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정을 찾으러 간다. 푸른 하늘 아래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할 때마다 산과 들을 쓰다듬고 온 바람이 온몸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듯하다. 하지만 바이러스 방어용 마스크를 다시 착용해야 하는 되돌이표 코로나 19 재유행으로 짧은 호흡으로 연명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소소한 일상은 격월로 형제들이 모여 가까운 산과 계곡을 찾아 떠나곤 한다.
왠지 홀로 찾기엔 어쩐지 외롭고, 서넛이 찾기엔 소란스러울 것 같은 풍경 같지만, 4형제가 모두 모였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야생의 거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심호흡이 절로 됐다. 어딘가 숨어 있었던 까투리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올랐다. 차가운 옥계수玉溪水에 손과 발을 담그며 자연에 도취 되면, 나와 자연이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됨을 깨닫는다. 얕은 계곡의 물놀이는 오히려 자연 친화적인 접근성으로 안전할 수 있다. 하루의 일탈에서 벗어나 금쪽같이 휴식하는 것은 우리 형제들이 누릴 수 있는 우애友愛라 생각한다.
생선을 뒤집었다. 술 한잔에 생선 한 점을 먹었다.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생선의 고소한 맛이 냄새를 타고 올라왔다. 살집 튼실한 삼치 토막을 밥 위에 올리는 작은 축제가 벌어졌다. 생선구이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지만, 굳이 철을 꼽자면 추석이 지나고 난 뒤다. 보통 겨울 생선이 맛이 좋다고 한다. 제철을 맞은 생선도 다양하다. 나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산 생선을 좋아한다. 그래서 발품을 팔기도 한다. 그곳에는 단골 생선가게가 있었다. 후덕한 아주머니 넉살에 매번 그 집을 찾곤 한다.
반건조였다. 주인아주머니 설명에 따르면, 생선을 그저 살짝 말리는 게 아니라 온도와 습도를 통제하여 숙성하는 작업을 거친다고 한다. 꾸덕꾸덕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단지 수분이 날아갔다고 하기에는 살과 살 사이에 머무는 육즙의 양이 달랐다. 순백의 상아象牙 같은 조피볼락의 살을 씹을 때면 소나무숲 같은 청량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잔잔히 남는 고소한 기름기에 여린 푸른 바다가 이 계곡에 있었다.
그런데 요즘 생선 냄새 때문에 집에서 잘 굽지 않는다. 지난 6월 JTBC ‘사건반장’에는 서울 모 아파트에 사는 제보자의 사연이 전해졌다. “어느 집인지 모르지만 19층 이하 제발 생선을 집에서 기름으로 튀기거나 구워서 먹지 말아 주세요. 생선 기름 냄새가 올라와 역겨워 구역질 나요.” 아마도 신혼부부나 어떤 젊은 입주자가 붙여 놓았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생선구이를 먹지 말라는 건 무례한 요구다. 수십 마리 튀긴 게 아닌데! 아무튼, 역겹다는 표현은 심하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즐기지만, 공동주택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잘 배출되지 않는 냄새 때문에 거의 집안에선 사양한다. 생선구이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요리 중 하나다. 이 맛있는 요리는 그릴이나 팬에서 조리하면 고기도 부드러워지고 풍미를 높여준다. 간혹 자갈치시장 노점에서 갈치‧고등어 등 생선 굽는 냄새가 났지만, 그 풍경도,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푹 끓인 된장국, 가자미와 고등어구이 등 채소류 같은 반찬도 푸짐히 깔린다. 반찬이 몇 되지 않은 단출한 메뉴지만 부지런히 생선 가시를 바르고 야무지게 밥숟가락을 뜨다 보면 배가 만선처럼 차오른다. 그렇게 느긋해진 마음으로 세상사를 이야기하며, 무수히 널린 카페보다 산중 커피를 마시며 세상을 바라본다.
형제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기 때문에 많은 추억을 공유한다. 같은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다 보니 때로는 경쟁자가 되기도 하고, 터울이 많은 손위는 아래에 부모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원래 가족에서 남은 혈육은 형제자매밖에 없다. 이렇게 살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이자, 부모·자식만큼 각별한 관계가 형제자매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나 형제자매의 관계를 인위적으로 단절할 수 없듯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 서로 사랑해야 하는 천륜을 타고난 것이다.
형제는 지나온 추억을 공유한다고 했다. 선친께서 아침이면 동네를 찾아오는 생선 아낙이 측은惻隱하여 올 때마다 팔아 주었으나 행여 오지 않는 날은 못내 궁금해했다. 갓 잡은 멸치. 싱싱한 기장 갈치 등을 연탄불에 굵은 소금을 뿌리면서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맛도 맛이지만 냄새는 그렇게 구수할 수 없었다. 언젠가 시장에서 전어를 사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게 구워 먹으면 맞춤인 크기였다. 장사가 장만하고 있는 곁에, 등산 가방을 멘 남자가 보고서 있더니 ‘고거 구워 먹으면 딱 맞겠다.’라고 하면서, 어디다 굽느냐고 물어서 프라이팬에 구울까 한다고 했더니, “에이, 연탄불에 구워야 제맛이 나지요.” 한마디 하고 가버렸다. 전어를 석쇠에 얹어 연탄불에 구우면 맛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미소를 보낸다. 우리 형제자매도 생선의 구수한 냄새처럼 사람 냄새가 나는 멋진 여생을 함께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