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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16일 목요일
[(녹)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인들은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에서 계약 궤마저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도 죽임을 당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간절히 청하는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다(복음).
제1독서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서로 격려하십시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3,7-14
형제 여러분, 7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8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합니다. 레위기 13장에 따르면, 악성 피부병이 생겨 사제가 부정한 이로 선언하면 병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콧수염을 가리고 스스로 ‘부정한 이’라 외친 뒤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합니다. 율법에 따라 인간계에서 배제되었던 이가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경계를 넘어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내치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 1,41). 이것이 바로 그를 가엾이 여기시어 어루만지시며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그를 고쳐 주신 뒤 단단히 이르십니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1,44).
레위기 14장에 따르면, 악성 피부병 환자가 병이 나으면 사제에게서 정결한 이로 선언받고 정결례와 속죄 예식을 거행한 다음에야 진영 안, 곧 자신의 공동체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처지가 워낙 좋지 못하여 당장은 율법을 어기고 넘어온 그를 받아 주셨지만 치유된 다음에는 율법을 통한 회복의 절차를 밟게 하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히 이르셨지만, 그는 떠나가서 이 일을 퍼뜨립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19,40). 구세주를 만난 이, 구원받은 이의 환호성을 어느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가톨릭 성가』에 있는 성가곡의 노랫말도 함께 떠오릅니다.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 / 세상에 외치고 싶어 주의 크신 사랑.” 아직까지 주님을 전하지 않고 있다면 지금까지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은혜롭고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첫 번째 독서 히브리서를 봉독하고 묵상하던 중 오늘따라 ‘오늘’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은혜롭고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오늘이 그저 그런 하루,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영양가 없는 하루가 될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는가에 따라서 오늘이 일생일대 가장 큰 축복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돌아보니 부끄럽게도 오랜 세월, 수많은 ‘오늘’을 그냥 허송세월하며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금쪽같은 오늘인데, 그 소중한 오늘을 즐기지도 만끽하지도 못하고 소모시켜 왔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이라는 표현에 얼마나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베트남 공산화 이후 공산당 정권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간 구엔 반 투안 대주교님은 구속 영장도, 그 어떤 절차도 없이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장장 13년 세월 동안 옥고를 치룹니다.
첫해가 지나가면서 대주교님은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고, 무슨 방법이 있겠지. 마냥 이 음습한 독방에 갇혀있지는 않겠지. 누군가가 반드시 도와주겠지. 조만간 풀려나겠지. 무슨 방법이 있겠지.
그러나 2년, 3년, 5년, 10년이 지나도 그날이 오지 않았습니다.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 중에 대주교님은 마침내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보리라.”
그러나 어떻게? 그 뒤로 대주교님은 독방을 주교좌 성당으로 여겼습니다. 자신을 담당한 교도관을 예수님으로 섬겼습니다. 사이공 대교구 주교로서 자신이 담 밖의 교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거룩한 미사를 정성껏 봉헌했습니다. 물론 독방에서 혼자서, 양손 바닥 위에 작은 빵조각 하나, 포도주 한 방울을 올려놓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 말씀처럼 오늘이 구원의 날이니, 오늘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오늘,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웃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는 하루로 엮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내 입에 나오는 말 한마디, 손짓 한번, 전화 한 통화, 결정 하나 하나가 나의 삶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일 매 순간이 기적입니다. 살아온 날이 기적이고, 살아갈 날이 기적이며,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이 기적입니다.
너무나 큰 죄인이고 큰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어제의 나를 거두어가시고, 어제의 내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는 가장 뚜렷한 표징인 새로운 하루 앞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현재(現在)’라는 말은 영어로 ‘Present’라고 합니다. Present는 ‘선물(膳物)’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선물’입니다. 제가 매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새벽에 일어나 ‘묵상’하는 겁니다. 하루하루 쌓여서 어느덧 3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30년을 하려고 했으면 포기했을 겁니다. 하루는 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서 30년이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걷는 겁니다. 맑은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걸었습니다. 요즘에는 스마트 폰과 갤럭시 워치에 걷는 발걸음이 표시됩니다. 1달이면 9십만 보가 됩니다. 9십만 보를 작정하고 걸었으면 포기했을 겁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90만 보가 되었습니다. 쇼팽의 ‘왈츠’를 연습했습니다. 처음에는 연결이 안 되었고, 많이 틀렸습니다. 매일 연습하니 어느덧 6개월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연결이 되고, 틀리는 부분도 적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려 했으면 포기했을 겁니다. 매일 꾸준히 하니 부족하지만, 결실을 보았습니다.
오늘이 과거가 되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미래가 되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믿음은 질곡과 같았던 과거를 깨끗한 오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은 ‘믿음’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하혈하던 여인은 믿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죽었던 회당장의 딸은 믿음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건 가을이면 곡식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박해와 시련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이 세상의 삶이 마쳐지면 새로운 삶으로 옮겨 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여명의 눈동자와 같습니다.
오늘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라는 현상에 머물렀습니다.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잊어버렸습니다. 홍해 바다를 건넜던 놀라운 기적을 잊어버렸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잊어버렸습니다. 광야라는 현상에 머물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잊어버렸습니다. 광야는 거칠고 황량한 땅입니다. 마실 물도 귀하고 밤에는 추운 곳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나쁜 관습을 버리는 정화의 땅입니다. 광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거룩한 땅입니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오듯이, 광야를 거쳐야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감사와 찬미의 마음이 있으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에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육체의 병이 치유되는 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나병환자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우리도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참사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마르 1,45)
사람들 밖에서
사람일 수 없으니
사람이기 위해서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참사람에게
무릎 꿇고 빌고 빈다네
참사람이시여
하고자 하시면
나를 다시 사람이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 밖에서
사람일 수 없지만
다시 사람이고 싶기에
간청하는 사람에게
참사람이 손을 대시며
따뜻하게 말씀하신다네
그대 사람아
내가 하고자 하니
다시 사람이 되게나
하지만 사람아
굳이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게나
다만 사람아
사람에게 가서
사람임을 보여주고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게나
허나 다시 사람이 된 사람이
어찌 아무 말 없이 살며시
사람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랴
사람들아
나를 보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
나도 이렇게 다시 사람입니다
나도 그대들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참사람께서 나를 사람이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참을 수 없는
기쁨의 외침이 터지고 터질밖에
사람들 밖에서
사람들 안으로
감격에 겨워 힘차게 달려가
사람이 사람들과 어울린 뒤에
사람들 안에서
사람들 밖으로
편안한 제 자리에
머뭇거리지 않고
기꺼이 나와서
사람이 다시 사람이 되게
온 몸과 온 마음 건넨
참사람께서
더 이상 드러나게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 사람들 밖에서 머무신다네
나 이렇게
사람들 밖에 있어도
나로 말미암아 사람이
사람들 안에 있을 수 있으니
이것이 사람 사는 보람이리라
넉넉한 웃음 지으시며
그러니 참으로 사람이시지
나 또한 그리 되고픈
바로 참사람
오늘의 성인
성 마르첼로 1세(Marcellus I)
신분 : 교황, 순교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308/9년?
같은 이름 :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304년에 순교한 교황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 4월 26일) 밑에서 사제로 활동하며 지도자적 임무를 수행한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가 308년에 교황좌를 계승함으로써 비로소 약 3년 반 동안 비어 있던 베드로(Petrus)의 주교좌가 주인을 맞게 되었다. 자료에 따라 1년 6개월 또는 채 8개월이 안 되는 재위 기간 중 그는 혼란과 분열에 빠진 교회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박해로 인해 집회 장소와 묘지가 압수되고, 배교자들이 정해진 속죄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다시 신자 생활에 참여하길 요구하는 등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교회를 각각 한 명의 사제가 파견되는 25개의 본당으로 재조직하고, 본당 사제를 중심으로 예비신자의 세례를 준비시키고 배교자들에게 규정된 속죄 행위를 실행하도록 했다. 또 새 주교를 서품하고,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 카타콤바 반대편인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 새 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회를 재정비하려는 그의 노력은 배교자들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로 큰 혼란과 장벽에 부딪혔다.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쓴 비문에 의하면, 그는 배교자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속죄 행위를 요구한 엄격주의자였다. 그로 인해 헤라클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배교자들과 신자들 사이에 심각한 다툼이 유혈 충돌로까지 번졌다. 결국 막센티우스 황제는 배교자들의 고발에 따라 성 마르첼루스 교황을 체포해서 평화의 파괴자란 죄목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는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유배지에서 얼마 뒤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로마로 옮겨져 박해 기간에 징수되지 않았던 개인 묘지인 성녀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교황의 최후에 대한 이런 내용은 “리베리우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순교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를 기록한 5세기의 “마르첼루스의 수난”(Passio Marcelli)과 “연대 교황표”는 다른 전승을 전해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 마르첼루스 교황은 교회를 재조직하고 주교 직분을 지키면서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격분한 막센티우스 황제는 루치나(Lucina)라는 후원자가 자신의 집을 봉헌해 세운 ‘마르첼루스 성당’을 마구간으로 개조하고, 교황을 그곳에서 마부로 일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교황은 신앙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성녀 프리스킬라 (Priscilla)
신분 : 부인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98년경
같은이름 : 브리스킬라, 쁘리스까, 프리쉴라, 프리스까, 프리스낄라, 프리스카, 프리실라
프리스카(Prisca)로도 알려진 성녀 프리스킬라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만키우스 아이일리우스 글라브리오(Mancius Aeilius Glabrio)의 아내이며, 로마 원로원 의원이던 성 푸덴스(Pudens, 5월 19일)의 어머니이다.
그녀의 집은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 있었고, 사도 베드로(Petrus)가 로마에서 선교할 때 본부로 사용하였다.
그녀의 집 아래에 있는 카타콤바는 후일 그녀의 이름을 따서 프리스킬라 카타콤바라고도 한다.
성 호노라토(Honoratus)
활동년도 : 350-429년
신분 : 주교
지역 : 아를(Arles)
같은 이름 : 호노라또, 호노라뚜스, 호노라투스
성 호노라투스(또는 호노라토)는 프랑스계 로마인 집안 태생으로 독일의 트리어(Trier) 또는 프랑스의 로렌(Lorraine)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 그리스와 로마(Roma)를 순례하였다. 그로써 많은 것을 알게 된 그는 410년경에 황량한 한 섬으로 가서 은둔소를 세우고 트루아(Troyes)의 성 루푸스(Lupus, 7월 29일), 리옹(Lyon)의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 11월 16일), 아를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 5월 5일) 등과 함께 살았다. 이것이 유명한 레렝스 섬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그는 427년에 프랑스 아를의 주교로 선출되었으나 얼마 후에 운명하였다
성 베드로(Peter), 성 베라르도(Berard), 성 아주토(Adjutus), 성 아쿠르시오(Accursius), 성 오토(Otto)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모로코(Morocco)
활동연도 : +1220년
1219년에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는 성 베라르두스(Berardus)를 비롯하여 그의 동료 성 오토(Otto), 성 베드로(Petrus), 성 아쿠르시우스(Accursius) 그리고 성 아주투스(Adjutus)를 서방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들은 세비야(Sevilla)의 무어인에게 선교하다가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그 후 그들은 모로코의 마라케시(Marrakesh)로 가서 길거리에서 설교하였다. 아라비아말을 아는 사람은 성 베라르두스 혼자뿐이었다. 처음에 무어인들은 그들이 실성하였다고 판단하여 그냥 내버려 두었으나,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마호메트의 교리를 포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설교하자, 그들을 사로잡아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이들이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다. 7년 후에는 성 다니엘(Daniel, 10월 10일)과 6명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이 모로코의 체우타(Ceuta)에서 순교하였다.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481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