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vid Dickson(1583-1663), 민성기 역, 『오류를 극복한 진리의 승리 데이비드 딕슨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주석』 (서울: 제네바 아카데미, 2009). 72-75.
질문 V. “주 예수님께서 영원한 영을 통하여 단번에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그의 완전한 순종과 그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것은 그의 아버지의 공의에 충분한 만족이 되었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속죄의 일부가 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우리의 환경 가운데 이행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일부의 다른 정통주의자(otherwise orthodox)는 오류를 범한 것 아닌가? 그렇다.
어떤 이유들로 그들이 논박되는가?
첫 번째 이유는, 첫 아담의 능동적인 불순종은 우리를 모두 죄인들이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번째 아담의 능동적 순종에 의해서 의롭게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롬5:19).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죽음에 드리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_위해서도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택자들의 유익을 위해, 그가 그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다. 그것은 그가 마치 거룩한 희생으로서 그 자신을 포기하신 것이었기 때문이다(요 17:19).
세 번째 이유는, 그것은 모든 의를 성취하도록 그리스도께서 행동하셨기 때문이다(마 3:15).
네 번째 이유는, 우리는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는 율법의 가르침과 요구에 따라서,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죄의속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의의 선물에 대한 필요 가운데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전이라 불리는 것뿐만 아니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율법의 목적과 완성이시기도 하기 때문이다(롬 10:4). 그것은 모세에 의해서 주어진 율법의 목적인 것이다. 거기로부터 사람들의 죄의 지식을 가져다주는 상태에 있다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완전하게 율법을 성취하셨던 것처럼 그와 그의 의의 피난처로 향하도록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은 단순하고 순수한 수동적인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능동적 순종이 그것 안에서주요하고 원리적인 부분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시 40:7). 그는 하나님의 헌납 물로 죄를 위한 희생을 그 자신을 바쳐 드리셨다. 그는 거룩하게 드림으로 되는 그것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다(히 10:14).
여섯 번째 이유는, 전 그리스도는 그의 모든 은택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내어주신바 되셨다. 만약 그렇지 않고 그의 수동적 순종이 다만 우리에게 전가 되었다면, 그것은 단지그리스도를 반쪽만 내어주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들을 그리스도가행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고 단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지, 의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위해 주신 바 되셨고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주신바 되시고 태어나셨던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을 우리가 행할 수 없는 것을 우리를 위해 행하심으로, 그리고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것을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심으로, 전적으로 우리 위에 부여하셔야만 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정이철목사는 왜 성경적인 정통신학을 이단으로 몰려고 하는지...
데이비드 딕슨을 아냐고 물으니까 모른다고 말하더군요. 정이철목사는 능동적 순종을 비판할 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겁니다.
@아굴 ㅈ목사도, 구원에 법정적 칭의만 말하시는 ㅇ목사도 다 조화롭게 알지못하는 상태에서 나서신 것 같습니다.
@아굴 저도 모르는 분인데요. ㅠㅠ
@카나리아 朴埰同 집사님은 모르시면 누군지 배우고 이야기하시는 분이라 괜찮습니다.
곧 정리가 될거 같습니다. 합신, 총신에서도 발표 했고, 고신에서도 할거 같습니다. ^^
사려고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절판이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