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주일오후찬양예배 설교
*본문; 삼하 4:1~4
*제목; 사무엘하서강해(4) 사울의 아들들
1.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가 ‘빈들’에서 이루어진다.
믿음의 여러 가지 태도 중에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 당할 때의 이해와 태도”입니다.
누구나 항상 행복하고 싶고,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시간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다루시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거의 대부분 이런 곳 “광야”와 “빈들”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자녀들은 삶의 고통과 고난을 매우 성숙하게 바라보고 다룰 준비가 된 자들을 말합니다. 여기가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광야요 빈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빈들이요 광야”로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주눅 들거나 너무 많이 아파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의 인생에서도 항상 하나님께서는 “빈들과 광야”에서 역사하셨고, 저를 새롭게 만드셨고, 이끄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이스보셋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세웠고, 자신도 그토록 의지했던 군대장관 아브넬이 다윗 왕에게 투항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아픈 소식이 전해집니다. ‘1절’입니다.
“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삼하 4:1)
이스보셋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모든 맥이 풀려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 없는 자의 대표적인 반응입니다. 인생의 문제 앞에 맥이 풀려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신의 새롭게 하실 때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그를 치러 달려옵니다. 그러자 그가 한 반응은 맥이 풀리거나, 무너져버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하 19:1’을 봅시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왕하 19:1)
하나님께 달려가고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다루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빈들과 광야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과 살아계심을 누리는 자가 됩니다. ‘왕하 19:32~34’입니다.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왕하 19:32~34)
이처럼 ‘광야와 빈들을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그의 믿음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2. 레갑과 바아나의 반란
이제 ‘업친데 덥친 격’으로 ‘믿었던 아브넬’이 죽고, ‘바아나와 레갑’이 반란을 일으켜 이스보셋이 자고 있는 중에 그를 죽이게 됩니다. ‘5~7절’입니다.
“5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6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7 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왕하 19:5~7)
이것이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지 않는 자의 최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머리를 다윗에게 바칩니다. ‘8절’입니다.
“8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왕하 19:8)
그러나 다윗은 이들이 행위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왕의 후손들이고, 아직도 그의 마음은 사울과 요나단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9~12절’입니다.
“9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10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11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12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 (삼하 4:9~12)
항상 악은 악으로 열매 맺습니다. 그러므로 선으로 악을 이기려 해야 합니다.
첫댓글 사랑도 기술이 필요하듯이, 믿음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가장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는 "빈들과 광야"를 이해하는 기술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로 성숙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시간입니다. 이를 고통으로 받고 "맥 빠지지 마시고" 히스기야 처럼 기도하셔서, 오히려 이를 통해 하늘 복을 풍성히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