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정석’은 세대를 뛰어넘은 책이다. 1960∼70년대에 고교를 다닌 이들이 중고교생 자녀의 책꽂이에서 ‘수학의 정석’을 발견하면 학창시절의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이 책은 1966년 첫 출간된 이래 3500만권(추정)이 팔렸다. 종로세무서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 한해 동안만도 180만권이 나갔을 정도다. 한국에서는 성경 다음의 판매부수다. 지금까지 나온 ‘수학의 정석’(두께 3.5cm)을 쌓아놓으면 에베레스트산(8853.5m) 100개에 해당하는 높이다.
뉴욕타임스 워싱톤포스트의 명칼럼은 글 쓴이가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있게 펼쳐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논술의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담은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장 자체도 유려합니다. 따라서 미국 권위지의 칼럼과 사설로 논술을 연마하는 것은 영어와 논술 그리고 시사교양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는 격입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는 필자가 이번에 ‘뉴욕타임스’ ‘워싱톤 포스트’ ‘야후! 뉴스’ 등 영자신문의 사설 칼럼 30편을 선별해 번역과 주해를 붙인 책을 펴냈습니다.
윤홍근 서울산업대교수가 논술출제 및 핵심포인트를 집필했고 EBS 영어강사가 단어 숙어풀이를 했습니다. 박철순 풍문여고 교사가 영어지문논술과 논술문 작성요령에 대해 글을 써서 덧붙였습니다. 생생한 관련 사진도 학습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황호택 지음/290쪽 1만5000원 동아일보사
한국에서는 뜨거운 교육열을 바탕으로 교육산업이 고성장을 누렸다. ‘수학의 정석’ 외에도 ‘정통종합영어’(저자 송성문), 이재옥 토플, 한샘국어(서한샘)가 밀리언셀러로 꼽힌다. 얼마 전에는 송성문(73)씨가 국보 보물급 소장문화재 26건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잔잔한 화제가 됐다. 이재옥(작고) 서한샘씨는 재력을 바탕으로 국회에 진출했으나 정치적으로 성공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홍성대(67) 상산고 이사장은 ‘수학의 정석’으로 번 돈을 2세 교육에 투자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전주 상산고는 전국 6개 자립형 사립고 중에서 유일하게 기업 지원을 받지 않고 이사장 개인의 힘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학교다.
홍 이사장의 사무실은 서울 강남 양재역 부근 모산빌딩 8층에 있다. 아래층에는 ‘수학의 정석’을 출간하는 성지출판주식회사가 있다. 접견실 진열장에 7차 교육과정에 맞춰 개편된 ‘수학의 정석’ 12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울대, 남성중고교, 대한수학회, 전라북도 애향본부 등에서 받은 감사패도 10여개 보였다. 모두 그의 재정적 도움을 받았던 곳이리라.
상산고, 기업지원 안받는 자립형 사립고
홍 이사장은 서울대 총동창회 부회장이다. 그는 일주일 후 KBS에서 방영하는 ‘서울대 폐지론’ 특집 프로그램과 관련해 동창회를 대표해 인터뷰를 하게 돼 원고를 쓰던 참이라고 했다.
“서울대 폐지론자들은 ‘서울대가 고시학원이 됐다’ ‘학벌주의다’ ‘사회 요직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피라미드식 서열체계가 형성돼 입시지옥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동창회로서는 서울대 폐지론이 확산되는 사태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동창회 입장은 소모적 논쟁을 중단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서울대의 존재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차분히 대응해나갈 생각입니다.”
-서울대가 없어지면 연·고대가 ‘서울대’가 되겠지요.
“그렇죠. 폐지론자들은 그것까지 고려해 일정 수준의 사립대학도 국립대학 공동 네트워크에 투입시키려고 해요. 계속 일류대학이 이어져 나와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대학을 평준화하면 대학간 경쟁이 없어집니다. 결국 하향평준화 쪽으로 가면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죠. 국제경쟁시대에는 1등만이 살아남습니다. 1등이 없는 나라는 망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는 천연자원이 부족합니다. 인적자원밖에 없습니다. 평등사상을 중시하는 사회주의국가 중국마저도 철저한 엘리트주의 교육을 시킵니다. 베이징(北京)대 칭화(淸華)대 등 10개 학교를 선정해 소위 ‘선택과 집중’을 하는 정책을 폅니다.
꼭대기를 잘라 없앨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 몇 개를 육성해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5, 6개 대학이 선의의 경쟁을 하게 해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죠. 이것이 ‘상향 평준화’를 이뤄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서울대 폐지론자인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신문에 서울대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썼다. 다음은 ‘인맥 만들기 전쟁’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발췌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의 핵심은 ‘인맥 만들기’다. 한국의 그 살인적인 대학입시 경쟁도 그 본질은 ‘인맥 만들기 전쟁’이다. 서울대의 위대성도 타 대학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맥에 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이 생존경쟁에서 때로 절망감을 느끼곤 하는 것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인맥과 관련된 것이다. 아니 인맥이 곧 능력으로 통용된다.’
-강 교수의 논리에 동의합니까.
“그건 전혀 다른 얘기예요. 뭉치기로 하면 고대나 연대가 더 하지요. 서울대처럼 뭉치지 않는 사람들도 없을 거예요. 각자 따로 놀아요. 어떤 직장에서나 승진하기 위해 서울대 출신끼리 경쟁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패거리로 모여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마 서울대가 앞서 언급한 대학들처럼 뭉친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나겠죠. 나라가 망한다는 말까지 나올 거예요. 동창회 일을 해보니 모교에 무관심한 동창이 많습디다. 그래서 속상할 때도 많아요. 강 교수 칼럼에 나오는 ‘인맥 만들기’는 잘못된 지적입니다. 서울대 출신이 요직에 너무 많다는 건 인정합니다.”
‘서울대 인맥 만들기’는 난센스
-국민의 정부부터 시작해 참여정부에 와서는 상당히 줄었어요.
“이해찬 국무총리 지명자도 서울대 출신이고 17대 국회의원 중에 서울대를 거친 사람이 143명입니다. 특수과정 수료자도 포함된 숫자입니다만 이분들이 모두 서울대 간판만 갖고 당선된 건 아니죠. 미국 하버드대 졸업생이 1년에 1600명입니다. 서울대 4000명에 연·고대까지 합치면 1만5000명입니다. 미국에 비해 인구는 적으면서 3개 대학의 졸업생은 너무나 많습니다. 미국에선 하버드대 예일대 출신이 요직을 차지해도 별로 눈에 안 띄는데 우리는 좁은 땅, 적은 인구에 배출되는 졸업생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서 서울대, 연대, 고대 출신들이 우글대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요. 정운찬 총장이 학부 인원을 줄이려 합니다. 교수와 시설, 재정은 그대로 두고 학생을 줄여 교육을 내실화하겠다는 거죠.”
-정관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자연과학분야에서 이룬 업적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입니다. 홍 이사장이 수학과를 나왔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과학정보연구소가 해마다 발표하는 SCI(Science Citation Index) 순위에서 서울대는 세계 여러 대학 가운데 2002년 34위, 2003년 35위를 차지했습니다. SCI 순위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 3900개에 발표된 논문을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SCI 상위권 대학은 대부분 미국 대학들입니다. 그 외에는 영국 옥스퍼드대 캠브리지대, 일본 도쿄대 도호쿠대, 캐나다 토론토대, 브라질의 브라질대밖에 없습니다. 나라별로 순위를 매긴다면 서울대는 6위입니다.
황우석 교수로 대표되는 생명공학 연구팀은 인간 배아복제와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함으로써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서울대 의대 수의대 약대 자연대 농대 공대 교수 6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황 교수팀이 이룬 업적은 실로 세계적인 것입니다.”
홍 이사장은 1957년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에 입학했다. 모친이 돌아가시고 나서 가세가 기울어 등록금 하숙비 책값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였다. ‘서울대’와 ‘수학과’는 그가 자력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한 힘이 됐다.
대학 3학년 때 서울사대부고 교사의 소개로 여학생 6명을 맡아 가르쳤는데 인기가 높아지자 겨울방학 때 그 학교 학생 50명이 몰려와 강의를 들었다. 서울 동숭동 문리대 본관 2층 수학과 연구실을 빌려 강의실로 사용했다. 이인기 학장과 수학과 최윤식 주임교수도 못 본 척 눈감아주었다. 육순이 넘은 수위는 조개탄 난로를 피워줬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이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1995년 40억원을 들여 서울대에 상산수리과학연구동을 지어 기증했다. 서울대에는 대기업들이 지어 기증한 건물이 여럿 있지만 개인으로는 홍씨가 처음이다. 이 건물엔 수학연구소 대역해석학연구센터 통계연구소 이론물리연구센터 이론물리연구소 등 5개 연구소와 수학도서관이 들어가 있다.
“EBS 수능강의 타격 없다”
‘수학의 정석’은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 쓰던 고학(苦學)의 산물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기존 참고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왕이면 좋은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광화문의 외국서적 판매점을 뒤지고 다녔다. 일본의 입시문제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의 수학책을 구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수학책은 그 나라 언어를 몰라도 수식만 보면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학원강의를 할 때는 문제를 만들어 등사를 했다. 해마다 새로운 문제를 집어넣으면서 보완을 거듭했다.
학원강사들 중에는 자신의 저서를 교재로 강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고서가 잘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면 저자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대만원을 이뤘다. 베스트셀러 참고서가 학원강사의 인기를 높이고 생명력을 연장하는 비결이었다. 그도 학원강사로 성공하기 위해 저서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갈고닦은 프린트물을 토대로 집필을 시작해 3년 만에 완성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납니다. 스물일곱 살짜리가 뭘 안다고 책을 씁니까. 그렇지만 그때 서두르지 않았다면 게을러지고 용기도 없어져 영원히 책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지난해 개편한 책 표지에는 여전히 저자 이름이 ‘홍성대’로 나와 있지만 책 뒷면에는 ‘도운이 이창형 홍재현’이 추가됐다. 재현씨는 그의 셋째딸이고 창형씨는 사위다. 두 사람은 서울대 수학과 동기생이다.
-‘수학의 정석’도 EBS 수능강의로 인해 타격을 받고 있습니까.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출판사가 타격이 커서 울상입니다. 내 책도 한때는 입시경향에 맞춰 책을 재편했습니다. 그러나 수능이 바람직한 출제방법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일정 시점부터는 입시 경향에 신경쓰지 않고 나 혼자 정도(正道)로 갔지요. 그랬더니 시험이야 어떻게 출제되든지, 정석 책 한번 보고 그 다음에 무얼 하더라도 하자는 인식이 확산돼 책이 계속 나갔습니다.”
-얼마전 동아일보 교육담당 홍찬식 논설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EBS 수능강의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말했다지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겠습니까.
“정부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의 본질을 해치는 정책을 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입니다. 언론도 정부가 사교육비를 경감한다고 하니까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도와주는 것 같더군요.
교육은 다양화 특성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국의 고등학생을 TV 앞에 앉혀 놓고 똑같은 교재로 똑같은 선생이 똑같은 강의를 한단 말입니다. 이게 교육의 획일화가 아니고 뭡니까. 강의가 성공할수록 공교육을 망가뜨리는 부작용이 커질 겁니다. EBS 교재에서 출제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EBS 교재를 이용한 새끼과외가 번져 나갈 겁니다.”
홍 이사장은 “수백 수천 가지 참고서가 있는데 특정 참고서에서만 출제하겠다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참고서 시장’에 관한 발언이 한참 이어졌지만 그가 ‘수학의 정석’ 저자이기 때문에 객관성의 문제가 있어 이 정도로 줄인다.
-대학 평준화를 지지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교 평준화를 놓고서는 의견이 딱 갈라져요. 고교 평준화제도는 1974년 박정희 대통령 때 처음 시행됐습니다. 문제점이 많지만 30여년 동안 시행된 제도를 일거에 무너뜨릴 경우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란 걱정이 들어요. 고교입시 과외가 극성을 부릴 테고….
“30년 동안 지루할 정도로 논쟁이 계속됐죠. 대통령이 가부간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내 의견은 어느 쪽이냐 하면 평준화 해제입니다. 갑자기 다 풀기 어렵다면 사립 먼저 풀어줘야죠. 사립은 건학정신에 따라서 다양화 특성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전세계에서 사립학교를 평준화로 묶어놓은 나라는 없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사회주의국가 중국도 엘리트교육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교육부 장관의 힘만으론 부족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을 설득해 어느 정도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라도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미래에 나라가 사는 길로 가자면 국제경쟁력을 가진 다양한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조금씩 땜질하는 보완책은 감질납니다.”
홍 이사장의 말대로 사랍학교의 경우 설립자가 건학이념에 맞게 교육하는 것이 교육의 원리에 맞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립학교 비율이 47%로 절반에 가깝다. 사립을 모두 풀어줄 경우 평준화는 유지되기 어렵다. 한국교육의 난제다.
“사립학교가 공부할 길 열어줬다”
-사립중고교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에 의존하고 있잖아요. 국민의 세금을 갖다 쓰면서 정부가 간섭하지 말라는 건 명분이 약하지 않습니까.
“평준화가 시행되기 전에는 사립학교 수업료가 공립보다 조금 더 많았어요. 평준화하면서 공사립이 같아졌죠. 사립의 수업료를 깎아내리면서 보전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인가 교원 처우개선문제 때문에 수업료 인상요인이 20% 이상 생겼습니다. 자본주의국가라면 당연히 수업료에 반영해 충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물가를 한 자릿수 이내로 조정하기 위해 수업료 인상이 통제됐습니다. 이렇게 생긴 재정결손을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거예요. 사학 입장에서는 정부에서 받지 않고 수업료 상한선을 풀어 학생한테 받으면 되는 거죠.”
상산고는 1981년 개교했다. 그가 학교를 설립한 데는 중고교 모두 사립학교를 다닌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6·25 전란통에 정읍의 태인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 태인에서 전주와 익산의 중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서너 명 될까말까 했습니다. 태인중학교가 생기면서 한해 100명 이상의 학생이 중학교를 다니게 됐죠. 태인중학교가 없었다면 태인에서 중학교 모자 쓰고 다닌 사람이 한해에 3, 4명밖에 안 됐을텐데 100여명 이상이 중학교에 들어간 거죠.
사립학교가 없었다면 우리 국민 중 3분의 2는 중학교 고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을 겁니다. 사립학교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공부할 길을 열어줬습니다. 내가 졸업한 남성고등학교도 한강 이남에서 가장 좋은 명문 사립학교였습니다. 그 시절에 명문은 거개가 공립이었으니까요.”
44세에 혼자 힘으로 학교 설립
그가 학교를 설립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매일처럼 사무실에 찾아오던 불청객들 때문이었다. 책을 써서 큰돈을 모았다는 소문이 나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손을 벌렸다. 작은 사무실엔 항상 서너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청을 들어줘 내보내면 바로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 박절하게 내쫓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리어카 한 대만 사달라, 삼륜차 사달라, 사업계획서 써 들고 와서 몇 달 후엔 갚을 수 있으니 도와달라…. 끝이 없었다.
“시간을 빼앗겨 일을 할 수도 없고 사람 꼴이 아니더라고요. 정말 뜻 있는 데 크게 써보자고 해서 구상한 것이 사립학교였습니다. 친구들한테 의견을 물었지요. 한결같이 ‘건학이념을 정립해 인재를 길러보라’더군요. 내가 고향에서 서울 올라올 때 가방 하나 들고 왔는데 빈 몸으로 돈 벌어 누구 도움 받지 않고 44세에 순전히 내 힘으로 학교를 짓고 나니 감개무량했습니다.”
상산고를 일류학교로 키우고 싶었지만 평준화의 틀 속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2002년 학교가 문을 연 지 21년 만에 자립형 사립고 제도가 생기자 망설임 없이 승인신청을 했다. 자립형 사립고는 교육감의 추천으로 교육부 장관이 승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서울에서는 유인종 교육감이 추천을 하지 않는 바람에 자립형 사립고가 탄생하지 못했다. 현재 전국에는 민족사관고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 울산 현대청운고 부산 해운대고 상산고 등 6개의 자립형 사립고가 있다. 이중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는 사원자녀 위주로 운영된다.
상산고는 전교조의 반대로 난산(難産)의 과정을 겪었다.
“전교조가 정면에 나서서 반대하니까 전북 교육감이 뒤로 물러섰습니다. 국·과장들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했더니 전교조가 시민단체 얘기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시민단체 대표들도 포함시켰습니다. 국·과장 7명과 시민단체 전교조 한국교총 위원 8명을 합해 심사위원회를 구성했지요. 전교조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고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결국 그들 의사대로 위원회를 구성해 부결시켰습니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한완상 교육부 장관과 문용주 교육감을 불러 따졌죠. 우여곡절 끝에 재심사를 해 2002년 5월말 승인을 받고 2003년에 학생을 받았습니다. 부랴부랴 기숙사와 멀티미디어 강의동 설계를 해 9월부터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곧 겨울이 닥쳐 해가 빨리 지고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미장을 하면 시멘트가 그대로 얼어붙을 정도였죠. 전체 건물에 보온 포장을 씌우고 열풍기 30대를 틀어 15∼20℃를 유지하면서 공사를 마쳤습니다.”
-전교조가 자립형 사립고에 대해 ‘귀족학교’라고 비난하는데요.
“전교조는 교육은 평등해야 한다는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업료를 비싸게 받고 전국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하는 학교는 자기들 사상과 안 맞는 거죠. 전교조가 교육부의 정책을 대부분 비판하면서도 평준화 정책은 강력히 지지합니다. 한달 수업료가 30만~40만원인데 그게 무슨 귀족학교입니까. 생활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장학금도 주고 있습니다. 포항제철고와 광양제철고는 일반학교 수준의 등록금만 받습니다. 일종의 사원자녀 학교죠.
저희 학교는 1년 수업료와 육성회비를 합해 400만원 정도 됩니다. 한달에 30만원 조금 넘는 거죠. 그러나 상산에 다니면 거의 과외비가 안 드니까 실제로는 오히려 부담이 줄어든다고 하는 학부모들도 있습니다. 한달 과외비로 100만원 넘게 지출하는 집도 있지 않습니까. ‘귀족과외’를 막기 위해서라도 내실을 갖춘 공교육 기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교조는 임금, 근무조건을 놓고 활동을 해야지, 교육정책이나 학교 운영에 관여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홍 이사장은 8년 동안 사립중고교 법인협의회 회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있다.
-사립중고교 법인협의회 회장 때 전교조 합법화에 일관되게 반대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서 전교조를 합법화해줬지요. 상산고 교사들 중 전교조에 가입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데, 아직도 ‘전교조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교원노조법에 교원노조 가입으로 인해 어떠한 불이익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사장이나 교장이 전교조 가입하지 말라고 하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세 가지 교직관(敎職觀)이 있습니다. 첫째 성직(聖職), 둘째 전문직, 셋째 노동직입니다. 산업화 이후 전문직이 노동직화하는 경향이 있긴 하죠.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처음에 선발할 때부터 교직관을 고려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굳이 노동운동 해가면서 고쳐야 할 것이 없는 학교여서 그런지, 아무튼 교원노조 만들 생각을 안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문화전통에서 교사는 노동자가 아닌 스승입니다. 국가에서도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 보수 근무조건 인사 예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원노조가 허용돼 스승으로서의 권리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동시에 확보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특수성으로 봐서 교원만은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교사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스승으로서의 권한은 포기해야 합니다. 일반 노동현장처럼 고용계약제, 정리해고, 무노동 무임금도 함께 받아들여야죠. 교원은 62세까지 정년을 보장받고 특별법상 공무원보다 나은 보수를 받게 돼 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려면 스승으로서의 예우와 권한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교조가 단체행동권까지 다 가져가도 좋지만 그렇다면 학교 경영자에게도 기업경영자와 같은 권한을 달라 이겁니다.”
어디까지나 전교조 반대론자로서의 논리다. 선진 외국에도 교원노조가 없는 나라는 없다. 교사를 노동직으로 보지 않는 보수적인 학교 경영자의 시각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전교조가 정부와 학교재단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종국에는 합법화되지 않았습니까. 교단에서 전교조가 일부 교사들의 지지를 받으며 회원수를 늘려가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전교조 교사들 중에는 정말 교육자적 양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지방도시에 올 때 학생들이 동원돼 길가에서 태극기를 흔들었죠. 뜻 있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왜 수업 빼먹고 대통령 환영행사에 나가느냐고 반대했습니다. 좋은 생각 아닙니까? ‘나도 직업인인데 이 봉급 가지고는 못 살겠다’는 주장을 전교조를 통해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사들은 전교조라는 울타리 없이는 신분이 불안해질 수도 있죠.
그러나 개중에는 이념적으로 좌편향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합해져 전교조라는 조직으로 나타난 것이죠. 전교조 안에서도 연가 내고 민주노총 모임에 참여하는 데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2005학년도 타도 학생 60∼70% 예상
이현구(62) 상산고 교장은 30년 동안 서울대 교수로 봉직했고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과 부총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3월 서울대 수학과 4년 선배인 홍 이사장의 부탁을 받고 전주로 단신 부임했다. 부인(정재명·서울대 수학과 교수)은 서울 신대방동에서 어머니와 두 딸과 함께 산다.
“자립형 사립고는 기존의 틀에 박힌 교육이 아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가지고 교육을 하는 거라 교장은 고교교육뿐 아니라 대학교육까지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에서 학위를 하고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 교장과는 31년 동안 알고 지냅니다. 교수들의 선출로 자연과학대학장을 했고 부총장 총장직무대행까지 했습니다. 일의 완급이나 경중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학생 가르치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구별이 필요하겠습니까. 우수한 고등학교에서 훌륭한 인재를 기르고 싶다는 그의 소망과 들어맞은 거죠.”
미국의 명문 사립고는 대개 학생이 학교에서 생활하며 공부하는 보딩 스쿨(boarding school·기숙사 학교)이다. 상산고는 재학생 1065명 중 절반 가량인 528명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한 방에 4명이 기거하고 방마다 샤워실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본래 2명씩 배정할 예정이었으나 이 교장이 소년시절에 호강하면 인생을 그르치기 쉽다고 고집해 4명으로 늘렸다고 한다.
-기숙사 학교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성장환경과 출신지역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뒹굴다 보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정신이 성숙됩니다. 요즘은 대부분 독자(獨子)여서 집에 돌아가면 방문 닫고 혼자 지내게 되죠. 응석받이에서 벗어나 규율을 지키며 인격이 자라납니다. 통학에 낭비되는 시간도 줄어들고요. 면학분위기에 흠뻑 젖은 학풍을 가진 학교에서는 서로 격려와 자극이 됩니다.”
상산고의 경우 전라북도가 아닌 지역에서 입학하는 학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 1기인 2학년은 전체의 36%, 1학년은 48%가 타시도 학생이다. 경상도에서 온 학생도 15명이나 된다. 서울의 강남 목동과 분당 일산의 학원가에 ‘상산고반’이 생길 정도로 학교가 유명세를 타면서 2005학년도에는 타시도 학생의 비율이 60∼70%에 이를 것으로 학교측은 예측한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도 초청특강
-출신지역이 다른 학생들이 서로 잘 어울리나요?
“같은 지역 학생이 한 방에 몰리지 않도록 방 배정을 합니다. 기숙사 사감에게서 들은 이야긴데 부산 학생의 학부모가 룸메이트를 모두 초청해 같은 방 학생들이 주말에 부산을 다녀온 적도 있답니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잘 어울립니다. 타 시도 학생 비율이 70% 정도 된다면 서울에서 지방으로 공부하러 내려오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겁니다.”
-내년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기숙사 시설이 부족하겠군요. 타 시도 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숙사 입주자의 30%는 시험을 봐서 성적우수자로 채우고 나머지는 원거리 중심으로 뽑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서울 부산에서 온 학생은 다 들어가야죠. 자립형으로 바꾸면서 기숙사 강의동 새로 짓고 시설 보완하는 데 욕심을 냈습니다. 교실마다 팬코일 시스템으로 냉난방을 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120억원이나 들었습니다. 지금은 ‘수학의 정석’ 판 돈만으로는 안 돼 옛날에 벌어놓은 것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상산고는 조경협회가 선정한 한국 조경 백선(百選)에 소개될 만큼 캠퍼스가 아름답다. 2만여평인 상산캠퍼스에 들어가보면 은행 매화 감 모과 장미 모란 영산홍 백일홍이 철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관상어들이 뛰노는 4개 연못과 500여그루 소나무가 한국 정원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18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강의실 2개는 대학교수가 특강을 할 때 사용한다. 똑같은 강의를 12반 돌아다니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 황우석 최재천 서울대 교수가 초청돼 특강을 했다.
“황우석 교수가 강의할 때였는데, 연구소에서 소가 새끼를 출산하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불러서 빔 프로젝트로 쏘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더군요. 막 태어난 송아지의 가슴이 벌렁벌렁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니까 교육효과 만점이었죠.”
“돈 있어야 교육이 된다”
-사립학교를 국가지원 없이 혼자서 끌고 나가다 보면 부담이 크겠습니다. 서울 명문대의 경우 독지가들이 나서 건물을 지어주고 기증자의 이름을 붙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고등학교로 확대되면 좋을 텐데요.
“고등학교까지는 아직 그런 문화가 안 내려왔죠. 학교발전기금이 1억원 가량 모였습니다. 이 교장이 1000만원을 냈고 광주 학부모 4명이 10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혼자서 2000만원 낸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자립형 사립고는 3년 동안 시범운영을 한 뒤 평가를 거쳐 확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요. 지난 2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우선 돈이 있어야 교육이 됩니다. 합리적인 재정확보 방안이 마련돼야 합니다. 자립형 사립고는 정부 보조금이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습니다. 학생이 내는 수업료하고 법인 지원금이 전부인데 수업료는 일반 고교의 3배 이내로 묶여 있습니다. 법인이 20%를 내게 돼 있고요. 자립형을 제대로 하자면 이 돈으로는 형편없이 부족합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든가, ‘3배 이내’라는 제한을 풀어줘야죠.”
-일부 사학에서 교수와 교사를 돈 받고 채용해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사례도 더 있을 텐데요…
“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과거 사회문제화하면서 호되게 당한 학교들이 있었습니다. 돈 받고 채용한 교사를 나중에 내보내려다 양심선언을 하는 바람에 교장 이사장이 형사처벌되고 망신당하고…. 제대로 평가를 안 하고 정실 채용을 하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금품수수에 의한 채용은 없을 겁니다.”
-상산고는 교사 채용을 어떻게 합니까.
“신문과 인터넷에 교사 초빙공고를 냅니다. 기존 교사들에게도 좋은 선생을 발굴, 추천하라고 권유합니다. 1차로 서류심사를 하고 합격자에 한해 면접을 합니다. 이사장도 면접에 참여합니다. 면접을 통과한 사람에겐 수업을 시켜봅니다. 해당 과목 선생이 모두 참관해 의견을 말합니다. 결론이 거의 일치해요.”
상산고에는 미국 버클리대, 브라운대 등 명문대 출신의 원어민 교사도 5명 있다.
‘송무백열(松茂栢悅)’과 ‘진기(盡己)’
상산(象山)은 본래 그의 아호다. 고향 정읍 태인 근처 상두산(象頭山)에서 따왔다. 상두산은 멀리 위에서 보면 꼭 코끼리 머리같이 생긴 산이다. 남성고 은사인 장순하 교사가 ‘두’ 자를 빼고 호로 지어줬다. 그러나 학교를 설립해 법인명을 상산학원, 학교 이름을 상산고라 짓고 나니 상산을 호로 계속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쓰지 않는다.
-교육혁신위원회에서 법인 이사회에 지역사회 인사와 학부모 대표를 일정비율 이상 참여시키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더군요.
“설립자가 건학이념을 정립해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땅도 사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합니다. 사재를 내놓고 건학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경영권이 필요합니다. 만일 그 사람들을 사립학교 예산심의에 참여시킨다고 해봅시다. 학교예산 심의하다 5억원 모자라면 그 사람들이 내놓을 겁니까. 아니면 이사장 보고 얼마 내놓으라고 결의할 겁니까. 상식에 맞지 않는 논리로 규제해서는 안 됩니다.”
-전교조와 일부 시민단체에서 법적으로 자문기구인 사립학교 운영위원회를 심의의결기구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요.
“이해찬 교육부 장관 시절에 초중등 교육법을 개정하면서 사립학교의 운영위원회를 심의의결기구로 만들려다 사립학교 법인들의 반발에 부딪쳐 자문기구로 바꿨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운영위원회가 자문기구라면 합헌이지만 심의의결기관이라면 이사회의 권능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는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에서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인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집안 형편이 기울기 시작했다. 부친 홍수표(1900년생)씨는 서울 중동중학교 1회 졸업생으로 남성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던 운재(芸) 윤제술(尹濟述·국회부의장을 지냄)씨와 동기동창이었다. 그가 전주고에 진학하지 않고 익산 남성고에 들어간 것은 기차통학을 할 수 있고 교장이 부친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태인에서 신태인까지 8km나 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 다시 통학열차를 타고 1시간 넘게 달려 익산역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비를 만나면 흠뻑 젖었다가 열차에서 사람들의 체열로 말렸다. 익산역에서 학교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20분 가량 걸렸다.
장마철이나 겨울에는 친구 자취방에 끼여들어 신세를 지거나 담임교사의 소개로 가정교사를 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3년 동안 통학 자취 하숙을 꼬박 15차례 옮겨다녔다.
“학교에 들어갈 때 아버지 손 잡고 교장실에 들어가 인사를 한 뒤로 졸업할 때까지 운재 선생님을 한번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어요. 국회부의장을 지낸 뒤 정계를 은퇴하신 후에야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서 뵌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자주 집으로 부르셔서 부자의 연을 맺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습니다. 언젠가 찾아뵙고 남성고 동기생 중에 국회의원과 장군이 나왔다고 자랑했더니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하더라는 뜻이죠.”
운재는 어렸을 때 한학을 하고 도쿄사범 영문학과를 졸업해 동서양의 학문에 능했다. 서예가 일품이어서 지금도 그의 작품을 찾는 애호가들이 많다. 상산고와 홍 이사장 집에 운재의 글씨가 많다. 운재가 써준 ‘진기(盡己)’는 홍 이사장의 좌우명이다. 자기를 다하라는 뜻이다.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친구가 잘 되면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친구 잘 되는 것이 별로 기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마흔을 넘어서면서 송무백열이 됐습니다. 친구가 잘 되면 그것이 다 내 울타리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송무백열은 젊었을 때는 안맞는 것 같아요.”
“나는 완벽주의자”
그는 1979년 고향 태인에 부친의 호를 딴 명봉도서관을 설립했다.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 2000만원에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탰다. 당시 5000만원이면 될 줄 알았던 공사대금이 자꾸 욕심을 내다 보니 2억원이나 들었다. 시골 도서관이지만 사서와 관장도 있고 1000평 규모의 정원도 꽤나 아름답다.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김대중씨와 이철승 김재광 신도환씨 같은 사람들이 신민당을 만들었을 때 그에게도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기회가 왔다. 계보별로 전국구 의석을 나눠가졌다. 그야말로 전국구(錢國區)였다. 그에게는 전국구 1번 제의가 있었다.
“청진동의 ‘가원’이란 음식점에서 유력 정치인으로부터 직접 권유를 받았습니다. 당선권 내의 번호를 받으려면 당에 5억원을 내고 계보에 2억원을 내야 했어요. 처음엔 안하겠다고 버티다가 오늘 저녁 생각하고 내일 얘기하자며 자리를 끝냈습니다. 나오려는데 그 집 마담이 붙잡더군요. 작은 술상을 들고와 무릎 꿇고 앉더니 ‘부탁이 하나 있다’는 거예요. 내가 무슨 얘기냐니까 ‘정치 하지 마세요’ 그러더라고요. 유진산씨 때부터 안 모셔본 정치인이 없지만 정치인의 말로가 좋지 않다는 말도 했어요.
내가 정치를 안한 이유는 ‘수학의 정석’ 때문이죠. 내가 정치로 가면 책 쓸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내 자식 같은 놈인데 말이죠. 이건 내가 죽는 날까지 고치고 다듬어야 할 책입니다. 나 아니면 이런 책 못 쓴다는 자부심도 있었죠. 그 전에도 국회의원 할 기회가 있었어요. 김원기 국회의장이 정읍에서 처음 공천 받을 때도 내가 주변의 권고를 사양 안했더라면 아마 결과가 달라졌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치 안하길 잘했어요. 평생 어려운 결정 가운데 하나가 정치 안한 것인데 참 잘한 결정이라 생각해요.”
그는 교육부에서 대학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라는 권유를 받은 적도 있다. 전주대가 운영난에 처했을 때 교육부에서 그에게 인수를 권유했다. 전라북도에 있는 대학이니 교육계 인사로 재력 있는 전북인이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절했다. 이전에도 대학 설립을 권유받은 적이 있지만 그는 대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완벽주의자입니다. 내 돈으로 잘할 수 있고 가능한 일만 하려고 합니다. 무리하게 하다 보면 정부 지원을 받거나 변칙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립자가 재정난 때문에 학교를 뺏기게 됐는데 그걸 얼씨구 좋다 하고 가져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구요. 고등학교 참고서를 팔아 부를 쌓았으니 고등학교에 환원을 해야죠. 학문하는 쪽보다는 인성교육을 해보고 싶었어요.”
한국학생 수학 실력, 깊이 떨어져
-외국 학생들과 비교해보면 한국학생들의 수학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던데요.
“고등학교만 놓고 볼 때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그러나 깊이에서는 우리가 떨어져요. 수능 자체가 쉽게 출제될 뿐만 아니라 본고사가 없어져 학생들이 깊이 생각하고 따지는 문제들을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일본 도쿄대 시험문제와 비교해보면 우리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그러나 수학올림피아드에서는 일본보다 성적이 좋아요. 소수정예를 선발해 올림피아드 시험 출제경향에 맞춰 특수지도를 하니까요. 방학 때 집중적으로 선수를 길러 내보내는 겁니다. 옛날 공산권에서 올림픽 내보내 메달 휩쓸어가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죠. 그러니까 거기서 성적이 좋은 것하고 우리나라 전체의 수학성적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수학에 소질이 없는 인문계 쪽 사람들 중에는 수학이라면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흔드는 사람들이 많다.
“첫째 책을 잘 골라야 합니다. 둘째 자기 분수에 맞게 학습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셋째 눈으로 읽지 말고 종이에 직접 써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계산 속도도 빨라지고 정확해집니다. 그리고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이해력도 길러집니다. 눈으로 쫓아다니거나 귀로 듣는 방법으로 수학공부를 하면 실력이 크게 향상되기 어렵습니다. 넷째 자기 힘으로 풀어야 합니다. 다섯째 예습 중심의 학습방법을 써야 합니다.”
홍 이사장의 진돗개 기르기는 취미의 단계를 훨씬 넘어섰다. 과천에 양견장을 지어놓고 진돗개를 100여마리 기른다. 홍 이사장 집에 6마리, 학교에 7마리, 명봉도서관에도 4마리가 있다.
“진돗개를 집에서 길러보니 영리하더군요. 자기 몸을 깨끗이 관리하고 주인한테 충성심이 강합니다. 사냥도 잘합니다. 상산고 졸업식장에서 보니까 졸업생들이 예전처럼 옥편과 사전을 부상으로 받더라고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부상으로 개를 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죠. 생명존중과 동물애호 정신도 기를 수 있구요.
상 받을 학생이 아파트에 산다든가 개를 무서워하면 안 되니까 신청을 받아서 주기 시작했습니다. 100명 신청하면 80명만 주고 20명은 일부러 안 줘요. 신청하는 대로 다 주면 애들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모르니까요. 진도개 동아리 지도교사가 불러서 성적이 오르면 주겠다는 조건을 달고 줍니다. 학생들에게 줄 개가 부족해서 전국 돌아다니며 좋은 개를 골라 계속 번식시켰습니다.”
천연기념물 53호인 진돗개는 내년 세계축견연맹(FCI)의 공인을 받는다. FCI는 가공인을 해놓고 10년 동안 지켜보고나서 최종적으로 공인을 해준다.
“일본은 3종의 토종견을 공인받았습니다. 지난 5월 한국애견연맹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FCI 임원들을 우리 농장에 데리고 가 가든파티를 해주고 과천 양견장을 보여줬습니다. OK를 연발하더군요. 내년에 공인받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국에서 개 전람회가 있을 때 나갈 수 있고 혈통서를 인정받아 수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진돗개를 기른 뒤부터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졸업생 副賞으로 진돗개 선물
-건강은 어떻게 챙깁니까.
“나는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계속 머리를 쓰면서 긴장 속에서 사는 것이 건강유지법입니다. 부모한테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혈압도 정상이고 당뇨도 없고, 혈액검사 소변검사 결과도 이상 무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정윤철 박사(국회 의무실장)와 가끔 상담하면서 아스피린, 비타민, 콜레스테롤 제거제를 상복(常服)하는 것이 유일한 건강관리법이다.
홍 이사장은 1남4녀를 두었다. 아들 상욱은 성지출판주식회사 사장, 학교법인 상산학원 이사로 부친의 육영사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셋째딸 재현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고등과학원 연구원으로 있다가 미국 버클리대 수학과로 더 공부하러 갔다. 사위 이창형은 서울대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LG에서 컴퓨터 계통의 일을 하다 그만두고 홍 이사장의 저술 작업을 도왔다. 지금은 딸과 함께 버클리에서 공부를 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독자를 확보한 ‘수학의 정석’은 저자 쪽에서도 세대를 물려 전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