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으로 들어가기 전, 성도가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창세기 2장을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3장에 들어가려 합니다.
《성도는 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까? 성도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의식과 생각이 인간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 중심적으로 전환이 됩니다. 이는 인본적 지식에서 신본적 지식으로의 전환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근본적 변화 없는, 색깔로만 칠한 겉모습의 회칠한 무덤이 되고 맙니다.
성경을 통하여 신지식으로 무장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나도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나도 싫어하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져 갑니다. 또한 우리의 삶이 생각과 언행이 일체화가 되어가므로 그로 인해 삶이 넉넉해지고 풍성해집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셨던 서머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되어집니다. 바울과 요셉같은 신앙인이 되어집니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다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의 창조 과정입니다.
사람의 창조과정을 확인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는데 먼저 흙으로 지으십니다. 그리고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셔서 사람이 생령체가 되게 하십니다(2장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렇다면 사람은 흙만의 존재가 아님이 분명하고 그리고 흙으로 만든 육체에 영혼이 있음도 분명합니다.
다음은 일곱째 날의 ‘하나님의 안식’과 아담과 하와로 구성된 지상의 첫 ‘교회’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 사역을 끝내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셨습니다. 이 안식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쉼을 갖는 영원한 안식을 예표합니다. 이 영원한 안식을 얻는 자들은 누구인가요?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합체인 교회입니다.
에덴동산은 교회의 출발을 말씀합니다. 이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인 에덴교회는, 장차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된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서 영원히 안식 누릴 것에 대한 예표이며 모형으로서의 언약입니다. 이 신부는 그리스도의 뼈와 살로서 만들어졌고 이것을 ‘지체’ 또는 ‘형제’라고 합니다.
다음은 아담과 하와의 관계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로서 인류의 시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몸을 가지고서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하와가 아담 앞에 왔을 때에 아담은 그를 향하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2장23절)고 합니다.
여기서 아담은 하와를 향하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성경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가, 흔히 남녀 간의 결혼식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시지가 결코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 관계는 ‘하나’요 ‘한 몸’입니다. ‘사랑의 관계’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하나이고 그들로 인해 다시 출산되는 자녀를 합하여도 역시 하나요 한 몸입니다. 아무리 많아져도 한 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비밀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에베소서 5장31절에 이렇게 밝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성경은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창조 사역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금명 율법 관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머무는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고 하십니다. 동산 중앙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덴의 율법으로서, 동산 나무의 모든 실과는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장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그곳에 뱀이 찾아옵니다(3장1절). 그 뱀은 사단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계12:9).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조주요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아담과 하와가 머무는 동산 중앙에 두시고서 그 열매를 먹게 하실 의도신가요? 아니면 정말 먹지 말라는 뜻이신가요? 또한 성경은 그 열매의 모습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뱀이 동산 중앙에 아담과 하와가 있는 곳에 다가옵니다.
뱀이 하나님의 눈을 피해서 독자적으로 들어왔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뱀을 아담과 하와에게 보내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서까지 사랑한다라고 하셨는데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에덴동산에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2장에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또 있습니다. 동산에서 흘러가는 네 개의 강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강들의 이름을 놓치지 않고 창세기 창조과정에서 하나하나 밝혀 주는 것은 성경의 무오성과 사실성을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고 또한 고고학에서 에덴동산과 그 주변의 흔적과 모습을 찾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입니다. 현재는 두 강만이 존재하고 나머지는 여러 지형들의 변화들로 인해 사라졌습니다.
〚위의 내용들과 창세기 시작 전에 질문드린 것들을 포함하여 다시 한번 정리하여 질문하면서 3장으로 넘어가려 합니다. 아래의 질문들을 생각하시면서 본문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에덴동산에 뱀은 어떻게 해서 오게 되었고 뱀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2.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거주하는 에덴동산 중앙에 왜 선악과를 두셨을까요?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의 출발과 범위 그리고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4.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 죽으시기로 작정되셨을까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오인(誤認)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늘의 하나님을, 피조물인 죄인이 죄의 잣대를 가지고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타락한 인생의 우둔하고 무지한 지식으로 비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성을 가지고 세상적 상식과 도덕, 종교심으로 전능자 하나님을 자기 생각대로 단정(斷定)해 버립니다. 시대마다 달라지고 지역마다 차이가 나는 세상의 윤리나 도덕적 의의 기준으로, 영원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인간 마음대로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타락하고 죄인된 인간, 곧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성경으로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이요 사명과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오직 성경입니다. 이 안에 모든 인생의 해답이 있고 만사형통이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차근차근 이어서 공부하며, 빨리 배우려는 마음보다 매일 식사하듯이 귀하고 소중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매일 양과 소들이 되새김질하며 먹듯이 공부하시면 좋겠습니다. 영의 양식을 놓치면 인생은 하나님과의 회복은 없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내 모습을 모르듯이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고 나 자신도 모릅니다】
성경은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경을 공부하며 깨닫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로 알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5장20절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죄를 많이 지을수록 은혜가 더욱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더욱 깨닫게 될 때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에 의해 나의 죄를 깨닫는 깊이와 넓이와 높이에 따라 내 신앙의 질이 만들어집니다. 봉사•섬김•희생•충성】
인생은 동양적 사상이나 사고 또는 일반적 대중 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의 기준을 가지고서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과 악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준을 그대로 성경으로 유입하여 하나님을 무작정 ‘선’ 혹은 ‘선하신 분’으로 말하고 그리고 사단과 마귀 등을 ‘악한 자’로 규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하여 이원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며 ‘악’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즉, 창조하신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잠16:4)
또한 나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주면 ‘선’이 되고 내가 불편하면 ‘악’이 되기도 합니다. 또 내게 유익하면 ‘선’이 되고 내게 불이익을 가져다주면 ‘악’이라고 규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인생들은, 익숙해져 버린 전통 부수기를 두려워하고, 그리고 교회의 전통과 유전을 떠난 것에 대하여 아무런 성경적 확인도 없이 무조건 틀렸다고 몰아세웁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이 온 세상과 나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온 세상과 나의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
【창조주하나님】
선 / 영물 / 공의 / 버림 / 징계 / 영생 / 기뻐하심 / 영벌 / 악 / 싫어하심
(피조물)
위의 그림은 ‘선’과 ‘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조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께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뜻대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통해서 악을 주관하게 하시고 공중권세를 가지도록 한정된 기간까지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사단도 하나님께 종속된 영물입니다.
심판 날 악한 자들과 함께 무저갱이에 갇히게 됩니다(계20장 참조).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사용하시고자 만드신 것입니다(잠언 16장4절,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위와 같은 내용을 먼저 이해하고 이어지는 창세기 3장으로 들어가게 되면, 세계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보다 더 정확하게 깨닫게 되고 나아가 요한계시록까지 하나의 맥을 가지고 성경이 보여지게 됩니다. 계속 이어가다가 중간중간 성경 전체의 흐름을 재반복해 드리겠습니다. 성경 전체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하나의 내용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하나의 내용이다는 뜻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해석하고 하나의 결론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가다가도 뒤의 내용과 연결되고 계속 되풀이됩니다. 아래의 표는 3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에 대한 의미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