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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10년(2025) 2월 9일 익산총부 왕산종법사님 신년하례에서 설법하신 것을
사진과 함께 정리합니다.
신년사에서 '우리모두 하나되어 감사하고 보은하자'를 말씀하셨어요.
공부담과 4대, 3대 가족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공부 길을 가다 보면 이렇게 만나고 또 다음 생에 또 만나고
이런 과정으로 우리가 영생을 살아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마음을 하나로 세상을 은혜'로 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불과 두 달 뒤에 새해가 돼서 또다시 신년 법문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하자'고 했는데
무슨 말씀을 드릴까, 살짝 바꿔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감사하고 보은하자'
같은 말씀을 살짝 바꿨었을 따름입니다.
결국 그 뜻은 같고 근본적인 본의는 대종사님께서 이 세상을 여신 본의를
우리가 이렇게 실천하자고 하는 제 마음이 담겨 있고
대종사님뿐만이 아니고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렇게 살자 하는 말씀이시고
그 뒤에 좀 더 구체적으로 정산종사님께서는 대를 이어서
삼동윤리로 한울안 한이치 한집안 한권속이 한일터 한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
결국 대종사님께서 건설하시고자 하는 인도하시고자 하셨던 낙원 세계나
정산종사님이 우리 함께 건설하자고 하는 낙원 세계나
대산종사님께서 진리는 하나에서 표어로 말씀하신 게송이나
그 뜻이 저는 글만 약간 다를 뿐 그 정신과 목표와 내용은 완전히 일치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뒤 좌산종사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취임법문으로 맑고 밝고 훈훈하게 이 제목으로 맑은 세상, 밝은 세상, 훈훈한 세상을 만들자.
경산종법사님은 이어서 그러한 것은 우리가 도의 맛을 알아야 되고, 진리를 깨달아야 되고
그렇게 해서 법의 바람을 훈훈하게 불려야 이 세상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씀.
역대 종법사님들 취임법문이나 수없이 많이 베푸시는 무량 법문들이
결국 일원상 진리에 바탕한 인생의 요도, 공부의 요도 길에 벗어나지 않는다.
대종사님께서 열반하시기 2년전, 26년 1월 달에 게송을 발표합니다.
지금 우리는 완전히 정리된 불교 정전 이후에 원불교 교전을 교사로 받들고 있는데
원기 20년에 대각전을 건립하고 대각전 법상에 정식으로 법신불 일원상을 봉안하고
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을 발표하심으로써 일원상 교리 체계가 짧은 경륜 한 문장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리가 결국 체계화돼서 인생의 요도, 공부의 요도가 확립되죠.
서원문 안에는 일원상 진리가 무엇이며,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는 무엇이며,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는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하는 내용이 담겨 있죠.
궁극적으로는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하자 이렇게 하셨어요.
그러면 모든 내용을 망라해서 열반하실 준비를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게송을 발표하시는데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
과거의 도인들은 임종을 앞두고 바쁘게 게송을 은밀하게 몇 사람에게만 법문을 전했는데
대부분 한 사람에게만 전했지요.
그런데 나는 임종을 앞두고 그렇게 급하게 하지 않고 미리 전한다.
미리 전한다고 하는 건 대단히 중요하고 또 한가지는 몇 사람에게만 전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받아볼 수 있도록 모두 여러분들에게 전합니다.
그러니까 이걸 받아가고 못 받아가고는 너희들 하기 나름이다 이런 말씀이시죠.
일원상의 진리에 대한 천명을 하시고 그걸 마지막 짧은 노랫말로 게송으로
마지막으로 전하시면서 하신 당부의 말씀이세요.
일원상 진리에 보면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하셨죠.
서원문에서는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 범부중생의 성품으로
그러니까 일원상의 진리 그 자리는 언어 도단의 입정처이고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다.
언어도단의 입정처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말과 글 넘어의 모습이 일원상 진리의 참모습이다.
말과 글은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의 입점처가
언어와 문자의 넘어의 세계이기 때문에 불가에서는 그 자리를 공空으로 표현합니다.
공으로 그 빈 자리가 아무것도 없느냐 그렇지 않다.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라고 다시 설명을 하세요.
그것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거기서 나왔고 죽는 생사문이라는 거예요.
거기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다는 거예요.
언어도단의 입장처로 빈 자리이지만 그 자리에서 온갖 것이 나온다.
비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있다고 할 수 있냐 그렇지도 않다는 거예요.
그 자리를 일원상 진리로 표현하시고
아무리 말로 글로 설명해도 모르니까 저렇게 그림(일원상)을 그려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하셨어요.
일원상이 그림으로 그려진 저 일원상이, 진리 그 자체는 그냥 물체로 만들어서
상징적으로 모셔놓은 사진과 같은 거죠. 형상인데,
저 상징으로 표현된 일원 그 자체는 우주만물의 본원이다.
이 세상 만물은 다른 말로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은 우주만물의 근본 자리다. 그 뿌리다.
우주만물이 거기서 나오고 거기서 죽고 생로병사로 변화하고 춘하추동 사시가 변하고 일월이 바뀌고
이런 모든 운행을 하는 그 자리가 바로 일원상 자리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제불제성의 심인이다.
제불제성은 모든 깨달은 부처님을 말해요.
그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을 제불제성이라고 한자 말로 표현하는 거예요.
진리를 깨달으면, 내가 깨달으면 나도 제불제성 가운데 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깨달은 사람의 심인이다 그랬어요.
마음 도장에 비유를 하셨어요.
아마 도장의 형상을 그린다면 저렇게 둥그렇게 그릴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자리를 언어도단는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으로 둥그렇다고 해도
정확히 그 자리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
상징적으로 그냥 그런 모습이다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죠.
그 자리를 우리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자리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언어를 빌려서 표현을 합니다.
제불제성의 심인, 그 자리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깨달으신 분들이 마음 도장이다 이렇게도 말을 하고 또는 심법이라고 합니다.
게송을 내리시면서 이 법을 오롯이 받고 못 받는 것은 그대들 각자의 공부에 있다 그러셨는데
그때는 대종사님께서 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법이라고 하셨는데 그 법은 철학적으로는 아주 범위가 넓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신 법은 심인이라고 할 때 그 깨달으신 마음의 모습.
깨달으신 분들이 마음을 사용해서 나타나는 모습을 심법이라고 할 수 있죠.
쉬운 말로 하면 우리의 마음 씨예요.
마음 쓸 때 그 마음 씀씀이가 깨달으신 분들의 씀씀이는 심법이라고 하고
보통 사람들을 씀씀이는 심보라고 하죠.
같은 마음을 써도 심인을 터득한 우리 공부인들하고 깨닫지 못한 중생들의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또 다른 분들은 그 자리를 심월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마음 달
성가 107장에 보면 마음 달을 상징으로 해서 마음공부하는 글을 일찍이 견성 인가를 받으신 스승님께서
그걸 노랫말로 지으신 거, 간출해서 그 중에 핵심적인 내용을 심월송(心月頌)으로 만드셨어요.
우리가 늘 부르지만 그 자리를 사모하는 거예요. 마음 달
그런데 마음 달이 허공의 달과 일천강에 비친 달로 비유하죠.
경계를 당해서 일어나는 경계의 촉된 마음은 허상이다. 그림자 달이다.
참달은 그게 아니다. 본성 마음은 허공의 달과 같은 참달이다.
그러니까 내 안에 참달이 있으니까 그 참달을 찾아서 사용하라 그런 뜻으로 달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월, 깨달으신 분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심월이 상조한다고 하죠.
심월상조라는 말 들어보셨죠? 마음 달이 서로 비춘다.
삼천년 전에 서가모니 부처님과 삼천년 뒤에 깨달으신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서로 비추고 있겠죠.
그리고 그 두 분들의 마음의 도장은 완전히 똑같겠죠.
우리가 그 마음 달을 찾아서 사용하게 되면 모든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로 하자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하자는 것.
우리의 본성 마음을 깨달아서 찾고 그 본성 마음을 잃지 않고 경계를 당해서도 그 마음을 사용해야 된다.
그걸 불리자성(不離自性)이라고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처음 일원상을 봉안하고 그 아래쪽에
'사은지본원(四恩之本源)', '여래지불성(如來之佛性)' 또는 최초에는 '여래지자성(如來之自性)'이라 했었습니다.
저 자리는 우주만유의 본원 자리고 우리 일체중생의 본성 자리고 제불제성의 심인 자리라고 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주시고 밑에 짧은 글로 표현해 주신 거예요.
그걸 체계적으로 풀어서 일원상 진리, 신앙, 수행, 서원문, 법어, 게송까지 체계화했는데
결국은 간추리고 간추리다 보면 그 마음 도장, 서로 비출 수 있는 마음의 달, 그걸 찾자는 것이겠죠.
그렇게 깨닫고 보니까 그 자리가 텅 빈 자리지만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나오고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들은 남이 아니겠죠.
그 남이 아닌 모습을 대종사님께서는 잘 못 알아들으니까
우리 보고 좀 쉽게 우리 경험한 것으로 이해해 들어가도록 사은으로 표현을 해 준 거예요.
우주만물을 크게 네 부류로 분류해 주신 거예요.
일원상 진리가 나타날 때의 모습은 사은, 그 자체다.
우리가 직접 체험하고 있는 천지
나의 생명의 근원이고 나를 길러주고 양육해 주신 부모
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이타로 돕고 있는 동포
그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착오 없이 잘 운행되도록 하는 법률
이렇게 사은으로 표현을 해 주신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터득해 들어가는 길을 공부의 요도로 밝혀주신 거죠.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마음의 근본 자리인 본성 마음을 찾아가는 것은 마음을 안정하는 거죠.
사실은 보통 사람들은 마음이 집을 떠나버렸어요. 그래서 그냥 엉뚱한 데를 헤매고 있는 겁니다.
집에 돌아와서 편안하게 한마음이 돼서 안정을 취하고, 정신수양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다 보면 그 가운데서 마음 달이 떠올라서 지혜가 밝아지고 사리연구하는 겁니다.
그 마음을 사용해서 일체 경계의 마음을 사용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법어에서 말씀하신 대로
일원상 진리가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이로다. 그 자리를 깨닫고 보면 그렇다고 하셨죠.
그래서 실제 사용할 때 어떻게 사용하냐?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해야 된다.
원만구족한 것은 완벽하다는 것으로 완전 무결하다고 바꿔 말할 수 있고
지공무사는 지극히 구별되어서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씀이죠.
왜냐하면 그 마음 안에는 너와 내가 없고 우리 모두가 지친이고 한 몸과 한 마음이기 때문에
그 깨달은 자리에서 마음을 쓰면 사사로움이 있을 수 없죠.
너와 내가 구분될 수가 없는 것. 결국은 한 마음
그 이치를 깨닫고 보니까 내 안에 있는 우주만물이 나를 위해서 지금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은으로 표현을 하신 겁니다.
우주만유를 사은이라고, 일원상 진리의 다른 모습이에요.
그 자체를 굳이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면 사은이고 그 자리를 깨닫고 보존하고
그 자리 그 모습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우리 공부 길이에요.
마음을 하나로 세상을 은혜로 하자는 거, 다른 말로 바꾸어서 우리 모두가 하나 되자는 거.
나의 본성과 실제 사용하는 마음이 하나 돼야 돼요.
그런 사람은 누구하고도 하나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진리에 맞고 대의 명분에 맞는 일에는 사심 없이 합력할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일원상 진리 그 모습 그대로, 그 진리를 깨닫고 보니까
이 우주만물이 나를 위해서 있는 거잖아요.
그걸 깨닫고 보면 모든 일이, 비가 와도 고맙고 날이 좋아도 고맙고 감사한거에요.
그 진리를 실천하는 길은 감사하고 보은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일원상 진리를 믿고 닦아나가는 마음공부를 해가고 있는 겁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교리, 수많은 법문과 일주일마다 교무님으로부터 설법을 듣지만
결국은 그 공부를 하자는 거에요.
제 마음과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 자리에서 한마음이 된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면 그냥 그게 낙원이죠.
그런데 마음이 그 형상이 없는 것이지만 묘합니다.
아까 공부담에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엄마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서 자녀에 영향을 미치죠.
혼자만 하는 것보다 그렇게 영향을 미쳐서 자녀가 변하면
자녀로 인해서 엄마가 마음이 또 영향을 받아요.
이렇게 마음과 마음은 서로 함께 비추고 함께 협력하고 함께 해 나갈 때
요즘 세상 사람들이 흔히 쓰는 시너지가 되요. 상승 효과가 나타나요.
혼자 독방에서 그냥 수행한다고 눈 감고 앉아 있는 것보다 실제 현장에 부딪혀서
마음과 마음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그 본성 마음대로 살아가는 노력을 하게 되면
서로서로 상승 효과를 내서 불지를 향하는데 아주 빠른 길을 가게 된다는 겁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실천으로 결과를 내지 못하면 그건 낮도깨비 같다고 하셨죠.
시간이 많이 돼서 시장하실 텐데 오랜만에 성지에 오셨으니까 성지 순례도 하시고
새해를 맞이해서 한 마음을 다시 챙기는 건 우리 세상에 아름다운 가풍인 것 같습니다.
내년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귀에 안들어 오는 용어들이 아직도 많아 정리하는데 애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