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사람은 승리하고,
참는 사람은 성공하며,
참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젊음을 바친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현충원. 국립묘지를 따라 뒤편으로 돌아가면 신라 도선국사 스님이 창건한 사찰, 지장사가 나온다. 짧은 삶에 대한 애환을 노래하듯,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산새소리가 구슬픈 지장사에서 혜성스님을 만났다.
조계종의 기틀을 세운 청담스님의 상좌로 도선사를 현재의 대가람으로 발전시키고, 1976년 혜명복지원을 설립해 보육, 양로사업, 사회복지사업을 펼쳐온 혜성스님은 참을 인(忍)자를 써주시며 법문을 내렸다.
살림을 잘 살아야지요. 가정 살림, 사찰 살림, 나라 살림을 잘 살아야 가정이, 불교가, 국가가 잘 되는 겁니다. 살림은 원래 산림이에요. 파인아산(破人我山)하고 장공덕림(長功德林)하라. 즉 나와 너라는 산을 허물고 공덕의 숲을 기르라는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 산림입니다.
어떤 것이 산림을 잘하는 것이냐 하면 불교집안에서는 옛 선사들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것이 절 살림 잘하는 것이요, 불자들은 인욕의 가르침을 잘 지켜나가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가정 살림 잘하는 겁니다.
청담스님 인욕보살로 유명
불교가 왜 있느냐, 바로 중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사들의 가르침은 바로 중생에의 무한한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포교와 복지, 교화 정신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소작할 땅을 주고, 고아가 있으면 데려다 키우고, 사찰에서 내일 먹을 식량이 없어도 어려운 사람에게 쌀을 나눠줬습니다.
또 국가를 대신해 마을의 다리를 놓고 중생들의 아픔을 함께 해왔습니다. 스님네들은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어루만질 수 있는 혜안과 지혜를 가져야합니다.
불자들은 ‘인(忍)’자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육바라밀 중 인욕은 요즘 사람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덕목입니다. 청담스님은 생전에 인욕보살로 칭송받았습니다. 무척 잘 참으셨지요. 스님이 즐겨 하시던 말씀이 ‘일인장락(一忍長樂) 인의자실(忍衣慈室)’입니다. 일인장락이란 한번 참으면 오랜 즐거움이 다가온다는 가르침이며 인의자실은 승려는 인내의 옷을 입고 자비의 집을 지으라는 가르침이지요.
하나 깨달으면 하나 주어야
요즘 현대인은 특히 인욕의 마음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확천금을 꿈꾸게 되고, 잦은 다툼을 합니다. 바다로 아무리 나가보십시오. 결국은 다시 육지를 만납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바다를 건너려하지만 결국 같은 흙으로 뒤덮힌 세상을 만날 뿐입니다. 자기를 먼저 깨닫고 밖으로 나서야합니다. 장님이 장님에게 길 안내를 할 수 없는 이치지요.
열을 깨닫고 하나를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를 깨달으면 하나를 주면서 또 깨달아 가야합니다. 하나를 벌면 하나를 남을 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변해 나를 변화시키고, 또 세상을 변화시키게 되지요. 그러려면 인욕의 가르침을 우선 실천하며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혜성스님이 종이를 꺼내 들더니 인(忍)자를 적어 주신다. 스님의 수첩 맨 앞장에는 ‘참는 사람은 승리하고, 참는 사람은 성공하며, 참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스님에게 가장 기억나는 일화를 물었다.
1980년대 초, 혜명보육원을 운영하던 때의 일이다. 스님은 더 많은 아이들이 사회에서 고아라는 이유로 천대받기보다 양부모를 만나 사랑을 받도록 만들 욕심에 총무에게 이르기를 “판공비를 써서라도 영아원에서 보육원으로 오는 아이들을 이쁜 아이들로 골라 오라”고 했단다.
봉사하는 불자모습 아름다워
그러던 어느날, 총무가 이르기를 미국의 한 흑인병사가 귀국을 앞두고 영아원을 찾아 얼굴에 화상을 입어 보기 흉한 아이를 “참 이쁘다”며 데려갔다는 것이다. 그래 총무가 이유를 물어보니 “다른 애들은 그래도 데려갈 사람이 있겠지만 이 애는 데려갈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데려가려 한다”고 대답했단다. 그 말을 전해들은 스님은 “너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내게 너무도 큰 법문이었다. 그때 사회복지의 참 뜻을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이때부터 장애인, 치매노인 등 소외계층 중에서도 소외된 계층에 속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됐다는 스님은 “봉사하는 불자로 살라”는 말로 법문을 맺었다.
안직수 기자 3Djsahn@ibulgyo.com">jsahn@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3Dcooljoo@ibulgyo.com">cooljoo@ibulgyo.com
/혜성스님은…
193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19살 되던 해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성철스님을 모신 인연으로 다음해 청담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도선사 삼각선원에서 수행 정진을 시작, 도선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당시 암자였던 도선사를 여법한 사찰로 변모시켰다. 1976년에는 한 보살이 운영하던 보육원을 인수받아 혜명보육원을 설립하고 이후 양로원, 사회복지관 등을 통해 지역복지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고문을 당하면서 도선사 주지직을 강제로 박탈당하면서도 불교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애쓴 스님은 또 1982년 학교법인 형석학원을 설립해 청담중·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사업을 펼쳤다. 이후 중앙승가대학교 학장을 역임하면서 불교의 사회복지, 교육 분야 전반에 걸쳐 선구자적 업적을 남긴 스님은 현재 도선사 회주, 청담학원 명예이사장, 혜명복지원 명예이사장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