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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성과 미의 여신 비너스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혁신적인 화풍(畵風)을 선보였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부분도(좌우반전), 1485~86 / 보티첼리, <석류 마돈나>, 부분도, 1487 / 보티첼리, <젊은 여인의 초상화>, 부분도, c.1480~85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 모델은 대부분이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다. 화가는 평생 그녀를 짝사랑했다. 시모네타가 죽음 뒤에도 그녀를 간절히 그리워하며 초상화 등 미술 작품으로 사모하는 마음을 달랬다.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한 비너스와 <석류의 마돈나(Madonna of the Pomegranate)>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역시, 모델이 동일 인물인 시모네티로 여겨지고 있다.
그가 목판에 템페라로 완성한 <젊은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Woman)>를 감상해 보자. 독일의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는 이 작품을 두고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이상적인 초상화라고 최초로 제안했다.
덕분에 이 작품에는 <이상화된 여인의 초상, 시모네타 베스푸치 님프의 초상(Idealised Portrait of a Lady, 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 as Nymph)>이란 제목이 따라다닌다.
보티첼리의 <젊은 여인의 초상화 또는 시모네타의 초상화>에서 모델의 머리 장식과 목 장식품 '카메오 목걸이(cameo necklace)' 세부도
여인의 머리 상단에는 브로치와 흩날리는 깃털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에는 수많은 진주알이 정교하게 박혀있다. 이처럼 보티첼리가 그림의 선(line)을 장식적으로 세밀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릴 적 피렌체에서 작업장에서 금세공사(goldsmith)의 지도를 받으며 금속 세공품들을 다루는 훈련을 받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화면 중앙에 배치된 아기 예수가 좌우 천사들에 의해 성모에게 바쳐지고 있다. 얇은 베일 등 화려한 머리장식과 넓게 드러난 이마 묘사는 필리포 리피의 성모와 비슷하지만, 성모의 머리 위 후광(halo)은 금빛 문양을 새겨 넣어 뚜렷하게 차별화했다.
성모는 아기를 받아 들기는 했으나 역시 시선은 아래를 향한 체 예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 감상자를 바라보는 날개 달린 천사의 포즈도 스승의 천사와 닮았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공방, <젊은 여성의 프로필 초상화, 아마도 시모네타>, 1480년대 중반
스승 필리포 리피처럼, 보티첼리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화가로 유명하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공방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의 프로필 초상화, 아마도 시모네타(Profile portrait of a young woman, probably Simonetta)>를 감상해 보자.
이 초상화의 실제 모델은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미인이며 보티첼리가 짝사랑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다. 그녀의 머리 장식과 고급스러운 의상에서 예상되듯 시모네타는 항구 도시 제노바의 귀족 출신이자,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의 측근이었던 마르코 베스푸치(Marco Vespucci)의 부인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공방, <젊은 여성의 프로필 초상화, 아마도 시모네타>, 부분도, 1480년대 중반
시모네타는 보티첼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여성 캐릭터에게 영감을 주었고, 수많은 화가들이 그녀를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또한 그녀는 피렌체 최고의 미인으로 칭송받았으며 예술가들과 인문주의자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시모네타의 달콤한 눈에서 불꽃처럼 반짝이는 사랑의 영혼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 르네상스 인문 주의자, 이탈리아 시인 / 안젤로 폴리치아노(Angelo Poliziano)
피에로 디 코시모( Piero di Cosimo),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화(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 c. 1485~1490, 템페라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디 코시모(Piero di Cosimo)의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화(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를 감상해 보자. 고대 주화 속 인물처럼 제작한 시모네타의 옆모습 초상이다. 그녀가 사망한 지 14년 전후에 그려진 초상화이기에 실제 주인공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배경에는 구름과 나무들이 등장한다. 중앙의 짙은 구름이 옆얼굴과 만나는 구성은 그녀의 윤곽선과 깨끗한 안색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당시 유행을 따른 헤어 스타일인 듯 이마는 넓고, 공들여 땋은 머리 위에 진주와 리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시모네타는 제노바 명문 집안 출신으로 15살 때 피렌체에서 권력과 재력을 갖춘 가문인 베스푸치 집안(Vespucci family)과 결혼하기 위해 피렌체로 왔다. 그리고 그녀는 18살에 메디치 가문의 측근이었던 마르코 베스푸치(Marco Vespucci)와 결혼한다.
시모네타의 아름다움은 피렌체의 지배자 로렌초 메디치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 메디치뿐만 아니라 보티첼리까지 사로잡았다. 베스푸치 가문과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으며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보티첼리는 이 무렵 시모네타를 만나게 된다.
붉은빛이 도는 금발 곱슬 머리카락과 눈부시게 흰 피부 그리고 매력적인 몸매의 시모네타. 친절한 말과 행동까지 겸비한 피렌체 최고의 미인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처음 본 보티첼리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화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만 있었을 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한낱 그림쟁이였다.
엘리너 포르테스쿠- 브릭데일(Eleanor Fortescue-Brickdale), <보티첼리의 작업실: 줄리아노와 로렌조 데 메디치가 제안한 시모네타의 첫 방문>, 1922, 유화
엘리너 포르테스쿠- 브릭데일(Eleanor Fortescue-Brickdale)의 1922년 유화 <보티첼리의 작업실: 줄리아노와 로렌조 데 메디치가 제안한 시모네타의 첫 방문(Botticelli's studio: The first visit of Simonetta presented by Giulio and Lorenzo de Medici)>를 감상해 보자.
왼쪽부터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o de' Medici),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 로렌조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가 등장하고 있다.
보티첼리, <라 벨라 시모네타(La bella Simonetta)>, c. 1480-1485
보티첼리가 그린 또 하나의 아름다운 초상화 <라 벨라 시모네타(La bella Simonetta)>를 감상해 보자.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고 예술인들을 존중했던 시모네타. 그리고 보티첼리의 예술 세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그녀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난 당신 (예술)의 비너스가 될 것이오.”
그녀가 보티첼리에게 보인 특별한 관심은 그녀를 간절히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모네타를 남몰래 연모하면서도 자신의 연정을 고백하지 못했다.
조반니 시뇨리니, <팔리오 데이 코치(Palio dei cocchi) 또는 전차 경주>, 1844,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
1475년 산타크로체 광장에서 열린 말 경주대회에서 '미의 여왕'으로 선정된 그녀를 향해 군중들은 '라 벨라 시모네타(La bella Simonetta)' 즉 '아름다운 시모네타'를 연호했다.
조반니 시뇨리니(giovanni signorini)의 <팔리오 데이 코치(Palio dei cocchi) 또는 전차 경주>를 보자. 19세기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Piazza Santa Maria Novella in Florence)에서 열린 로마시대 전차와 같은 마차를 타고 경주하는 모습과 주변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보티첼리, <팔라스 아테나와 켄타우로스>, c. 1482~1488 / 1434~1737년까지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의 창업자 코시모 데 메디치와 메디치 가문 휘장(badge)
제노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시모네타는 피렌체 유력 가문과 결혼하기 위해 15세 때 피렌체로 온다. 18세가 된 그녀는 메디치 가문의 측근이었던 마르코 베스푸치(Marco Vespucci)와 결혼한다.
보티첼리의 <팔라스 아테나와 켄타우로스(Pallas Athene & Centaur) >를 감상해 보자. 한 여성이 오른손에 화려한 미늘창(일명 도끼창)을 들고 측은해 보이는 켄타우로스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다.
팔라스 아테나(Pallas Athene)는 로마의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다. 아테나의 흰 드레스에 새겨진 세 개의 맞물린 고리(다이아몬드 반지를 연결한) 문양은 메디치 가문의 문장(symbol of the Medici family)이다.
보티첼리, <팔라스와 켄타우로스(Pallas and the Centaur)>, 부분도, c. 1482~88 / 보티첼리, <프리마베라(Primavera)>, 부분도, c. 1482
그녀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머리와 상체에 두르고, 수호자의 상징이기도 한 미늘창을 들고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아테나의 모델이었던 신부 시모네타는 20대 초반 신혼생활 무렵, 당시 젊은 여성들이 자주 걸리는 질병에 감염된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Primavera)>에 등장한 모델이 시모네타로 추정되고 있는 화관을 쓴 클로리스(Chloris)를 보자. 콜로리스는 '창백한 녹색'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클로로스(χλωρός)에서 유래했다.
빈혈로 인해 얼굴이 창백해지고 쉽게 피로감에 빠지는 질병인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던 그녀는 22살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다. 화가 보티첼리에게 많은 영감을 부여했던 뮤즈(Muse)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시모네타를 애도하며 그녀를 모델로 다양한 헌정화를 그렸다.
보티첼리, <석류의 마돈나(Madonna of the Pomegranate, Madonna della Melagrana)>, c. 1487, 템페라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Birth of Venus)’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들을 시모네타에게서 영감을 받았거나 그녀를 모델로 삼아 그린 작품들이다.
그중 하나인 <석류의 마돈나(Madonna of the Pomegranate>를 감상해 보자. 화면 중앙에 성모 마리아가 앉아있고 그 양쪽에 세명의 천사들이 대칭으로 배치되어있다.
성모 마리아 무릎에 앉아 있는 아기 예수가 왼손에 한 입 베어 먹은 석류를 쥐고 있다. '시거나 쓴 석류'는 '인간의 타락과 예수의 수난'을 의미한다.
또한 '석류의 붉은 씨'는 인간을 위해 예수가 흘린 피 즉, '보혈(寶血)'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기 예수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보티첼리는 석류 상단, 왕관 모양의 껍질 도상으로 아기 예수의 존귀함을 시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