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일,
오사마 빈 라덴 사망
911 테러의 배후,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or Usama bin Laden,
1957년 3월 10일 ~ 2011년 5월 2일))을 응징하기 위한 미국의 최종 작전 단초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2일 미국은 빈라덴을 사살하고 그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水葬)하는 것으로 10년간의
끈질긴 추적을 마무리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사우디 왕가의 친구이자 부유한 석유사업가인 무함마드
빈라덴과 그의 10번째 아내 하미다 알아타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사마의 부모는 그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였고, 어머니는 무함마드 알아타스와 결혼하였다. 이 부부는 4명의 자녀를 두었고, 오사마
빈라덴은 이 4 이복남매들과 함께 새아버지의 집에서 살았다.
그는 독실한 이슬람교도로 성장하였으며, 미국 중앙정보부에서 오사마 빈라덴을 추적해 온 마이클 셰어에
따르면,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의 대외 정책이 중동의 무슬림을 억압하고 살해하며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오사마 빈라덴은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싫어한다”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바 있다. 911 테러 이후 미합중국 해병대에는 "빈 라덴을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이지만, 둘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우리 일이다." 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1971년도 당시 가족들과 스웨덴에서 촬영한 사진 속 빈 라덴(오른쪽 2번째 초록색 상의)
이 때 나이는 14세.
2009년 1월 취임하기가 무섭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은밀하게
백악관으로 호출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거나 체포하는 일에 주력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미 정보 당국은 빈라덴에 대한 정보망을 더욱 열심히 돌렸고 마침내 석 달 뒤인
그 해 4월 심상찮은 단서가 포착된다. 빈라덴을 숨겨 주고 있는 남자의 소재를 통해 빈라덴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곳이 파악된 것이다.
그곳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도시 아보타바드에 있었다. 은신처는 주변의
집들보다 8배나 크고 고급스러운 3층짜리 고급 아파트였다. CIA는 그 건물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차츰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2010년 8월, 빈 라덴의 행적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얻게 된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된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와 다른 수감자들로부터 모하메드의 과거 심복이 빈 라덴과 거처를 같이 한다는 진술을
끌어내면서 빈 라덴 제거작전은 힘을 받기 시작했다. CIA는 8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빈라덴의 은신처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고 정식으로 보고한다. 하지만 100%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더 확인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CIA는 더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확신이 들면서 오바마 안보팀은
긴박하게 움직인다. 확인된 것만 3월 14일과 19일, 4월 12, 19, 28일 등 다섯 차례의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팀
회의가 열렸다. 물론 여기에는 극소수의 핵심 멤버만 참여했고 웬만한 고위 각료들도 정보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마침내 금요일인 지난달 29일 아침 8시 20분 오바마 대통령은 토네이도 피해를 입은 앨라배마로
가기 직전 빈라덴에 대한 공격작전을 승인했다. 헬기에 소규모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을 실어
은신처를 습격하는 것이 작전의 골자였다. CIA는 작전 D-Day를 일요일인 1일로 잡았다. 1일 오후 1시
백악관에 오바마 대통령과 극소수의 참모들이 모여 공격을 위한 최종 점검을 했다. 3시 32분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다. 3시 50분 대통령은 빈라덴이 현재 은신처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작전 전 과정은 미국 버지니아 주 랭글리에 있는 CIA본부에 실시간 중계되었고, 작전 성공이
확인된 후 회의실에서 지켜보고 있던 당국자들은 크게 박수를 쳤다고 전한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파키스탄 시간으로는 2일 새벽 1시 30분)부터 30분 동안 은신처에 대한 공격이
헬리콥터를 통해 이뤄졌다. 네이비실 요원 20~25명이 헬기를 통해 현장에 투입됐고 지상에서 약 40분간
임무를 수행했다. 헬기의 집중 공격으로 은신처는 화염에 휩싸였다.
빈 라덴의 은신처
상황을 목격한 현지 주민에 따르면 공격이 전개된 시간은 현지시간 오전 1시15분쯤. 헬기들이 빈라덴의
거처를 향해 접근하자 빈라덴 측 병사들은 지붕에서 로켓식 유탄 발사기를 발사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헬기 1대가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했다. 추락 헬기에 탄 네이비실 요원들은 헬기를 부수고
밖으로 나와 작전에 가담했다.
빈라덴은 그 후 양측 간 총격전의 와중에 최후를 맞았다. 사살 당시 상황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CNN은 이번 작전에 정통한 미 의회 소식통과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
빈라덴이 머리에 총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 관계자는 작전 과정에서 빈 라덴의 아들을 포함해
남성 3명과 여성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당국자는 "사망자 중 2명은 빈 라덴을 위해
일하던 급사이고 1명은 빈 라덴의 아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미 정부 관리들은 시신을 24시간 이내에 매장해야 하는 이슬람 관례에 따라 빈 라덴의 주검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재빨리 옮겨 수장했다고 밝혔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무슬림이 사망하면 염(殮 · 주
검을 씻고 수의를 입히는 것)을 포함한 간단한 의식을 행한 뒤 24시간 내 매장하게 돼 있다. 미국 측은
시신을 특정 지역에 매장하면 묘지가 알카에다 세력에 알려져 '테러리스트들의 성지'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바다에 수장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알카에다 추종세력이 빈 라덴의 주검을 탈취할 수 있음을
우려해 수장한 곳이 어느 바다인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살된 모습(좌)과 수장되는 장면(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일 오후 11시 35분(미 동부시각) 백악관에서 발표한 특별 성명을 통해 “오늘(1일)
미군 특수부대가 빈 라덴이 숨어 있던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가옥을 급습해 교전 끝에 그를 사살했다”며
“이제 정의는 실현됐다(Justice has been done)”고 했다. 그는 “미국은 지난해 8월 빈 라덴의 파키스탄
내 은신처에 관한 단서를 확보하고 이를 추적해 왔으며, 지난주에 빈 라덴의 제거 작전을 단행할 충분한
정보가 확보됐다고 판단해 작전 개시를 승인했다”고 했다.
9·11 테러 직후 “‘죽여서든지 생포해서든지’ 빈 라덴을 원한다”고 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은
물론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모든 이들과 9·11 테러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이들의 승리”라고 했다.
빈라덴의 죽음에 광분하는 미국인들...빈 라덴의 행위들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국인들은 과연 빈 라덴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로이터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작전은 처음부터 사살 명령만 받았을 뿐 생포할 의도는 없었다고
익명의 미 안보관료가 밝혔다. 빈 라덴은 예전부터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각지의 알카에다 조직은 자체적으로
활동해온 만큼, 생포의 실익보다 큰, 사살의 상징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고유가 등
악재에 허우적대던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단기간에 뛰어오르게 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미군 특수부대가 알카에다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을 당시 빈라덴은 비무장
상태였으며, 빈라덴이 자신의 부인을 인간방패로 활용했다는 미국 당국의 발표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빈라덴이 생포된 뒤 가족 앞에서 사살됐다는 언론보도마저 나오면서 빈라덴 사살의
법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었다.
체포하려는 최소한의 시도도 없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확인 사살까지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미국은
“빈라덴이 저항했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저항했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가 비무장 상태였고
무장 호위병도 없었다는 점에서 미군이 자위권을 발동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미국은 의혹을 풀어줄
가장 중요한 증거인 빈라덴의 주검마저 서둘러 수장해버렸다.
미국이 파키스탄 정부에 통보조차 하지 않고 작전에 들어간 것 역시 이번 작전의 비합법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미국은 정보 유출 우려 등을 주장하지만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자기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주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오만한 자세를 다시 한번 보여줬을 뿐이다.
한편 알카에다는 이날 미국의 빈 라덴 사살 발표 약 9시간 후에 그의 사망을 공식 확인하고 미국에 대한
보복을 천명했다. AFP 통신은 알카에다가 성명을 내고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망했음을 인정하고, 그를
미국에 맞선 성전을 이끌면서 자신의 영혼과 재산을 바친 기사(騎士)로 추앙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