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다국적기업의 단계적 철수와 한국 노동자 착취를 고발한다
- 한국지엠 사태는 산업주권을 뒤흔드는 위기이다
정성희 /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한국지엠 사태가 다시 한국 사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GM은 경영 효율화와 조직 재편이라는 중립적 언어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직영정비센터 폐쇄, 연구개발 기능 축소, 생산기지 통합, 자산 매각을 동시에 추진하며 ‘단계적 철수’의 명백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업 내부 조정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 기반과 노동자 생존권, 나아가 산업주권 자체가 흔들리는 중대한 사안이다.
막대한 ‘미국 퍼주기’식 대미투자가 누적되면서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가 가속되고 생산 기반이 잠식되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안정적 일자리는 급격히 축소되고 지역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지엠의 단계적 철수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부품업체와 하청·서비스업 전반에 연쇄 충격을 가해 공급망 붕괴 위험을 높이고 지역경제의 소비·투자·고용 선순환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것이다.
한국지엠은 이미 철수 과정의 중간 단계에 들어섰다
한때 한국지엠은 한국 자동차산업을 견인하던 핵심 기업이었다. 연간 80만 대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협력업체를 포함해 약 15만 명의 노동자가 그 생태계 안에 있었다. 부평과 창원 공장은 해당 지역 경제의 25~30%를 지탱하던 생산 기반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GM은 투자 축소, 생산 축소, 고용 축소를 반복했고, 이는 산업 기반의 침식으로 이어졌다. 최근 진행된 직영정비센터 9곳 폐쇄, 세종물류센터 외주화, LOC·부천 연수원·군산 물류센터 등 자산 매각은 모두 철수형 구조조정의 전형적 패턴이다. 다국적기업이 사용하는 철수 절차는 비교적 일정하다. 생산 축소 → 자산 매각 → 서비스 축소 → 시장 기반 붕괴 → 단계적 철수. 한국지엠은 이 수순을 상당 부분 이미 실행했다.
내수 시장 점유율은 한때 10%를 넘었지만 현재는 2%대까지 추락했다. 2010년 14만 대 이상 판매하던 기업이 2024년 3만 대 수준으로 급감한 것은 단순한 수요 감소가 아니라 GM이 신차 배정과 마케팅을 스스로 줄여 시장을 붕괴시킨 결과이다.
지역경제에 미친 충격도 명확하다. 2018년 군산공장 폐쇄 후 사라진 일자리: 1만 2천 개 이상, 군산 제조업 고용지수: 2년간 17% 감소, 지역 가구소득: 평균 12~18% 감소, 부품업체 가동률: 절반 이하로 추락, 전 세계 자동차산업 연구에서도 공장 한 곳의 폐쇄는 지역 실업률을 두 배로 높이고 지역 상권 매출을 20~40%까지 하락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GM이 추가 철수 수순을 밟을 경우, 대한민국 자동차 부품망 전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일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이다.
GM 본사의 이익 회수와 책임 회피는 다국적기업의 전형적 방식이다
GM은 한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회수해 왔다. 2018년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이 총 8,1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GM이 약속한 신차 배정 확대와 연구개발 투자 확대는 이행되지 않았다. 반면, 다양한 분석에서 GM 본사가 회수한 누적 현금흐름이 15~2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GM은 군산공장 폐쇄 당시 한국의 인건비가 높다는 주장을 반복했지만, 같은 시기 미국 GM 공장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9만 달러로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 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철수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다국적자본의 구조적 전략이 작동한 것이다.
GM은 캐나다 오샤와, 호주 홀덴, 태국·인도 공장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신차 배정을 줄이고 투자를 축소하며 시장 점유율을 스스로 붕괴시키고 이를 근거로 공장 폐쇄를 단행하는 방식이다. 한국지엠 문제는 특정 지역 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자본의 일방적 세계 전략 속에서 재현되는 구조적 패턴이다.
2028년, 한국 자동차산업의 명운을 가르는 분기점이다
GM과 산업은행의 기본계약은 2028년에 종료된다. 이 시점 이후 GM은 한국 시장에서 공장 폐쇄든 자산 매각이든 독자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갖게 된다. 산업은행의 비토권도 사실상 사라진다. 따라서 2025~2028년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이다. GM이 유럽 오펠, 호주 홀덴, 인도·러시아·태국에서 보여준 ‘돌연 철수’ 사례는,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한국지엠 조합원들이 지금 투쟁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기술력·노동력·생산능력을 외국 독점자본이 이용한 뒤 수익성이 낮아지자 철수하는 구조에 대한 저항이다. 한국 노동자는 GM의 글로벌 공급망을 지탱해 왔다. 그러나 GM은 책임을 공유하지 않고, 기업 이익 극대화만을 추구하며 비용과 충격을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떠넘기고 있다. 이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것이 바로 오늘의 한국지엠 사태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주권 회복과 사회적 통제 강화이다
첫째, 공적 지분의 통제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산업은행의 17% 공적 지분은 단순한 투자 지분이 아니라 국민의 자산이다. 따라서 산업은행은 생산기지 유지, 고용 안정, 연구개발 기능 유지, 미래차 전환 전략 등에 대해 실질적 통제력을 행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지분 재조정이나 공공 경영참여 확대도 검토할 시점이다.
둘째, 공급망 전체를 보호하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지엠 관련 생태계는 전국 3,000여 개 부품업체 20만 명 이상의 노동자, 지역경제 및 지자체 재정이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공급망이 붕괴되면 회복에는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정부, 산업은행, 지자체는 공동으로 부품생태계 유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미래차 전환 국면에서 한국지엠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GM이 한국을 전기차·배터리 생산의 전략기지로 활용할 것인지, 단순 조립기지로 축소할 것인지, 이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GM이 향후 투자 계획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부는 공장 자산 공적화, 독자적 미래차 개발, 공공 주도 미래차 전환 플랫폼 등 다양한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GM 철수 저지 투쟁은 한국 사회 전체의 싸움이다
한국지엠 사태는 특정 기업이나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제조업 기반과 고용, 지역경제, 산업주권이 동시에 걸린 문제이다. 미국 다국적기업의 구조조정 방식은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GM은 언제든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철수할 수 있으며, 그 충격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몫으로 남는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일자리를 지키는 투쟁이면서 산업 생태계를 지키는 투쟁이며 외국 독점자본의 약탈적 철수 방식에 대한 사회적 방어 투쟁이다.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외국 자본의 일방적 결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한국지엠 사태는 한국 산업정책 전반을 재정립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국지엠을 둘러싼 투쟁은 한국 제조업과 산업주권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한국 사회 전체의 싸움이다. 외국 자본의 일방적 철수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 투쟁은 한국이 산업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선언이며, 한국 경제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전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