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늙는 법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요즘 들어 아름답게 늙는 법을 많이 생각한다. 오늘은 그러한 주제를 정하고 글 한편을 쓰려고 하는데 거실에 있는 TV에서 귀가 번쩍 띄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다른 것이 아니고 하숙생 등 히트곡을 많이 불러서 국민가수로 널리 알려진 최희준선생의 소식이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 자판위에 올려놓은 손이 맥이 풀리면서 그만 아래로 내려뜨려졌다. '그분이 세상을 떠났구나.' 순간 회한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근래 들어 그가 한동안 방송에서 통 모습이 보이지 않던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던 건가. 그 생각을 하니 새삼 우리 곁에 머물다 떠나간 숱한 가수들이 돌아봐 진다. 한 시대를 풍미한 분들로 현인, 김정구, 황금심. 박재홍, 나애심 등이 있다.
잠시 인생을 생각해 본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본디 태어나면 반드시 떠나는 때가 정해져 있고, 그 생은 누구나 두 번 허락되지 않는 불가역적인 여정을 사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더구나 고인같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고 보면 그 정도는 더한다. 그가 부른 노래 <하숙생>이 마치도 인생의 덧없음을 깨우쳐준 것을 상기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얼마나 철학성이 깃든 노래였던가. 그는 노래의 가사처럼 고해같은 인생길을 걷다가 떠난 것일까. 그 생각을 하니 허무함이 밀려 와 회한에 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무거운 마음이 아니고 좀 더 가볍고 아름답게 늙어 죽을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것은 피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누구나 사는 동안 병들지 않고 마지막 눈을 감기를 소망하지만, 이는 자신이 노력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노년이 되면 누구에게나 걱정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빈고(貧苦)와 고독고(孤獨苦), 그리고 무위고(無爲苦)와 병고 (病苦)이다. 그런 걱정이 없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에 지니지 않고 대다수는 이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빈고와 병고의 고통은 누구나 예상하는 것이지만 나머지 고독고와 무위고는 어느 정도는 자기 의지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무언가 자기가 할 만한 소일거리를 찾아 고독할 새 없이 보낸다면 어느 스님이 말한 대로 '잘 물든 단풍처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노인은 대체적으로 몇 가지 병폐가 있다고 한다. 첫째가 아집에 사로잡힌 것이다. 고집은 고래 힘줄처럼 즐겨만 가서 독선적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분히 자기는 경험했다는 우월감이 바탕에 깔려있다. 나는 겪어 보았지만 너는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누구의 말처럼 “당신 해봤어” 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노욕이다. 나이가 들면 욕심이 점차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뉴월 칡넝쿨처럼 뻗어만 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고 흔히 말하지만 그 말은 귀에 와닿지 않는다. 이는 남에게나 해당하는 것이고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자포자기다. 이 나이에 '내가 무얼 하겠어'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1749년생인 괴테는 81세인 1831년 파우스트를 발표했고, 미켈란젤로는 로마 성베드로 대성전 돔 벽화를 70세에 완성했으며 음악가 베르디는 고희를 넘겨 명곡을 남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반성할 점이 있지 않는가.
아름답게 살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법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사는 과정 자체가 죽음이란 한 방향의 길을 가는 것이지만 삶의 질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마다 가는 그 여정은 똑같지 않다. 그것도 가고 싶은 길을 탄탄대로를 따라 가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가기 싫은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가서는 아니 되는 길에 들어선 사람도 있다. 그 인생의 결실은 살아온 결과에 따라 차이가 날수 밖에 없다.
세상에는 좋은 말이 넘쳐난다. 너무나 좋은 말이 많아서 실천하기에 장애를 받은 일이 많을 정도이다.해서 나는 근자에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한사람의 멘토를 정해두고 사람의 자세를 배우려 힘쓰고 있다. 80대 노신사인데 직장 선배이다.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당신은 늘 옷을 단정히 입고 다닌다. 그러면서 말씨는 조용조용하고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말 하면서는 절대로 남의 흉을 보지 않는다.
설령 누가 다른 사람을 입에 올려 비난해도 화제를 슬쩍 다른 데로 돌려버린다. 그러면서도 남의 이야기는 경청을 한다. 거기다가 중요한 것은 지인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어이 동생, 오늘 점심하게 종화 선어 집으로 나오시게”
“그곳은 비싼 곳 아닙니까?”
“괜찮아. 내가 사고 싶어서 사는데 뭘”
“알겠습니다. 형님”
어쩔 때는 장소가 멀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때가 있다. 택시를 타고 가다보면 요금이 밥값보다 더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정다운 부름에 나는 달려 나간다.
“형님한테 제가 인생 공부를 많이 합니다”
다른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아름답게 늙는 걸 배우고 느끼는 것. 좀 더 겸손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가급적 좋은 말을 하면서 밥이라도 더 한번 사려고 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그분이 현직에 있을 때는 어떤 지위나, 남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넉넉한 인격을 쌓아 늘 넉넉한 인품을 보여준 까닭이다. (2018)
첫댓글 잔잔한 글 잘 감상했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아름다운 결말에 이르기를 소원하지만 그 또한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고해의 바다인가 싶습니다
고 최희준의 노래 처럼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속절없이 흘러가는 인생사의 길목 길목마다에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는 그런 사람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분이 한동안 등장하지 않아 무슨일이 있었나 했는데 지병을 앓고 계셨던가 봅니다.
하숙생이란 노래를 떠올리자니 정말 인생은 그렇게 어디서 왔다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떠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후에 어떻게 보낼것 인가 주변을 돌아보아 모범이 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많이 생각에 잠겨봅니다.
최희준의 본명은 최성준인데, '항상 웃음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이름에 '기쁠 희'자를 넣어 '희준(喜準)'이라는 예명을 지었다고 하네요. 최희준은 실제 웃는 모습이 아주 천진하게 느껴지는 서민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누렸지요. 하숙생 가사처럼 욕심없이 살다가 가신 최희준씨처럼 그렇게 살다가면 행복할 거 같아요.
최희준씨는 서민풍의 용모에 구수한 노래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갔지요. 한동안 부인이 아파서 고래하고 와서는 병원을 돌르는 생활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부인께도 잘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니 세월의 무상함이 새삼스레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