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리:잊혀진 영웅들
인천상륙작전 D-1 ‘이명준’ 대위가 이끄는 유격대와 전투 경험이 없는 학도병들을 태운 문산호는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을 위해 장사리로 향한다.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 단 2주에 불과했던 772명 학도병들이 악천후 속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맞으며 상륙을 시도하는데…
이 영화의 원작이자 1편인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21세기에 등장한 반공 영화'라는 평도 있었다.
그 점에서 이 영화의 후속인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이하:<장사리>)은 부담을 지닌 작품이다. 비록 전작에 대한 평은 그러했지만 흥행에 성공했기에 원작의 특성을 어느 정도 가져가야 한다. <장사리>는 그 문제를 '감독 교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고 본다. 베테랑적인 면모와 검증된 이력을 지닌 두 감독이기에 이 영화가 지켜야 할 요소와 보충해야 할 부분을 잘 이해하며 그 요소들을 채워 넣었다.
<장사리>는 여타의 전쟁 영화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갈 수밖에 없는 특정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고지전>과 같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의 정서를 이어받으려 하고 있지만, 성인들로 구성된 일반 군인이 아닌 어린 소년들이 주축이 된 학도병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기에 앞서 소개한 영화와 같은 볼거리와 스케일을 선보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기록과 증언으로 남겨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그들의 희생을 전하는데 목적을 둔만큼, 이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묘사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학도병들을 주인공으로 한 <포화속으로>가 전쟁터에 나선 소년들의 이야기보다 비현실적인 액션과 개연성을 무시한 드라마를 채워 넣었던 걸 생각해 본다면 <장사리>는 그러한 과오를 범해서는 안된다.(<포화속으로>의 감독이 <인천상륙작전>을 연출했다.)
다행히 영화는 학도병들이 보여줄 수 있는 측면에서 전쟁 영화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전쟁터에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애환을 공감 있게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첫 전투장면이라 할 수 있는 장사리 상륙작전이 이 영화의 그러한 특성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식의 스케일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주인공인 학도병들이 처한 상황이 이에 못지 않은 최악의 상황임을 부각해 이들이 얼마나 큰 고생과 고초를 치렀는지를 체감적으로 그려냈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소년들이 태풍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서 고장 난 상륙선에서 단 네 척의 고무보트에 의지해 상륙작전을 펼치다 적진에서 날아오는 총과 포탄을 맞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 그러한 고통과 공포의 순간을 여실히 전해준다. 이는 전작 <인천상륙작전>에서의 액션이 이 영화에서 '반전'으로 바뀌게 되었음을 보여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후 영화는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겨우 상륙에 성공한 학도병들이 김명민이 연기하는 이명준 대위의 지휘로 적의 진지를 탈환하는 장면을 긴박하게 묘사하며 전쟁영화 특유의 볼거리와 밀리터리 적인 흥미까지 가져가려 한 야심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군대의 분소대 훈련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치밀한 야전 작전과 계획 하에 움직여 진지를 탈취하는 과정은 생생한 현장감과 나름의 치밀한 연출성을 느끼게 한다. 전쟁에 대해서는 반전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입장과는 다른 모순적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이 영화는 군인들(학도병)의 시선에 그려진 전쟁 영화이자 흥행이라는 명분 또한 가져가야 하는 대중 영화이기에 어느 정도의 흥행적 요소와 같은 볼거리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 요소가 전작인 <인천상륙작전>처럼 볼거리로 그려졌다면 다소 엇나간 영화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장사리>는 그러한 문제를 반복하지 않고,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이 영화가 추구하는 분위기 내에서 밀리터리 액션의 정도와 정서를 선보이며 전쟁 영화내에서 그려져야 할 스케일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진지 탈환전 이후 영화는 진지를 지키기 위해 방어전에 나선 학도병들이 적들과 전면전을 치르기 보다는 소규모 게릴라와 함정을 파는 전략을 통해 적들을 상대하는 전술적인 과정으로 전쟁을 치르는 이들의 활약상을 통해 의외의 긴장감과 볼거리를 지속해서 선보인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처절한 전투 장면으로 이어져 무난한 마무리한 제법 나쁘지 않은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게 된다.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학도병들이 패배가 예정된 전투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쟁취하며 최대한 오랜 시간을 버티려 했던 이들의 의지를 강조해 역사 속에 제대로 언급되지 못한 장사리 전투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려 한 영화만의 의도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이들의 승리는 결과적으로 소년들을 희생시킨 국가의 책임이자 전쟁이 낳은 비극의 결과임을 말하며, 전쟁터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언급해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다소 눈물겨운 드라마와 정서적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 일부 관객의 시선에서 볼 때 신파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도 전작 <인천상륙작전>과 비교해 나름의 개연성과 인과관계와 같은 기본적인 바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점에서 당위성이 있었고 무난했던 요소라 생각한다. 제아무리 지나치게 눈물을 강조하는 신파라 해도 그 정서가 당위성을 지녔다면 무조건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드라마 외에도 서글픈 정서를 조금이라도 누그러 뜨리려 한 유머적 요소와 군인들과 학도병이 함께 집단을 구성하며 생존을 위해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장면을 유심 있게 포착해 이들이 매우 특별한 집단임을 보여주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그 점에서 볼 때 <장사리>속 군인과 학도병은 애국심을 위해 싸운 군인들이라기 보다는 전쟁터 뒤의 가족을 보호하고 처절한 전쟁터에서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도운 사람들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부족한 요소가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니다. 몇몇 부분에서 다소 감정적으로 과잉된 모습들이 등장해 이 영화의 드라마를 이해하는 과정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드라마적 요소를 너무 길게 잡아 똑같은 패턴을 유지한 대목도 아쉽게 느껴진다. 메간 폭스와 조지 이즈의 캐릭터가 나름 중요한 존재감을 보였지만, 아쉽게도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큰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해 너무 제한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아쉽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적어도 장르적 기반으로 봤을 때 기본을 지켰다는 점이다. 필요없는 요소들을 전부 제거하고 오로지 학도병과 군인의 이야기에 집중한 기조를 유지한 대목과 영화가 유지하고자 한 본래의 대목과 메시지 전달까지 무난하게 전했다는 점에서 본편인 <인천상륙작전>의 오버랩을 어느 정도 걷어낼 수 있었다. 너무 큰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역사 속에 묻힐 법한 비극적이면서도 조명받아야 할 사건을 양지로 끌어냈다는 점도 이 영화가 칭찬받아야 할 대목이다. 아마도 그 부분은 나름의 절제된 연출과 연기를 선보인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낸 겸손한 합의 덕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과거의 전작 때문에 우려를 샀던 영화였지만, 적어도 지금의 결과물은 그 우려를 씻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장사리>가 실패를 성공으로 만회한 영화였다는 좋은 모범 사례를 남겼으면 한다.(상영시간: 10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