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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바다의 사람들
멀고도 가까운 물의 나라로 길을 나섰습니다. 새로운 길 위에서 가슴이 뜁니다.
“산수화를 펼쳐놓은 것 같은 이 비경, 세계 7대 자연경관.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이곳, 베트남의 ‘하롱베이’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비경들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이곳 하롱베이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외적을 막기 위해 여의주를 뿌린 곳이 이 섬들이라는 건데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아틀라스를 펼쳐볼까 합니다.”
베트남은 해안선의 길이(3260km)가 서울에서 베트남까지의 거리와 막 먹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나는 두 개의 큰 강, 칸강과 메콘강이 지나는 베트남은 강만해도 2,300여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보석 같은 호수(?)들까지 있습니다. 베트남은 어디서나 바다와 강, 호수가 만나는 물의 나라입니다. ‘피싱로드’는 그 물을 따라 이어집니다. 물을 따라서 물과 함께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려 합니다.”
바닷물과 비바람이 3억년에 걸쳐 만든 비경,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바닷길입니다. 배를 타고 3시간을 달려 첫 정류장에 닿았습니다. 이제부터 큰 배가 가지 않는 곳이라 작은 나룻배로 갈아타야 합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수상마을 반자는 말 그대로 물 위에 떠있는 마을입니다. [반자(BAN GIA)-하롱베이의 수상마을] 하롱베이를 3무의 바다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파도와 바닷냄새, 갈매기가 없는 바다라고 합니다.
“바다가 맞는지 모를 정도로 파도도 없고 고요합니다. 왜 파도가 없지? 바다인데...”
가까이에 있는 한 가족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이 ‘엉텅번’ 씨는 이곳에서 3대 째 살고 있습니다. 10평 남짓한 공간은 부부와 아이들 방으로 나뉘어 있구요, 밖에는 바다로 이어진 부엌과 살림살이가 갖춰져 있습니다. 배를 정박하는 주차장까지 있죠. 다만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이건데요, 그냥 보면 바닥 같은데요, 알고 보면 물고기 천연저장고입니다. 갓 잡은 고기를 저장해놨다가 시장에서 팔고 남는 건 먹는거죠. 숨어있는 보물창고라 할까요?
가장 큰 자랑거리란 하롱베이란 마당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 엉텅번 씨의 주업은 바다낚시입니다. 배를 따라가 보기로 했죠.
“드디어 물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일터인 바다까지는 집에서 30분. 저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노를 저어보겠다고 했는데요, 힘 좀 써봤는데요. 제가 봐도 신통치 않네요. 마을 사람들 눈엔 제가 얼마나 어설퍼 보일까요? 그래도 오늘만은 저도 어부입니다. 이곳에선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 간단한 도구만으로 바다낚시를 합니다. 제가 해보지 않을 수 없죠.
“진짜 초보적인 릴낚시인데요?
이렇게 하면 하루에 몇 마리 잡으세요?“
“이렇게 하루 종일 던지면 많이 잡아요.
작은 생선이라면 3~5킬로그램 정도 잡을 수 있어요.“
정말 그만큼이 가능할까요? 설마하는 마음에 소년과 함께 해보기로 했죠. 보이시나요? 능숙한 손놀림. 그리고 불과 몇 초 뒤, 물 속에 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뭔가 물었어요.
낚시줄이 풀린다. 풀린다.“
드디어 저에게도 소식이 왔습니다.
“오~ 잡았어요. 이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까로예요.”
보세요, 제가 낚은 까로입니다.
[까로-경골어류 통돔과에 속하는 어류]
이제 좀 더 먼 바다로 나가볼까요? 사계절 여름인 하롱베이 바다엔 오징어와 열대어종이 아주 풍부합니다. ‘물 반, 고기 반’이라 그물치기가 무섭게 잡힌다고 어부는 자랑했습니다.
“저기에 있는 그물 끝에 부표가 보이시죠?
지금 저기까지 그물을 내린 거예요.
이렇게 그물을 치게 되는군요.”
지금 100m 정도의 그물을 내리자마자 곧바로 걷어 올렸습니다. 과연 이렇게 해서 물고기를 얼마나 잡을 수 있을까요?
“어~ 있어요, 있어.”
한국에서 못 보던 물고기가 줄줄이 딸려 나옵니다. 손맛 제대로 보네요.
“신기해요, 신기해.
물고기 저기 또 있어요.
신기하다. 저기 또 있어요.”
쉴새없이 올라오는 물고기, 30여분 동안 잡은 게 이 정도입니다. 지금이 어부들에겐 가장 보람찬 순간이겠죠.
“하롱베이에서 제가 낚은 물고기입니다.”
보기만 해도 뿌듯하네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이것이면 충분하답니다.
뭍에서 텃밭에 채소를 다루듯, 여기선 갓 잡은 생선을 요리합니다.
“이빨이 되게 세더라고요. 아까 보니까.
저도 어머니 음식하시는 거 옆에서 지켜보고 그랬는데
우리 아들도 열심히 지켜보네요.
감사합니다?”
베트남 생선요리엔 마늘이 꼭 들어갑니다. 여기에 토마토와 향신료를 넣습니다. 주 재료는 역시 싱싱한 생선. 이제 익기만 기다리면 되겠죠? 드디어 베트남의 엄마표 밥상 완성입니다.
“야~ 이것이 여기서 잡은 걸로 요리한 음식입니다.”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밥상, 참 오랜만이네요.
“이 요리 이름이 뭐라고요?”
“깐 주어 너우 까(토마토 생선국)예요.”
베트남 생선 소스에 살짝 찍어먹으면 더 맛있다는데요. 제가 맛보겠습니다. 먼저 한 젓가락을 밥 위에 올려 놓구요,
“맛있어요, 맛있어.”
어떤 맛인지 궁금하시죠?
“맛은 병어 맛이에요. 약간 병어조림 같은 보들보들한 살이에요.”
세계문화유산 하롱베이기 키운 자연 맛이라서 더욱 특별합니다. 누군가에게 스쳐간 여행지였던 이 곳. 하지만 이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집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롱베이는 삶의 바다입니다. 가족의 삶을 지켜준 바다. 하롱베이를 떠나서 또 다른 바다를 만나러 갑니다.
하롱베이 남쪽 바닷가 마을 ‘남딘’을 향해 갑니다. 해안가 작은 마을답지 않게 상점들이 즐비한 이곳. 베트남 무역의 교두보였던 항구도시 남딘은 한국의 이순신장군에 비견되는 배트남 영웅 ‘쩐흥다오(해군의 아버지)’ 장군이 수 많은 외세를 물리쳤던 치열한 격전지였습니다. 몽골제국을 막아낸 베트남 해전의 역사적인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물의 나라 베트남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피싱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여기는 남딘의 특별한 마을입니다. 우리 마을은 조상 대대로 특별한 낚시 비법이 전해졌고 그 비법이 바로 ‘까캐오(베트남 전통 낚시 기구)’로 낚시하는 것예요.”
난생 처음보는 풍경이었습니다. 장대에 올라선 사람들이 축구를 합니다.
“까캐오로 공도 차고 계시네요.”
원래 저 장대의 까캐오는 낚시를 하는 기구인데요, 물때를 기다리는 어부들이 잠시 축구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까캐오는 신어보셔야 알 수 있어요.”
“제가 지금 신어볼 수 있는 거예요? 진짜요?”
한번 까캐오를 신어볼까요? 그런데 어떻게 신냐고요?
“일단 발에다가 고리를 끼는구나.”
먼저 종아리에 고리를 끼운 다움, 그 고리를 다시 막대에 겁니다. 고리 하나로 다리와 장대를 고정시키는 거죠. 그럼 제가 도전해볼까요?
“여기 계신 분들 다리는 다 얇으신가 봐요.
제 장딴지가 굵은 건가요?”
종아리 굵기가 문제였습니다. 한 눈에 비교되네요.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죠. 이제 올라서기만 하면 되는데요. 도저히 버틸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보란 듯 올라가는 아저씨.
“쉽지가 않네요.
일단 다리 굵기가 문제인 것 같아요.
한 번 타보고 싶다.”
다리가 굵어 슬픈 한국남자입니다. 그물을 들고 나선 어부들. 마침내 물때가 된 겁니다.
“그물을 가져가서 낚시 하시는 거예요.
물 위에서 서 있기도 쉽지 않은데
물 위에서 걸어 다니는 건 대단한 것 같아요.”
까캐오는 수심이 깊은 연안을 고려해 발명된 낚시도구입니다. 좀 더 먼 바다로 가기 위해 물에 강한 대나무 장대를 신고 올라 선거죠.
“저는 이미 물이 여기까지 닿는데 아직 발도 안 들어갔어요.
이래서 까캐오를 신는가 봐요.“
까캐오 낚시의 필수품, 넓은 그물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 까캐오 낚시는 배가 없어서 먼 바다로 가지 못하는 가난한 어부들의 낚시법인데요, 그물과 장대가 배를 대신한 겁니다. 3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베트남의 전통 낚시법입니다.
그물을 넓게 펼친 뒤 고기를 몰아 넣어야 하는데요. 어부들이 까캐오를 신고 거센 파도에 맞서 몸을 지탱했습니다. 과연 고기가 잡힐까 의심하던 순간, 보이시죠? 물고기입니다. 주로 멸치나 새우 등을 잡는데요. 까캐오는 오로지 물때에 맞춰 하루 두 번 짧은 시간만 가능합니다. 점점 물이 빠지니 이젠 나갈 때입니다.
“쉬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잡으셨어요?”
까캐오를 신어보지 못해서 참 아쉽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유쾌한 어부들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오늘 까캐오로 잡은 수확물입니다. 언젠간 누군가의 밥상에 오르겠죠.
가장 오랫동안 까캐오 낚시를 해온 어부의 집으로 따라갔습니다.
“오늘 이거 잡은 거예요?
야~ 멸치같이 생겼어요.”
네, 남딘 앞바다의 멸치였습니다.
“까캐오로 잡으신거죠?”
“네, 까캐오를 사용해서 이 물고기들을 잡았어요.”
“물고기 이룸이 뭐예요?”
“까쫑(경골어류 멸치과에 속하는 어류)이에요.”
“근데 여기 삿갓에도 물고기가 있어요.
여기 보이시나요? 물고기를 잡다가 붙었어요.”
까캐오 낚시를 시작한지도 벌써 30년이 흐르고 청년이었던 어부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일이 끝나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어부는 까캐오를 다듬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한 거죠.
“옛날에 조상들이 까캐오를 만들던 방식 그대로 지금도 만들고 있어요.
조상들이 저에게 물려준 것처럼 저도 후대에 까캐오를 물려주고 싶어요.”
“계속해서 이렇게 대를 이어가는 군요.”
어부의 바램은 늦둥이 아들에게 까캐오를 물려주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까캐오를 배웠다는 아들.
“우리 어린 친구는 얼마나 탄 거예요?”
“5년 넘게 탔어요.”
갸날픈 종아리로 2m 장대에 설 수 있을지 슬그머니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까캐오를 신고 제법 능숙하게 걷지 않나요? 소년은 이 단단한 발로 언젠간 남딘 바다의 어부가 되겠죠? 지금의 아버지의 모습처럼요.
“대단한데요? 쉽지 않을 텐데요.”
이렇게 까캐오 낚시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남딘의 오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어부의 아내가 상을 내옵니다. 방금 잡은 생선으로 차린 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멸치는 우리 동네 특산품이에요.
오늘 바다에서 잡은 것으로 요리했어요.
두 가지 요리를 만들었어요.
하나는 시래기로 다른 하나는 토마토로 만들었어요.”
“음~ 고소해요, 고소해
멸치 시래깃국 맛이에요. 그리고 다른 것은 약간 얼큰하고요.”
열심히 일해서 가족과 나누는 기쁨. 어부의 3대가 행복한 시간입니다.
“제가 줘서 긴장했어요.
역시 엄마가 먹여줘야 하나 봐요.
맛있어?
이 어르신은 지금 식사가 목적이 아니에요.
계속 술을 주시는데 어떻게 해요?”
“하나 둘 셋 건배!”
바다 일도 마쳤고 손님도 왔으니 어부는 술 한 잔을 잊지 않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무조건 단숨에 비워야 한다네요.
“이 전통주 이름이 뭐예요?”
“르어우 넵(찹쌀로 만든 전통주)!”
“이거 집에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베트남에서 제일 맛있는 찹쌀로 만든 거예요.”
“여기 베트남 여행 오실 때 혹시 소주 안 가져 오셨으면 어거 ‘르어우 넵’ 드시면 될 것 같아요. 맛이 소주랑 거의 똑 같아요. 백주와 소주 중간인 것 같네요.”
저도 한 잔 드려야겠죠?
“한 잔 더 드실래요?”
베트남 사람들은 잔을 채우는 건 술이 아니라 정이라고 말합니다. ‘건강하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지요.
“하나 두 셋 건배!”
바다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위해, 모든 어부들을 위해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해 ‘건배’입니다.
“맛 있습니다.”
베트남 피싱로드, 이 길을 따라 또 다른 이들을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