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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서로를 지탱하는 부부의 마음의 균형
11. 여성의 자립과 남성의 성숙도
●11-1. 조건부 아내의 외출
찻집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주부들의 수다를, 들을 듯 말 듯 듣고 있었다. “우리 남편은 말이야, 내가 뭘 하든 자유라고는 하지만, 자기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집에 들어와 있으래.” ‘남편족’이라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은 대사를 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마치 어디선가 미리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부인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든 취미 활동이든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에 따라 생기는 불편이나 제약까지 감수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건을 붙여 아내의 외출을 허락한다는 것, 자신은 어떤 불편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참으로 자기중심적인 남자다. 도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평생을 바쳐 준다면,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짐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남성이라는 존재는 역시 자라온 환경이 다른 것 같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책에 대해서는 전에 이야기했었지요.
여성은 입으로는 자유와 평등, 자립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젠가 든든한 왕자님이 나타나 자신을 아내로 맞아 편하게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결국 자립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깊이 공감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대등하게 살고자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경제적으로나마 조금이라도 남편을 돕기 위해 일을 하려고 하면, 남편은 이렇게 말해요. "내 수입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냐" 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또다시 일본의 ‘남편족’은 누구나 비슷한 말을 하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내 수입이 불만이냐?” 아내를 일하게 하는 것은 남자의 체면이 걸린 문제라는 뜻일 것이다. 일본의 신데렐라들은 자립하여 신데렐라적인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자립을 허락하지 않는 남편의 체면에 먼저 가로막히고 만다. 일본의 신데렐라는 미국의 신데렐라와는 처지가 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저자 코렛 다울링은, 무엇을 계기로 자신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던 남성 의존 욕구를 깨닫게 되었는지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그것은 동거하던 남자의 이런 말 때문이었다. “당신은 언제까지 태평하게 하찮은 주부 일만 하면서, 모든 수입을 나한테만 맡길 생각인가? 언제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올 건가?” 일본 남성이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말했다면, ‘히모(紐-기둥서방)’라고 불리며 상처받고 말 것이 분명하다.
●11-2. 남성보다 한 발 앞서 나아가는 여성들
미국의 신데렐라들의 입장은 꽤 엄격하네요. 신데렐라로 있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일본의 신데렐라는, 신데렐라로 남아 남편의 경제력에 보호받는 편이 더 편합니다. “집에 있어라”라는 남편의 요구를 잘 이용하면, 따뜻하게 의존하며 평생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에 대해 평생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지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문제의식을 가진 여성이 자립을 원할 때, 더 엄격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은 오히려 일본 여성 쪽이 아닐까요. 자립이라는 것은 단지 경제적 자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신적 자립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성들은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립하여, 자신의 발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젊은 남성들이 이렇게 말한다면 곤란합니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은 밝고 상냥하며, 말없이 나를 따라와 주는 귀여운 사람이야.”
남성에게 호감을 얻으려 한다면, 이런 조건에서는 자립하기 어려운 것 아닙니까. 여성이 자립하고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그런 성숙한 여성에게서 매력을 느껴 줄 만큼 남성도 성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아니, 남성들이 아무리 ‘귀여운 여자’를 원하든 말든, 여성들은 이미 한 발 앞서 성장하기 시작해 버렸습니다.
여성 쪽에서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결혼하지 않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결국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 문득 뒤돌아보니 아내가 따라오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한 걸음, 두 걸음 앞서 나가 버려, 이제는 그 거리가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정도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11-3. 시소의 균형이 무너질 때
인간관계는 시소 게임과 같은 면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누군가에게 의지당하면 마치 믿음직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게 되고, 반대로 보호자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과 접하고 있으면 한없이 응석 부리고 싶은 기분이 들어 버립니다. 어느 쪽이든,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상대를 대하더라도 늘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인간적으로 안정되고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가족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은 이 시소 관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지인 중에 남편과 자녀에게 끝까지 헌신하는 타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보살피고 자신을 희생했는데, 그에 비해 보답은 적어, 참으로 손해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헌신하면 할수록 남편과 아이들의 요구는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거만해지는 모습이 겉에서 보기에도 분명했습니다. 결국 견디지 못해 병이 나고, 나중에는 이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 쪽 시소가 너무 아래로 내려가 균형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를 버릇없게 만든 아내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더 일찍, 파국에 이르기 전에 “저는 거기까지는 못 합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싫습니다”라고 당연한 자기주장을 했어야 했습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도취입니다. 희생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가족이 잘 지내기 위한 요령은, 누구도 지나치게 자신을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또 상대가 자신을 희생해야 할 만큼의 요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가사와 일을 병행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간단합니다. 무리한 것은 “무리입니다”라고 말하고, 가족에게 협력을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2. 더 많은 말, 더 많은 사랑
●12-1. 마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일본인의 국제 감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 내가 항상 꺼내는 소재이기도 하고, 다른 책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 그 이야기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뜻에서, 여기서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헤어지고 싶어.” 그저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했을 뿐인데, 미국인과 국제결혼을 한 그 일본 여성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이라는 말과 함께 결국 이혼을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라고 하소연해도 이미 때는 늦은 뒤였습니다.
헤어지고 싶다고 말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몇 년이나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가볍게 “헤어지고 싶다”고 말해 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일본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헤어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것은, 실제로 헤어지고 싶다는 의사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헤어지고 싶다”라는 일본어에는 실로 다양한 뉘앙스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좀 더 제대로 하지 않으면 헤어지게 될 거야”라는 경고의 의미일 수도 있고, “헤어지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아이가 있으니 그럴 수는 없지”라는 체념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헤어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는 너무 외로우니까, 더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죽고 싶다”라는 말 역시, 실제로 죽을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도 우리는 쉽게 입에 올립니다. 일본인의 언어 사용 방식은 서양인과 분명히 다릅니다. 말이 말 그대로의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는 물질의 시대에서 마음의 시대로 바뀌었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뉘앙스를 가진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선물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사물에 마음을 담기도 하고, ‘이심전심’이라 하여 말을 사용하지 않고 전하는 문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큰 화제가 되었던 미국 영화 '보통 사람들'은 원작 역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매우 잘 그려졌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그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남편은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아내도 “나도 사랑해요”라고 대답합니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중년 부부인데, 아마도 매일 이런 식일 것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 나누는 대화도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해?” “그만해요.” “말해 줘, 알고 싶어.”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변한 건 당신 아닌가요?" 그리고 아내가 집을 나간 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나도 너를 사랑한다.”
일본의 부부나 부모와 자식이, 말로써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어딘가 간지럽고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12-2. 말로 표현하지 않는 문화
말로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기독교 문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의 서두는 우리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말씀은 곧 하나님이었다.” 기독교의 신은 말에 의해 우주를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벨탑 건설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마음이 통하지 않게 되어 더 이상 바벨탑 건설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추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적 배경과 더불어, 다양한 민족이 모여 있고 공통된 이해 기반이 적다는 점 역시,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더욱 키웠을 것입니다.
즉, 말로 표현된 것은 존재하고,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리어 왕의 코델리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리어 왕은 격노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라고. 서구의 학교에서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자기표현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로 명확하게 자기표현과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면 매우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샤이니스(『Shyness』)라는,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쓴 책이 미국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인들 가운데에도 수줍음을 타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수줍음은 “가장 심각한 신체적 장애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중대한 정신적 장애”이며, 이를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매우 불리한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스탠퍼드 대학에는 ‘샤이니스 클리닉’이 있어, 극도로 내성적인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인의 완고한 수줍음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고 하니,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이 클리닉의 환자가 될 자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느 미국인 상담가에게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언어에 의한 자기표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표현된 말과 마음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잠시 자세를 가다듬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간극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인간의 마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릿한 부분이야말로, 언어로 표현된 부분보다 인간에게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어 중심 사회에서는 그것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오히려, 말로 표현된 부분만이 자신의 마음이라고 믿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버려진 부분이 반란을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미국에서 정신분석이 크게 유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석이란, 마음의 모호한 부분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어떻게든 의식화하고 언어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미국에서 유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일본에서도 유행하는데, 정신분석만큼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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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더 많은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우리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제아미(世阿弥)의 풍자화전(風姿花伝)은 노(能)의 비의를 전함과 동시에 일본 문화의 정수를 말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텐데, 요컨대 “숨기면 꽃이 된다”, 즉 모든 것을다 말해 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世阿弥(1363~1443)-일본 전통 예술 노(能)를 완성한 인물로, 배우이자 극작가, 이론가]
일본의 국제화란, 이처럼 정면으로 자기표현 방식이 다른 외국과 우리가 부딪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인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가르치는 방식이나 배우는 방식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자기표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심전심은 훌륭한 일본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인이 단일 민족이고 공통된 문화 기반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10년만 달라도 세대 간의 환경은 물론, 그에 따른 가치관도 크게 달라집니다. 기계에 의한 생활의 합리화로 인간 간의 접촉도 줄어들었습니다.
사회 구조는 복잡해졌고,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말 없이 이심전심으로 과연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요. 부부 사이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직장에서—전해졌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경우가 지금 매우 많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단절, 이혼, 사회 전체의 연대감 상실. “더 많은 말을”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말로만 마음을 전해야 하는 서구에도 큰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본의 훌륭한 문화를 지켜 나가면서도, 우리는 이제 언어를 통한 자기표현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일본인이 자기표현에 소극적인 것은 집단주의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일본인의 집단성을 반드시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서구의 외국어 학교에 가 보면, 학생들이 앞다투어 교사에게 질문을 퍼붓습니다. 마치 개인 교습을 받는 것처럼 절제 없는 모습이어서, 보고 있으면 수업의 정상적인 진행이 방해받는 것 같아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로만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라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본인이 집단 속에서 거의 발언하지 않는 것은 수줍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단 속의 자신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집단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배려, 조화를 깨지 않으려는 태도—이것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도 많습니다. 집단 속에서 어떻게 개성을 발휘할 것인가. 과거 전쟁 시기처럼 국가적인 구호가 내려지면 또다시 일제히 행동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구호가 없으면 인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런던에서 막 귀국한 아들이 일본 초등학교에서 가장 당황했던 것은, 인사 대신 외치는 “기립, 경례, 착석!”이라는 구호였습니다.
13. 부부의 나이테
●13-1. 내 곁의 그 남자는…
일은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놀 시간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참석하는 여러 모임도 대부분 남자들뿐인데, 젊고 멋진 남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긴자의 바에도 가끔 가지만, 이것 역시 일과 관련된 자리입니다.
게다가 바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옷차림이나 화장법, 교양, 손님을 대하는 방식까지, 남성들은 잘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까지 상상력을 발휘해 관찰하게 되니, 마담들 입장에서는 꽤 얄미운 여성 손님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기색은 전혀 내색하지 않지만요. 그쪽에서도 나를 보며 이런 말을 합니다. “저기요, 왜 그런 분과 함께 계세요? 더 괜찮은 남자도 있을 텐데요.” ‘그런 분’이라고 불린 사람은,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잡지 편집자였습니다.
봄방학 때 아들을 데리고 하코네로 드라이브를 갔을 때는, 완전히 일을 떠난 순수한 휴식이어서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아시노코 호숫가에서 손님을 기다리듯 서 있던 헬리콥터를, 태어나서 처음 타 보았습니다. 선회할 때는, 발밑에 보이던 호수가 갑자기 머리 위로 덮쳐오는 듯해, 흥분해서 까르르 웃으며 지상에 내려왔는데, 그 순간. “작가 기무라 씨 맞으시죠?”
라고 말을 건 사람은 헬리콥터 유도 담당 직원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아들도 부끄러워서 나를 상대해 주지 않게 되어, 가미카와 꽃놀이에는 남편과 단둘이 가게 되었습니다. 옥수수를 베어 물며 걷고 있는데, 스쳐 지나간 세 명의 주부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신경이 쓰여 뒤돌아보니, 그쪽도 셋이 동시에 뒤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잡지사 기자가. 이닌게게 다행이인 셈이다. “예전에는 아이가 졸라서 산책을 나갔었는데…” “결국 이렇게 돼 버렸네.” 여기서 ‘이렇게’란, 내 경우에는 함께 걷는 남자가 다름 아닌 남편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풀코스 요리를 먹는다고 할 때,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한 시간 안에는 끝나지요. 처음에는 전채요리, 그다음 수프, 생선 요리, 그 사이에 잠깐 숨 돌리라는 듯 리큐어에 절인 셔벗이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샐러드도 나오고, 빵도 제공됩니다. 마지막은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실로 절묘한 타이밍으로 차례차례 제공됩니다. 한 접시가 놓이고, 테이블의 사람들이 대체로 다 먹을 즈음을 맞춰 빈 접시를 치우고, 곧바로 다음 요리가 나옵니다. 그 효율성과 요령의 좋음. 그런데 이것은 일본 레스토랑에서만 볼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13-2. 식사와 대화를 즐기는 어른의 시간
유럽에서는 레스토랑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호텔 레스토랑에서 한두 번 저녁 식사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받고 나서,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올 때까지 꽤 오래 기다리게 되더라도, “무시당하고 있는 건가”, “일본인이라고 얕보는 건가” 하고 피해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하면서 어느 테이블이나 꽤 시간을 들여 메뉴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웨이터를 불러 요리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하면서요. 드디어 디너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빨리 한 접시를 다 먹어도, 일본 레스토랑처럼 요리가 계속해서 나오지는 않습니다.
코스는 아주 천천히 진행됩니다. 다음 요리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꽤 길죠. 얼마 전 파리에 가서 딸과 둘이 교외의 샤토 호텔에서 휴일을 보냈습니다. 디너에서 딸은 풀코스를 주문했습니다. 살이 찔까 걱정되는 나는 칼로리가 낮은 요리 몇 가지만 골라 간단히 끝내려 했는데, 웨이터가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풀코스는 ‘롱 메뉴’에 속하니, 두 분이 함께 드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아니, 사실은 속으로는 기쁘게 풀코스를 함께 먹게 된 것을 반기며—우리의 디너가 시작되었습니다. ‘롱 메뉴’라는 뜻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곳의 프랑스 요리는 이른바 누벨 퀴진. 일본의 가이세키 요리처럼, 소량씩을 매우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담아내며, 가지 수가 많습니다. 그것이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하나씩 나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롱 메뉴’인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걸렸을 것 같습니까. 세 시간입니다. 저녁 7시에 시작해 호텔 방으로 돌아온 것은 10시였습니다. 실제로 먹는 시간이 그렇게 길 리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요리와 요리 사이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즐거운 대화입니다.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니, 젊은 남녀—아마 약혼자일까요. 중년 남녀—이쪽은 분명 부부겠지요. 나이 든 여성 세 명—노년의 친구들일까요. 또 비즈니스맨처럼 보이는 다섯, 여섯 명의 모임 등, 어느 테이블이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에 대한 문화의 차이를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일본인은 어쩌면 ‘먹는 것’ 자체에만 너무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껏해야 그릇에 신경을 쓰는 정도입니다. 학교 급식 같은 경우는 ‘그냥 때우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포크와 숟가락을 합친 도구를 써서 마치 먹이를 주듯 먹이면 된다는 발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의 식사에서 음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즐거운 대화’입니다. 마시고, 맛보고, 그리고 이야기하는 세 시간. 그래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만약 아직 미혼이라면, 당신과 당신의 연인은 즐겁고 품위 있게 세 시간을 계속 대화하며 서로를 지루하게 하지 않을 내용이 있습니까.
그 자리의 분위기에 맞는 화제를 계속해서 꺼낼 수 있습니까. 상대의 말을 받아 적절히 응대할 재치가 있습니까. 세 시간이나 되면, 겉모습은 금방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만약 부부라면, 이 세 시간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일본도 서구처럼 부부가 함께 행동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들 하는데, 어떠십니까. 자신 있으신가요?
14. 여자가 선택하는 여자의 인생
●14-1. 결국 자신의 선택은 자신의 책임
한동안 일본에 살면서 일본 사회의 구조에 밝은 영국인에게, 몹시 부러움을 산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에는 맞선이라는 사회 시스템이 있어서 좋네요.” 맞선이 과연 사회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제쳐두고, 부모나 친척, 상사나 선배, 혹은 반쯤 전문화된 중매쟁이가 결혼 적령기의 남녀에게 이런저런 좋은 인연을 권하는 풍습은, 일본에 예부터 있었습니다.
그것을 외국인들이 매우 부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서구에는 확실히 맞선이라는 형태의 결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상대를 찾을까요?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답은 “친구의 파티에서 소개받아서”라는 것입니다. 과연 파티 문화가 활발한 이유가 있지요.
중년층은 중년층대로 부부 단위로 초대하고 초대받는 사교 파티를 벌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배우자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파티에 참석합니다. 친구의 파티에서 소개받은 초면의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친구를 서로 소개해 주기 때문에, 기회는 점점 넓게 퍼져 나가 어디선가 결혼 상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서구인이라 해도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은 있습니다. 파티에 거의 초대받지 못하고, 가끔 초대받더라도 수줍고 내성적이라 적극적으로 이성과 사귀지 못하는 사람은, 서구 사회에서는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입니다. 일본처럼 부모나 상사가 걱정해 주는 일도 없습니다. 결혼 상대는 스스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맞선에 대해 부러운 한숨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결혼을 생각하던 시대는 민주주의나 자유주의가 젊은이들을 물들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맞선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연애결혼이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역시 초조해졌습니다. 지금처럼 “결혼하지 않는 여성”, “싱글 우먼”, “미혼모” 같은 존재가 주목받던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사회 전반에 결혼하는 것이야말로 여자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큰 사회적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두 번 정도는, 내키지 않으면서도 맞선 비슷한 것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남편과는 연애 비슷한 만남이었습니다. 맞선이든 연애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겠지요.
서구의 파티도 생각해 보면, 스스로 연출하는 불특정 다수와의 맞선 자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재산가 집안의 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결혼 상대를 어머니께서 골라주실 거예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거든요.”
대단한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그녀 나름대로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신중함이나 인간 불신을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맡겨진 ‘어머니’도 열심히 사윗감을 고르겠지만, 절대로 틀림없는 상대를 고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잘되면 횡재지만, 그 결혼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패라고 느꼈을 때, 남에게 맡긴 사람은 철저하게 부모나 중매인을 탓하겠지요. 책임을 그들에게 돌릴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상대라면, 스스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겠지요.
●14-2. 여성이 남성을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어
이혼이나 불화한 부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결혼을 한 자신에게 책임을 느끼는 여성이 적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언제나 상대가 나쁘다, 운이 나쁘다—그렇게 말합니다. “여성을 보호하는 모임” 같은 것이 그저 도피처를 마련해 주는 발상에 머문다면 곤란합니다. 먼저 자신의 책임을 돌아보는 데서부터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맞선이냐 연애냐, 만남의 형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각오야말로 중요합니다. 지금으로부터 4, 5년 전, 한 여성 평론가와 이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불행한 결혼을 한 여성이 불쌍하다고들 하지만, 그런 남자와 결혼한 책임이 있는 거야.” 라고 제가 말하자, “그런 말 해봤자 소용없어.” 라고 단호하게 눌러버렸습니다.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갈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범죄에도 피해자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가 나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상대와 관계를 맺게 된 미성숙함, 약점, 판단의 오류 등 공통된 특징을 연구하려는 학문입니다.
『나는 왜 날지 못하는가』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쓴 작가들도 결국은 그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썼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응시한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문제의 소재를 알게 됩니다. 알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자립도 자유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길러졌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요. 언제까지나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가”만을 따지는 시대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깨닫는 것은, 여성이 이만큼 발전해 온 것에 비해 남성은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는 그 불균형입니다.
여대생이나 여고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녀들의 대부분이 결혼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들의 70%는 “앞으로의 여성은 결혼만으로는 부족해, 제대로 해보라”고 격려해 주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여전히 “여자는 역시 시집가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완고하게 믿고 있어서, 이런저런 일로 충돌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평등을 말해 왔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남성의 우위성을 인정해 왔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남성이 가진 권리가 모두 훌륭한 것으로 보였고, “그것을 우리에게도 달라, 우리도 동등하게 끼워 달라, 우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피해자 의식에 기반한 발언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어딘가 선진국에 대한 개발도상국의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문득 생각해 봅니다. 남성이 우월감에 안주하고 있는 사이, 어쩌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면에서는 여성이 따라잡고 오히려 앞서 나가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여성이 남성을 이끄는 역할을 맡아, 그들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주도록 사고를 전환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요.
15. 자립과 로맨스 욕망은 인생의 두 바퀴
●15-1. 가족의 사랑에 지탱된 여성의 자립
로맨스 소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빠져들게 됩니다. 그 쾌감에 이끌려 계속해서 읽어 나가면서, 현대의 젊은 여성들은 어쩌면 어떤 종류의 거리낌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여성의 삶의 방식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치가 요구되는 이때, 멋진 왕자님과 반드시 맺어지는 로맨스 소설을 집어 드는 것은, 자신의 ‘신데렐라 욕망’이 드러나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의식의 혁명이 가장 앞서 있다는 미국, 여성해방운동이 가장 먼저 활발하게 전개된 그 미국에서도 로맨스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읽히고 있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일까요. 이것은 옛날식 남성 의존 욕망으로의 후퇴일까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눈부시게 진전될수록, 여성들이 현실의 엄혹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왕자님의 도움 없이, 오로지 혼자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들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결혼의 행복을 바란다 해서 무엇이 이상할 것이 있겠습니까. 애초에 자립이라는 구호 아래, 여성은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자연스러운 착각이었습니다.
여성해방운동의 지도자 베티 프리던 여사조차도 중간에 그것을 깨닫고 방향을 수정했던 것이겠지요. “혼자 살아가는 공허함.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보고, 앞으로는 남성과 협력하여 불합리에 맞서 함께 싸웁시다.” 남성이 사회에서 활약할 때는 언제나 아내가 있었고, 아이들이 그를 지탱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자립할 때도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렇게 자명한 사실을, 여성들은 이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의 자립이란,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현대의 여성들이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는 것은, 신데렐라 욕망으로의 후퇴가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자립 의지가 높아지고 성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든 현실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을 벗어난 꿈같은 세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로맨스 소설은 마음을 해방시켜 줍니다. 재미있는 것을 솔직하게 재미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고집이야말로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까지 억지로 버틸 필요는 없어요. 좀 더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도 괜찮아요.”
●15-2. 생활 감각과 로맨스
로맨스의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하여, 로맨틱한 세계에 흠뻑 빠지는 것. 그것을 도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현대 여성들이 현실 사회에서는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로맨스 소설은 티타임의 휴식 같은 존재입니다. 누구든지 계속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남성들도 시대소설이나 액션물을 통해 자신의 무력감을 잊고, 다른 세계에서 잠시 노닐지 않습니까. 로맨스 세계에 잠시 빠져드는 것을, 무엇이 그리 부끄러울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왕자님의 등장을 꿈꾼다 해도, 그것은 매우 인간적인 일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만, 그는 잠자리에 들 때 이불 속에 가지고 들어가는 책이 로맨스 소설이라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재미있고 좋아요. 반드시 해피엔딩이거든요. 읽어본 적 없어요? 그럼 다음에 다 읽은 책을 빌려드릴게요.”
『사랑은 만남의 시작부터』의 여주인공 샤리는 대부호 랭커스터 가문의 후처가 데려온 딸이지만, 할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집을 뛰쳐나와 대학에 다니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오빠로만 여겨 왔던 랭커스터 가문의 장남 위트를, 혈연관계가 없는 이성으로 의식하게 되고, 이윽고…
샤리와 위트 사이의 남녀 간 갈등뿐만 아니라, 미국 남부에 있을 법한 가족 간의 유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작가 자넷 데일리 는 미국 각 주를 취재하여, 각 지역의 풍토와 관습을 면밀히 조사한 뒤 작품을 쓴다고 합니다.
그러한 자료에 뒷받침된 묘사—예를 들어 이 작품의 도입부에 나오는 하이라이트 게임 장면 같은 것은—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면서도 현실감을 더해 주는 소도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동화는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적 이야기여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도, 일상의 감각으로는 조금 손에 닿지 않는 세계—그런 곳이 로맨스의 무대로는 가장 적합합니다. 그 안에는 자신의 꿈을 조금쯤 담아 넣을 여지도 남겨 두면서요. 따라서 로맨스 소설이 읽히는 또 하나의, 꽤 큰 이유도 떠오릅니다.
즉, 여성 독자들은 주인공에 자신을 겹쳐 보며 이야기를 즐기는 동시에,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라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여성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소설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지고, 부담도 큽니다.
그러나 로맨스 소설이라면,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 이상적인 남성, 동경하는 장소, 신분, 생활, 결말 등을 모두 담아내어 무엇인가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에세이스트나 카피라이터에 이어, 로맨스 작가는 앞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동경의 직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6. 남자가 체면을 내려놓을 때
●16-1. 남자의 체면이란 무엇인가
내 친구 N코는 학생 시절 동급생과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습니다. 물론 연애결혼이었고,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집안일도 꽤 도와준다고 했지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이웃 사람이 들여다보면 큰일이에요. 금세 숨어버려요. 부엌일을 돕는 건 결코 싫지 않은데, 그걸 남에게 보이는 게 싫은 거죠.” 또 다른 친구의 남편도 비슷한 면이 있는 듯했습니다. “기분 좋게 장을 보러 가주긴 하는데, 무나 파처럼 밖에서 보이는 건 무척 싫어해요.”
즉, 많은 남성들은 아내를 도와주려는 배려는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남에게 보이는 데에는 저항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남자의 체면’이라고 합니다. “그런 짓을 하면 남자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같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체면’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의 가치, 체면, 면목”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성에게도 체면이 있을 텐데, 그다지 말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체면에 대한 연구를 정리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부엌일을 하거나 무를 사 들고 오는 정도로 상처받는 체면이라면, 그건 대단한 게 아니에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요.”라고 말해보고 싶지만, 남자의 체면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제 첫 작품 『황혼의 런던에서』가 큰 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주변의 어떤 사람들은 걱정해 주었습니다. “당신이 남편보다 수입이 많아지면 문제가 생길 거예요.”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아내가 더 유명해지면 남편이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 일이 이혼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제 남편의 체면은 그다지 초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쁜 저를 도와주며, 자신과 아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쳐 집에 돌아온 제가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 “좋아, 내가 끓여 줄게.” 마치 마법처럼 홍차가 눈앞에 나타날 때의 기쁨은 무엇에 비유해야 할까요.
그리고 부탁만 하면 슬리퍼를 끌고 나가 채소 가게에서 무를 달랑달랑 들고 사 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끔은 저를 향해서, 또는 손님을 향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마 이쯤에서 남편의 체면이 슬쩍 드러나는 것이겠지요. “내가 출장으로 런던에 갔을 때 아내를 데리고 갔거든요. 그걸 계기로 아내가 에세이를 쓰게 돼서 에세이스트가 된 거죠.”
모든 계기는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반박할까요? 아닙니다, 가만히 있습니다. 남성에게 체면이 중요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그다지 폐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지켜 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16-2. 먼저 눈을 뜬 것은 여성
남성들이 여성에게서는 그다지 볼 수 없는 ‘체면’을 왜 삶의 버팀목으로 삼고 있는가. 그것은 수백 년의 역사를 거치며 길러져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사라면 무사로서, 가장이라면 가장으로서의 엄격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체면과 같은 정신적 지주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문화로서 몸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이라면, 지금 와서 갑자기 “그런 건 불편하고 필요 없으니 버리라”고 한다 해도, 쉽게 벗어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평등, 자립, 자유를 말하고는 있지만, 속마음 깊은 곳에 남성에 대한 의존 욕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점을 솔직하게 지적한 것이, 이 책에서도 몇 차례 언급된 『신데렐라 콤플렉스』입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쉽게 바뀌지 않는 오래된 의존심이 있다면, 여성을 의존하게 만드는 남성의 체면에 대해서도 이해를 보이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남녀는 잘 살아왔습니다. 지금 그것이 형태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우리 여성입니다. 왜 여성이 앞장서고 있는가. 그것은 여성이 먼저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왜 여성이 먼저 눈을 떴는가. 지배받는 불리하고 불만스러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여성이 리더가 되는 시대라면, 남성의 체면에 대해서도 이해를 보이며, 성숙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 어떨까요. 제 친구들 중에도 이혼 경험자가 몇 명 있습니다만, 처음에 소개한 친구들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참 어쩔 수 없는 사람이네” 하고 웃으며, 그 체면을 존중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남자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 무도 사 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야 한다”를 강하게 내세운 사람들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을, 어른이 된 뒤에 바꾸려 하면 무리가 따르는 법이지요. 과도기에는 과도기 나름의 대응 방식이 있는 법일 것입니다.
●16-3. 당신의 책임을 절반 나에게도 맡겨 주세요
그 대신 우리는 우리 아들들을 이렇게 체면에 얽매이는 사람으로 키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집안일도 함께 하게 하고, 무도 사 오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보세요, 남성의 발전과 변화는 여성보다 한 세대씩 늦어지는 것입니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것은 바로 우리 어머니들이니까요.
제가 결혼했을 때, 남편이 제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일을 계속해도 좋고, 그만두고 가정에 들어가도 좋아. 어느 쪽이든 자유롭게 선택해도 돼.” 이 말의 이면에는 물론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그런 자유로운 선택권이 없다. 남자로서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계속 일해야만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남자라는 존재가 좀 안쓰럽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체면’이라는 답답한 것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남자의 책임을 다해 온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체면을 유지하는 근거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여성해방운동은, 남성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빼앗는 데만 집중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는 남성이 맡아 왔던 책임을 여성도 절반은 함께 짊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권리를 나에게도 달라”에서, “당신이 짊어진 책임을 나에게도 절반 맡겨 달라”로 바뀌게 되겠지요. 여자아이를 키울 때,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염두에 둔다면 양육 방식도 조금은 달라질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다.” 현재는 아마 “엄마 대신 자유롭게 살아라, 너의 가능성을 세상에서 시험해 보렴.” 그리고 앞으로는 “요즘 남자들은 여자를 전업주부로만 살게 해 줄 만큼 여유롭지 않으니, 스스로 단단해져야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남자에게는 역시 체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사람은—도대체 누구일까요?
Ⅲ. 부모의 책임, 자녀의 선택
17. 열여덟의 출발
●17-1. 딸의 출발을 축하하며
딸이 파리로 떠나기 전, 우리는 한 레스토랑의 방을 빌려 환송 파티를 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의 결혼 20주년이 되는 5월이기도 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삼촌, 이모, 사촌들과 그 자녀들, 그리고 아주 가까운 친구들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제멋대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파리의 패션 디자이너 양성 학교에 가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이것은 몇 년 전부터 제가 바라왔던 일입니다. 처음 2년은 오트쿠튀르를, 다음 1년은 프레타포르테를 배우게 됩니다. 디자이너가 되면, 여러분의 옷을 디자인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딸의 연설은 낮은 목소리였지만 매우 침착했습니다. 끝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단지 유학일 뿐인데 송별회를 여는 것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조금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모여 주신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의 결혼식은 우리는 열지 않으려 합니다. 한다면 본인들이 하면 될 일이지요.
두 사람이 상의해서 하면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열여덟 살 딸이 혼자서 인생의 항해를 시작하려는 이 순간, 그 출발을 모두에게 축복받는 것이 딸에게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일본인에게는 다소 서툰 입식 파티였지만, 누벨 퀴진이라는 요리의 맛은 물론이고, 매우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모두들 “이런 파티도 좋네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딸의 도불 준비는 거의 전부 딸 혼자서 해냈습니다. 절차부터 짐 싸기까지. 저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낮에도 밤에도 일에 쫓기다 보니, 18년을 함께 살아온 딸이 제 곁을 떠난다는 사실을 차분히 되새겨 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지 않으면 나중에 허둥지둥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요.
어느 날 저녁, “이렇게 같이 식사하는 것도 앞으로 몇 번 안 남았네…” 하고 아쉬움을 말했더니, 딸이 말했습니다. “아, 이제야 말하네.” 이별 때문에 더 예민해져 있던 쪽은 딸이었고, 어머니인 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입니다.
●17-2.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을까
아니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행선지가 파리라 해도 요즘은 지방의 부모가 딸을 도쿄의 대학으로 보내는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위험이나 병은 어디에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일본 안에 있어도 1~2년 동안 부모를 만나러 오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딸이 스스로 원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은, 타국에서 혼자 사는 외로움을 어떻게 덜어 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유럽은 일본보다 훨씬 위도가 높아 여름에는 밤 10시가 넘어도 밝고, 반대로 겨울에는 4시쯤부터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그 추위도 매우 혹독합니다. 송별 파티 자리에서, 같은 길을 먼저 걸어 딸의 선배가 될 예정인 한 분이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꼭 편지를 보내 주세요. 정말 외롭기 때문에 일본에서 오는 편지를 무엇보다 기다리게 됩니다. 프랑스는 일요일에는 우편 배달이 쉬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고 우체통을 들여다보러 갈 정도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너무도 실감 나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숙연해졌습니다. 최소 3년의 유학 기간 동안, 저는 부지런히 편지를 쓰게 되겠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별의 슬픔보다도, 앞으로 딸을 어디까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와 딸이 자연스럽게 편지를 주고받을 기회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일상을 함께할 때는 굳이 전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서로 열심히 써 보내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까요. 파리에는 다른 볼일을 겸해 제가 데려다주었습니다. 며칠을 함께 호텔에 머문 뒤, 제가 귀국하는 날 딸을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딸에게는 혼자 남겨지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꽤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실제의 외로움보다 그것을 상상하는 쪽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딸이 배정받은 방의 침대 커버를 들춰 보았습니다. 그런데 시트와 담요가 너무나도 조악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걸로 직접 사렴. 꽃무늬 같은 밝고 귀여운 걸로. 그리고 이 방에 돌아오는 것이 즐거워지도록 여러 가지로 꾸며 보렴. 돈은 좀 써도 괜찮아.” 이렇게 말하면서도, 미리 알아차리고 함께 사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 스스로 해야 한다.” 딸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럴게. 나 지금 바로 백화점에 다녀올래. 할 일이 있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해.” 그리고 그런 기분 그대로, 우리는 기숙사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17-3. 자녀 양육이 끝날 때
그 후 딸에게서 온 편지에는, 다른 사람 방에는 커튼이 있는데 자기 방에는 없으니 사무실에 요구해도 되는지 묻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이런 걸 왜 하나하나 묻는 걸까, 그냥 요구하면 되지” 하고 답답해했지만, 얼마 후 이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더 넓은 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사무실에 가서 쿠튀르 공부를 하려면 더 넓은 방이 필요하다고 이것저것 말했더니, 9월 새 학기까지 방을 바꿔 주기로 했어.” 딸은 이렇게 점점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워갈 것입니다. 열여덟이라는 나이는 일본에 있어도 사회의 구조를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파리에서 은행 계좌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서로 익숙하지 않아 일이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딸이 나중에는 화가 난 듯 이렇게 써 보내왔습니다. “은행에 계좌를 만든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은행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어요. 가르쳐 주세요.” 사실 저라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라고 하면 곤란하겠지만, 어쨌든 사회인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것 중에 딸이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외국 생활 이전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그런 어려움도 겹쳐갈 것입니다. 제가 파리에서 혼자 귀국했을 때, 남편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떠나버렸구나 싶으니까, 갑자기 내가 늙어버린 기분이 드네.” 결혼 20년을 맞은 우리 부부에게, 자녀를 키우던 아름다운 시절은 이제 끝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18. 아이가 둥지를 떠날 때
●18-1. 자립을 위해 집을 떠나다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의 일이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영국인 부부와 런던의 한 레스토랑에서 나눈 대화가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습니다. 장남 피터가 에든버러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참 쓸쓸하시겠네요. 그럼 4년 동안은 떨어져 지내게 되는 거군요.”
제 말에 잠시 뜸을 들인 뒤,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피터는 이미 어른이니까요. 대학을 졸업해도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살지는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이것이 바로 영국의 부모자식 관계구나 싶어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인은 일본에 체류한 적도 있는, 일본 사정에 밝은 분이었기 때문에 제 말을 비교문화적으로 이해해 준 것이었습니다.
서구의 부모자식 관계에서는, 자식이 성인이 되면 집을 떠난다—그렇구나, 그러면 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들의 외로운 모습이 그런 배경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손자의 손을 잡고 있는 노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의 여러 지방 도시를 방문할 기회가 많아,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수백만 인구의 대도시는 몰라도, 대부분의 지방 도시가 안고 있는 고민은 젊은이들을 붙잡아 둘 일자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농가조차도 기계화가 진행된 지금은 농업만으로는 어려워, 결국 취업할 곳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지방자치단체나 교직 같은 지역 내 취업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매우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도쿄의 대학으로 보내고, 졸업하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자식들 역시 가능하다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하지만 결국 일자리가 없어 도쿄에서 취업하고 정착하게 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떠나는 순간이 곧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생활의 종지부가 되는 셈입니다.
영국에서는 성인이 되면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일본에서는 특히 지방에서는 함께 살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이유는 다르지만, 함께 사는 18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짧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괜찮아. 도쿄에 집이 있으니까.”
딸도 아들도 그렇게 쉽게 집을 떠나지는 않겠지, 하고요. 그런데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버렸습니다.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저는 마치 예상치 못한 일에 놀란 듯한 얼굴로 딸을 배웅했습니다. 그토록 울보였고, 늘 엄마에게 바짝 붙어 다니던 아이였으니, 조금 떨어져 혼자 살아보는 것도 좋은 약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18-2. 딸이 없는 방
그런데 딸은 제 곁을 떠나자마자 눈에 띄게 어른이 되어 갔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딸은 자립하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방학 때마다 귀국하려고 애썼지만, 요즘은 일본에서 친구를 파리로 불러들여 그곳 생활을 즐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번 여름에도 3개월 동안 일본에서 지내면서, 후반쯤 되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아, 3개월은 너무 길어. 이제 슬슬 저쪽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졌어.” “너한테 도대체 어디가 생활의 중심이니?” “글쎄… 아마 파리일까.”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을 들으면 기절할 듯 놀랐겠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어머니로서 당연한 각오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시간은 헛되이 흐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떠오르는 것은, 출발할 때 딸이 남긴 말입니다. “내 방은 꼭 그대로 남겨 둬야 해.” “그럼, 그럼.” 물론이지. 네가 돌아올 방인데, 다른 용도로 쓴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지—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파리에 영원히 살 생각은 없어. 일본에 돌아오면 내가 벌어서 아파트를 얻을까 해.”
한편 어머니인 저는, 일이 많으면서도 정작 제 방은 없습니다. 거실 한쪽의 테이블이 제 작업 공간이었습니다. 거실 겸 서재의 장점도 있지만,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은 역시 제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비어 있는 방은 딸의 방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심스럽게 작은 책상을 들여놓았습니다.
딸의 물건에는 절대 손대지 않고, 딸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있으면 언제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치울 수 있도록 해 두고, 임시로 작업실로 쓰고 있습니다. 딸의 자립심과 자유를 억누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돌아와 함께 살았으면 하는 마음. 방이 남아 있으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 한편으로는 딸과 상관없이 제 영역을 넓히고 싶은 욕구. 이런 마음들이 제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한 달쯤 전, 처음에 소개했던 그 영국인 부부 중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남편은 상심을 달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혼자 남겨진 70세의 그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요. 케임브리지에는 아직 일이 있고, 에든버러로 가서 아들 피터와 함께 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혼자 살게 되겠지요. 우리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혼자 사는 노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외진 식당에서 감자를 먹고 있던 모습들. 우리가 멋대로 “불쌍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는 사람이 그런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역시 마음이 아파오는 것입니다.
19.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킨다
●19-1. 문이 없는 런던의 이층버스
외국 관광 엽서에 빨간 이층버스가 찍혀 있으면, 그곳이 런던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저 버스를 한 번쯤 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요. 특히 2층 맨 앞, 전망이 좋은 자리에 앉아 보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저 버스를 타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크게 열려 있는 승강구에 문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칫 비틀거리면 그대로 떨어져 나갈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기둥을 붙잡아야 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올라 2층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여자 몸으로는 쉽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2층은 흡연석이 되어, 주로 젊은 커플이나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여성이나 노인은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이 버스를 탈 때만큼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킨다”는 서구인의 자립 정신을 느끼게 되는 순간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자기방어 능력이 요구되는 일상적인 교통수단입니다. 그러나 승객이 완전히 방치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리가 없을 경우 통로에 서 있을 수 있는 인원은 겨우 다섯, 여섯 명 정도로 제한되어 있으며, 이를 허락하는 것은 차장의 권한입니다. 2층에서는 누구도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본처럼 사람을 꽉꽉 밀어 넣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정류장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는 점도 있습니다.
안내 방송도 없습니다. 스스로 지리를 알고 있어야 하며, 내리고 싶은 곳에서 스스로 내려야 합니다. 만약 지리를 모른다면 차장에게 “어디에서 내려 달라”고 미리 부탁해야 합니다. 이것은 열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주의하고 있다가 내릴 역이 오면 내려야 합니다. 게다가 문도 스스로 열어야 합니다.
일본의 교통수단은 안내 방송이 다소 과잉이라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신칸센에서는 “짐을 모두 챙겨서 내려 주십시오”라고 안내한 뒤, 영어로도 같은 내용을 반복합니다.
누가 좋아서 자기 짐을 두고 내리겠느냐고 투덜거리고 싶어지지만, 아직도 안내가 부족하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신문에 투고한 적이 있습니다. “출발할 때 더 알기 쉽게 알려주지 않아서, 친구를 배웅하러 갔다가 이야기에 빠져 있는 사이 우쓰노미야까지 가 버렸다.”
●19-2. 자유와 규율로 지켜지는 런던의 택시
다음은 런던 택시를 타는 방법입니다. 차체가 커서 머리를 크게 숙일 필요가 없고, 실내도 매우 넓고 쾌적합니다. 문은 스스로 열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올라타서는 안 됩니다. 먼저 운전석의 기사에게 “어디까지 가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말을 건네야 합니다.
이것은 확실히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택시는 자기 집과 같은 것이니까요. 아무 말도 없이 타인이 올라타는 것은 기사 입장에서는 무례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이 승차 거부로 이어진다면 문제겠지만요. 저는 런던 택시 경험 이후 일본에서도 이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 가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또는 타면서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같은 인사를 건넵니다. 운전기사에게 불쾌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는 것은 아마 이런 인사 덕분일 것입니다.
“아이고, 손님이 먼저 인사를 해 주시다니, 부끄럽네요.” 이렇게 감동하는 기사도 있습니다.
파리의 택시는 조금 사정이 다릅니다. 조수석에 개를 태운 차가 꽤 많이 돌아다닙니다. 저게 법적으로 허용된 건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개가 있든 없든, 그 자리는 개의 자리이기 때문에 사람은 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단형 파리 택시의 정원은 세 명입니다.
파리에서 네 명이 함께 이동할 경우 두 대로 나누어 타야 하므로 매우 비경제적이고 불편합니다. 택시 입장에서는 그만큼 가동률을 높이기 위한 방식이라고 합니다. 조수석의 개가 짖으며 거부하면 손님은 탈 수도 없습니다.
개가 우선인 파리 이야기는 이쯤으로 하고, 런던의 교통수단에서 느껴지는 인간관계는 참으로 분명하고 절도가 있습니다. 영국 특유의 ‘자유와 규율’ 정신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키세요.” 외국으로 떠나는 딸에게 건넨 말입니다. 삶의 방식까지 포함해서 말이지요.
● 20. 정성을 들여 키운다
임시교육심의회에서는 학교 급식을 재검토하라는 답신을 내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학교 급식을 실시함으로써 가정의 교육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전원이 도시락을 지참하는 날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또는 학교 급식 대신 도시락을 가져오는 것을 인정하면 어떨까 하는 등의 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로부터 여러 반대 의견이 제출되었습니다. 각 지역 학교급식회에서의 반대 진정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뭐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특정 단체의 이해관계에 의해 아이들의 교육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학교 영양사 단체에서도 반대 진정이 들어왔습니다. 요즘 가정의 영양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에게 도시락을 싸게 하면 아이들의 건강이 위험해진다는 이유였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핑계라고 놀라고 어이없어하면서, 이것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영양사들은 아이들의 일생을 통틀어 자신들이 계속 돌봐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영양 관리 이전에, 지금 가정의 교육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학교 급식 관계자로서, 어떤 어머니가 밝힌 의견만큼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학교 급식이 더 싸게 먹히는 게 매력입니다. 그리고 손이 덜 가서 좋습니다.”
현재 학교 급식을 이용하는 아이들의 어머니 연령은 대체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 것입니다. 즉, 이들은 이른바 ‘단카이 세대’로, 성장 과정은 바로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와 겹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제적으로 싸고, 효율적으로 손이 덜 가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교내 폭력, 가정 내 폭력, 비행, 괴롭힘과 같은 일련의 현상은, 결국 마음의 황폐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반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황폐한 아이들을 길러낸 것은, 경제성과 효율성 중심의 가치관으로 자녀를 키운 부모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메마른 마음을 구하려면 경제적·시간적 효율로만 아이들을 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원이나 과외 등 돈은 충분히 들이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서는 ‘손과 시간을 들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손과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매우 큰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 이것은 부가가치라기보다 본질 그 자체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손을 들이면 들일수록, 그만큼 마음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담는다’는 것은 매우 막연한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결국 손과 시간을 들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현대의 육아에서 결여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예로부터 “정성을 들여 키운다(手塩にかけて育てる)”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싸게 먹힌다”는 가치관에도, “조금 돈이 더 들더라도 이렇게 하면 아이가 좋아하겠지, 이 편이 아이를 위해 더 낫겠지”라는 정성이 담긴 발상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의 일상생활은 비용을 아끼고, 그 대신 학원이나 게임기에는 돈을 쓰면서 “나는 아이에게 돈을 충분히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일입니다.
또한 ‘손과 시간을 들이는 것’을 과보호나 과잉간섭으로 오해하는 것도 걱정입니다. 부모에게 무엇이 꼭 필요한 보호이고, 무엇이 과보호인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이의 생존과 관련된 일, 예를 들어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과 같은 위생 관리와 식사에 대해서만큼은 정성을 다해도, 지나치다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