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대담하고 솜씨 좋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전쟁의 재앙인 그는 그러나 장군으로서 더없이 위대하고 훌륭하다’고. ‘영국군이 당한 참패 바로 옆에는 항시 이 걸출한 장군이 있었다’라고.”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월. 영국의 처칠은 롬멜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다. 당시는 북아프리카에서 연합군이 롬멜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때였다.
군사전문가들은 롬멜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장군으로 평가한다. 한마디로 천재성을 발휘한 위대한 장군이란 뜻이다. 그의 별명인 ‘사막의 여우’도 그래서 붙여진 것이다.
기발하고 탁월한 전략과 전술, 공격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용맹, 정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군인정신으로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존경받았던 롬멜의 리더십을 알아본다.
▲탱크의 숨은 가치를 읽어낸 탁월한 안목
롬멜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전격전’이다. 전격전은 공군의 지원 하에 전차가 주축이 된 기계화 부대로 적의 제l선을 급속히 돌파하여 후방 깊숙이 진격함으로써 적을 양단(兩斷)시키고, 양단된 적 부대를 후속(後續) 보병부대로 각개 격파하는 전술이다.
이 전격전은 사실 롬멜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훨씬 전 영국에서 처음 나온 전략전술 이론이었다. 롬멜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이론의 가치를 알아보고 재빨리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처음 기갑부대 사단장을 맡기 전까지 롬멜은 탱크를 지휘한 경험이 전무 했다는 사실이다.
▲유연한 사고와 임기응변이 만들어낸 승리
롬멜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속도’와 ‘기습’이다. 바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전격전의 요체다. 또 하나 롬멜을 표현하는 단어는 바로 ‘기만전술’이다. 적(연합군)의 입장에서 볼 때 롬멜은 교활한 작전으로 끊임없이 자신들을 괴롭힌 ‘기만전술’의 달인이었다.
롬멜은 전력이 열세에 놓이자 폴크스바겐 자동차로 가짜 탱크를 만들어 위기를 넘겼다. 자동차에 나무판을 씌우고 색을 칠해 탱크로 위장했던 것이다. 이 가짜 탱크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맹렬한 기세로 진격해오자 연합군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롬멜은 또 대공포를 대전차포로 전용하는 등 획기적인 전술운용으로 엄청난 전과를 거뒀다.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1940년 2월 제7기갑사단장에 임명된 롬멜은 2개월 안에 북프랑스 쉴부르를 함락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때 롬멜이 선택한 전술은 뜻밖에서 해전에서 함대가 쓰던 단종진(單縱陣)이었다. 이것은 해군 함대처럼 탱크가 포격을 계속하며 전진하는 전술이었다.
오늘 날에야 당연한 전술로 느끼지만 당시만 해도 움직이면서 사격을 하는 것은 탄환을 낭비하는 멍청한 짓으로 여겼다. 당시의 상식으로 전차의 포격은 정지한 상태에서 쏘는 것이었다.
육지의 전차전에 함대 전술을 쓰다니… 롬멜의 참모들은 즉각 이 전술에 반기를 들었다. 롬멜은 그런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 규칙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반드시 이기는 수단을 찾아내 실행하는 일 뿐이다.”
상식을 깨고 전차의 가능성을 새로 발견한 그의 이 전술은 오늘 날 전차전의 교범이 되고 있다.
롬멜의 상식을 깨는 전술은 1941년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을 추격하면서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적군을 추격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였다. 문제는 롬멜의 군대가 도망치는 영국군보다 병력면에서 열세였다는 점이다. 참모들은 전력을 집중해 한 방향에서 영국군을 공격하자고 했다. 전쟁터에서 다수의 적과 마주했을 때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롬멜은 그 어리석은 짓을 선택했다. 롬멜은 중전차 대신 가벼운 전차 부대를 동원해 세 가지 길로 모두 영국군을 추격했다. 영국군은 롬멜의 기갑부대가 뒤를 쫓아오려면 한참을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세 방향에서 탱크가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자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롬멜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영국군을 북아프리카에서 몰아냈다.
롬멜은 전통적인 전술을 버리고 가벼운 전차부대를 이용한 속도와 적의 의표를 찌르는 대범한 전술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적까지 감동시킨 휴머니스트
롬멜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성격은 전쟁터에서도 영화 같은 낭만을 만들어냈다.
롬멜은 대치중이던 영국군의 야전병원에 부상자가 먹을 식수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곧장 장갑차에 백기를 달고 식수를 실어다 영국군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이번엔 영국군이 그 보답으로 지프에 백기를 달고 와인을 실어다 독일군에게 전달했다. 롬멜은 전투가 끝나면 총격을 멈춘 뒤 피아를 불문하고 부상자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연합군은 비록 적이지만 그런 롬멜을 존경했다.
고금을 통틀어 승리한 장군의 뒤에는 언제나 우수한 병참(로지스틱스) 지원이 있었다. 롬멜이 숱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후방의 군수지원 덕분이었다.
하지만 무패를 자랑하던 롬멜의 전차군단을 무너뜨린 것은 적군이 아닌 아군의 병참 지원이었다. 탱크 연료인 기름을 지원받지 못했던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래서 재미있다.
<롬멜 리더십 TIP>
▲상대의 핵심(코어)를 공략하라 : 롬멜의 전격전은 다른 말로 기동전이라 부른다. 기동전이란 적보다 한 발 앞서 유리한 기회를 포착하는 ‘선제 기능’과 적의 감함을 피하는 ‘강점 회피’, 그리고 적의 중심을 타격하는 ‘중심 타격’으로 요약된다.
롬멜은 철저히 연합군 부대의 심장부를 파괴했다. 우회하고 도망치다가 기회가 생기면 부대의 지휘부를 공격해 명령체계를 마비시켰다.
▲약점까지 철저히 활용하라 : 당시의 탱크는 전진보다 후진이 힘들었다고 한다. 롬멜은 탱크의 이런 약점을 철저히 활용했다. 이런 식이다. 주력부대는 중요 지점에 매복시켜 놓고 소규모의 기갑부대를 내보내 먼저 연합군을 유인한다. 독일 기갑부대의 전력을 얕본 연합군이 매복지로 들어서면 기다리고 있던 주력부대가 적의 후미를 기습공격 한다. 그 다음은 승리다.
▲지피지기하라 : 롬멜과 처음으로 아프리카 사막에서 맞선 이는 연합군의 아치볼드 웨벨 장군이었다. 롬멜은 그가 저술한 전투책자의 애독자였다. 얼마나 읽었던지 책자가 뜯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아치볼트는 롬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늘 최일선 현장을 지원하라 : 1차대전 당시의 프로이센-독일군에서 진급을 하려면 일반참모로 복무하는 것이 정상코스였다. 하지만 롬멜은 한결같이 일선 보병장교를 지원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국방군과 히틀러의 국방군에 있을 때도 그랬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그는 총통사령부 경호대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최전방 체질인 그는 히틀러에게 야전부대 지휘를 강력히 요청했고 자신의 희망대로 기갑부대 사단장에 임명됐다. 그가 후방에만 있었다면 오늘 날의 롬멜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악의 조건을 최고의 무대로 만들어라 : 2차 세계대전 중 어느 누구도 롬멜과 같은 불리한 조건에서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끈 장군은 없을 것이다. 그는 생전 처음 탱크 부대를 지휘했으며 부임지인 사막은 악지(惡地)였다. 게다가 동맹국 이탈리아는 패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사막전의 영웅이 됐다. 그 뒤로 전술가들은 사막을 전략전술을 마음대로 펼 수 있는 꿈의 무대로 여겼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롬멜의 최대 장점은 빠른 결단력입니다. 판단 미스도 많았지만 유리한가 불리한가 따진다고 시간 날려먹기보다 우선 행동부터 취한다 라는 것으로 적의 허를 가차없이 찔렀죠. 그가 보급을 무시했느니, 무모했느니 해도 열세한 전력으로 2배이상의 적을 몇번이고 격파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그 적은 영국이었죠...결과적으로 전투에선 이기고 전쟁에서는 졌지만...전투에서 이긴 것만해도 대단한거죠...물론 뭐 롬멜이 완전무결은 아니었지만...충분히 명장급으로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
전격전은 만슈타인의 작품인걸로 알고 있는데-_-
만슈타인의 작품은 황색작전이죠. 만슈타인이 특별히 전격전이라는 전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구데리안, 풀러, 드골이 기동전과 기갑전, 입체전을 주장했습니다. 롬멜은 원래 보병장교출신입니다. 그럼에도 기갑전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전차의 장점을 빨리 인식했기에 프랑스전역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슈타인의 작품은 낫질작전 아닌감요 -_-; 황색작전은 노장파들의 주장..
만슈타인은 아르덴 숲이였나? 그쪽을 돌파하여 낫질작전을 성공시키는 것이였던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기억에 의존하다보니 명칭을 착각했습니다.^^
뭐 엄밀히 말하면 '전격전'이라는 교리는 없죠. 그리고 기동전은 독일 특유의 섬멸작전 하에 운영되는거고요.
음..
웃기는 신화 한가지..이탈리아전선에서 1개중대를 이끌고 적진을 침투..72시간만에 이탈리아군 9000명 생포 ㄷㄷㄷㄷ
롬멜보병전술에서 중대병력을 대대병력2개정도를 생포한게 있죠..
바람같이 진격하고 바람같이 발리다
처칠은 정치적으로 롬멜을 뛰어주지 않으면 자기가 무능한 지도자가 돼니까 엄청 뛰어준 거라 알고 있습니다만...
정치적으로 롬멜을 띄워주지 않으면 무능한 지도자라... 무슨 이런 황당하신 말씀을.. 그렇다면 굳이 롬멜만 띄워줄 이유가 없지요. 싱가포르가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처칠은 "전쟁을 시작하고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일본군에 대해서도 띄워줘야죠. 사람 차별도 아니고^^
아니 뭐, 상대가 대단한 존재라면 상대에게 몇번 져도 내가 무능한건 아니다...라는 뭔가 황당한 논리가 있긴 있죠. 게다가 상대가 대단한 존재라면 몇번 지더라도 결국 상대를 꺾은 나는 더 대단한 인물이 된다...이런 논리도 있지 않습니까. 아동용 만화 등에서 적의 최종보스를 엄청 강한 인물로 설정하는 것도 이런 논리가 숨어있는 거죠.
우리 사회는 상대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기 보다 깎아내리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인지라 그런 편견을 가지게 되는데, 가까운 일본에서 이순신을 높이 평가하는게 자신들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함이겠습니까. 롬멜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한 것은 처칠이 아니라 직접 맞상대했던 영국군 제 8군 장병들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오킨렉이 "롬멜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니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지마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롬멜의 인기를 질투해서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역사상 나름 이름있는 장군중에 적에게 이토록 존경받은 사람은 제 기억에는 이순신과 롬멜밖에 없는듯..
그는 곧장 장갑차에 백기를 달고 식수를 실어다 영국군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이번엔 영국군이 그 보답으로 지프에 백기를 달고 와인을 실어다 독일군에게 전달했다. - 서양 특유의 뭔가가 느껴지네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