에서 졸개들을 양손에
들고 칼처럼 들고 싸웠다고 한다.
장료
문원
조조의 맹장. 안문 마읍땅
사람으로 초기에는 여포의 수하에 있었으나 여포가 조조에게 패할
때 관우의 설득과 굽힘 없는 자세를 조조가 높이 산 후 조조의
맹장으로 활약한다. 후에
조조가 서주를 공격해 관우가 사면초가에 놓일 때 관우를 설득해
조조에게 데려가기도 한다.
서황
공명
원래 양봉과 한섬의
수하 장수였으나 허저와 겨누어 뒤지지 않는 무예를 조조가 높이
사자 만총이 이를 설득해 조조의 수하 장수로 들어온다. 의협심뿐만 아니라 칼과 활
모두 능하였으며 큰 도끼인 대부를 사용했다.
관우
운장
유비 장비와 ' 도원결의'로 의형제를 맺은 후 한 왕실의
부흥을 위해 각지에서 싸웠다. 촉나라의 전장군이며 오호 대장의 필두, 문추 , 안량을 단칼에 벨 정도로 뛰어난
장수이다. 평생 한
손에는 청룡언월도 다른 한 손에는 춘추를 들고 다닐 만큼 무예가
충의가 뛰어난 장수로 조조와 손권 모두 두려워했다고 한다. 조조의 후의도 거절하고
유비를 찾아갈 만큼 의리가 깊었으며 이는 조조가 그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예에 가장 앞선다는 자만심과 고집스러운 충절은
그를 형주땅에서 무너뜨리는 내부의 적이 되고 만다.
제갈량 공명
천하의 기재 , 천재적인 전략가이자 대정치가. 발명가이기도 했다. 촉한의 승상을 지냈으며 '와룡'이라고 불려진 지장. 복룡과 봉추중에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제패한다고 했다.'삼고의
예'로 유비의 막하에
들어간 후 '신 량
아뢰옵니다'로
시작하는 출사표까지 오직 한의 부흥과 유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5번에 걸친
북벌을 강행했으나 좌초되고 유비의 유언을 지키려는 그의 애틋한
충절심은 과로로 인한 중병을 낳고 결국 오장원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출사표'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 그의 기지는 두고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
강유
백약
저무는 촉을 따라 죽은 비련의 장수. 원래는
위의 장수였으나 제갈량의 책략으로 촉나라에 귀순했다. 제갈량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안겨 주고 조운과 호각세를
이루며 싸우는 등 군사에 천재적이다. 제갈량의
후임으로 분전했지만 촉의 쇠락을 막지 못했다. 제갈량
사후, 북벌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국력 쇠퇴를
초래하게 되었다.
조운 자룡
일생에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유비의 맹장.
상산벌에서 백만이나 되는 조조군을 주군의 아기인
아두(유선의 아명)를 품에 안고 단기로 돌파하는
무예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이다. 한중의 싸움에서는 유비가 '온몸이 과연 간 덩어리인가 보다'라고 칭찬할 정도였으며 나이 일흔에 위의 젊은 장수 네명의
장수를 베고 적진을 뒤흔들 정도였다.
황충
한승
궁술의 명인. 한현의
휘하의 명장으로서 관우와 격전을 벌였다. 후에 유비에게 귀순하여 활약했으며
오호대장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직 젊은 장수들 못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적진에 뛰어들어 죽고 만다.
마초
맹기
마등의 장남 . 조조를 없애고 황실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혈판장
서명의 대가로 조조에게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장안을 급습해 조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서량의 패기 넘치는
호랑이. 그러나 그의
단순한 성격을 이용한 조조의 계략에 말려들어 패했다. 후에 한중의 장로에 몸담고
있다 유비에게 귀순하여 오호대장에 오른다.
위연문장
의양사람으로 유비가 장사에서 공격할 때
태수 유현을 죽이고 유비의 장수가 된다 . 그러나 제갈량은 위연을 반골의 상이라
하여 중용하지 않았으나 오호장군이 죽고 그만한 맹장이 없어
제갈량도 그를 중용한다. 그러나 제갈량이 죽고 반란을 일으키지만 그것까지 내다 본
제갈량의 계책으로 마대의 손에 죽게 된다.
마량
계상
흰 눈썹으로 인해서 ' 백미'라 불리는 재사. 이적의 천거로 유비의 수하로
들어 온 후 장사, 영릉, 무릉, 계양을 공략하는 지혜를 주었다. 그러나 그가 갖고 있는
지혜만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같다.
제갈량의 남벌 중 촉나라에서 병사했다.
주유
공근
오나라의 도독 .
적벽대전 대승의 실질적 총 지휘자. 제갈량조차 수군을 조종은
천하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전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는데 원래는 전략가. 친구인 손책이 죽은 후 외교
면에서 손권을 보좌한다. 해전뿐맘 아니라 동서로 세력 확장에 분전한다. 적벽대전에서 황개의 책략인
화공을 쓰고 대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강릉 땅을 제갈량의 계략에 빼앗긴 후 독화살에 맞은
내상이 도지게 되고 주유는 '하늘은 이미 주유를 내렸거늘, 왜 또 제갈량을 내셨나이까?' 라고 원망하며 급창이 터져
죽는다. 미주량이라
불렸던 명장.
육손
백언
동오를 마지막으로 지켜나간 지장 . 여몽 ,감택의 천거로
발탁되었다. 육손의
용병술은 남녀노소 없이 최상의 사냥감을 노리는 것. 여몽과 공동으로 벌인 양양
전투에서 관우를 고립시키는 지략이나 유비의 대군과 격돌한 이릉
전투에서 활약했다. 오나라
대도독으로서 군대를 통솔.
황개
공복
강동 오나라의 3대 주군을 모신 역전의 노장 . 적벽대전에서 고육계를 통해
조조에 위장투항한 후 배를 타고 조조의 수군을 불사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맹장이다.
주태
유평
위와 오의 전투에서 양군이 난전을 벌일때 주군인 손권이 보이지 않자 적의 포위망을 단기로 뛰어들어가
피투성이가 되면서 손권을 구한다. 이 공로로 손권은 그의 상처 하나마다 그때의 무훈담을
들으며 술을 권했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