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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6회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
* 본 회에서는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을 게재하겠습니다. 수 많은 인연중에서 당시에도 부처님을 만났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입니다.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이 전해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같이 만나 보도록 합시다.
Ⅳ.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
1. 모래 공양을 올린 아쇼카왕
2. 마당 먼지를 쓸어 담는 스님
3. 귀자모의 귀의
4. 말 조련사와 조어장부
5. 똥 푸는 천민 니디
6. 가난한 이의 등불
7. 불을 숭배하던 카사파 삼형제
대한불교 천태종 부산 삼광사 제1기 마음챙김 행복명상 강좌 개장
부처님을 만난 이들은 다양합니다. 평범한 사람들, 왕족, 귀족, 노비 등과 같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 등 실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이들의 성품도 다양한 만큼 저마다 다른 근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 교실에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데 어떤 학생은 한 번의 설명에 바로 이해를 하는 반면, 같은 내용이라도 설명을 쉽게 풀어줘야 알아 차리는 학생이 있습니다. 하물며 서로 다른 학년의 학생들이 한 곳에 모였다면 더욱 이해도의 차이가 클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대중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생에 따라, 살아 온 환경과 언어, 문화에 따라 법문의 내용이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이들을 제도하는 방법이 같을 수도 없습니다. 상대에 따라 다른 설법, 이것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눈높이, 즉 근기[機기]에 따라 [對대] 다른 가르침[法법]을 말씀[說설]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은 단 하루도 중생제도를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열반에 드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를 받아 들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던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사찰벽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1. 모래 공양을 올린 아쇼카 왕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와 함께 탁발하러 가시다가 길에서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으로 집을 만들고 또 신발에다 모래를 담아 밥이라고 얘기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놀고 있던 아이들은 저 멀리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을 떠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공양을 올리면 큰 복을 받는다고 하던데 ....'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신발에 담아 놓은 모래 밥을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모래 밥을 받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며 아난에게 건네 주셨습니다.
"아난아, 이 모래로 내 방의 허물진 곳에 바르도록 하여라."
정사로 돌아 온 아난이 말씀대로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고 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모래라고는 하나, 어린 두 아이가 환희심으로 보시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국왕이 되어 삼보를 받들고 여래를 위하여 팔만사천보탑을 세울 것이다."
그러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찌 한 줌 흙의 공덕으로 그와 같이 큰 과보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니 임금과 부하들이 모두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법을 청하여 들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왕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깨닫는 바가 참으로 많았다. 왕은 그 기쁜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부처님의 형상을 팔만사천장을 그려 보시하였으며, 그 공덕으로 장차 팔만사천의 탑을 건립할 수 있는 과보를 얻게 되었다. 그때 왕이 바로 오늘 모래를 공양한 소년이니, 다음 생에는 다시 국왕으로 태어나 그 탑을 세울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백여 년 후,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던 인도를 통일하고, 인도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다스린 국왕으로 기록된 아쇼카왕이 있습니다. 바로 아쇼카왕의 전생이 그 소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 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깨달았고, 결국 큰 상처를 받은 백성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살피고자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하신 말씀대로 아쇼카왕은 천여 명의 승려로 하여금 경전을 편찬케 하는 결집을 주최했고, 인도 전역에 불탑을 건립하는 한편, 해외 여러 나라에 불교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오늘날 인도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아쇼카왕의 석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전쟁에 의한 승리보다 자비에 의한 정복이 휠씬 훌륭한 것이다."
2. 마당 먼지를 쓸어 담는 스님
부처님 제자 가운데 '주리반특'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는 얼마나 멍청했던지 자기 이름마저 기억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른 스님들에게서 항상 바보취급을 당하던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가 호소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너무 바보여서 이곳에 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다, 주리반특아. 자신을 어리석다고 아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자, 순간 스님을 그만 두려고 했던 자신의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어려운 설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내가 한 가지만 가르쳐주마. 여기 빗자루가 있으니 이 빗자루로 매일 마당을 쓸어라, 그리고 마당을 쓸 때마다 '쓸고 닦아라!'고 반복해 말하면서 쓸도록 하여라."
하지만 그는 이 말조차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에게 일러주기를 길에서 주리반특을 만날 때마다 인사 대신에 '쓸고 닦아라!'라고 말해 주라고 당부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리반특에게는 '쓸고 닦아라!'라는 소리와 함께 경내를 청소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십년이 지났습니다. 한때 그를 바보라고 놀리던 스님들도, 매일 같은 마음으로 청소와 수행을 하는 주리반특을 보면서 점차 경의심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의 성실한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존경심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리반특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하루도 쉬지 않고 쓸고 닦는 청소를 계속하는 중,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아,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속에 있는 먼지나 때를 닦아내는 게 중요한 것이다.'라고 깨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아라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리반특 스님이 매일 마당을 쓸고 닦듯 우리도 우리 마음의 큰 마당을 매일 쓸고 닦아야 합니다. 청소란 조금일 때는 치우기 쉽지만, 미뤄두면 어렵다 못해 아예 할 생각조차 들지 않게 됩니다. 마음 닦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속 먼지와 때가 짙어지기 전에 닦아내고 또 닦아내는 것이 비로소 마음 수행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주리반특 스님에게 마당을 쓸며 깨우치라고 하신 것이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요.
3. 귀자모의 귀의
하리티란 여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서 아기를 훔쳐 잡아먹는 잔인한 야차夜叉귀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500명이나 되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귀자모鬼子母라 불렀습니다.
그 중에서도 막내를 가장 애지중지 여기며, 제 자식은 끔찍이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아이를 해치고 다녔고, 마을 사람들은 날마다 불안에 휩싸여 지냈습니다.
왕은 거리마다 경비를 강화했고, 유명한 주술가를 불러 처방을 구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부처님을 찾아와 상황을 말씀드리며 도와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이튿날 부처님은 탁발을 마친 후 하리티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 하리티는 보이지 않고, 아이들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이들 중 그녀가 가장 아끼는 막내를 갖고 계시던 발우로 덮어 씌우자 아이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하리티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리며 이산 저산으로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발아래 엎드려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제 아들이 없어졌습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아들을 찾게 도와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하리티에게 아이가 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하리티는 울부짖으며 자신에게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리티야, 많은 아이가 있으면서도 그 중 한 아이라도 보이지 않으니 네 심정이 어떠하냐. 하물며 네가 사람들의 아이를 해치는데, 한 아이가 자신의 전부인 사람들의 심정은 오죽 애가 타고 슬프지 않겠느냐?"
부처님의 말씀에 그녀는 크게 뉘우쳤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발우를 치우고, 아이의 모습을 원래대로 되돌려 그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지난 과거를 뉘우쳐 악업을 끊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4. 말 조련사와 조어장부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일입니다. 어느 날 제자들과 길을 걷다가 야생마를 길들이는 말 조련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마을의 촌장으로, 자신의 말 다루는 실력은 명성이 자자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한 눈에 말의 상태를 알아내고, 그에 따라 적절한 조련술로 어떤 말이든지 길들일 수 있습니다."
"말을 길들이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가?"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첫째는 부드럽게 다루는 것이고, 둘째는 거칠게 다루며, 셋째는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다루는 것입니다."
"만약 세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여도, 말이 길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제 명성을 더럽히는 쓸모없는 말이기에 그냥 죽입니다."
이번에는 말 조련사가 부처님에게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장부를 다스리는 최고의 '조어장부'(調御丈夫:산스크리트어 puruṣa-damya-sārathi 부처님의 10가지 이름중의 하나로 이는 모든 사람을 잘 다루어 깨달음에 들게 한다는 뜻, 곧 부처를 일컬음)라고 하는데, 어떤 방편으로 사람들을 다루십니까?"
"나도 세 가지 방법으로 제자를 가르친다. 첫째는 한결같이 부드럽게, 둘째는 한결같이 거칠게, 셋째는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다룬다."
"세 가지 방편을 모두 사용해도 바른 길로 인도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나 역시 세존을 욕되게 하지 못하도록 그를 죽이고 만다."
말 조련사는 깜짝 놀라 부처님께 되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찌 제자를 죽인다는 말씀이십니까?"
"바른 길로 인도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그와 같이 말하지 않고, 다시 가르치지도 않으며, 훈계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바로 제자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한 중생을 구제하려고 해도, 그 중생이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비록 내가 부처일지라도 그 중생을 구제할 수가 없다." ☞ 『잡아함경』 「지시경 只尸經」
세상에 부처님이 계심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자라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불자에게 있어서는 죽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신행생활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참된 불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수행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게으르지 않고 노력하며 실천해야만 진실한 불자라 불릴 수 있습니다.
5. 똥 푸는 천민 니디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과 함께 어느 마을에 탁발을 나섰을 때 였습니다. 그 때 똥통이 걸린 지게를 매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재래식 화장실 자체를 보기 어렵지만, 옛날에는 화장실에 똥이 가득차면 일일이 사람 손으로 치워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니디Nidhi 尼提'라고 했으며, 신분이 아주 낮은 천민으로 지저분한 몸에 악취가 풍기는 허름한 옷과 얼굴에도 꼬질꼬질 때가 낀 모습으로, 사람들은 그가 근처에 오는 것 조차 싫어했습니다.
뒤 늦게야 부처님 앞에 계신 것을 알아차린 니디는 자신의 허름한 몰골과 더러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몸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급히 다른 곳으로 피하다 그만 옆으로 넘어져 똥물을 뒤집어 쓰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부처님과 아난의 가사에도 오물이 튀고 말았습니다.
겁이 난 니디는 양손을 비비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부처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니디에게 부처님은 오히려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며 말씀하셨습니다.
"괜찮다. 어서 일어나라, 니디야. 나와 함께 강물에 가서 몸을 씻자꾸나."
"부처님. 어찌 저 처럼 천한 사람이 감히 함께 가겠습니까?"
자신을 부끄러이 여긴 니디는 부처님의 권유를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니디의 손을 끌고 강가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리고 니디에게 묻은 오물을 씻어주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니디는 놀라 뒷걸음쳤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니디야, 너는 천하지도 더럽지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단다. 네 옷은 더러워졌지만 네 마음은 더할 바 없이 착하구나. 그런 네 몸에선 아름답기 짝이 없는 향기가 나고 있단다. 누구든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자상하신 말씀에 니디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니디야, 출가하여 나의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
"그건 안 됩니다. 미천한 제가 어찌 감히 사문들과 섞일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맑은 물 한 움큼을 정수리에 부어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염려마라, 디니야. 나의 법은 청정한 물이니 너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줄 것이다. 넓은 바다가 온갖 강물을 다 받아들여도 여전히 맑고 깨끗한 것처럼, 나의 법은 모두를 받아들여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나의 법에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피부색의 차이도 없다. 오직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얻은 사람만 있을 뿐이란다."
니디는 눈 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무릎꿇고 합장하며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부처님은 니디를 기원정사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니디는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니디가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며?"
"아니, 부처님께서는 왜 그런 천한 자에게 출가를 허락하셨을까?"
"그럼,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면 똥 푸던 그 놈도 따라 온다는 말인거야?"
"따라오기만 하겠어? 똥 푸던 그놈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판이구먼."
부처님께서는 마을 사람들을 잘 타일렀습니다.
"누린내 나는 아주까리도 잘 비벼서 소중한 불을 얻게 되듯이, 마치 더러운 진흙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과 신분과 직업으로 출가자의 값어치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출가자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마땅히 그 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불교는 모든 중생의 평등을 강조합니다. 특히나 부처님 당시의 인도는 지금보다도 더욱 엄격한 신분제도가 지켜지던 나라였습니다. 인도는 지금도 카스트제도라는 신분제를 관습적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사성제四姓制라고도 부르는 신분제도인 카스트는 종교를 관장하는 브라만Brahman, 왕족과 귀족인 크샤트리아Ksatriya, 상인과 평민인 바이샤Vaisya, 노예 및 천민인 수드라Sudra,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천민보다 더 낮은 신분으로서 불가촉천민인 달리트Dalit(하리잔과 같은 말)등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신분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교단에는 신분제도가 없었습니다. 출가자를 신분에 따라 거부하거나 어떠한 혜택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태어남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입장에서 카스드제도를 부정했습니다.
바라문(브라만)이든 수드라든 부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자는 누구라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따뜻한 보호와 가르침 속에서 마치 진흙 속에 감춰진 보석들이 빛을 발하듯 훌륭한 제자들이 수 없이 배출되었습니다.
6. 가난한 이의 등불
옛날 한 가난한 노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이 집 저 집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 갈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온 성안이 떠들썩한 것입니다. 그 노파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임금께서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과 침구와 약을 공양하고, 오늘 밤에는 또 수 만 개의 등불을 밝혀 복을 비는 연등회를 연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노파는 생각했습니다.
"임금님은 참 많은 복을 짓는구나. 나도 등불을 하나 켜서 부처님께 공양하면 좋겠지만,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구나."
결국 그녀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구걸하여 동전 두 닢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기름집을 찾아 갔습니다. 기름집 주인은 허름한 노파의 행색을 쳐다 보고는 수상히 여겨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 기름을 어디에 쓰려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그 부처님을 뵙게 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다만 저는 가난해서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으니 그저 등불이라도 하나 켜서 부처님께 바칠까 합니다."
노파의 말에 감동한 가게 주인은 기름을 곱절이나 주었습니다. 그녀는 부처님께서 지나가는 길목에 불을 켜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발원했습니다.
"저는 가난한 처지라 이 작은 등불을 부처님께 공양하나이다. 비록 보잘 것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지혜와 광명을 얻어 모든 중생의 어둠을 없애도록 해 주옵소서."
그리고 밤이 깊었습니다. 어느덧 기름이 다 된 등불은 하나 둘 꺼지고 있었지만, 그 가난한 여인의 등불만은 한결같이 환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등불이 모두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께서도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아난은 남아 있는 등불을 손으로 불어 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등불은 거센 손바람에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옷자락으로 바람을 일으켜도 보았고, 부채로 불어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말라. 그것은 비록 가난하지만 어느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등불이기에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여인은 이 등불의 공덕으로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니라."
한편 이 말을 전해들은 임금이 부처님을 찾아와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석 달 동안이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큰 보시를 올렸고, 수만 개의 등불을 켰습니다. 제 공덕이 적지 않으니, 저의 미래도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저에게도 수기授記를 내려 주십시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불법佛法은 그 뜻이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깨닫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써 얻을 수도 있지만, 백 천의 보시로도 얻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을 바르게 깨달으려면 먼저 이웃에게 베푸어 복을 짓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 많이 배우며, 스스로 겸손하여 남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코 자신이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훗날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왕은 공덕을 내세우려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물러 갔습니다.
매년 초파일이면 우리도 부처님 전에 등을 밝힙니다. 등을 켜는 것만으로도 큰 공덕이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 켜는 등불보다는 이웃에게 베풀고 존경하는 복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일 년에 하루 있는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매일 매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큰 공덕이 됩니다.
7. 불을 숭배하던 카사파 삼형제
녹아원에서 오비구를 제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널리 법을 전하러 떠날 것을 당부하시며, 부처님께서도 인근의 우루벨라 마을로 향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당시 마가다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카사파 삼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 수행자였습니다. 첫째 우루빈나 카사파에게는 500명의 제자가, 둘째인 나디 카사파에게는 300명의 제자가, 그리고 막내였던 가야 카사파에게는 200명의 제자가 각각 따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마을에 도착하자 이들 삼형제가 불을 섬기는 장소인 성화당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사실 부처님의 소문은 이들 귀에 까지 들렸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독룡이 살고 있는 성화당에 머물게 하여, 부처님을 시험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저 사문의 송장을 치우게 되겠군. 쯧쯧'
성화당에 들어간 부처님은 적당한 곳에 풀을 깔고, 그 위에 앉자 결가부좌하신 채 깊은 삼매에 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성화당의 독룡은 몹시 불쾌하고 화가 났습니다.
'이런, 겁도 없이 성화당에 들어온 것도 화가 나는데, 게다가 저렇게 침착한 모습으로 선정에 들고 있는 이 자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화가 치민 독룡은 불덩이를 뿜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저 독룡의 피부나 살. 근육. 뼈. 골수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나의 불로써 이 녀석의 악한 불을 소멸시켜야겠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연기를 뿜어냈습니다. 이를 본 독룡은 더욱 분노에 휩싸여 스스로 거대한 불길을 두른 채 큰 불을 뿜었습니다. 부처님 또한 선정의 불을 내비추었습니다. 부처님과 독룡, 이 둘의 불꽂이 크게 휩싸이자 성화당 안은 마치 불타는 집처럼 뜨겁게 빛났고, 밖에서 이를 보던 우루빈나 카사파와 그의 제자들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 사문도 결국 이렇게 독룡의 먹이가 되고 마는구나."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 성화당을 정리하러간 그들은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부처님께서 멀쩡히 앉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에 든 발우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뱀 한 마리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카사파여, 이것이 그대가 섬기는 독룡이다. 이 독룡의 불꽃은 나의 불꽃에 의해 소멸되었다."
부처님은 지혜의 불꽃으로 독룡이 내뿜던 사악한 불꽃을 꺼 버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루빈나 카사파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힘으로도 부처님의 신통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신통은 지혜의 힘으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모든 도구를 다 던져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두 동생 니디, 가야 카사파 역시 큰 형을 따라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천 명의 제자들 역시 모두 부처님에게 귀의하였습니다. 이로써, 부처님에게는 하루 아침에 천여 명의 제자가 생겼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출처] <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6회|작성자 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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