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양말이 악세사리라고 한다면
불과 십여 년 전이라도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물자가 귀할 때 양말에 구멍이 났다고 하면 어머니는 조그만 십촉짜리 전기다마에
뒤집어 쒸워 섬세하게 바느질 하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같은 색으로 감쪽 같이 비스므레하게 표시 안나게 꿰매는 옛날 엄마의 솜씨들은 대단하다.
요즘은 핸드메이드 시대라고 아무리 주장한다고 해도 그런 양말 줘도
얘들 신지도 않을 것이다. 도리어 엄마! 왜 그러세요?
어렸을 땐 우리집 옆 집에 이제 막 스믈을 넘긴 아가씨가 우리와 같이 셋방을 살았었다.
나에겐 그녀의 굽높은 삐딱구두와 그녀의 양말 즉 스타킹에 늘 눈이 머물렀다.
한 겨울에도 그녀는 그 삐딱구두와 맨살에 가까운 스타킹을 신고 아침일찍 나가고 늘 늦은 저녁에 돌아 왔었다. 그 당시 대문도 잠그지 않고 살 던 때 , 그녀가 돌아 올 땐 소리가 또각 또각 그 소리에 아 이제야 돌아 왔구나 오고 있구나 했다.
제일 궁금 한 것은 그 매서운 겨울에도 춥지 않을까 였다.
하긴 그 옛날 겨울은 지금보다 더 추운 기억인데. 늘 그것이 안쓰럽고 걱정되었다.
그 추운 날씨에 다리가 얼면 어떡하나 그런데도 짧은 치마에 얇은 스타킹에 늘 호기심이 꽂힌 것이다.
어린 마음에 난 엄마에게 물어 보았다. 저렇게 스타킹이 따뜻한 거여...
울 엄마는 이제 열살 바라보는 딸아이에게 찬찬히 설명을 해줄 틈이 전혀 없었다.
지금이야 애들 질문을 하면 잘 대답 해주는 법을 따로 배우는 곳도 배우는 부모도 많아졌지만
나 어렸을 땐 알아서 궁금증 해결하고 풀어야 하고 늘 그래서 엉뚱한 상상을 해야 했다. 울엄마는
단지 니가 나중에 크면 한 번 신어 봐라. 이 말씀이 전부다.
그래서 난 열살 더 먹으면 저 스타킹을 꼭 신어 볼거다. 내심 불안한 것은 굽 높은 구두였다.가늘은 굽이 길게 붙은 구두를 신고
걷다가 다리 부러질 정도의 높이, 그 나이 눈높이엔 높긴 높았을 거다. 내가 키작아 신어야 할 구두가 아닌 도무지 불편할 만큼 고공행진을 왜 맨날 해야 되는지 몰랐으니 전부는 그 스타킹에 관심이 쏠렸다.
열살 더 먹어 신을 줄 알았던 그 스타킹은 중학교 입학하면서 검정 팬티스타킹을 입게 되었다. 처음 신은 기대감과는 달리 옥죄고 왠지 불편하고, 그 때 그 아가씨는 맨살처럼 뽀얀 스타킹이였는데. 이건 정말 아니었다. 그냥 벗어놓고 다니고 싶은데 치마를 입었으니 할 수 없고, 춥다고 특히 여자는 아랫도리를 차게 하면 안된다고 울 엄마는 내복까지 덧 입게 했다.
기대는 거기서 저버리게 된다. 아! 별 게 아니었구나.
중학교에 다닐려면 단발머리를 해야 한다고 모두 일렬로 줄 세워 머리길이를 재 던 그 시대에 검정 교복에 검정 스타킹은 지금도 외딴 곳에 사시는 수녀님들을 연상케 한다. 일렬로 줄세워 걷게 할 때 복도는 나무결이 잘 일어나 실내화를 신지 않으면 주륵 하얀 길이 터진다. 검정과 흰색은 너무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난 또하나의 궁금증을 남겨 놓았다.
과연 누가 먼저 검정 스타킹을 신기게 하자고 제의를 했을까. 꼭 검정교복에 검정스타킹을 신어야만 한다고 누가 결정 했을까.
이 귀찮고 꼭 묶여 있는 것처럼 신어야 하는 스타킹을 누가 먼저 유행을 선도했을까.
그것도 고등학교에 가니 별게 아닌 사실로 밝혀졌다.
스타킹은 우리것이 아닌 서양 것, 그것도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신었다는 것.
스타킹도 일반 사람이 발명한 것도 아닌 영국의 어느 남자 목사님이 발명 했다는 것들을 시원찮게 알게 되었다.
이제 스무살이 되니 그 높던 삐딱구두도 신게 되었다. 나도 고공행진 할 때가 되었는데.
이게 영 나하곤 영 어울리지 못했다. 성격상 마구 여기저기 쏘다니기 바쁜 선머슴 주제에 누가 줘도 안 신을 것 같은 구두를 신으니 발만 뻑뻑하고 저리고 아프고 세상에 독한 여자들이라지만 이걸 어떻게 신고 다니나 했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발명을 했을까 싶었다. 혹시 난장이들 나라에서 발명을 하여 여기까지 흘러들어 온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그 비슷한 사실을 또 알게 되었다. 남자의 키높이 구두는 하이힐의 원조란다. 그러면 그렇지. 다른이의 시선에 평균키를 높이 잡아 크게 보이게 하는 역활이다.
역시 키 작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키가 큰 것으로 착시현상을 이용한 구두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럼 지금도 키작은 남자는 그렇게 구두를 주욱 신고 다니게 하지 왜 여자들 발만 못살게 힘들게 신게 하는건가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이먹어 직장 생활 하다보니 남들 눈높이에 어느 정도 시선을 맞춰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떤때는 어렸을 적 그녀보다 더 높은 구두를 신고 다녀야 했고, 한 겨울에도 맨살보다 더 뽀얀 고탄력 스타킹을 신었다. 이러니 저러니 하다 나이 사십넘어 그동안 나를 거쳐간 일회용 같은 그 스타킹들 헤아리면 몇 박스나 될 것이다. 스타킹뿐이랴. 높은 구두 하이힐은 유행 뒤쳐져 모양 흐트러져 바꾼 것이 몇 켤레 였는지 세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쓰임을 당하다가 가차없이 버려진 것들이 어디 스타킹 구두만이랴. 앞으로도 계속 사고 신고 쓰고 할 것들에 대한 대우를 해 줘야 할 나이가 드디어 된 것이다. 사느라 수고한 몸에 대한 안부를 묻듯이 이미 나에게서 버림을 당하든 떠났던 간에 새삼 안부를 확인 하고 싶다.
허울 벗겨대던 비얌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 한다지만 난 늘 새로운 스타킹을 준비해야 하는 인생이니 그 동안 나에게 신겼던 그 스타킹에 안녕을 고하고 싶다.
그동안 고마웠었다고.
첫댓글 정자시씨와 이야기는 시조도 조잘둥이 인듯 합니다. 시골에는 60년대 스타킹이 귀하고 보기드문 일임이 확실해요.동네 어린이들 내다리 멈춰 서기만하면 캄작 놀아게 다리에 쭉그리고 앉아 만지는거였어요.*혹시 정자씨 내다리만진 범인 아닐까 싶어요.ㅋ ㅋ,
헤헤..만진적은 없구유..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어우..지는 범인이 절대 아녀유..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