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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류승완, 2021. (포스터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UN 가입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 정부가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소말리아는 지금까지도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 내전이 시작되는 시점에 놓였다. 영화는 이때를 배경으로 남과 북 대사관 직원들이 내전으로 고립되어 버린 도시를 목숨 걸고 탈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 이상으로 파란만장했던 실화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적 각색 과정에서 풍부한 서사와 캐릭터로 변모했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맥락이 녹아들어 있다. 지금은 해적의 나라가 되어 버린 소말리아 내전 현실, 해빙기 이전 냉전 모드였던 남과 북 관계, 경제 성장 한가운데 있던 남한과 고난의 행군 직전의 북한의 분위기 등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며 탈출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휴머니즘이 남는다.
1988년 올림픽 이후 자신감을 가진 대한민국과 이전부터 꾸준히 아프리카에 진출하여 외교작업을 해왔던 북한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외교 총력전에 몰입한다. 그러나 당시 상황과 처지는 지금 시선으로 보면 몹시도 열악해서 영화 초반부 설정에 깨알 같은 웃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한국 대사관의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안기부 출신 정보 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은 소말리아 대통령을 어렵게 면담키로 하고 선물을 한가득 준비하지만 이들은 이동 과정에서 강도를 당하고 맨몸으로 뛰어서 대통령궁에 15분 늦게 도달한다. 하지만 소말리아 대통령은 이미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와의 면담을 끝낸 후다. 남과 북의 대사들은 이렇게 마주하게 된다. 이 한 에피소드에 소말리아의 열악한 치안, 남과 북의 물밑 외교전, 그리고 소말리아 정부 현실까지 빼곡히 들어찬다.
'모가디슈'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위험한 치안 때문에 대사 부부와 서기관 부부, 참사관과 통역 사무원 등 단순하게 구성된 한국 대사관 식구에 비해, 북한 대사관은 대사 가족 모두와 사무관 가족들, 그리고 참사관 태준기(구교환) 등 아이들까지 포함된 대식구들이 생활한다. 소말리아 정부와 반군 시위의 대립 상황에서 남과 북 국가정보 요원의 첩보전뿐만 아니라 외신기자들과의 접촉을 통한 교란 작전까지 여러모로 정치적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이런 외교 접전이 이 영화의 중심 화두가 아니다. 핵심적인 사건은 정부군과 반군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에서 시작한다. 아이디드 장군이 이끄는 반군은 바레 정권의 장기독재에 반기를 들며 수도 침공에 나선다. 대통령궁 외곽을 중심으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본격화되면서 도시 전체는 내전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모든 통신이 끊기고, 한국 대사관은 반군에게 털려 재산을 탈취당한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대사관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모든 외국 대사관이 게릴라부대의 약탈 대상이 되었다. 통신이 끊기고, 식량이 떨어지고, 이동할 수가 없고, 스스로 보호할 장비조차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각종 훈련으로 단련된 강대진 참사관은 준비해 간 자금으로 경찰 지원을 받아온다. 반면, 북한 대사관은 처지가 훨씬 어려워졌다. 모든 살림살이와 차량을 약탈당하고, 식량과 의약품마저 거덜 나버렸다. 부인과 아이들까지 있는 상황에서 살해 위협까지 받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외국 대사관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 그 어떤 선택지도 없는 가운데, 이들은 한국 대사관 문을 두드린다.
'모가디슈'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제부터 본격적인 탈출서사가 진행된다. 어떻게든 헬기를 지원받아 모가디슈를 벗어나야 한다. 여기에 두 나라 한국과 북한 대사의 외교 기지가 발휘되고, 특수훈련을 받은 남과 북 각각의 참사관들이 협력한다. 한국 대사관은 북한 대사관이 통째로 귀순하는 것을 내심 목표로 삼고, 북한 대사관은 이데올로기고 국가고 간에 부인과 아이들부터 살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위기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가혹하기만 하다.
소년 전투병까지 기관총을 난사하는 총알 세례 속에서 네 대의 차가 달리는 카체이싱은 매우 잘 고안된 액션 신이다. 그러나 영화는 누군가의 비극을 오락으로 치환하지 않으려 애쓴다. 기관총 세례 한가운데로 들어간 카메라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을 절절하게 경험하게 한다. 총알의 공포와 시체더미의 잔혹함을 눈앞에서 경험하며, 이제 전향, 이데올로기, 대립, 국가 이런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진짜 위기일 때 적일지언정 잠시나마 그들은 동지가 된다.
'모가디슈'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초반부의 소소한 유머코드, 중반부의 극적 전개를 지나, 결말부에 흔히 자리할 감정과잉의 신파가 있을 법하지만, 이 영화는 이를 절제하면서 흔한 액션 장르의 규칙을 피한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여백의 미적 공간에서 감정을 추스르며 한번 더 곱씹어 볼 인류애다. 균형감 있고 품격 있는 구성과 만듦새로 인해, 분단 국가라서 생성된 한국적 특수 장르인 분단영화의 격을 올린 작품이라고 평가해 본다.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나 ‘캡틴 필립스’를 넘어서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오락적으로 효용성 있게 배치한 잘 만들어진 탈출영화이며, 남과 북 스파이전을 다룬 명작 ‘공작’과 비교해 봐도 좋을 분단영화의 또 한 번의 성과다. 뒷모습에도 표정을 담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과 서서히 멀어지는 차량 동선에도 감정을 살려내는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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