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목(李淳牧)은 합주(陜州)의 향리 출신으로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글을 잘 지었다.
일찍이 부친을 수행하여 개경에 가서는 매번 글 짓는 모임에서 운자(韻字)에 응하여 주필(走筆)하니 명성이 한때 자자하였다. 당시 이수(李需)라는 자가 재주와 학식이 민첩하고 뛰어나 역시 주필에 능하였으므로 이순목과 더불어 명성이 있었다. 이순목은 등제하여 금성관기(錦城管記)로 등용되었다가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옮겼으며, 얼마 안 되어 첨사부주부(詹事府注簿)로 옮겼다.
음양술로 재주를 부리는 주연지(周演之)의 집을 왕래하다가 주연지가 죽자 금구현령(金溝縣令)으로 좌천되었으나, 최이(崔怡)가 그 재주를 아껴 얼마 안 되어 소환하여 곧바로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를 더하였고,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로 승진시켰다.
성품이 교활하고 속이는데다가 의심이 많았으며, 정무를 담당할 때에도 청렴하거나 공평하지 않았다. 다만 문장을 잘 짓는 기예가 있어 비서성을 떠나지 않았고, 항상 제고(制誥)를 맡았다. 최항(崔沆)이 어렸을 적에 스승으로 그를 섬겼는데 집정하자 특별한 예로 대우하여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뽑았으나 제배되기 전에 죽었다.
아들 이신손(李信孫)과 이의손(李義孫)은 모두 관직이 판사(判事)에 이르렀다. 〈아들〉 이덕손(李德孫)은 따로 전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