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MRA 찍은 여자에요."ㅋㅋㅋ
일주일이 넘게 아픈 어지럼증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잃고. 며칠 동안 개인 의원과 한의원을 다니다가 결국 종합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어지럽다는 얘기를 했을 뿐인데, 거금 육십만원의 MRA를 찍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헐...
신용카드로 일단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서서히 덜 아프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너무나 아파서 운전도 못하고, 집에서 책도 못 읽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슬슬 돈 생각이 나게 되었다. 이거 이러다 괜히 헛돈 쓰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다가 가끔씩 약한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면서 검사 하는 날에 이르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영상촬영실에 도착하였다.
속옷만 빼고 모두 벗고, 가운을 입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추위에 민감한 나는 겉에 입었던 털 니트를 속에 받쳐 입겠다고 했더니 그러란다.
얼어 죽을 줄 알고 챙겨 입고 기계에 누었더니. 두툼한 이불을 덮어 주는 게 아닌가.
내 몸이 빨대가 주스 빨아 들이키듯 기계에 쏘옥 빨려 들어갔다.
아이들 로봇 장난감 머리마냥 내 머리를 이중 삼중 기계로 에워쌌다.
“시작합니다. 소리가 크게 들려도 놀라지 마세요”
갑자기 귀에는 낯익은 노랫소리가 나왔다. 직접적으로 귀에 들리는 자극적인 소리를 커버하기 위해서 환자들의 배려 차원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작은 음악 소리와 기계 소리는 묘하게 하모니를 이루며 나의 뇌와 귀에서 잘 들 놀고 있었다.
그런데 불만이라면 불만이 생겼다. 노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발라드 음악으로 좀 해주지, 내가 중년이라서 인지 모르지만.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와 ‘분홍 립스틱’이 나왔다.
Oh, No! 정말 이건 아니야 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다른 거 틀어 주세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살짝 숨막히기도 하고, 검사 시간이 약 20분 가랑이었지만, 움직이지 말라는 말에 온 몸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이런 저런 불만이 많을 걸 보니 난 이미 환자가 아니었다.
아무런 겁도 나지 않았고,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검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조금은 떨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의 진료 상담을 받았다.
어지럼증과 연계된 이상을 찾을 수는 없었고, 단순 편두통이었을 거란다. 나는 정말 많이 아팠는데 말이다. 뇌 영상에 작은 혹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태어날 때부터 아니 엄마 뱃속에서 처음 뇌가 만들어 질 때부터 생겼다는 콩알 만 한 혹, 그 혹은 하얀 기름덩어리라고 한다. 얼굴에 처음 혹을 달고 태어난 사람처럼 나는 머리에 혹을 달고 태어난 거란다. 그게 나쁘게 변할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 한 번쯤 검사를 해보란다. 나는 약 처방도 없이 터덜터덜, 가뿐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마음으로 마트에 들려서 몇 가지 생필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쫌 뻥을 쳤다. 크게 이상이 있는 건 아니고, 뇌에 혹이 하나 있는데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신체에 너무 무리를 주면 편두통이 생길 수 있다고 말이다. 엄살을 좀 피웠다.
그동안에 못 돌아다니고, 책도 못 읽고, 운동도 하지 못했는데.
나는 다시 시작해야한다. Let's start!
첫댓글 사이버그들 속에서 듣는 '낭만에 대하여' 기가 막히네요.....안 아파서 다행이구요. 건강하세요.
하하하, 집에 뻥을 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넹, 뇌의 혹을 가끔 이용하세요~~^^
뻥 쟁이 메이에 대한 시가 인터넷을 떠다녀도 탓하기 없기...
긍게~ 노래 선정이 잘못되었구먼. 메이에게는 요런 노래가 어울리는디~'one more time'!
고생 하셨습니다. 정기적으로 체크 하시며 관리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