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바르게 정진하라 2
(내 안의 빠삐만을 넘어 자유를 향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이치에 맞는 생각과 이치에 맞는 바른 정진으로 위없는 해탈을 성취하고 증득하였다.
그대들도 이치에 맞는 생각과 이치에 맞는 바른 정진으로 위없는 해탈을 성취하고 증득하도록 하라."
이 말씀은 수행의 핵심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신에게 기도하거나, 나를 믿으면 해탈한다."
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이치에 맞게 정진하였기에 해탈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자신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걸어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믿음 이전에 바른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지금 이치에 맞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바르게 정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이 수행의 출발입니다.
...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진실도 있고 거짓도 있습니다.
가짜 뉴스가 넘쳐나고, 사람들은 거짓을 진실처럼 믿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치에 맞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치에 맞는 생각이 있으면 거짓은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을 붙잡으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분별하기 어려워집니다.
수행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래 절을 하고, 오랫동안 명상을 하며,
많은 경전을 읽는다 해도 생각이 법의 이치에 맞지 않으면 바른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보다 먼저 여리작의(如理作意)이니,
여리작의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살피고, 연기의 이치를 따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욕망과 감정이 아니라 진리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수행의 첫걸음입니다.
그러나 수행의 길에는 반드시 장애가 나타나니,
경전에서는 그것을 '마라 빠삐만'이라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빠삐만을 밖에 존재하는 악마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빠삐만은 언제나 자기 마음속에서 나타납니다.
수행을 시작하려 할 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일까?'
'나 혼자 바르게 산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이러한 의심과 두려움이 바로 빠삐만의 목소리입니다.
경전 속 빠삐만은 말합니다.
"천상과 인간의 모든 덫에 너 또한 묶여 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수행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착하게 살아 봐야 손해 아닌가."
"세상은 원래 이런데 나 혼자 바르게 살아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러한 생각들이 우리를 붙잡는 덫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나는 천상과 인간의 모든 덫에서 벗어났다."
이 말씀은 밖의 악마를 이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지에서 벗어났고,
두려움에서 벗어났으며,
의심에서 벗어났다는 선언입니다.
그 순간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부처님의 마음은 더 이상 세상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탐욕을 따라간다고 나까지 탐욕을 따라갈 이유는 없고
남들이 성냄으로 산다고..
남들이 거짓을 따른다고..
나까지 따라갈 이유도 없습니다.
불자는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먼저 살피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밖을 향하는 일이 아니라 언제나 안을 향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내 생각은 지금 법의 이치에 맞는가.
나는 사실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왜곡하여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이 여리작의이며, 그 위에 하루하루 바른 정진을 쌓아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이치에 맞게 정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를 묶고 있던 두려움은 점차 힘을 잃고, 의심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 자리에 평화가 피어나고,
자유가 피어나며,
마침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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