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성(天南星) 이야기
앵두꽃 / 앵두 열매 / 꽤 꽃 / 천남성 꽃 / 천남성 열매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마을 학산리 금광평(金光坪)은 현재는 광명(光明)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마을 조금 높은 곳에 있던 우리 집은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 끝에서 바라보면 동해(東海)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었다.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다고 하여 광명마을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 집은 대포영감님 과수원 앞에 있었는데 우리 집 울타리의 반은 과수원울타리였고 나머지는 아버지께서 앵두나무를 둘러 심어서 봄이 되면 언제나 연분홍 앵두꽃으로 둘러싸이고는 했다.
또 정지(부엌) 앞에는 커다란 꽤나무도 있고 뒤뜰 한 구석에는 배나무도 한 그루 있었는데 매년 봄이 되면 그 배나무 밑에 제법 튼실한 천남성(天南星)이 자라서 신기하게 드려다 보곤 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천남성을 ‘찰남생이’라고 했는데 천남성은 푸른색의 통꽃이 피었다가 꽃이 지고나면 포도송이 같이 뭉쳐진 붉은 열매가 달려 신기했었다.
앵두와 꽤가 익는 철이 되면 어머니는 매년 따다가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꽤를 팔러 가실 때 나는 어머니 보고 ‘그 시어 빠진 거를 누가 사겠는가?’ 하곤 했는데 어머니는 항상 다 팔아오셨다.
강화 마리산은 참성단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사방팔방으로 있는데 그 중 북록(北麓)인 내리(內里) 뒤편의 골짜기는 사람이 그다지 많이 다니지 않고 골짜기가 그윽하여 봄철에 이곳을 오르다 보면 숱한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등산객의 발을 멈추게 한다. 야생화는 물론이려니와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제비꽃이며, 귀한 노루귀도 지천으로 군락을 이루고 더 안쪽을 오르면 고사리 밭과 천남성 군락지도 있다.
언뜻 보면 식충식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천남성은 둥글고 길쭉한 꽃대(筒部)가 올라 왔다가 꽃이 지고 나면 새빨간 열매가 덩어리져 달린다. 예전에는 약재로 쓰여서 약초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던 천남성(天南星)인데 이렇게 지천으로 깔려 있고 캐는 사람도 없으니 신기하다.
우리 학교에 기간제 강사로 나오시던 S여선생님은 나하고 대학 동기인데 등산을 좋아해서 퇴근 후 직원들 몇몇과 어울려 등산을 하고는 했다. 직원들이 따라나서지 않으면 혼자 오르기도 하고, 또 안개가 끼거나 날씨가 궂어도 혼자 휑하니 다녀오기도 하는 것을 보면 등산광에 가깝다고 하겠다.
원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을 하다가 등산을 다니면서부터 건강을 되찾았다는 등산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어느 봄날 S선생님을 포함하여 교직원 서넛이 내리 뒤편 그 그윽한 골짜기로 등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지천으로 앞 다투어 피어난 들꽃에 감탄하며 골짜기를 오르다가 그 천남성 군락지(群落地)에 다다랐다.
‘선생님 저 꽃 이름이 뭔지 아세요?’
‘아니요, 모르는데요.’
‘그 꽃 이름이 천남성이랍니다.’
‘예? 뭐라고요?’
‘천-남-성’
갑자기 여선생님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면서 살짝 상기되는 모습이 보여 의아했다.
‘왜요? 이 꽃과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꽃 이름이 너무 이상해서요.’
‘어때서요? 하늘 천(天) 남녘 남(南) 별 성(星).. 「하늘 남쪽의 별」이라고나 해석 될까요?’
‘아! 그런 뜻이었군요. 난 또... 「첫 남성」인줄 알고...’
그 여선생님의 마음속에 잠시나마 스쳐갔을 어떤 남자의 얼굴을 생각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스민다.
천남성의 생김새는 포(苞)로부터 길쭉하게 생긴 통부가 올라와 있고 위쪽은 모자처럼 꼬부라져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식충식물인 벌레잡이 통 풀과 혼동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천남성의 종류로는 포(苞)가 자주색인 남산천남성, 잔잎에 톱니가 없고 녹색인 둥근잎천남성, 줄기에 갈색 반점이 있는 점박이천남성, 잔 잎 세장이 모여 나는 큰천남성이 있다.
그 밖에도 섬천남성, 두루미천남성, 무늬천남성이 있다고 하며, 그 뿌리와 줄기는 한방에서 거담(祛痰), 구토(嘔吐), 진경(鎭痙), 풍습(風濕), 상한(傷寒), 파상풍(破傷風), 종창(腫脹)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