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문학과 지성사, 2021)중 「절반 이상의 하루오」를 읽고
이장욱 작가는 199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로 등단했고,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고백의 제왕』,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등을 출간했다. 젊은 작가상, 문지문학상,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다. - 작가소개에서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은 확신 너머의 진실과 포착되기 어려운 삶의 틈에 주목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 것만 같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세계를 그렸으며, “완벽한 기획 의도”와 어긋나는 삶의 틈과 만나 소설 스스로가 끌어낸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을 준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소설에서 인물의 캐릭터와 관계, 여행과 인생의 의미를 파악하며 읽으면 좋다는 설명을 들었다.
(삶은, 생활은 늘 제자리에서 맴돌게 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살았다. 여행자는 오랜 꿈이었다. 직접 떠날 수 없으니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직접 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떠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소설 속 주인공이 여행자라면 금상첨화였다.)
일본에서 살 때는 ‘죽은 듯이’ 살아간다.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는 ‘살았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적응하며 지냈다. 이 소설은 예외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소설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주인공은 여행에서 하루오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소설의 말미에 하루오처럼 청소를 한다.
하루오는 여행을 좋아한다. 연중 일본보다 일본 바깥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하루오는 여행을 다닌 여행담을 홈페이지에 연재한다. 전 세계에 폭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다. 세계 각국의 다종다양한 잡지에 자신의 글을 싣게 되었고, 책도 몇 권 냈다.
주인공은 파일럿이 꿈인데 라식수술로 꿈이 무너졌다. 여자 친구와 여행 중인 인도의 열차에서 제 일처럼 청소하는 승객을 만난다. 그게 하루오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어딘지 다른 하루오이다.”(p21)
(유려한 문장의 묘사가 좋아서 끝까지 읽게 된다. 유연하게 생각하고 삶도 그렇게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이해되지 않지만, 책 속에서나마 그런 인물을 관찰하게 되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말과 행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행하는 모습들이라 더욱 숭고해 보였다.)
(일상을 살면서도 다른 것을 꿈꾸고, 다른 곳을 생각하는 동안은 온전히 내가 아니다. 이곳에 있는 진짜 내가 아니다. 우리도 절반 이상은 온전한 내가 아닌 채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하루오는 그랬다. 여행지에서 여행자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온전히 여행지의 사람으로 장사도 해보며 현지인이 살고 있는 방식으로 실제로 살았다. 그것만큼 그 여행지에 대해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여행지에서 살았다.”라는 표현이 가능했던 진짜 여행자였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삶의 절반 이상의 시간 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여행지를 돌아다녔던 하루오의 삶을 표현한 말이다. 용기있는 삶의 자세가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