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새소식] <인터뷰> 볼라드 재설치 캠페인 나선 곽남희, 이해성 씨
<인터뷰> 볼라드 재설치 캠페인 나선 곽남희, 이해성 씨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그것을 잘 나타내는 것 중 하나가 ‘볼라드(bollard)’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구간에 설치하여 위험으로부터의 위협을 억제하는 최초의 방어선 역할을 한다. 정박해 있는 배의 위치를 고정하기 위해 밧줄을 매어놓는 말뚝인 계선주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에게 볼라드는 때때로 안전이 아닌 위협이 되기도 한다. 흰지팡이로 보행하다 높이가 낮고 석재로 된 볼라드를 인지하지 못해 넘어지는 일은 한 번씩 겪는 통과 의례와도 같다. 이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성음회는 안전한 보행을 위해 볼라드 캠페인을 진행, 가시적인 성과를 얻은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시각장애인 사이에서 다시금 ‘볼라드 재설치를 요청하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곽남희(남, 26세, 시각장애 1급) 씨와 이해성(남, 19세, 시각장애 1급) 씨가 그 주인공이다.
* 위협적인 볼라드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난 7월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자유게시판에 볼라드 재설치 캠페인에 동참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곽남희 씨로 캠페인의 홍보를 맡고 있다. 한편 개선 건의안을 작성한 사람은 이해성 씨로, 현재 온라인을 중심으로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그들이 볼라드 캠페인을 펼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이해성 씨는 그 계기를 ‘보행사고’라고 소개했다.
“아는 지인이 덕소역 근방에 있는 볼라드 때문에 팔을 다쳤어요. 지팡이를 짚어도 인지하지 못했대요. 하필이면 재질이 콘크리트라서 좀 심하게 타박상을 입었죠. 그 얘기를 들은 게 캠페인의 발단이 됐어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른 볼라드 설치 규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해 높이는 80~100cm, 지름은 10~20cm, 볼라드와 볼라드 사이의 간격은 150cm 내외를 준수해야 한다. 다음으로 보행자와 충돌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충격 흡수 재료를 사용하고 자동차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설치해야 한다. 또한 시각장애인이 감지할 수 있도록 볼라드 30cm 전면에 점자블록을 설치하고 반사 도료를 사용해 식별이 용이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2006년 관련 규정이 마련되기 전에 설치된 볼라드는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시각장애인에게 볼라드는 거리의 암초와 다름이 없다. 이해성 씨가 작성한 청원서에도 볼라드의 재질 변경, 높이 상향 조절, 점자 유도블록 위에 설치된 볼라드의 위치 변경과 같은 사안을 제기하고 있다.
“시청에다 민원을 넣을까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 볼라드가 제가 사는 곳에만 있지는 않을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기왕 할 거면 규모를 크게 키우자 고 생각했죠(웃음).”
그는 서울맹학교 용산캠퍼스에서 이료과정에 재학 중이다. 사실 민원만 제기하고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청원서를 작성하고 요청 사항을 꼽은 후에 서울맹학교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바로 곽남희 씨다. 곽 씨는 후배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 권익이란 스스로 찾는 것!
곽남희 씨는 종로구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처음 후배의 요청을 받았을 때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망설임은 지극히 짧았고, 기꺼이 캠페인 홍보를 맡기로 했다. 곽 씨가 볼라드 재설치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한 이유는 그 일이 권익 옹호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꼭 거창할 필요는 없죠. 일상의 사소한 불편을 덜고자 노력하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이 되는 것, 그게 권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넓은마을 게시판에 홍보문 게시 외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캠페인 참여를 부탁하는 등 홍보에 힘쓰고 있다. 현재까지 서명 동참은 약 80여 건이다(8월 7일 기준). 500명에 다다르면 청와대와 국민신문고에 청원할 계획이다.
“넓은마을 댓글을 보면 지지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접근이 어려워 곤란해 하는 분도 계세요. 최대한 이용하기 편한 곳을 선정했는데, 그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서명을 위해서는 구글서명링크 및 제안게시판에 접속해 필수 내용을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가운데 그 과정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어 간혹 문의가 오곤 한다. 정보접근 문제가 볼라드 재설치 캠페인의 가장 큰 난제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런 어려움을 넘어 서명에 동참해 주는 분들이 있어 힘이 솟는다.
“권익이라는 건 누가 주길 바라며 기다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볼라드 재설치를 정말 필요로 하고 원한다면 시각장애인 스스로가 직접 나서서 외치고 찾아야죠.”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와 여러 장애인기관의 노력으로 위험 볼라드의 수량은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그 작업이 지속적이지 않고 정기적인 단속도 이루어지지 않아 설치 규정을 모두 준수한 볼라드는 드문 편이다.
임의로 서울 지역 몇 곳을 살펴본 결과, 왕십리 뉴타운 제3구역 아파트단지에 설치된 볼라드를 제외하고는 최소 1개 규정을 위반한 볼라드가 다수였다. 가장 위반율이 높은 사항은 점형 블록 설치 항목이었다.
정보접근의 어려움에도 많은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서명에 동참하며 볼라드 재설치 캠페인을 지지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볼라드 사고를 이번에야말로 근절하기 위함이다. 곽남희 씨와 이해성 씨, 그리고 전 시각장애인들의 노력이 빛을 발할 그날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2018. 9. 1. 제10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