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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두스(Óbidos)
오비두수는 성벽에 둘러싸인 인구 1,162(2015년)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계곡의 진주'라고 불리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도시로, 여름에는 색색의 꽃들이 처마 끝을 수 놓는다. 오비두스의 역사는 로마 시대에
바다를 통해 쳐들어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 요새를 세운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비두스(Óbidos)라는 이름은 오피둠(Oppidum)이란 라틴어에서 유래하는데
'마을' '성곽도시'라는 뜻이다. 오피둠(Oppidum)은 철기 시대에 유럽에
요새화 된 대규모 정착지였다. 기원 전 2 C~1 C에 걸쳐 만들어졌다.
-오비두스 가는 길(Google사진 편집)-
**오비두스는 리스본 북쪽 85 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언덕 위에 마을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 보인다.
-오비두스 성문(Porta da Vila)-
**이슬람 시대에 건설된 오비두스의 메인 게이트(Main Gate)로, 적의 직접적인 돌격을 막기 위해 2중의
지그재그 구조로 구축되어 있으며 아취 형태의 통로 안쪽에는 18세기의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다.
-성내 마을 과 골목길-
** 오비두스는 유럽에서도 중세의 건축물이 가장 잘 보존된 예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이 골목길이 디레이타 거리(Rua Direita)로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이다.
-골목길 풍경-
** 이슬람 교도들에게 정복 당했던 이 도시는 1148년 아폰수 엔리케스(Afonso Henriques) 왕에 의해
무어인의 지배를 벗어나 도시의 재건이 이루어졌다.
-마을 상점-
** 1282년,오비두스를 방문해 완전히 매료 당해 버린 왕비 이사벨에게 디니스 1세(Dom Dinis I)왕이
이 도시를 선사했다. 이후 1834년까지 오비두스는 대대로 여왕의 직할지가 되었다.
-골목길 풍경-
** 현재까지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작은 도시는
유럽의 아름다운 골목길 톱 5(Top 5)에 선정 되었다고 한다. 건물에는
노란색과 파란색을 칠하는데 이것은 국기에 이 두 색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비두스 만의 토속주 진자(Ginja)-
** 진자는 체리(Cherry)로 빚은 과실주이다.(사진 Google)
-초콜릿 잔에 담긴 진자(Ginja)-
**토속주를 초콜릿 잔에 담아 써빙 함으로서 차별화는 물론 풍미도 더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사진 Google)
-성 야곱 성당(St. James'(=Santiago) church)-
**1186년에 세워졌으나 1755년 대 지진으로 재건하였다.
-성당 내부-
-성모 마리아-
-골목 풍경-
**골목길에서는 어디서나 성벽의 일부가 보인다.
- 서 점 -
** 오비두스에는 교회 한 곳에 있는 것을 비롯해 14개의 서점이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의 첨탑이 보이는(11시 방향) 골목길-
-오비두스 성채(Castelo de Óbidos)-
** 잘 보존된 중세의 성채로 성벽의 가장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푸자다(Pousada=여관)로 사용되고 있다.
-성벽 길-
**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1.5 km로 40분이면 성벽을 일주 할 수가 있다.
-서쪽 성벽 위에서 보이는 성내 풍경-
** 앞에 보이는 4각주의 보루는 성내에 있어서 용도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왼편으로는 성 야곱(Santiago)성당의 전면과 성벽으로 올라오는 계단이 보인다.
-마을 풍경-
-산타 마리아 성당(Igreja de Santa Maria)-
**1444년 열 살의 아폰수 5세가 겨우 여덟 살 된 사촌 이사벨라와 결혼식을 올린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내부의 벽은 전면이 17세기의 아줄레주로 치장되어 있다.
-오비두스의 펠로리뉴(Pelourinho)-
** 산타 마리아 성당 맞은 편에 세워져 있는 기둥(Pillar)이라는 뜻의 펠로리뉴(Pelourinho)는
인근에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과거에는 시청사였기 때문에 15세기에 권위의
상징으로 세운것이다. 석회석으로 만든 원기둥으로 죄인을 공개하기 위해 묶어 놓았던
기둥으로 기둥 위에는 어망 같은 모양이 보이는데 1491년 레오노르(D.Leonor)왕비가
가장 사랑한 왕자가 테주 강에서 익사하자 왕비는 왕자의 시신을 끌어 올린 어부의
그물을 펠로리뉴에 새기도록 하여 기증하였다. 1910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산타 마리아 성당 내부-
**성당 내부 벽면은 아줄레주로 치장되어 있다.
-아줄레주 장식의 벽면에 걸려 있는 다수의 성화 중의 일부(그리스도의 영세)-
-아줄레주 장식의 벽면에 걸려 있는 다수의 성화 중의 일부(그리스도의 승천)-
-성곽 과 마을-
-성벽 후문-
**관광객들은 거창한 건축물이나 황홀한 인테리어를 보지는 못했지만 잔잔한 여운을 되새기며 돌아가는 것 같다.
-성 밖에서 본 성벽-
-오비두스 성채(Castelo de Óbidos)-
-돌아가는 길-
-수도교(Aqueduto de Óbidos)-
**1573년 주앙 3세의 부인인 카타리나 왕비의 명으로 건설된 로마의 수도교를 닮은 3 km에 달하는
이 수도교는 오비두스에 식수를 공급해 왔으며 수차례의 보수를 거쳐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알코바사(Alcobaça)
알코바사(Alcobaça)는 서부 해안가 지방의 지자체 도시로 과거 에스트레마두라(Estremadura)주에 포함되었던
도시이다. 오비두스에서 북쪽으로 40 km 에 위치하고 있으며 알코아(Alcoa)강과 바사(Baça)강의 계곡을 따라
발달해 있어 도시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2011년 기준 지자체 전체 인구는 408.14 km2의 면적에 56,693 명이고
도시 만의 인구는 15,800 명이다. 알코바사는 포르투갈의 초대 왕인 아폰수 엔리케스(Afonso Henriques)가
1147년 무어인들로부터 산타렝(Santarem)을 수복한 이후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공화국 광장(Praça da República)-
** 알코바사의 중심 광장.
-시가지 모습-
-거리 풍경-
-벼룩시장-
** 벼룩시장 장마당은 알코바사 수도원 앞 광장에 펼처져 있다.
-알코바사 수도원 광장 과 벼룩시장-
-수도원 입구에서 본 광장-
** 입구 앞 테라스에는 조형물들이 서 있다 .
-알코바사 수도원(Alcobaça Monastery)-
** 알코바사 수도원(Mosteiro de Alcobaça )은 웅장하고 거대한 수도원 건물군(群)으로 포르투갈의 초기 고딕 건축의
좋은 예이다. 포르투갈의 중부지방에서 십자군 활동으로 무어인들을 축출시킨 아폰수 엔리케스(Afonso Henriques)왕이
새로운 왕조의 권위를 보이기 위해 1153년 웅대한 성당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수도원은 성당이 완성된 후 완공되었으며
정문 양쪽에는 성 베네딕토 와 성 베르나드 상이 안치되어 있다. 수도사가 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생활은 척박하다.
-성당의 오른편 신도석(Nave)-
**알코바사 수도원의 정식명칭은 '알코바사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Mosteiro de Santa Maria de Alcobaça)'이다.
알코바사 수도원의 성당과 수도원은 코임브라(Coimbra)의 산타 크루스(Santa Cruz) 수도원과 함께 포르투갈에
건설된 첫 고딕 양식 건축물들 중의 하나로 포르투갈의 중세 수도원 중 가장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수도원의 예술적,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8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중앙 신도석-
**76년이 걸려 1223년 교회가 완공 되었을 당시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교회였으며. 왕조는 건축 작업을 계속하여
60년이 더 걸려 디니스(Dinis)왕은 수도원 본 건물을 완성하였고 1262년 드디어 수도원이 봉헌되었다.
- 지금은 미사 중-
-중앙 제대-
**제대의 양쪽에는 페드로(Pedro/ 남쪽,오른편)와 이네스 드 카스트로(Ines de Castro/북쪽, 왼편)의 석관이 있다.
-왕들의 방(Kings Room)-
** 이 방에는 역대의 왕들의 석상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아폰수 1세 왕의 대관(The Coronation of King Afonso I)-
** 성 베르나르드(St. Bernard ; 우) 와 교황 알렉산더 3세(Alexander III ; 좌)가 대관식을 하고 있다.
-왕들의 방 벽면을 장식한 아줄레주-
** 포르투갈의 역사와 주요 사건들이 그려져 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왕들의 석상-
** 왼편으로부터 에마누엘(Emanuel)/ 요안니스(Ioannis)/ 알폰수(Alfonso).
-역대 왕들의 석상-
** 석상에는 '요안니스' '알폰스' 등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층으로 된 침묵의 회랑(Cloister of Silence)-
-검소한 고딕 수도원 회랑-
-회의장 벽에 늘어선 석상들-
** 성인들의 이름 또는 역대 교황들의 이름이 석상 기단에 보인다.
-회의장 벽에 늘어선 석상들-
** 왼편 : 성 유지니우스(Eugenius3세/교황) 오른편 ;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ABBS).
-수도사들의 방(The Monks hall)-
- 수도원의 거대한 주방-
**4 각 뿔 형태의 거대한 굴뚝이 인상적이다. 수도원이 세워진 후 알코바사는 부흥하기
시작하여 수도원 자체의 인력만도 999명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 하였다.
-주방의 조리대-
-수조(水槽)-
-식당(refectory)-
-이네스 데 카스트로(Inês de Castro)의 석관-
**알코바사 수도원에는 페드로 왕과 이네스 왕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서려있다. 카스티야(Castilla) 공주와
정략적으로 결혼한 페드로 왕자는 따라온 공주의 시녀인 이네스(Inês)에게 마음이 있었는데 출산 중에 죽어버린
공주를 대신하여 이네스와의 사이에서 3명의 자녀를 두게 되지만 부왕의 명령으로 이네스는 암살 당하게 된다.
부왕이 승하하고 왕좌에 오른 페드로는 암살에 가담한 자들에 대하여 무자비 하고 피 비린내 나는 복수를 한다.
-페드로(Dom Pedro)의 석관-
**이네스 암살에 가담한 자들을 잡아들여 채찍질하고, 산채로 심장을 뽑아내어 살해했다. 잔혹왕(Peter I The Cruel)이란
별칭이 이때 생겼다. 복수를 마친 페드로는 이네스의 시체를 꺼내어 대관식을 치러 정식으로 여왕의 지위를 하사 한다.
대관식에서 시체 앞에 무릎을 꿇고 부패한 그녀의 손에 키쓰를 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성 베르나르도(Saint Bernardo)의 죽음-
** 녹색 형광 펜으로 표시된 부분에 누워 있는 사람이 베르나르도(1090-1153) 성인이다. 그는 가톨릭의
수도자이자 시토회(Citeaux)의 수도원장, 성인이자 교회 학자로서 양봉업자, 양초제조자,
성전 기사단, 부르고뉴, 지브롤터의 수호성인이다.
바탈야(Batalha)
바탈야는 포르투갈의 중부 지역 레이리아(Leiria)주의 지자체 도시이다. 도시 이름 Batalha는
영어의 Battle(전투)을 의미한다. 2011년 기준 전체의 인구는 15,805명이고 면적은 103.42 km2 이다.
마을의 현지 주민은 약 7,500명이 주거하고 있다. 이 마을은 1383년 8월 14일 알류바로타(Aljubarrota)
전투에서 포르투갈이 승리 함으로서 성모마리아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주앙 1세(D. João I)왕에 의해
승리의 산타 마리아 수도원(Monastery of Santa Maria da Vitória)의 건설과 함께 마을도 건설되었다.
-조용한 시가지-
-바탈야 수도원-
**승리의 산타 마리아 수도원(Mosteiro de Santa Maria da Vitória)은 바탈야 수도원(Mosteiro Batalha)으로
더 널리 알려진 센트루 지방 레이리아 현 바탈야 시에 위치한 도미니코회 수도원이다.
앞에 보이는 기마상은 누누 알바레스 페레이라(Nuno Alvares Pereira/1360-1431)의 동상이다. 그는 중부 포르투갈
ㅍ흐ㄹ로르 다 로사(Flor da Rosa)에서 1360년 6월 24일 태어났다. 그의 직위는 바르셀루스(Barcelos), 오렝(Orém),
아르라이오ㄹ루스(Arraiolos), 3곳의 작위(爵位)를 가지고있었고 1385년 8월 4일 알주바로타(Aljubarrota)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폴투갈을 카스티야(Castile)로부터 독립시키는데 성공한 장군이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리스본에 위치한 칼멜 수도회 소속인 카르무 수도원에서 청빈하고도 평범한 수사로 생을 마쳤는데, 1918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로 부터 시복(諡福) 되었고 2009년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시성(諡聖 ;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필자 註 : ㅃ, ㅉ, ㄲ. ㄵ. ㄺ 등과 같이 ㅍㅎ, ㅂㅇ, ㄹㄹ 등을 초성에 사용하면 F=ㅍㅎ, L= ㄹㄹ, V=ㅂㅇ 등 등으로
표기할 수가 있고 한글로 표기 못할 발음이 없게됩니다. 이상은 필자의 창의가 아니라 100년전 천주교 선교사들이
라틴어(당시는 라틴어로 미사를 진행함)를 가르칠 때 사용하던 방법입니다. 한글 학자들보다 앞서 가고 있었지요.
-바탈야 수도원(Mosteiro da Batalha)-
**1385년 알주바로타 전투에서 카스티아 왕국에게 승리한 것에 대해 성모 마리아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주앙 1세의 명에 따라 건설을 시작하였으며 15세기 포르투갈 왕국의 아비스 家의 가족 묘지
역할을 하였다. 바탈야 수도원은 또한 마누엘 양식과 혼재된 포르투갈의 후기
고딕 건축의 가장 좋은 독창적인 예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높이 32.4 m의 천정-
-제대 뒤편-
** 2, 성 도밍고(S.Domingos). 1. 십자가에 못 밖힌 그리스도(Cristo crucificado).
3. 성 프란치스코(S.Francisco). 4. 성녀 요안나 공주(Santa Joana Princesa)
-수도원 성당과 첨탑-
-왕조 건립자의 예배당(Founders' chapel)-
** 성당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채플의 주인공 부부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8각의 이 원형건물(Rotunda)은 영국의 건축가 우게트(Huguet)에 의해 지어졌는데
1402년 부터 그가 사망하던 1438년까지 바탈랴 수도원 건축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캔터베리 대성당 건축에도 참여한 바 있다.
-조앙 1세(1357-1433)와 필리파 왕비(1360-1415)의 석관
-석관 위에 누워있는 부부의 모습-
-산타 마리아 수도원의 정원에서 보이는 로얄 회랑(Royal Cloister)-
** 1400년경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회랑이며 특히 포르투갈 특유의
정교한 조각 형식인 마누엘린(Manueline) 장식으로 유명하다.
-갤러리로 사용되는 알폰수 5세 회랑(Alfonso V Cloister)-
-갤러리-
-Blog를 장식하기 위해 선택한 현대화 1점 -
-알폰수 5세 회랑에서 보이는 성당의 첨탑-
-미 완성 채플(Chapel)-
**수도원의 주 성당인 승리의 성모 성당(The Church of Our Lady of Victory)동쪽에 붙어있다.
건축공사가 상당히 진척 되다가 중단되어 지붕이 얹혀있지 않은 상태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위의 사진에서 오른편의 본당에 붙어 있는 왼편의 지붕 없는 건물이 미완성 채플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