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하루 살기
구순의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육 남매가 모두 떠난 집에서 홀로 계신다. 내가 처음 시댁을 갔을 때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지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아이처럼 신기해서 아궁이에 쪼그리고 앉아 놀이하듯 밥을 짓던 철부지 새댁이었다. 시집가서 한두 해 지나고 시골집을 새 식구에 맞춰서 개조해주던 신식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단발머리에 귀걸이까지 한 신여성이었다. 할머니가 시집올 때 양장에 양산까지 쓰고 나타나서 시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후로 새마을 지도자 부녀회 여성협회에서 꾸준히 일하셨다. 할머니는 담배 가게를 하면서 사랑채는 동네 사람들 사랑방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동네 슈퍼였다. 인심 좋고 성격 활달한 할머니는 음식을 넉넉히 장만해서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불러서 대접하는 여장부였다. 구순이 다 되어가도록 게이트볼 대회에 참석하며 노익장을 자랑하셨다. 홀로 계시면서 몸이 갑자기 안 좋으면 119를 부르거나 택시를 불러서 병원에 다니셨다. 자식들 걱정한다고 어지간한 일은 혼자 해결을 하셨다. 할머니는 딸 넷에 아들 둘 육 남매를 두셨지만 서너 명을 잃었다고 한다. 과연 절대 자궁 권력자다.
딸이 많은 집은 언제나 웃음꽃이 핀다. 구순의 할머니는 코로나로 인해서 외출이 어렵고 성당이나 게이트볼을 할 수 없다보니 몸이 굳어서 다리와 허리가 아프다. 호랑이처럼 위풍당당한 모습 대신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다. 좋아하는 육류도 치아가 시원치 않으니 드시지를 못한다. 곰탕이나 설렁탕 국물에 밥을 말아서 드신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할머니는 자식에게 지극정성이다. 얼마 전까지도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었다. 손맛이 좋고 손도 커서 음식이 넘쳐났다. 바리바리 싸주던 할머니는 이제는 마음뿐이라며 속이 속이 상한다,
막내아들이 전자레인지를 사다 드렸다. 밥솥에 밥을 하는 게 불편하면 햇반을 데워서 드시라고 자식들이 마음을 냈다. 사용법을 알려드리지만, 할머니는 알았다고만 하신다. 밥솥에 밥을 지어서 드실 것 같다. 국물 있는 것을 몇 상자 사다 드렸다. 냄비에 잠시만 데워서 드시면 된다. 맛있다고 드시는 것을 보면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텃밭에 심어놓은 취나물 도라지 두릅을 형제들이 모여서 놀이처럼 땄다. 담자락에 심어놓은 나물이 제법 여러 가지다. 쑥 돌나물 달래 쪽파 머위 나물 참죽나물을 뜯으면서 할머니랑 하루를 보냈다. 고희가 넘은 맏딸과 오십을 바라보는 막내아들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할머니가 오래도록 집을 지키고 계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