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트레킹] 40. 청도 몰래길
비단 결 같은 호수 위 비슬산 마루금 조용히 앉아 가을풍경 아늑
호수를 조망하는 벤치에서 바라본 은물결 호수와 봉긋하게 튀어나온 제비동산의 모습.
높고 푸른 하늘과 황금 들녘의 풍요를 즐기러 지난 24일 집을 떠나 청도(靑道)로 향한다. 오랜만에 찾은 청도
는 싫은 내색도 않고 우리를 반긴다. 이번 트레킹은 청도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숨은 둘레길을 찾아갔다.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에 있는 성곡저수지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웃음이 묻어나는 이름의 ‘몰래길’이 거기 있다.
둘레길 이름치고는 재미있고 재치와 유머가 넘쳐나는 이름이라 더욱 흥미가 가는 길이다.
성곡저수지 표지석 모습.
성곡저수지 둘레가 대략 6.5㎞ 정도 되어 쉬엄쉬엄 호반나들이 트레킹 하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성수월마을 그린투어센터앞에 세워진 성곡권역안내 조형물 모습.
청도는 잘 알려진 산들과 볼거리와 먹거리도 많아 산꾼들과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지만 이곳 ‘몰래길’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한적하고 조용하다.
청도 몰래길 시작점인 성수월마을에 있는 그린투어센터 모습.
성수월마을에 세워진 멋진 조형물이 가을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풍각면 성곡리와 수월리의 이름을 따 ‘성수월마을’이라 부르는 곳에 그린투어센터가 있고 조그마한 주차장과
각종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아름다운 마을 어귀에서 ‘몰래길’ 걷기가 시작된다.
철가방극장에 만들어진 재미난 조형물 모습.
재미나는 이름의 몰래길은 2007년 유명 개그맨인 전유성 씨가 이곳 성수월마을에 ‘철가방극장’이라는 웃음
건강센터를 만들면서 2012년 성곡저수지 호수 주변을 걷는 코스를 조성하면서 곳곳에 스토리를 만들어 알
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댐이 만들어지면서 하류에 살던 마을이 수몰되어 새로 이주
해 만든 마을이 성수월마을로 애틋한 사연과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다.
경북 청도군과 대구시 달성군 경계에 위치한 비슬산(琵瑟山·1,803.4m)자락에 안겨 있는 성수월마을을 기점
으로 시계 방향으로 저수지 호반을 걷는 길로 접어든다. 그린투어센터 앞에 있는 마로니에 이파리에 단풍이
들어 이 마을에도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고 한그루 외롭게 서 있는 키 큰 소나무가 가을 하늘을 우러르며
길손을 환영한다.
웃음건강센터 앞에 세워진 망향정가는 길 이정표.
투어센터가 문이 닫혀 있고 한 켠에 세워진 몰래길 안내판이 넝쿨에 가려 볼품이 없어 보인다.
성수월마을앞에 세워진 몰래길종합안내도 모습.
가까스로 몰래길 유래와 코스안내도를 훑어 보고 출발한다.
빨간우산 조형물속에 놓인 _느린우체통_에 가을 볕이 들었다.
건너편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빨간 우산 조형물 속에 ‘슬픈 사연은 적지 마시고 기쁜 사연만 적고 가세요’라고
한 ‘느린 우체통’과 키 큰 나무 아래서 호수를 바라보는 벤치가 눈에 띈다. 잔잔한 호수의 물빛이 가을 하늘을
닮아 푸르게 빛나고 고요한 산 그림자가 호수에 내려앉아 있다.
몰래길 옆에 세워진 백안정과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정자나무가 서있다.
둘레길 초입이 무성한 풀로 뒤덮여 길을 찾을 수 없어 도로를 따라 저수지 시작점까지 간다. 우거진 수풀과
갈대밭 속으로 길이 있음 직하지만 전혀 발길이 닿지 않아 흔적이 없다. 산자락 따라 나 있는 저수지 가장자
리 임도를 따라 호반길을 걷는다. 이 길을 따라 곧장 가면 성곡댐 제방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 호수를 우측
에 두고 걸을 수 있는 호젓한 힐링로드가 펼쳐진다.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이라 봄에는 벚꽃이 호수와
어우러져 환상의 꽃길을 만들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가슴을 설레게 할만하다. 올해 단풍이 신
통치 않아 그런 풍광을 볼 수 없지만 산자락에 피어나는 억새의 은빛 물결이 단풍을 대신해준다. 호수에 나부
끼는 가을바람에 은비늘 물결이 잔잔하게 흩날리고 어른거리는 산그림자와 건너편 성수월마을의 모습이 조화
를 이뤄 한 폭의 수채화가 호수에 그려진다. 호반길 좌측에 산속으로 오르는 길이 희미하게 나 있고 안내판에
는 ‘노인봉 등산로’ 가는 길 이라고 설명한다.
낡은 안내판이 등고개 라는 표시를 하고 있지만 좀은 쓸쓸해 보인다.
계속 호반길을 걸어 닿은 길 옆 안내판에는 ‘등고개’라 쓰여 있지만 유래를 알 수 없고 제대로 관리가 안 된
채 방치된 탓에 조금은 썰렁하게만 느껴진다. 몰래길 조성 당시에는 재미있는 스토리텔링까지 꾸며지기도
한 것 같은데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호반을 끼고 걷는 발걸음은 마냥 상쾌하다. 날씨가 들쭉날쭉하고 코로나19로 기분마저 맑지 않은 날
이 많았는데 이렇게 화창한 가을날 수정 같은 호수를 벗 삼아 걸으며 주변 자연들과 속삭이는 재미 또한 솔솔
하다.
제비동산에 세워진 망향정에 환한 가을볕이 든 모습.
호수 넘어 저만큼 떨어진 성수월마을 뒤로 비슬산 조화봉(照華峰·1,058m)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하얗게 돋아난
버섯모양으로 솟은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고 왼쪽 호숫가에 봉긋하게 곶(串)처럼 튀어나온 제비동산이 짙은 그
림자를 드리우며 떠 있는 듯하다. 다시 벚나무 길로 발걸음을 재촉하니 성곡댐 제방과 마주친다. 왼쪽 노인봉
등산로에서 내려오는 산길이 보이고 ‘굴뚝바위’라고 불리는 깎아지른 벼랑이 우뚝 서 있다. 비단결같이 부드러
운 민낯을 보이는 너른 성곡저수지 호수 위로 파란하늘과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그 아래 비슬산 마루금이
조용히 앉아 있다. 조는 듯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눈을 마주치는 저수지 취수탑이 길손을 반갑게 맞아주
는 성곡지의 가을풍경이 평화롭다. 반듯한 제방길이 호수를 가로 지르며 빛바랜 성곡댐 안내판에서 발길을 멈추
게 한다. ‘성곡저수지’라고 쓰인 표지석 옆으로 데크길이 나 있고 도로변으로 몰래길이 이어진다. 데크길이 끝나
고도 도로를 따라 흙길이 이어지고 길 건너 ‘희희낙낙’이란 재미 난 이름의 한옥펜션에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호수너머 멀리 비슬산 조화봉의 흰 기상관측소 모습이 보이고 제비동산 봉우리가 손에 잡힌다.
오른쪽 호수 속에 야트막한 산이 들어있다. 호반나들이에서는 이런 그림 같은 풍경을 보는 재미가 멋들어지고
낭만이 아닐 수 없다. 지루하지 않도록 풍경이 동무되어 함께 하는 힐링로드가 더욱 정겨운 운치를 만들어 몰
래길 트레킹을 도와준다. 한참을 가다 보니 ‘백안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백안골’ 안내판이 나온다. 한 켠에 서
있는 시원한 정자나무가 고단한 몸을 쉬게 한다. 도로변으로 난 몰래길이 백안정을 지나 ‘배곡고개’ 못미처서
갈라지게 되어있다. 성곡저수지 호수에 반도처럼 튀어나온 ‘제비동산’으로 오르는 길이 정상적인 루트인데 길
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수풀만 우거진 희미한 길이 연속이라 가지 못하고 도로를 타고 배곡고개를 넘어
‘웃음건강센터’가 있는 ‘철가방극장’까지 간다. 한때는 전국의 많은 탐방객으로 붐볐던 이곳이 문을 닫고 텅 비
어 있어 썰렁하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유명인이 떠나고 나자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아쉬움만 남는다.
철가방을 연상하는 건물과 외벽에 붙은 갖가지 조형물은 주인을 잃은 채 넋이 나간 모양이다. ‘배워서 남 주자’
라는 우스갯소리가 공허하게 들리고 텅 빈 주차장에는 오가는 차가 보이지 않는다. ‘웃음건강센터’라는 말에 어
울리지 않은 모습이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하지만 ‘멍때리는 길’이라고 이름 지어진 ‘망향정’ 가는 길에는 무심한
억새가 물결치듯 흔들린다. 700m 남짓 거리에 있는 망향정을 오른다. 모처럼 가파른 길을 올라 성곡저수지 댐
공사로 수몰되어 정든 보금자리를 떠난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달래 줄 ‘망향정’은 아무 말 없이 애꿎
은 호수만을 바라본다. 우거진 숲으로 제대로 호수를 조망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아픔을 함께 공유해 보며 다시
성수월마을로 되돌아온다.
감의 고장 청도를 상징하는 단감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
청도의 빛바랜 ‘몰래길’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몰래길에 얽힌 ‘동팔이와 사자이야기’ 그리고 몰래 빌어야
소원을 들어 준다는 재미난 스토리, ‘멍때리는 길’이라 이름 지어 찾아오는 탐방객들에게 힐링할 수 있게 한
다는 취지가 더욱 빛나고 ‘몰래길 걷기수칙’에 나오는 “구라치기 없기, 큰소리 안내기, 각종 소원 환영, 분실물
환영,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구절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조성 당시의 의미를 살렸으면 좋겠다.
읍내에서 만난 경북산악연맹 김호태 부회장과 청도산악회 권영득 회장과 나눈 달콤한 커피 맛이 여운을 남기
는 ‘힐링 앤 트레킹’ 마흔 번째 ‘걸어서 자연 속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前 회장
빛바랜 성곡댐 안내판이 안스럽기만 하다.
너른 호수위로 비슬산 마루금과 하얀 구름이 조화를 이루는 사이 취수탑이 가을볕에 졸고있는 평화로운 모습.
야트막한 산등성이가 호수로 내려와 있고 물들지 않은 벚나무 이파리가 아쉽게 보인다.
저수지 가장자리로 난 임도를 걸어가는 탐방객 모습.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길손을 반기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