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색 번개가 내리친 듯 불규칙적으로 새겨진 화려한 무늬가 눈길을 잡아 끈다. 끈적한 속살에 가까이 다가가면 톡 쏘는 강렬한 향기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푸른곰팡이로 만드는 ‘블루치즈’ 얘기다. 고르곤졸라, 스틸튼, 로크포르까지 대표적인 블루치즈를 소개하면서 블루치즈를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알아본다.
푸른곰팡이의 산물, 톡 쏘는 맛과 화려한 무늬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천가지 치즈 중 푸른곰팡이를 이용해 만든 치즈를 한데 묶어서 ‘푸른곰팡이 치즈’ 또는 ‘블루치즈’라 부른다. ‘곰팡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이 푸른곰팡이야말로 미식가들이 예찬하는 블루치즈 맛의 원천이다.
숙성이란 단백질과 지방 등 영양성분이 미생물과 효소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때 어떤 미생물이 관여하느냐에 결과물이 달라지는데, 푸른곰팡이의 경우 지방산을 메틸케톤(Methyl Ketone) 화합물로 분해해 블루치즈 특유의 풍미를 만들어낸다. 푸른곰팡이로 숙성한 치즈에서 쌉쌀한 매운맛과 톡 쏘는 자극적인 향기가 나는 까닭이다.
-
- 로크포르 콩발루 동굴
치즈 제조에 주로 쓰이는 푸른곰팡이는 로크포르 치즈를 만드는 ‘페니실리움 로크포르티(Penicillium Roqueforti)’, 고르곤졸라 치즈를 만드는 ‘페니실리움 글라우쿰(Penicillium glaucum)’ 등이다. 커드(응유, Curd) 표면에 균을 접종하는 흰곰팡이 치즈와 달리 푸른곰팡이 치즈는 커드 내부에 균을 접종한다. 그래서 푸른곰팡이 치즈는 안쪽에서부터 익어가며 숙성이 진행될수록 대리석 무늬처럼 불규칙한 그물 형상이 점점 퍼져나간다. 기술이 발전해 푸른곰팡이 균을 따로 배양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배양액을 주사기로 주입해 블루치즈를 만들기도 한다.
‘3대 블루치즈’는 로크포르·고르곤졸라·스틸튼
지역과 제조법에 따라 수많은 블루치즈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블루치즈는 이탈리아의 고르곤졸라 치즈, 영국의 스틸튼 치즈, 프랑스의 로크포르 치즈다. 이른바 ‘세계 3대 블루치즈’라 불리는 치즈들이다.
고르곤졸라 치즈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유래한 치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푸른곰팡이를 배양한 커드를 다른 커드에 섞는 방식으로 블루치즈를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주사기로 배양액을 접종하는 방식을 많이 쓴다. 숙성기간에 따라 짧게 숙성한 비앙코(Bianco), 약 60일 숙성한 돌체(Dolce), 90일 이상 숙성한 피칸테(Picaante)로 나뉜다.
영국의 스틸튼 치즈는 1730년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역사는 짧은 편이지만 영국인 사이에서는 ‘치즈의 왕’으로 불릴 정도로 사랑 받는다. 세 치즈 중 가장 매운맛이 강하며 다른 두 치즈와 달리 살짝 압착해서 만들기 때문에 질감이 비교적 촘촘한 편이다. 영국인에게 스틸턴 치즈는 크리스마스 무렵 꼭 먹어줘야 하는 ‘절기음식’과 같은 존재로, 스틸튼 치즈에 구멍을 내 포트와인을 부어 먹기도 한다.
로크포르 치즈는 블루치즈 중 가장 명성이 높은 치즈다. 가장 역사가 오랜 블루치즈로 다른 두 가지 치즈와 달리 양젖으로 만들기 때문에 색깔이 하얗고 특유의 단맛이 난다. 전통제조법에 따르면, 딱딱한 빵을 푸른곰팡이가 자생하는 동굴에 두고 푸른곰팡이를 배양하는 게 시작이다. 완성된 빵가루를 커드에 섞으면 블루치즈를 만들어진다. 푸른곰팡이가 만들어내는 쌉쌀한 맛, 날카로운 쓴맛과 더불어 양젖 특유의 단맛이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18세기 철학자 디드로는 로크포르 치즈를 두고 ‘치즈의 왕’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카사노바는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해주는 치즈‘라 표현하기도 했다.
-
- 로크포르 치즈
‘호흡하는 천연 동굴’의 로크포르가 진짜
로크포르 치즈는 지구 상에서 단 한 군데,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로크포르 지역의 콩발루(Combalou) 동굴에서만 만들어진다. 백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산맥이 무너져 내리면서 형성된 콩발루 동굴은 서늘하면서도 습도가 높아 블루치즈를 숙성시키기에 최적의 장소다. 콩발루 동굴의 중요한 특징은 플뢰린(Fleurine)이라 불리는 미세한 균열로, 외부의 공기가 드나들며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장을 담글 때 ‘숨을 쉬는’ 옹기 항아리를 제일로 치듯이 동굴 전체가 거대한 항아리처럼 ‘호흡’하는 셈이다.
콩발루 동굴에서는 오래 전부터 푸른곰팡이가 자생했고, 이 지역에서 양을 치게 되면서 양젖으로 만든 블루치즈, ‘로크포르’가 탄생하게 됐다. 오늘날까지 모든 로크포르 치즈는 이 콩발루 동굴에서 숙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콩발루 동굴에서 숙성하지 않은 치즈에는 로크포르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정해져 있다.
로크포르 치즈는 프랑스의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제도로 가장 먼저 보호받게 된 치즈로도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크포르 치즈는 ‘가짜’가 판을 치는 치즈였기 때문이다. 역대 왕과 귀족들에게 총애를 받은 로크포르 치즈는 귀하게 거래된 탓에 유사 치즈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로크포르 치즈 생산자들은 일찍이 지역 명칭의 독점적 권리를 보장받고자 노력해왔다. 1411년 샤를 6세로부터 콩발루 동굴의 독점 사용권을 인정받았고, 1925년 프랑스 의회에서 ‘로크포르 보호법’이 통과되면서 권리를 보호받게 됐다. 이러한 지역 명칭 권리 보호법이 프랑스의 AOC 제도로 발전했으며, 로크포르 치즈가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
- 로크포르와 로크포르 가지구이
낯설다면, 크림소스로 만들어 육류와 함께 드세요
블루치즈는 치즈 중에서도 특히나 맛이 자극적인 편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매콤한 맛이 나는데 고추의 매운맛이 아니라 후추처럼 톡 쏘는 맛, 얼얼한 매운맛에 가깝다. 콤콤한 숙성취에 익숙지 않다면 냄새를 맡는 것부터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삭힌 홍어처럼, 처음엔 익숙지 않은 맛 때문에 먹기가 힘들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중독성이 매우 강한 음식이다.
푸른곰팡이의 숙성취에 익숙지 않다면 우선 크림과 섞어 먹어보자. 크림소스에 블루치즈를 녹이면 블루치즈의 날카로운 풍미가 다소 누그러져서 먹기 편해진다. 고기를 찍어 먹는 디핑 소스로 만들어도 좋다. 블루치즈의 알싸한 맛이 육류의 느끼함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맛에 익숙해졌다면 익히지 않은 채로 샐러드에 토핑해 먹거나 크래커에 올려 간식으로 즐겨보자. 프랑스식 정찬에서는 식사의 마무리 단계에서 치즈보드에 반드시 블루치즈를 구성하고, 고기요리를 먹고 난 뒤 입가심으로 블루치즈를 먹기도 한다.
블루치즈는 단맛과 궁합이 좋다. 영국의 스틸튼 치즈는 달콤하고 진한 포트와인에 곁들이고, 프랑스의 로크포르 치즈는 이웃 지방 소테른에서 생산되는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마시는 것이 공식처럼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고르곤졸라 치즈와 꿀은 ‘절대 궁합’이라 불릴 정도다. 블루치즈의 매운맛과 쓴맛을 진한 단맛이 감싸주면서 동시에 치즈의 고소한 맛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레드와인 중에서는 숙성이 잘 된 진한 와인을 추천하며 블루치즈의 매콤한 맛(Spicy)과 비슷한 쉬라 와인이 적당하다.