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8월 12일 토요일 맑음
새벽부터 땀을 뺐다.
찔끔 거리던 비 때문에 미루어 왔던 밤나무 농약을 마쳐 개운하다.
산 아래에서 쏘아 대면 연기처럼 퍼지면서 위로 향해 스멀스멀 올라가며 밤나무를 에워싸는 농약의 군무를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깨에 멘 살포기와 농약 20kg의 무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다 뿌린 후에야 땀을 흥건히 흘렸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물약으로 뿌릴 때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에 이 방법을 고안해 낸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옛날에 많이 했던 항공방제가 없어진 것도 이 때문이리라.
새벽부터 한 차례 땀을 빼면 온 몸이 녹적지근하여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해남의 남씨는 밤농약을 한 날은 시원한 곳에서 술 마시며 하루를 쉰다고 하더라. “힘들게 일 한 날은 하루 쉬어야죠. 무슨 재미로 살아요” 당당하더라.
그 말이 나를 유혹하기도 하지만 쉬는 것만 재미가 아니라 일 하는 것도 재미다. 생각하기 나름이 아닌가. 남을 위해 하는 일도 아니고....
성공한 사람들이 다른 점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기 싫어했던 모든 것을 했다는 점이라 했다. 대부분은 그들이 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돈을 받는 최소한만 일하려 하나, 그것은 앞서 나가는 일이 아니다. 도둑질이 아니라면 언제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록 청소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과정을 보고 감동할 것처럼 해야 한다.
아침 식사 후 한 시간을 더 쉬었더니 전의가 다시 불타 오른다.
밤농약을 하면서 보아두었던 덕겸이네 축사 부근의 미풍 밤나무 밑으로 갔다.
맨 처음에 풀을 깎았던 곳인데 올 여름 잦은 비와 무더위로 깎기 전보다 풀이 어 우거져 있다. 아니 이 건 아주 정글이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촬영을 해도 되겠다. 문득 풀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깎아대도 줄어들지를 않는다. 팔이 아프고 어깨다 절려도 중단할 수도 없었다. 칡넝쿨이나 며느리 밑씽개(환삼덩굴. 잎이나 줄기에 꺼끌꺼끌한 잔가시들이 많고 질긴 덩굴풀로 옛날 시어머니가 보기 싫은 며느리 밑 닦으라고 뒷간에 뜯어다 놓았단다)에 휘감겨 뒤집어 쓴 밤나무를 보고 뒤돌아 설 수 없지 않은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예초기를 들어 올린다.
점심 식사 후 늘어져 자는데 안 사람 전화다. 오늘 형제 모임을 위해 충정이를 데리고 정산을 향해 온단다. 동학사 근처쯤 지니고 있으니 공주터미날로 마중 오란다. 대전에서 정산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별로 없다.
가야지. 처자식 마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나.
이래저래 시간을 보낸 후 예초기를 메고 불당골로 올랐다. 얼마나 했을까 ?
형제들이 도착했다는 전갈이 온다.
푸짐하게 익어가는 삼겹살과 소주 잔이 돌아가니 이 이상 즐거운 것이 있을까 ?. 그런데 딴 때보다 빨리 취하는 것 같다. 한 병 정도 마시니 취기가 오르네
‘몸이 약해졌나 ? 진이 빠졌나 ?’
모두가 즐거운 가운데 장모님께서 제일로 흐뭇하신가 보다.
자식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기쁘시겠지.
내 딸들은 언제 시집을 갈려나 ?
사위하고 소주 한 잔 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
이 놈들 뭐하고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