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소명’
미술사 책에서 카라바조을 설명하는 페이지에 가장 많이 실려 있는 그림이 ‘성 마태의 소명’이었다. 내가 본 책에서는 모두 실려 있었다. 이것은 이 작품이 카라바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카라바조는 로마에서 화가로서 명성을 얻고서도 대형 성화는 주문받지 못했다. 1599년에 로마의 산 루이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서 대형 제단화를 주문했다. 그때까지 주로 캔버스에 중, 소형 크기의 화폭에만 그림을 그린 그에게 대형 제단화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작품은 크기가 323Cm * 343Cm이다. 주문을 받고 자신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성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복음을 전하다가 이피제니아 왕의 밀명을 받은 자객에게 죽음을 당했다. 그는 작품의 구상에서, 또 작업을 시작하고서도 자신을 가질 수 없어 몇 번이나 수정을 거듭했다. 이 그림을 X-선으로 촬영해 본 결과 이 작품은 처음의 구도에서 적어도 두 번은 크게 수정했다.
로마에는 이 시대에 그려진 순교의 그림이 많다. 프로테스탄트의 강렬한 도전들 받고 있던 카콜릭 교회는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주제가 순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교의 그림을 많이 주문했다.
지금, 우리가 감상하려고 하는 그림은 제단화 ‘성 마태의 순교’가 아니고, ‘성 마태의 소명’이다. 이 그림은 ‘성 마태의 순교’를 그리다가 중단하고 그렸다. 카라바조는 ‘성 마태의 소명’을 그리면서 ‘성 마태 순교’의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말한다. 이 그림이 완성된 후에 성 마태 순교도 완성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성 마태 순교의 실패 경험을 충분히 활용하여 그렸다. 그는 성서의 내용을 일상의 생활로 옮겨왔다.
대표적인 작품이 ‘성 마태의 소명’이다. 작품의 배경을 선술집, 도박판 등의 어수선한 분위기로 잡았다. 그는 이 그림에서 빛과 어둠을 극도로 대비시키는 방법 즉 테네브리즘을 구사했다. 빛과 어둠을 강렬하게 대비시켜서 죄인 마태를 부르시는 구세주 예수의 모습을 강하게 표현했다. 구원의 빛은 도박을 하고 있는 마태에게 쏟아졌다.
“누구, 나 말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으면서 어리둥절해 하는 마태의 모습은 로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박군이나 협잡군, 혹은 건달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폭력과 방탕과 도박을 일삼던 카라바조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화면 전체에 감도는 칠흑같은 어둠은 온갖 횡포와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로마 건달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의식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어둠ㅇ르 가르고 한 줄기의 빛이 죄인인 마태의 얼굴에 쏟아지고 있다. 빛줄기는 예수가 뻗치고 있는 구원의 손길이다. 이 그림에 대한 미술사가 헬렌 랑돈은 ‘이 빛이야말로 성 마태의 소명이 의도하는 핵심이다.’라고 했다.
이 그림을 보면 어둠에 쌓여 있는 방의 분위기와 사람들이 마치 감옥 속 같은 느낌을 준다. 그 가운데로 쏟아지는 빛의 언어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림에서 어떤 언어보다도 힘이 있다. 예수의 손이 그 빛을 따르고 있고, 밝은 빛줄기를 향해서 얼굴을 돌리는 사람, 특히 성 마태에게 쏟아진다. 빛은 하느님의 계시가 임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예수의 손이 빛과 평행하여 마태에게 향한다. 이 손을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타 성당의 벽화 천지창조에 나오는 하느님의 손과 닮았다. 예수의 앞에 베드로가 예수와 똑 같은 손짓을 하고 있다. 만약에 베드로가 없이 예수의 손만을 그렸다면 어떻게 다를까?
당시에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신교도들은 중간에 사제(신부)의 매개 없이 예수와 직접 소통을 주장했다. 반종교개혁을 주장한 카톨릭에서는 이런 그림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종교개혁 사상에 맞도록 중간에 베드로를 등장시켰다.
‘성 마태의 소명’은 카라바조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처음으로 대형 제단화(성 마태의 순교)를 완성하면서 그림 기법상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미지 전달도 성공적으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는 ‘성 마태의 순교’와 ‘성 마태의 소명’의 두 작품으로 단번에 이태리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따라서 ‘성 마태의 소명’은 여러 가지에서 카라바조의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