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참사’5주년, “테러의 세계화”
5년 전,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던 대형 참사가 세계무역도시 뉴욕에서 일어났다. 이슬람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의 공격으로 자본주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수 천 명의 무고한 생명이 원인도 모른 채 졸지에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가 냉전시대의 종말을 알린 것처럼,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미국 공격은 테러와의 전쟁 새 시대를 열었다.
9.11 이후 세계질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초강대국의 자존심에 ‘상처 입은’ 미국은 대테러 전쟁을 선포하였고, 테러 '아지트(Agit)국가'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범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은 세계정치에 대전환을 가져왔고, 국제정치 판도의 변화 및 힘의 균형을 개변시켰다. 바야흐로 ‘테러의 세계화’는 가속화되고 있고 테러리스트들의 창궐한 활동으로 지구촌은 테러위협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테러전쟁은 이슬람과 21세기의 문명사회간의 충돌이며, 테러리즘(terrorism)은 지구촌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어두운 그림자’로 존재하고 있다.
9.11 테러 발생 5년이 지났지만 뉴욕과 워싱톤의 시민들은 여전히 테러리스트들의 새로운 공격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AP 통신은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관련조사를 실시하였는데 5년 전 공격을 받았던 뉴욕과 워싱톤 주민의 절반은 또 다시 테러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고, 미국 전체적으로는 비율이 약간 낮아 3명 중 1명이 테러 재발 가능성을 인정했다. 또한 응답자의 59%는 9.11 테러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대응방식을 지지했지만, 반면 뉴욕과 워싱톤 시민의 지지율은 50%에 못 미쳤으며, 뉴욕시민 중 10명 중 6명은 지금도 5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테러 공포증이 여전히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목할 것은 미국인 3명 중 1명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고, 또 3명 중 2명은 미국 내 테러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46%만이 9.11 테러를 주도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두목 오사마 빈 라덴이 잡힐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이라크에서의 대테러戰으로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는 부시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 국민의 60%는 미국 내 테러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43%는 대테러戰으로 인해 미국의 대외이미지가 더욱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최근 영국 발 미국 행 여객기의 액체폭탄 테러음모가 적발된 후 美국민의 불안심리가 급격히 상승했다.
9.11 테러 발생 후 영국도 테러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테러와의 ‘전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아울러 테러와의 전쟁은 유럽전역에 전염병처럼 재빨리 퍼져가고 있다. 지난해 7,7 테러(52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한 런던 자살폭탄 테러)를 겪은 영국은 금년 여름에는 ‘제2의 9.11테러’가 될 뻔 했던 항공기 공중폭파 테러음모가 사전에 적발되었다. 또한 독일도 금년 여름에 테러위협에 시달렸다. 최근 도르트문트의 열차에 숨겨둔 폭탄가방 2개를 찾아내고 용의자를 공개 수배했고, 레바논 출신 유학생 3명을 체포했다. 9.11 이후 유럽으로 번진 테러위협은 유럽인들의 생활과 생각도 바꿔놓았다. 즉 인권 최우선의 이념중심이 점차 테러와의 ‘전쟁’중심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2005년 7.7 테러 이후 영국정부는 對테러법을 제정하고 금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고, 최근 프랑스와 독일도 테러에 대비해 광범위한 대테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시민 191명이 숨지고, 1,500여명이 부상) 충격에 이어 얼마 전의 국내 열차 테러음모가 적발되자 취한 대책이기도 하다. 현재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1500만~2000만 명으로 유럽 국가들은 선량한 무슬림과 이슬람 극단주의를 구분함과 더불어,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7.7 테러와 금년 8월 항공기 폭파 모의도 영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무슬림들의 자생적 테러이며, 파키스탄계 영국인이 자폭 테러리스트로 변신하는 근본 원인이 영국사회에 대한 반발과 실망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지속된 부시정부의 대테러 전쟁은 표면상에서는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했고 세계도 함께 진통을 겪었다. 9.11 테러 희생자는 3000여명에 달하지만, 이후 대테러戰으로 숨진 민간인 희생자는 비공식 통계로 수십만 명에 달한다. 미국이 주도한 대테러戰은 무엇보다 미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반미감정을 세계화시켰다. BBC가 작년 말 각 국민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이라크戰 이후 테러위협이 더 늘었다’는 응답자가 동맹국에서도 매우 많았다. 특히 미국이 발동한 對이라크 침략전쟁은 더 이상 미국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아울러 ‘테러의 세계화’를 조장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또 새로운 형태의 ‘패권국가 · 제국’으로, 지구촌의 슈퍼파워로 군림하고 있다. 부시정부는 ‘국력 고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천문학적 비용을 대테러戰에 투입했다. 2005년 미국의 국방비는 국방비 지출순위 2위부터 10위까지 국가의 국방비를 전부 합친 규모(3346억 달러)보다 54%나 많았다. 따라서 2000년 흑자이었던 예산은 2005년에는 3138억 달러의 적자로 미국경제의 뿌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하지만 테러세력은 오히려 양산(2003년 이라크 내 테러리스트 5000명, 현재 2만 명)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최근 영국 여객기의 납치 모의범들의 경우는 기존의 알 카에다 테러조직에 속하지 않은 자생테러 지원자들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가장 지친 쪽은 세 전쟁(아프간, 이라크, 대테러戰)을 동시에 벌이는 미국 자신이다. 금년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은 현재 대테러 전쟁을 두고 국론이 양분될 정도로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다.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이제는 국민 3분의 2가 부시정부가 가는 길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고, “대테러 전쟁에 대한 추후의 역사평가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이 혼자서 세계평화를 유치할 수 없다는 것을 지난 5년이 가르쳐줬다”는 요지(要旨)의 교훈을 실었다. 이는 독선주의 및 패권주의를 실시하는 부시정부가 모름지기 심사숙고해야 할 바라고 생각한다.
평화와 화합을 모토로 하는 21세기 문명사회의 사회악으로 부상한 테러리즘을 가차 없이 근절시켜야 하며, 아울러 인류사회의 평화유지와 안정에 걸림돌이 되는 테러리스트들을 일망타진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理致)로 당연지사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테러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따라서 대테러 전쟁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006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