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
'산티아고로 가는 길' 위에서 고민하라 - 산티아고 성당
빌바오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산티아고다. 도시를 휘감아 도는 네르비온(Nervion) 강의 동쪽에 산티아고 성당이 있다. 동쪽과 북쪽에서 흘러와 서쪽 갈리시아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을 향해 지친 발걸음을 옮겨가던 순례객들이 잠시 숨을 돌리던 장소다. 이곳이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을 때부터 교회는 기독교인들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왔다. 그 이름 때문에 성스러운 길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착각에 빠지게도 했지만 말이다.
중세 때부터 바스크 민족의 중심 도시로 역사를 이어왔지만, 여행객들에게 빌바오는 그저 산티아고의 조개 표식을 따라 잠시 들르게 된 여관에 불과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산티아고를 둘러싼 구시가(Casco Viejo)는 좋게 말해 '중세의 고풍스러운 거리'였지, 냉정하게 보자면 그저 칙칙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강변의 작은 구역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떤 결단이 이 도시를 변신시켰고, 이 '중세'는 진정 의미 있는 '현대'의 장식품이 되었다.
골칫덩이를 옮겨라 - 빌바오 항구
새로운 항구를 만들기 위해 강변을 도크로 둘러싸는 작업은 환경운동가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세기의 산업혁명은 이 도시에 큰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인근에서 질 좋은 철광 광산이 발견되었고, 스페인 북부의 가장 큰 항구는 영국과 교역하는 데도 커다란 이점을 보였다. 빌바오는 철강 산업의 주요 운송 창구이자 선박 제조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았고,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의 하나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강을 둘러싼 항구와 공장들은 보기에도 끔찍한 공해 산업이자 고철덩이가 되어 버렸다. 바스크 분리주의자의 테러 활동까지 겹쳐져, 이 도시는 스페인의 더러운 콧구멍 취급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 시민들은 머리를 모았다. 항구와 산업 시설을 멀리 바다로 보내고 새롭고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자. 누군들 그런 꿈을 꾸지 않을까? 그러나 진지하고 엄격한 설계,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시민들의 전통이 진짜 기적을 만들었다. 얼핏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게 된 것이 모든 마법의 원천으로 보이지만, 빌바오의 강변은 도시 자체를 진짜 예술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로 가득하다.
꽃 강아지를 지켜라 - 구겐하임 미술관
[007 언리미티드]의 오프닝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이 빌딩에서 탈출한 뒤 유유히 거리로 나설 때, 구겐하임의 꽃 강아지가 귀엽게 쳐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20세기 전후의 도시 건축계에서는 '빌바오 효과'라는 말이 마법의 주문처럼 돌아다녔다. 시커먼 공해 도시 빌바오가 미술계 최고의 브랜드인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을 들여놓은 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건물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걸작이며, 2010년 세계의 건축 전문가들에 의해 최근 30년간 세워진 것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뽑히기도 했다(World Architecture Survey). 온갖 잡지의 표지에 이 건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오직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빌바오가 놀라운 것은 그 구겐하임을 진짜 이 도시에 딱 어울리는 건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변신했다는 사실이다.
프랭크 게리가 티타늄으로 만든 미술관 건물은 수많은 관광 지도에 '빌바오'라는 지명을 적어넣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빌바오 사람들은 그 건물보다도 그 앞에 있는 커다란 강아지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설치 조각가 제프 쿤스가 만든 12.4m의 거대한 토피어리 꽃 강아지(Puppy)는 원래 구겐하임 개관을 기념한 한정 전시물이었는데,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 때문에 영구 전시물이 되어 있다. 설치 당시 정원사로 위장한 ETA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폭탄 화분이 장착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새로운 강을 만들어라 - 주비주리 다리
주비주리는 바스크어로 '하얀 다리'라는 뜻이다.
빌바오를 새롭게 만드는 온갖 프로젝트들은 굽이굽이 흐르는 네르비온의 강을 따라 줄을 잇고 있다. 수많은 매력의 포인트들이 빌바오의 기적이 단지 구겐하임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마 포스터의 획기적인 지하철 시스템, 잔디밭 위를 구르는 산뜻한 초록색 트램 라인, 페데리코 소리아나가 디자인한 유스칼두나 콘서트 홀 등 이 도시는 리노베이션 건축학의 견학 코스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주비주리(Zubizuri)의 하얀 윤곽이 도드라진다.
바스크어로 '하얀 다리'라는 뜻을 지닌 주비주리는 발렌시아 출신의 건축가 겸 조각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했다. 우아한 곡선의 보도와 매력적인 디자인의 아치가 어우러져 강변의 풍경을 바꾸는 데 크게 일조했다. 하지만 유리로 된 바닥이 부서지거나 미끄러지는 등 지역 주민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빌바오는 여전히 건설 중인 것이다.
베레모를 지켜라 - 바스크 모자 가게
베레모는 바스크의 목동들이 쓰던 모자로부터 유래했다.
빌바오의 변신은 오랫동안 그들을 지켜봐 온 주변인들에게 더욱 놀라운 현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바스크인들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의 피레네 산맥 주변에 살고 있는 바스크인들은 주변과 완전히 고립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 유럽어족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과 아무런 친족 관계를 찾을 수 없다. 언어로부터 시작된 고립성은 이 지역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독립 정신으로 이어져오기도 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으로 유명한 게르니카(Guernica)의 학살 사건도 빌바오 인근에서 벌어졌다.
바스크는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자신들의 개성을 세계에 퍼뜨리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베레모. 피레네 산맥의 목동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크고 둥글게 만든 모자는 각국의 군복 디자인에 활용되면서 세계적인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검은 베레로 유명한 체 게바라도 북스페인의 바스크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 빌바오 구시가에는 1857년부터 대대로 바스크 전통의 모자(Txapelduns)를 만들고 있는 고로스타이가 가문의 모자 가게(Sombreros Y Boinas Gorostiaga)가 있다.
바스크 남자들의 힘을 보여주라 - 산 마메스 스타디움
빌바오는 H18K라 불리는 18종의 바스크 전통 게임을 현대화하고 규격화하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유럽 축구리그에 관심이 많은 팬들은 빌바오를 또 다른 이유 때문에 또렷이 인식하고 있다. 다른 스페인의 대도시처럼 이곳에도 고유의 축구팀인 아틀레틱 빌바오가 존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축구팀에는 오직 바스크 출신들만이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점이다.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 전 세계의 슈퍼스타들을 모아 드림팀을 만들고, 인근 도시이자 역시 바스크 지역인 산 세바스티안이 이천수 등 외국 선수들을 영입해온 것을 보면 얼마나 특이한 전통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아틀레틱 빌바오가 스페인 4대 명문 팀으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바스크 남자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내놓는 것은 축구가 아닌 바스크 전통의 스포츠 게임이다. 가끔 해외 토픽을 장식하는 바스크 전통의 민속 스포츠는 무거운 돌 들기, 통나무 빨리 썰기, 도끼로 나무 쪼개기 등 인간의 원초적인 힘, 노동과 직결되는 능력을 테스트한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본거지인 산 마메스 스타디움에서, 우리는 이 도시가 가장 국제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원초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시가와 신시가를, 바스크와 세계를 엮어라 - 빌바오 기차역
아반도의 기차역은 고풍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와 현대적인 교통 시스템이 어우러진 곳이다.
빌바오는 20년간 변신했지만, 여전히 극과 극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구겐하임을 중심으로 한 산뜻한 리노베이션 라인과 여전히 구태의연한 도심은 이질적인 채로 공존한다. 중세의 분위기를 풍기는 구시가와 바스크 고유의 음식점이 현대 도시의 차가움을 덜어주지만, 때론 강의 동쪽과 서쪽을 아예 다른 도시로 여겨지게 만들기도 한다. 다행히 그 모든 것을 이어주는 혈관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깔끔하고 매력적인 지하철도 좋지만, 도시 위를 느릿느릿 배추벌레처럼 기어가는 트램의 정겨움이 이 도시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아반도에는 이 도시의 안과 밖을 잇는 모든 교통의 중심이 되는 기차역(Bilbao-Concordia terminal station)이 있다. 이곳은 빌바오의 기적과 바스크의 전통을 스페인과 유럽 전역으로 수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65년에 시작된 FEVE 철도 라인은 이 기차역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혈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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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 비스카야 주의 주도.
항구도시인 이곳은 칸타브리카 해안 근처, 네르비온 강 어귀를 끼고 있다. 바스크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빌바오는 네르비온 강 어귀의 양안에 항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형성한 취락지에서 비롯되었다. 이곳 주민들은 강의 동안을 따라 대량으로 채굴되는 철광석과 철광석을 원료로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곳 철제품은 유명해져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빌바오의 강철로 만들어진 뛰어난 빌보스 검(劒)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선원과 제철소 노동자로 이루어진 이 취락에 비스카야의 영주 돈 디에고 로페스 데 아로가 1300년에 칙허장과 독립 자치시로서의 자치 특권을 부여했다. 또한 이 도시는 카스티야 내지에 있는 부르고스에서 생산되는 모직물을 플랑드르로 수출하기 위한 요지였다. 1511년 부르고스처럼 시의 상업재판소가 포고령 형태로 법을 공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이러한 포고령들 중 최후의 것인 1737년의 포고령은 1829년에 마련된 스페인 최초의 상법의 기초가 되었다. 18세기에 이 도시는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들과의 집중적인 무역으로 크게 번영했다. 한편 반도전쟁(1808) 때 프랑스군에게 약탈당했으며, 카를로스파 전쟁 동안에는 4차례의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전쟁들을 겪으며 강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1874년 이후에 산업화를 이루었다. 강 좌안에 있던 많은 도시들이 이 시에 합병되어 빌바오는 현재와 같이 확장되었다.
빌바오는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이다. 또한 화학공업과 야금업에서 스페인의 최대 중심지이며 금융 중심지로서도 중요한 곳이다. 해양활동으로 어업·조선업·선박수리업 등이 이루어진다. 주목할 만한 유적지로는 고딕 양식의 산티아고 대성당(14세기), 누에바 광장(19세기초), 네르비온 강 서(좌)안의 구시가지에 세워진 바로크 양식의 시청사 등이 있다. 그밖에도 박물관·기술학교·가톨릭대학교·빌바오대학교(1968)가 있다. 인구 349,972(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