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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조르주 로덴바흐의 소설 <죽음의 도시 브뤼게>
대본 파울 쇼트
초연 1920년 12월 4일, 함부르크와 쾰른 두 도시에서 동시 초연
배경 19세기말 벨기에의 브뤼게
<2001 프랑스 린 국립오페라극장 / 145분 / 한글자막>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린 오페라 합창단 연주 / 얀 라탐-쾨니히 지휘 / 잉가 레반트 연출
파울...........브뤼게에 사는 남자...........토르스텐 케를(테너)
마리에타.....무용수............................안젤라 데노케(소프라노)
마리...........파울의 죽은 전처..............안젤라 데노케(소프라노)
프랑크........파울의 친구.....................유리 바투코프(테너)
브리기타.....파울의 가정부..................브리기타 스벤덴(메조 소프라노)
프리츠........피에로로 분장한 무용수.....스테판 겐츠
빅토린........무용단의 무대감독............크리스티안 바움게르텔
줄리에트.....무용수............................바르바라 바이에르
루시엔........무용수............................줄리아 외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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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내지해설 / 박종호>
벨기에의 아름다운 브뤼게에 사는 파울은 사랑하는 아내 마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잊지 못하여 집에 마리의 금발과 유품들을 전시해놓는 등 과거에 집착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런 그 앞에 죽은 아내와 꼭 같이 생긴 마리에타가 나타난다. 그는 단번에 그녀에게 반하여 그녀를 쫓아다니고, 결국 파울은 마리에타와의 사랑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고, 그는 죽은 마리에 대한 사랑과 마리에타를 혼동한다. 마리에타는 자신은 마리가 아니라면서 마리의 유품들을 부수고, 이에 파울은 그만 그녀를 죽이고 만다. 마리에타는 정말 마리와 같아진 것이다. 살은 자는 죽은 자와는 지상에서 만날 수 없다. 파울의 사랑의 꿈은 다 파괴되었다. 그는 죽음의 도시 브뤼게를 떠난다.
=== 프로덕션 노트 === <내지해설 / 박종호>
아직까지도 다른 영상물이 거의 나와 있지 않은 상태이니, 이 <죽음의도시> 영상물은 이 오페라의 표준적인 영상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영상이지만 이것은 그 연주의 수준으로나 연출의 수준으로나 절대적으로 아주 뛰어난 프로덕션이며 어느 정도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공연이라고 감히 단정짓고 싶다.
린 국립 오페라 극장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지대에 있는 도시 스트라스부르의 극장 이름이다. 이곳은 큰 도시는 아니며 오페라 공연이 잦지도 않지만, 이 영상물 등으로 보아도 상당한 수준의 오페라 공연이 올려지는 곳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비록 프랑스 땅이지만 그 유명한 알사스-로렌 지방의 수도로서, 한때 독일령이었으며 지금도 바로 지척이 독일로서 독일의 문화에 아주 익숙한 지역이라고 할 수있다. 그리하여 독어로 공연되는 이 오스트리아 작곡가의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연주는 대단히 뛰어나다.
연출가 잉가 레반트는 이 작품이 가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나아가서 광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데 성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무대에서는 1막의 파울의 집이나 2막의 브뤼게 시내의 광장이나 그 어느 것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고 어둡게 묘사되고 있어서, 마치 E.T.A. 호프만 식의 환상적 낭만 세계 속으로 관객들을 데리고 들어간다.
연출의 가장 큰 특징은 친구인 프랑크가 주교가 되어서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대목이다. 원작에 따르면 장대한 행렬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 여기서는 대신 땅이 갈라진다. 즉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무대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갈라진 상태에서 일어나는 다음 대목은 당연히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저앉아서 독백을 하는 파울의 모습은 대단히 감동적이며 그동안 관찰자적인 입장에 놓여있던 관객들을 감정이입이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파울의 죽은 아내인 마리가 나타나는 대목은 망원경 속의 그림자, 다시 말하자면 이른 밤 요지경 속의 모습으로 연출되는데, 이 역시 미술적 효과로나 1인 2역을 불러야 하는 가수의 연주상 편리함으로나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여주인공 소프라노와 남자 주인공인 테너 두 사람의 비중이 상당하다. 특히 마리에타의 역할에는 지금 독일쪽 오페라의 해석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맹활약을 하고 있는 소프라노 안젤라 데노케가 나와서 대단한 열창과 열연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지금 오스트리아, 독일 등을 중심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그너, 야나체크 등의 작품에서 최고의 진가를 보이고 있다. 그런 그녀의 예술성이 가장 잘 드러난 공연이 바로 이 린 극장의 <죽음의 도시>이다.
파울 역을 맡은 테너 토르스텐 케를의 음악성과 열정 역시 숙연할 정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친구 프랑크 역을 부른 유리 바투코프도 열연을 한다. 또 하나 이 프로덕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비교적 조연인 하녀 브리기타 역을 무척 캐릭터 있고 인상적으로 소화하여 이 역할의 비중을 더욱 높인 브리기타 스벤덴이며, 프리츠 역의 슈테판 겐즈도 유명한 피에로의 아리아를 잘 부르고 있다.
=== 작품 해설 === <내지해설 / 박종호>
죽음의 도시
죽은 아내를 잊지못하는 남자의사랑과 집착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Erich Wolfgang Korngold(1897 ~ 1857)
벨기에의 아름다운 도시 브뤼게는 15세기까지는 무역과 문화가 함께 번성했던 한자 동맹의 주요 도시였다. 하지만 도시가 쇠퇴하면서 이 도시가 가진 진가와 매력은 물론 도시의 존재까지도 점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이 도시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극소수의 몇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모르는 유럽 가운데의 숨겨진 도시이다. 완벽한 중세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브뤼게는 주변이 운하고 둘러싸여서, 물과 다리와 첨탑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런 브뤼게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다시 사람들의 마음에 추억 저편의 도시로서 점점 아련하게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단 한 편의 소설과 오페라 덕분이었다. 벨기에의 낭만주의 작가인 조르주 로덴바흐(1855~1898)가 1892년에 발표한 소설 <죽음의 도시 브뤼게>는 그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처럼 그려진 도시의 묘사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도시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환기를 하게 만들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가 묘사한 브뤼게는 이러하다. "추억이 샘의 얼굴처럼 다리 아래에서 솟아오르고, 창유리는 죽음을 앞두고 흐려진 눈동자와도 같고, 멀리서 들려오는 카리용의 가냘픈 가락은 아내의 목소리 같으며, 수면에 비친 건물의 박공지붕 꼭대기는 죽음의 감촉을 내뿜고 있었다. 이슬비는 영혼을 찔렀고, 강가의 포플러 나무는 슬프게 탄식하였고, 성당의 높은 탑은 사랑을 조소하였고, 운하의 백조가 날아오르는 모습은 마치 병상의 환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침대를 박차고 뛰쳐나가는 것만 같았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었기에 작가는 이렇게 아름다운 중세 도시를 이토록 비탄을 안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까? 왜 그는 브뤼게를 죽음의 도시로 묘사하였을까? 너무나 사랑하였지만 이제는 죽고 없는 아내를 잊지 못하는 한 사내의 애도와 그리움과 집착과 광기가 환상적으로 소설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이렇게 유럽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이 도시에 대한 묘사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는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에 의해서 20세기의 가장 독특하고 환상적이며 매혹적인 오페라로 환생하였다. 1920년 12월 북독일의 함부르크와 쾰른이라는 두 도시에서 동시에 초연되는 기록을 세운 이 오페라는 당시 20세기 오페라계에 새로운 자극과 감동을 선사하는 주목할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잊혀지지 않는 아름답고 슬픈 사연, 세련된 구성, 감각적이고 깊은 내면의 묘사, 그리고 현대적이면서도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뿌리내린 단단한 작법, 사람의 마음에 쉽게 다가오는 멜로디들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 오페라 <죽음의 도시>는 당시 불과 23세의 젊은 나이였던 작곡가 코른골트에게 영원한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 되었다.
그후 코른골트는 몇몇 다른 오페라들을 작곡하였지만, 그의 명예는 오직 <죽음의 도시>에서 얻은 것이었고 그 이상의 영광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유태인이었던 코른골트는 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1934년 미국에 도착한 최고 수준의 오스트리아 작곡가를 반긴 것은 바로 헐리웃의 영화계였다. 유럽에 몰아닥친 나치 세력의 폭풍과는 아랑곳없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당시의 미국 영화계는 제대로 된 영화음악을 선사하게 될 수준높은 작곡가를 환대하였다. 그가 처음 만든 영화음악은 1935년 같은 오스트리아에서 건너간 대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가 감독을 맡았던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서, 여기에 코른골트는 멘델스존의 음악을 편곡하여 멋지게 삽입하였다. 그 후로 그는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하면서 영화 음악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로스엔젤레스를 중심으로 명예와 안락한 생활을 동시에 얻었음은 물론이다. 이어 코른골트는 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의 음악을 맡아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헐리웃에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이어서 영화 <엘리자베스와 에섹스의 사생활>(1939)과 <바다 독수리>(1940) 등으로 연이어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로 지명되는 등 헐리웃을 대표하는 영화 음악인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영화계에서 이름이 알려지는 동안에 오페라 작곡가로서 코른골트의 이름은 유럽 클래식 애호가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코른골트는 당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소속이며 지금은 체코 공화국의 주요 도시인 브루노에서 유태인의 가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동화한 유태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평론가 율리우스 코른골트로서,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런 그를 본 구스타프 말러는 그에게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에게 음악을 배우라고 권유하였고, 조언대로 코른골트는 쳄린스키와 로베르트 폭스 등으로부터 수준 높은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로 발레음악 <눈사람>을 작곡하였고, 이 곡은 그가 13세 때에 빈 궁정극장에서 공연되는 기록을 세운다.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모두 10대 소년 코른골트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는 빈에서 모차르트 이후에 처음 등장한 진정한 음악 천재로 일컬어졌다.
코른골트의 작곡 세계는 브람스와 바그너의 작풍을 완전히 소화하여 독일-오스트리아 낭만음악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쳄린스키 등의 당대 음악을 잘 흡수하고 있었다. 다만 20세기의 작곡가이면서도 쇤베르크나 베르크, 베베른 같은 신 빈 악파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데, 이 점이 바로 코른골트의 오페라가 20세기 오페라치고는 비교적 관객들에게 친근함을 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격조를 지키고 있는 그의 작풍은 20세기의 낭만주의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코른골트의 음악 세계에서 또 다른 중요한 한 분야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에 천착했던 영화 음악인데, 이것은 그를 평가함에 있어 논란의 부분이 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들은 지금 영화음악의 고전으로 불리고 있고, 헐리웃 영화음악이 이만큼 발전한 점에 코른골트의 기여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코른골트는 1949년 자신의 음악적 고향인 빈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다시 두 편의 오페라와 몇 개의 기악곡들을 빈의 무대에 올리지만, 빈은 이제 더 이상 그를 제2의 모차르트로 봐주지는 않았다. 도리어 이후 그의 만년의 작품들은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그는 다시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고, 1957년 결국 빈이 아닌 헐리웃의 땅에서 파란만장한 음악가로서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코른골트는 잊혀져 갔고, 더불어 브뤼게라는 도시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그러다가 1970년 후반부터 점점 코른골트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영화음악에서뿐만 아니라 클래식에서 더욱 그러하였으니, 그것은 마치 클래식이나 오페라 팬들에게는 잃어버린 추억을 되살려주는 듯한 그런 고마움과 감동이었다.
그중에서 최근 들어 많이 공연되는 그의 작품들은 바로 바이올린협주곡을 비롯한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노 3중주곡, 피아노 협주곡 등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게 된 작품은 단연 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이다. 21세기에 들어서야 이 오페라는 다시 한번 세계 오페라 극장의 인기 레퍼토리로 부활하고 있는 중이다.
<죽음의 도시>는 너무나 사랑하던 아내가 죽자 아내를 잊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부인과의 추억 속에서만 살아가는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이다. 이 오페라에서는 인간의 정신적인 그리움과 성적인 욕망을 교묘하게 접합시켜서 아주 세련되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희망과 좌절과 고통을 이렇게 멋지게 그려낼 수 있을까?
오페라로서의 <죽음의 도시> 공연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음악만이 아니라 미술이 절묘하게 조화되어야 하며 연출가의 상상력과 연출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브뤼게의 분위기는 오페라의 감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이 역시 중요한 요소로서, 연출, 무대미술, 의상 등을 통하여 최적의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3 / 박종호> ★★★
연출가 잉가 레반트는 이 작품이 가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광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데 성공했다. 그 어느 것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은 없으니, 모두 비현실적이고 어둡게 묘사되어 환상의 세계 속으로 관객들을 끌고 들어간다. 특히 프랑크(유리 바트코프)가 주교가 되어서 나타나는 대목이나 바닥이 갈라지는 피날레 등은 천재적이다. 앙겔라 데노케(마리에타, 마리 역)는 대단한 열연과 열창을 보이고 있으며, 토르스텐 케를(파울 역)의 음악성과 열정 역시 숙연할 정도다. 다른 조역들도 각기 개성적인 캐릭터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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