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은(吳承恩)/우현민 옮김
어느 것이 진짠가 두 마음이 온 천지를 어지럽히니 한 몸이 깨달음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구나.
관음보살과 작별을 한 손오공과 사화상은 구름에 오르자 두 줄기의 상광(祥光)을 뒤로 남기며 남해를 떠났다.
원래 손오공의 근두운(夕斗雲)은 매우 빠르고 사화상의 선운(仙雲)은 매우 느렸다. 그래서 아무리 같이 가려고 해도 손오공이 훨씬 앞서게 되었다.
사화상은 그를 붙잡고 늘어지며 이렇게 말했다.
"큰형님, 이렇게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내놓고 먼저 가서 이럭저럭 해 버리려고 할 까닭 없지 않아. 나와 같이 가자구."
손오공은 양심상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었으나, 사화상은 이런 식으로 그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손오공은 매우 못마땅하기는 하나 어쩔 수 없이 구름을 나란히 하고 사화상과 같이 가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얼마 안 가자 어느새 화과산(花果山)이 보였다.
두 사람은 구름을 내려 수렴동 가까이 가서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또 하나의 손오공이 돌대(臺) 위에 높직이 도사리고 앉아 여러 원숭이들과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 모습은 이쪽 손오공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이쪽이 황발금고(黃髮金嗬)면 저쪽도 황발금고이고, 이쪽이 금정화안(錦睛火眼)이면 저쪽도 금정화안이다. 의복도 마찬가지로 이쪽이 금포직철(錦布直畗)을 입었는가 하면 저쪽도 금포직철을 입었다. 허리에 호피군(虎皮裙)을 질끈 동여맨 것도 마찬가지였다. 손에 쥔 여의봉도 똑같고 궤피화(墪皮靴)를 신은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뿐인가, 털이 부연 얼굴이나, 뇌공(雷公)을 닮은 입과 턱 근처나, 그 어느 곳이고 이쪽 손오공과 저쪽 손오공은 조금도 틀린 것이 없었다. 말하자면 두 손오공의 차이점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손오공은 이렇듯 교만한 자기의 약탈자를 보자 격분하여 사화상의 손을 뿌리치며 여의봉을 휘두르면서 앞으로 달려나가서 우선 호통부터 쳤다.
"이 돼 먹지 않은 자식! 네가 대체 어디의 무슨 요사(妖邪)이기로 감히 이렇듯 내 상모로 변하여 우리 아이들을 강점하고, 내 선동(仙洞)에 함부로 기어들어 당치 않은 위복(威福)을 누리려 든단 말인가!"
그러자 저쪽 손오공도 대답 대신 여의봉을 휘두르며 달려 들었다.
두 손오공은 이렇게 해서 전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지 못하는 중에 참으로 무섭게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도무지 진짜가 어떤 것이고 가짜가 어떤 것인가 옆에서는 전혀 분별할 수가 없었다.
두 손오공은 운광(雲光)을 밟고 올라서서 구소(九宵)의 구름 끝까지 맹렬하게 싸우며 올라갔다. 이쯤 되고 보면 싸움에서 지는 자만이 가짜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싸움조차 도무지 결말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사화상은 옆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쪽을 도와야 할 것인지 저쪽을 도와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가 어느 것일까. 까딱하면 그 진짜를 해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오래도록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내려고 공연한 헛노력만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산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하여 보장(寶杖)을 휘두르며 수렴동으로 달려 들어가 원숭이들을 모두 쫓아버리고, 푸른 전(氈)의 보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혀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원래 이 수렴동이란 곳은 한 줄기 폭포가 동문(洞門)을 가리며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것은 멀리서 보면 마치 한 가닥의 하얀 백포(白布)를 걸어 둔 것 같고, 가까이서 보면 한 줄기의 물줄기가 흘러 내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름하여 수렴동(水簾洞)이라 하는 것이었으나, 사화상이 이런 이치를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러한 수렴동의 마력에 걸려 진짜 동굴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아내지를 못했다. 따라서 그 중요한 보따리도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화상은 할 수 없이 다시 구름을 타고 구소의 구름 속으로 더듬어 올라갔다. 그리하여 보장을 휘두르며 손을 써 보려고 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것을 본 손오공,
"사화상, 너 나를 돕지 못하면 우선 돌아가서 사부님한테 이렇다는 사실을 여쭤 라. 이 손오공은 이 요괴놈과 함께 싸우면서 남해 낙가산(洛伽山)까지 가서 관음 보살님께 진짜와 가짜를 분별해 달라고 할 테니까 말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한쪽에서도 똑같은 음성으로 똑같이 되씹어 말했다.
이쯤 되고 보니 사화상은 더 더구나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들었던 보장을 아래로 내리며 그 말을 듣기로 했다. 들었다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 것이었다. 사화상은 할 수 없이 즉시 현장에게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손오공은 그들이 이미 가짜건 진짜건 사화상에게 선언한대로 둘이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아가며 무섭게 싸우면서 남해로 향해 갔다. 싸우는 것도 두 사람은 똑같아서, 마치 한 사람을 둘로 공평하게 갈라 놓은 것처럼 그 어느 한쪽이 없어도 완전을 잃을 것 같고, 영원한 무승부를 의미해 주는 듯했다.
말하자면 서로는 어떠한 변화가 없는 한 결코 이기지도 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은 싸우면서도 남해의 낙가산에 순식간에 이르렀다. 여의봉을 휘둘러대는 소리, 쇠와 쇠가 맞부딪는 소리, 욕지거리, 호통 소리, 고함 소리, 이런 것이 마구 한데 엉켜 회오리바람처럼 일제히 낙가산으로 휘몰아 들어갔다. 이 때문에 놀란 호법제천(護法諸天)들이 재빨리 조음동(潮音洞)으로 달려 들어가 관음보살에게 알렸다.
"보살님, 두 사람의 손오공이 서로 싸우면서 왔나이다."
보살은 혜안행자와 선재동자(善才童子), 그리고 용녀(龍女) 등을 이끌고 연대(蓮臺)에서 내려 문을 나서자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거 나쁜 얼축(孼畜)놈 어딜 가는고!"
그러자, 두 사람의 손오공은 서로 상대방을 붙들고 일러 바쳤다.
"보살, 이 자식이 제자의 모습을 닮지 않았나이까. 그래서 수렴동에서 치기 시작 했는데, 아무리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나이다. 사오정이 도우려고 해도 그의 육안 (肉眼)으로는 누가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하와 그 사람은 스승에게 돌려 보내고, 나는 이 자를 붙들어 치면서 보산(寶山)으로 끌고 왔나이다. 보살! 제발 보살의 혜안으로 이 자가 가짜임을 가리시고, 옳고 그름을 밝혀 주소서."
그러면 또 한쪽에서도 똑같은 말을 똑같이 힘을 주어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손오공이 서로 자기를, 그것도 똑같이 주장하기 때문에, 관음보살은 여러 제천(諸天)과 함께 두 사람을 분간해 보려고 오래도록 조심스럽게 관찰해 보았으나 역시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보살은 마침내 이렇게 명령했다.
"손을 놓고 양쪽에 떨어져 서 보려무나. 내가 또 한번 잘 살펴볼 테니까."
두 사람은 손을 놓고 양쪽으로 갈라섰다. 그리고 한쪽에서,
"제가 진짜올시다."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 놈은 가짜올시다."
하고 응수하는 것이었다.
보살은 혜안행자와 선재동자를 가까이 불러 귓속말로 분부했다.
너희 둘이서 하나씩 꼭 붙잡고 있거라. 내가 슬며시 긴고아주(緊嗬兒呪)를 외어 볼 테니까. 그래서 어느 쪽이든 아파하면 그 쪽이 진짜가 되는 셈이다.
혜안행자와 선재동자는 이 말대로 각각 하나씩 손오공을 꼼짝 못하게 붙잡았다.
보살은 입속으로 진언(眞言)을 외었다. 그러자 어찌 된 일인가. 양쪽 손오공이 똑같이 아프다고 소리치며, 두 손으로 머리를 싸잡고 땅바닥에 쓰러져 뒹구는 것이 아닌가.
"그만, 그만, 그만 외십쇼!"
같은 장치를 해 놓은 기계처럼 양쪽의 입에서 똑같이 그렇게 슬픈 비명을 울리는 것이었다.
보살은 주어(呪語)를 그만두었다.
그러자 두 손오공은 또다시 달려들어 서로 붙잡고 엎치락뒤치락 하며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보살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토록 곤란한 일을 당해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여러 제천이나 혜안행자에게 명하여 진짜를 돕고 가짜를 멸망시키도록 했으나, 그것도 실패하고 말았다.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진짜가 해를 볼 염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었다.
보살은 할 수 없이 최후로 손오공을 불렀다.
"손오공!"
두 사람의 손오공은 똑같이 대답했다.
"그대가 옛날 필마온(弼馬溫)의 벼슬을 배(拜)하고 천궁을 크게 시끄럽게 했을 때, 신장(神將)들은 모두 그대를 알았으니까, 그들은 지금 아직도 그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상계에 올라가서 누가 누구라는 것을 분명하게 판정 을 받고 오도록 하라."
두 사람의 손오공은 또 똑같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꾸뻑꾸뻑 절을 하자, 서로 놓치지 않으려고 힘껏 붙잡고 욕지거리를 해대며그 곳을 떠났다. 두 사람은 남천문(南天門)에 이르기까지 이런 식으로 아옹다옹 싸우면서 갔다. <후략>
▶ 줄거리 요약
화과산(花果山)의 미후(彌糅)왕이 영생 불멸의 도를 얻고자 수보리 조사(須菩提祖師)를 만나 손오공이란 법명을 얻는다. 수보리에게 근두운(夕斗雲) 법, 신외신 법 등을 배우고 동해 용왕에게서 여의금고봉(如意金嗬棒)을 얻는다. 뒤에 천상에서 반도원(蟠桃園)을 관리하다가 선도(仙桃), 선주(仙酒) 등을 훔쳐 먹고 소란을 피워서는 석가여래에게 붙잡혀 오행산(五行山)에 갇힌다. 500년 후 서역으로 불경을 가지러 가게 된 삼장법사가 오행산에서 손오공을 만나 제자로 삼는다. 여행 도중에 저팔계와 사오정이 각각 삼장법사의 둘째, 셋째 제자가 된다.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모시고 가다 삼장법사에게 쫓겨나기도 하고 도적이나 요괴 등을 만나 싸우는 등 모두 80번의 재난(災難)을 겪고 108,000리를 걸어 서천에 도착하여 설법을 듣고 진경(眞經)을 얻는다. 당나라로 돌아오던 중 통천하에서 자라가 석가여래에게 자기 수명을 알아오지 않았다고 삼장 일행을 물에 처넣어 끝내 81난(難)을 채우게 된다. 마침내 삼장 일행은 당 태종에게 불경을 바치고 삼장은 전단공덕불, 손오공은 투전승불, 저팔계는 정단사자, 사오정은 금신나한, 백마는 팔부천룡이 된다.
본문에 수록된 부분은 제58회(回)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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