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가명)엄마입니다. 제가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부쩍 감기가 잦고 열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동네 소아과 병원에서는 단순 감기라 했고 요즘은 오래 열이 나는 바이러스가 많다고만 했습니다. 전 그 말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급기야는 열흘이 넘도록 해열제 없이는 열이 내리지 않아 2014년 10월9일 휴일 피검사를 하러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피검사상 백혈구 수치가 좀 낮고 다른 열이 날만한 감기 증세가 없다며 불명열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피검사상 말초에서 암세포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진들도 저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내리지 않는 열로 고생하며 일주일간 온갖 바이러스 검사와 정밀 검사가 이루어졌지만 불명열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바이러스중 건강한 아이들에게 자라지 않는 바이러스들이 자란다며 골수검사를 권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별 일 없을 거라 마음을 쓸어내리며 골수 검사에 동의를 했지만, 엄마의 직감은 언제나 무섭도록 적중하듯...
청천벽력 같은 림프구 백혈병(ALL)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교수님께 혈액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텔레비전에서 보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교수님 입모양과 현지의 해맑은 얼굴만 슬로우모션으로 눈앞이 핑 돌았습니다. 처음엔 눈물도 나지 않아 교수님께 몇 번을 ‘뭐라고요?’하고 되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날 밤새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절망도 좌절도, 자책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치료를 시작했고 치료 전날은 현지의 고생의 시작을 알리 듯 현지가 갑자기 경기를 하며 컨디션이 급속도로 안좋아졌습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골수검사에 척수강내 척수액 검사와 항암약 투여가 실시되면서 현지는 지치고 말 수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항암 치료중 약으로 원래 마른 체형인 현지는 온몸이 붓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엄마로서 차마 마주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엄마 왜 주사 주는 거야 싫어~ 미워~”소리치며 우는 현지를 온 힘을 다해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야 하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기를 하루에도 수차례... 아프고 무서워하는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더욱 꽉 잡아야 하는 저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지만..무너져 내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치료도중 열도 수차례 나고 안압도 높아져 따가운 안약을 아침,저녁으로 넣고 아직은 버거울 안경착용까지 해야 됐고, 면역력이 낮아 손가락에 사마귀들이 자꾸 생겨 피가 나고 낫기를 반복... 갖가지 부작용들의 속출로 힘든 치료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저도 힘들지만, 그냥 예방주사만 맞아도 어리광을 부릴 나이인 5살 현지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고마운 현지가 흔들리는 제게 “엄마, 괜찮아. 사랑해.”하며 힘을 주고 있습니다. 백혈병이 무엇인지 암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현지는.. 본인 몸에 나쁜 세포만 없으면 괜찮아진다고.. 제게 힘을 줍니다. 강북 삼성 병원은 소아 암병동이 없어 현지도 저도 외로운 투병의 연속이었지만 선생님들과 주위분들의 사랑으로 밝은 앞날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중입니다. 힘들 때 마다 현지랑 기도하며 좋은 날을 기약해 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발병 전 많은 빚을 내서 월세집에서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 온 집... 현지는 채 한 달도 지내보지 못한 집.. 저희 네 식구의 희망의 빛이었던 빚이었지만.. 지금은 현지의 병원비와 저의 실직(현지 간병으로)으로 현지의 보험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이 아빠의 벌이로는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지와 제가 희망의 끈을 꼭 잡고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희망의 빛을 조금이나마 보여 주십시오. 집에서 할머니와 생활하는 큰아이와 현지 저희 네 식구가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